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기에 가려졌던
조선업계 다단계 착취의 ‘민낯'
"죽고, 손가락 잘리고, 머리 깨지는 건 하청노동자"
    2016년 06월 08일 08: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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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과 하청, 물량팀으로 이어지는 다단계식 하도급을 근절하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조선업은 아래서부터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번 조선업 구조조정은 조선업의 구조를 새로이 짜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정부가 조선업 구조조정에 대해 거론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산업이 밀집한 거제 고성 통영 등에선 소리 소문없이 노동자들이 잘려나갔다. 가장 먼저 해고 대상에 오른 것은 소위 물량팀이라고 불리는 노동자들이다. 적게는 7명부터 20명까지 팀을 이뤄 일이 있을 때 하청업체에 재하도급을 받아 일하고 일이 끝나면 흩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정부는 8일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정업종으로 지정하고 연간 4700억 원의 예산을 추가로 투입, 대량해고 위기에 처한 물량팀 노동자를 대상으로 전직·직업훈련과 실업급여 지급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물량팀 노동자 당사자들은 위기의 조선업을 구할 방안도, 고용불안에 처한 물량팀 노동자를 보호할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선 증언

조선업 노동자 당사자 증언대회(사진=유하라)

하청, 재하청, 재재하청까지…조선업계 다단계 하도급의 현실

민주노총, 한국노총, 조선업종노조연대는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선업계 노동자 증언대회를 열고 하청업체와 물량팀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임금체불 등 호황에 가려졌던 조선업계의 민낯과 조선업을 위기에서 구할 방안들에 대한 견해를 나눴다.

이 자리에 모인 6명의 조선업계 노동자들은 조선업이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 탄탄하게 성장하기 위해선 ‘내부 시스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조선업은 ‘원청→하청→물량팀→돌관팀’으로 다단계 구조로 내려오는 사내 하도급 방식이다. 다단계 하도급의 마지막 단계로 인식됐던 물량팀 아래가 돌관팀(돌격해 관철한다는 뜻으로, 긴급하게 일감이 생겼을 때 임시로 고용)이다. 돌관팀은 물량팀에 다시 재하도급을 받아 일하는 3차 하청 노동자들이다. 원청이 이러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고집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물량 변동에 따라 쉽게 자르고 또 쉽게 고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제·고성·통영 조선소 물량팀에서 8년 간 용접공으로 근무한 A씨는 “조선업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원청에서 하청, 하청에서 물량팀, 물량팀에서 돌관팀 형태로 내려오는 재하도급 구조로 이 각각의 조직들은 돈이 안 되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표준, 절차, 법을 무시하고 노동자들에게 일을 강요한다”고 전했다.

또 이런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공정 과정에서의 협업도 어렵게 한다. 별개의 물량팀이 각개 전투 방식으로 다음 공정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내가 맡은 업무만 시간 내에 빠르게 끝내면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A씨는 “품질 불감증은 중장기적으로 대한민국 조선소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조선산업이 위기의 이유로 어두운 국제경기, 방만한 부실경영 등 여러 가지가 나오면서 왜, 이런 잘못된 시스템은 위기의 원인으로 이야기되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최소한 안전장치마저 월급에서 공제, 호황기에 가려졌던 조선업 ‘민낯’
물량팀, 4대 보험 불가…가입 요구하자 “시급 깎는다”

하청업체 사장은 1~2억 정도의 공탁을 걸어놓고 각 공정별로 물량팀만 확보하면 업체를 운영할 수 있다. 재하도급을 받는 물량팀장은 심지어 사업자 면허가 없어도 일할 사람만 모으면 하청업체와 계약해 일감을 따낼 수 있다. 물량팀 노동자들이 4대 보험 등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임금체불에도 속수무책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A씨는 “한달 동안 일하고 당연히 받아야 할 임금을 체불당하는 경우는 허다했고 4대 보험을 가입하려 해도 물량팀장의 사업면허가 없어 가입되지 않았다”며 “어쩌다 사업면허가 있는 물량팀자 밑에 취업해 4대보험 가입을 요구하면 시급 천원을 깎기를 요구해 4대 보험을 포기한 적도 있다”고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더욱이 “개인에게 지급된 안전용품과 갖가지 소모품, 하물며 출입증과 식사 비용까지 급여에서 공제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힘들게 일하며 먹고 살아야 하는 걸까 자괴감이 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조선업에서 벌어지는 산업재해 피해자는 대부분 하청노동자에 몰린다. 원청이 위험 업무를 하청에 넘기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지만 A씨의 말처럼 최소한의 안전용품까지 개인의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전남 서남지역 물량팀인 B씨도 “조선업에서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일은 물량팀, 하청노동자가 하고 있다. 죽어나가는 것도, 손가락 잘리고, 머리가 깨지는 것도 다 하청노동자”라고 했다.

노동자 죽어도 원청도 하청도 나몰라라…“물량팀은 사라져야 한다”

A씨가 물량팀에 이어 돌관팀으로까지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염증을 느낀 건 가장 친한 동료가 일하는 도중 무면허 운전기사의 지게차에 협착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부터다.

동료가 사망한 다음날 사고 현장에 간 A씨는 경악했다. 안전테이프와 그 안으로 사람 형상이 그려진, 동료가 죽은 그 자리 바로 옆에서 물량팀장과 팀원이 버젓이 음악에 맞춰 아침체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A씨는 그들에게 한바탕 욕을 하고 통곡하며 조선업계 바닥이 과연 사람이 사는 곳이 맞는지까지 생각했다.

물량팀은 결국 산재사고를 이유로 한 달도 되지 않아 계약 해지를 당했다. 사망 사고로 인해 업체가 손해를 많이 봤다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일한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하루 아침에 쫓겨난 이들은 동료와 일자리 모두를 잃는 과정에서 원청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법률상 어떤 법적 책임도 없다는 것이 원청의 입장이었다.

A씨는 “동료의 죽음과 임금체불 과정을 보면서 그냥 되는 대로 현실에 수긍하며 살기가 힘들어졌다”며 “물량팀에서 비롯된 문제들이 조선소 모든 문제다. 대한민국 조선소에서 가장 먼저 없애야 하는 것은 바로 물량팀”이라고 말했다.

증언대회 좌장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선업 전반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하청노동자들의 직접적 피해로 돌아가고 사회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 이 구조가 지역 경제 위기를 조성하고 생산공정의 파편화가 산업 경쟁력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원·하청 간의 임금체불, 법적 연대 책임이나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이 필요하다”며 “사실상의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의 법적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을 현재 이 법안을 준비 중에 있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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