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대면하고,
기억을 회복하다
[다큐 사진] 5월 광주 치유 사진전 ‘기억의 회복’ 서울 사진전
    2016년 05월 16일 09: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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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국민의 군대가 자신의 국민을 학살하던 날, 광주. 죽음의 사선을 넘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일은 도저히 잊을 수도 없고, 지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그 일을 36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대면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그 동안 아무런 징후도 없이 그야말로 느닷없이 돌발하는 그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수도 없이 되뇌었겠지만 그날 그 악몽을 아직도 떨쳐 버려버릴 수는 없다. 그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벗어남은 망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그 망각은 본인의 의지로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두 가지의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 중 첫 번째는 살아남은 자들이 주는 ‘애도’다. 먼저 간 희생자들과 아직도 그 고통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위무. 그 위무는 가해자들이 하는 사과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들이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통감하고, 그에 따른 합당한 대가가 지불되는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해자가 먼저 간 사람들과 고통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에 대해 무릎 꿇고 슬퍼할 때 애도가 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과거에 대해 대면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고통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여 그 시간과 애써 불화하면서 지내지만, 그렇다고 그 트라우마가 사라지지도, 망각되지도 않는다. 자아의 상실만 생길 뿐이다. 그건 아니다. 그 과거를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 그 과거를 피하지 말고 직면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 기억을 끄집어내야 한다. 망각하기 위한 기억이다. 이것이 곧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다시 서는 주체다.

포스터

말로는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80년 ‘5월 광주’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 생존자들이 겪는 그 트라우마의 고통을 쉬 이해할 수도, 그들을 도와 그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것도 쉬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놓고 갈 수는 없다. ‘5월 광주’는 그들만의 일도 아니요, 우리들만의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살아남은 사람들이 비록 얼마 되지 않은 소수인데다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 일에 대해 무관심해 있고, 그들의 고통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제 그만 하자’의 대상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이 영영 우리 곁에서 잊혀 버릴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하여 그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 그들이 우리와 같이 사회 안에 정상적으로 재정착할 수 있도록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 그 일을 사진으로 심리 치유를 하는 사진가 임종진이 나섰다.

예술이 트라우마나 우울과 같은 정신 병리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은 예술이라는 게 단지 추상적 가치를 갖는 것을 넘어 슬픔을 극복하고 균형을 회복하며 자기를 성찰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예술이 심리 치유의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예술의 여러 장르 중에서 왜 사진일까? 이 사진전을 기획하고, 참여한 사진가들에게 사진을 가르친 사진가이자 사진심리상담사인 임종진은 이렇게 말한다. “‘오월광주’에 절감하는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의 손과 머리를 빌리지 않고 스스로 카메라를 들고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내적 트라우마와 마주하는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 냈습니다. 상처받은 자존감을 어루만지고 잃어버린 자기정체성을 끌어올리는 귀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사진은 다른 매체나 예술과는 달리 대상이 존재해야만 가능하다. 상상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러니 그림을 그린다거나 음악을 한다거나 하는 것과는 다르다. 또 사진은 그것이 담는 대상이 모두 과거의 시간이 되어버리는 매체이다. 그래서 과거에 대한 기억, 망각, 트라우마 등 심리 문제와 관련한 부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진의 모든 시간은 과거라는 말이 있다. 그 어떤 사진이라도 일단 만들어지면 과거 아닌 것이 없게 되는데 그것은 그만큼 사진이라는 것이 과거를 말하는 데 좋은 매체가 된다는 말이다. 사진으로 과거를 말하고, 그 과거를 공유할 수 있다는 말이다.

518 유공자 일곱 분의 ‘5월 광주’의 피해 생존자가 과거와 대면하여 기억을 회복하고자 나섰다. 이번에 참여한 일곱 분 유공자 중 한 분인 곽희성씨의 말에서 사진이 어떻게 과거와 대면하도록 만들고 기억을 회복하여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묘지가 모두 741기 인디 몇 차례 걸쳐서 전부 다 찍었지라. 사진도 그냥 안 찍었어요. 일일이 두 번씩 절 허구 묵념까지 하고 나서야 찍었으니께. 딱 한 카트씩만 찍었어. 그게 쌓이니께 미안한 감도 없어지고 마음에 위안이 되더라고요. 돌아가신 분덜 생각하믄 맘이 짠하죠. 이 양반들 땜시 이 나라 민주화 되고 그랬잖여. 나뿐만 아니라 후대들이 혜택 제대로 받는 거지…원래는 몰랐는데 사진 찍고 나서 요즘에 느끼더라고. 그동안 묘지에 못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 내 맘속에 많이 아프게 남아있었던 거이지. 한 번도 안 올라갔거든요. 밑에서만 참배허고 돌아서고 돌아서고 그랬으니께. 솔직히 기분도 좋아지더라고. 마이 후련해졌지라.”

곽

곽희성

사진은 쓰임새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 그리고 그 쓰임새는 참으로 다양하다. 어떤 이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서 전시하고, 그것을 상품으로 사고파는 것에 가치를 두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사진 책으로 남겨 과거를 기록하거나 자신의 예술 행위를 인쇄물로 보관하는 것을 큰 가치로 두는 이도 있다. 또 폰카로 찍어 SNS에 올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그들은 그 이미지들을 프린트 하는 용도로 찍는 게 아니다. 그 어떤 행위가 다른 행위보다 더 가치 있거나 훌륭한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각자 나름의 위치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사진을 활용하는 바일뿐이다.

임종진은 오랫동안 사진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느끼고, 공감하기 위한 도구로 삼아 작업해 오다가, 그 일을 더욱 충실하게 하기 위해 대학원에 가서 심리치유를 더 전문적으로 연구하기까지 한다.

광주 트라우마센터가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 사업의 전국적 확대와 지지를 위해 2013년부터 광주, 서울, 대구, 부산 등지에서 순회로 연 사진전에 이어 이번 2016년 5월 16일~23일 (서울 시민청)에 열리는 전시는 사진가 임종진이 1년 동안 ‘5월 광주’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희생자 유공자 일곱 분과 함께 사진을 가지고 기억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과정의 방점은 사진 이미지에 있지 않고 기억의 회복에 있다. 그래서 그 사진들을 보는 우리는 여느 사진전에서와 같이 출력된 사진 이미지를 보는 게 아니고 그들이 과거를 대면하고 그것을 직시하며 그로부터 트라우마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함께 공감해보는 것이 좋다. 그들이 보여주는 사진들이 자신들의 그 극복 과정을 어떻게 보여주는가를 헤아려 보는 것도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좋은 일이 될 것 같다.

양동남

양동남

이행남

이행용

그래서 그렇겠지만, 그들의 사진을 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시각 이미지로만 읽는 것이야 뭐가 어렵겠는가마는,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트라우마가 어떻게 재현되었는지를 공감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을 보(거나 읽)는 이는 기존의 사진의 문법에 얽매이지 말고, 그 흔한 미학적 기준으로 평가하지 말고, 그 안에 녹아들어 있을 – 그 사진가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녹여 넣었든지, 잘 못 녹여 넣었든지 간에 –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듣고 같이 나누고자 하는 게 좋다.

741기의 무덤을 묵념하고 딱 한 차례씩만 찍어 그 이미지들을 한꺼번에 모아 하나의 이미지로 만든 곽희성 씨의 사진, 이번에 31년 만에 그 현장에 처음 가봤다는 박갑수 씨 사진, 광주국군통합병원 정신병동의 헝클어진 병실을 찍은 서정열 씨 사진, 도청 2층 그 아비규환의 현장을 냉정하고 깔끔하게 재현한 양동남 씨 사진, 가족들과 보낸 지난 행복한 추억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으로 찍은 이무헌 씨, 다 스러져간 505 보안대를 대상으로 삼아 차마 반듯이 찍지 못한 이성전 씨,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5월의 봄날을 찍은 이행용 씨.

모두 그 찍은 대상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고, 구도도 다르지만 모두 하나로 같은 것은 있다. ‘5월광주’를 대면하고 직시하여 기억함으로써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인간 존엄성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이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진으로 하는 같이 사는 사람들의 세계다. 사진의 참 맛은 사람 사는 세상 안에 있는 것이다.

필자소개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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