• 눈물의 상여길 100리
    [긴급기고] 20대 국회는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2016년 06월 13일 02: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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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도 못 치룬 90일,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 열사 분향소 이전을 위한 눈물의 꽃상여길 100길이 오늘 오전 11시 서울시청 분향소를 떠났다. 눈물이 났다. 그 분향소 하나를 만들기 위해 또 여러 노동자 시민들이 끌려가고 다쳐야 했다. 나 역시 아직 바람 차갑던 3월 은박매트 하나를 전하려다 안경 하나를 짓밟히고, 소환장을 다시 받아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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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엔 비닐 한 장 못 들어가게 해서 대형쓰레기 봉투를 사서 그 속에 들어가 잤는데, 새벽에 그것마저 빼앗으러 공권력이 노숙농성장을 처들어오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 공권력의 군홧발에 짓밟힌 영정틀을 눈물 흘리며 청색 테이프로 붙이고 있는 이들을 봐야 했다.

    그런 눈물 속에 간신히 영정 하나 모실 수 있었던 그런 분향소였다. 이 분향소에서 모든 문제를 풀고 고인을 보내드리지 못하고, 다시 어느 곳에 그 영정 하나 온전히 놓일 수 있을지 모르는 눈물의 상여에 영정과 제대를 옮기는 사람들 모두의 눈이 붉다. 그렇게 우리는 서울시청을 떠나 100리 먼 길을 걸어 어쩔 수 없는 최후의 결전을 위해 현대차 본사 앞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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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부터 유성과 여러 민주노조 사업장들을 타켓으로 시작된 긴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는 지난 19대 국회 당시 은수미 전 의원의 폭로로 전 사회문제화 되기도 했다. 일명 ‘창조컨설팅 사건’으로도 불렸다.

    창조컨설팅이라는 노조 파괴 노무법인이 말단 실행을 담당했지만, 그 모든 지배 개입의 원청이 현대자동차였음이 만천하에 밝혀졌었다. 1주일에 한 번씩 현대차가 유성기업 유시영 사장과 창조컨설팅 등을 불러 수시로 보고받고 민주노조 파괴 실적을 물었던 문건들이 얼마전에도 언론에 추가 폭로되기도 했다. 아울러 청와대와 노동부, 국정원, 경찰까지가 포괄적으로 공모해서 민주주의의 핵심 근간인 전국 각지의 민주노조 파괴 공작에 나섰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창조컨설팅 노무법인에만 철퇴가 가해지고, 진짜 원청인 현대차, 그리고 공권력을 반 헌법적 공작들에 사용한 이 국가와 정부에 대한 진상규명과 처벌, 반성들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틈을 타서 가학적 노무관리는 계속되고, 노동자들만 수없이 징계당하고, 공권력에 의해 범법자로 내몰려야 했다.

    이렇게 지속된 6년간의 가학과 폭력에 의해 대부분의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심리적 고위험군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보고도 그간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여러 차례였다. 그 불의 속에서 끝내 한광호 열사가 자신의 목을 내걸었고, 뒤이어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숨져갔다. 사라진 동료를 찾아 SOS를 쳐야 했던 적도 여러 번.

    이제 그만 이런 일상의 절벽 앞에서 사람들이 내려 올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 다른 쌍용차가 되게 하지만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제2의 삼성반도체, 제2의 가습기 참사가 시나브로 진행되게 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어제 죽어간 이들에 대한 추모를 넘어 오늘 다시 쓰러질 수 있는 우리 이웃들을 긴급 구난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런 모든 일들에 이 국가와 정치권은 진정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큰 사건이 될 때만 호들갑이고 반짝이다. 그런 모든 어물쩡들이, 조삼모사가, 눈감고 아웅이 세월호 몰살을 만들고, 구의역에서 열아홉 비정규노동자를 다시 죽이고 있는 건 아닐까. 현재 현대자동차 본사는 합법적으로 신고된 분향소 설치와 추모 집회의 자유마저 무참히 짓밟고 있다. 흔들거리는 작은 상여에 다시 죽어서도 저 하늘로 갈 수 없는 한 노동자의 영정을 다시 옮겨 실어 눈물과 분노의 100리길 행진에 나선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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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상여는 노동자 한광호 열사의 넋만을 실고 가는 상여가 아니다. 오늘도 매일 침몰당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실고, 명백한 국가폭력에 의해 지금도 서울대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계시는 백남기 농민의 분노도 함께 실었다. 구의역에서 죽어간 청년 비정규노동자를 추모하는 마음도, 얼마 전 구 국가인권위원회 옥상에서 363일 동안의 고공농성 끝에 죽지 못해 내려 와야 했던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설움도 함께 실었다. 1000만 비정규직, 2000만 평범한 노동자 가족들이 더 이상 억울하게 죽어나가지 않고 조금은 안전하게,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꿈을 실었다. 노동자 서민부채는 1200조, 100대 재벌 사내유보금은 800조인 이 시대의 불의에 경종을 울리는 상여다. 그래서 이 상여는 작지만 물러설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상여다.

    그 첫 여정으로 오늘 오후 3시 반경 국회로 먼저 간다. 이윤만이 최고인 게 눈먼 자본이고, 재벌이라면, 정부와 국회는 최소한의 사회적 정의를 바로잡아 나가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일들을 하라고 우리 모두가 선출한 국회 아닌가. 더 이상의 사회적 타살이 없도록 정부까지 공모한 민주노조 유린 파괴 행위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해 달라는 것이다.

    더불어 단 한 번의 고인에 대한 예도 갖추지 않고, 교섭 요구조차 해태하고 있는 현대차 원청과 유성기업을 공공선을 위해 법의 원칙에 따라 단죄하고 공개적인 사회적 테이블로 불러내라는 것이다. 포괄적인 기업살인법을 제정하라는 것이다. 다시는 자본의 이윤만을 위해 평범한 노동자 가족들이 사회적 타살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조금은 더 안전하고 존엄한 한국사회를 위한 기준 마련에 나서달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꽃길 100리’에 나선 모든 사회단체들의 마음을 모아 각 당 원내대표단, 또는 예를 갖춘 대표단 면담을 사회적으로, 공개적으로 요청한다. 누구라도 만나 이런 죽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해결 방도를 함께 숙고해주길 바란다. 그런 형식적인 자리 이전에, 국회를 향해 오는 이 모든 노동자 서민들의 눈물의 꽃상여 길을 국회 앞에서라도 나와 향불이라도 한 잔 따라주는 의원님이, 술 한 잔이라도 따라 올려주는 의원님이, 함께 10리라도 걸어주는 의원님이 있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다.

    연락을 취해보려니 오늘이 20대 국회 개원식이라고, 첫 본회의라고 바쁘다고들 한다. 어쩔 수 없이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요청드릴 시간이 없어 이렇게 공개적인 요청을 드리고, 그 요청이 우리 사회 모두의 소망임을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해 확인해 주시길 요청드린다. 마음이 닿은 당과 의원들께서는 연락을 주시기 바란다.

    더불어 원청인 현대차 정몽구 회장과 유성기업 유시영 사장에게 요청한다. 이 눈물의 꽃상여가, 분노의 꽃상여가 100리길을 걸어 양재동 본사 앞에 도착하기 전에 한광호 열사를 저 하늘로 보내드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예를 갖추는 일에 진정성 있는 답을 가져오기 바란다. 더 거대한 분노로 이 100길이 현대차 본사 전체를, 이 사회를 뒤덮기 전에 이 안타까운 죽음 앞에 무릎 꿇고 사죄에 나서길 바란다. 상여가 도착하는 15일이 현대차를 응징하는 사회적 날이 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어릴 적 상여길을 보고 처음이다. 그가 잘난 이든, 못난 이든 상여가 나가면, 상여가 우리 집 문 앞을 지나가면 누구나 나와 예를 갖추고, 먹을거리를 내놓고, 저승 노잣돈이라도 새끼줄에 끼워주는 게 아름다운 공동체의 문화였다. 어떤 영문인지 상여가 못 가겠다고 제 자리에 주저앉으면 동네 사람들 모두가 나가서 몇 시간이고 해원을 빌기도 했다. 고인의 죽음처럼 황망하게 떠난 상여길이어서 더 많은 사회적 공유가 부족했다.

    늦었지만 낮이든, 밤이든 이 눈물의 상여길 100리가 외롭지 않도록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사회적 상주로, 상여꾼들로 많은 이들이 함께 해주시기도 바란다. 첫째 날은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하룻밤을 샌다. 20대 국회의 답이 있어야 다음날 온전히 상여가 다시 출발할 수 있다. 둘째 날은 한남동 정몽구 회장 집 앞에서 하룻밤을 샌다. 이동 분향소라고 생각하고, 이 분향소의 밤이 외롭지 않게 많은 이들이 함께 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스스로를 한광호 열사에게 빚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문상객 한 사람 마음으로 상여길 맨 앞 영정차에 잠시 올라 급히 써본다. 6월 24일에는 현대차 본사 앞 1박 2일 범국민행동도 준비 중이다.
    유성100리길 웹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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