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디그라 축제 이야기①
[텍사스 일기] 호텔 찾아 삼만 리
    2016년 04월 26일 11: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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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안 보인다. 중년 남자의 얼굴만 보인다. 카메라 렌즈 조리개를 열어서 배경이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분명히 미시시피강이다. 이 강의 총 연장은 무려 6,200킬로미터. 남한에서 제일 길다는 낙동강이 521킬로미터이니 길이가 짐작이 되실 것이다. 나일강, 아마존강, 양자강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길다.

사진1. 미시시피 강

미시시피강을 배경으로 필자

인디언말로 “위대한 강”이란 뜻을 지닌 미시시피는 멀리 북쪽 캐나다 국경 근처 미네소타 주(州)가 발원지다. 그곳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미국 50개 주 가운데 31개 주를 거치면서 굽이굽이 흐른다. 그 맨 아래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가 있고 강변에 내가 서있는 것이다.

왜 여기에 있냐고? 축제를 보러 왔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마디그라(Mardi Gras) 축제를. 해마다 2월말부터 약 일주일간 열리는 마디그라는 미국에서 가장 큰 축제이자 (혹자에 따라)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로 불린다.

댈러스에서 중고차 구입에 실패한 후 기차 타고 돌아온 이야기는 기억나실 게다. 그 후 오스틴 삼성전자 공장에 근무하는 한국 사람에게서 차를 샀다. 2007년형 현대 싼타페(이 녀석에 얽힌 억장 무너지는 사연은 별도의 장을 마련하여 들려드릴 예정이다^^). 차량등록소에 들른 지 일주일도 안 되어 금회색 산타페를 채찍질하여 용감무쌍하게 길을 나선 게다. 800킬로미터를 달려 마디그라 축제 구경하러 말이다.

사진2. 싼타페

금회색 산타페

축제(festival)란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보면 “개인이나 공동체에 특별한 의미가 있거나 결속력을 주는 사건 혹은 시기를 기념하여 의식을 행하는 행위.”라 정의되어 있다. 영어 “festival”은 성스런 날을 뜻하는 라틴어 “festivalis”에서 기원했단다.

<문학비평용어사전>은 또 이렇게 말한다. 축제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첫 번째는 개인적 차원보다는 “사회적 통합을 위해 작동하고 기능하는 일종의 종교적 이벤트”라는 게다. 사회학자 뒤르켐(Emile Durkheim)의 말이다. 두 번째는 “공격성과 즉흥성, 디오니소스적인 부정과 인간 본능을 억압하는 것의 폐기, 해방을 향한 문화적 이벤트”라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원조 프로이드(Sigmund Freud)의 해석이다.

필자는 후자에 공감한다. 억눌렸던 사회적 금기를 깨는 발산과 해방감이 축제의 본질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들은 평소 가슴 속에 감추었던 일탈, 유희, 정열을 표면화시킨다. 대중환시리에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수증기 압력으로 꽉 찬 ‘사회라는 주전자’의 뚜껑을 잠시 여는 셈이다.

브라질의 리오 카니발이 대표적 사례이다. 카톨릭 금욕주간인 사순절을 앞두고 열리는 이 축제는 ‘삼바 퍼레이드’로 상징된다. 무용수들이 춤을 추며 행진할 수 있도록 특별히 꾸며진 거리가 ‘삼바드로모’인데, 총 6만 명이 연도에 나와 행렬을 구경할 수 있다.

리오데자네이루의 서민들은 춤과 노래와 광란이 뒤엉킨 이 나흘간의 카니발을 위해 1년을 꼬박 기다린다고 한다.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삿포로 눈축제 같은 세계적 이벤트에서부터, 마을마다 도시마다 마쯔리(祭り)가 연중 개최된다.

그런 면에서 한국만큼 횟수로나 질적 수준에 있어 축제가 부족한 나라가 없다는 생각이다. 보통 사람들이 받는 사회적, 심리적 억압은 격심한 반면에 그것을 해소할 공동체적 탈출구가 봉쇄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유난히 화병이 많고(미국 정신의학협회 진단 및 통계 편람 DSM-4에 한국인 특유의 증후군으로, 우리말을 그대로 써서 ‘hwa-byung’ 이라 등재해놓았을 정도다) 스트레스 풀기 위한 술자리가 빈번한 이유 또한 그것이 아닐까 싶다. 감정적 억압은 일상화되어있지만 그것을 발산하고 해소하기 힘든 한국 사회의 구조적 폐쇄성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축제의 부재(不在) 현상인 것이다.

미국은 대조적이다. 축제가 매우 많다. 지방 소도시마다 있다. 독립기념일이나 할로윈데이처럼 절기에 따른 행사 뿐 아니라 지역을 상징하는 축제가 수시로 개최된다. 그 중 가장 큰 축제인 마디그라가 루이지애나 최대 도시 뉴올리언스에서 열린다.

1718년 프랑스 총독이 세운 이 도시는(이름 자체가 ‘새로운 오를레앙’이다) 스페인 식민지를 거쳐 1803년 미국 영토로 편입되었다. 제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이 나폴레옹으로부터 당시 미국 영토 2배에 달하는 루이지애나 땅을 1,500만 달러에 매입했기 때문이다.

도시 곳곳에 프랑스와 스페인 문화의 흔적이 남아있는 까닭이 그것이다. 특히 중심가인 프렌치 쿼터(French Quarter) 일대는 타임머신을 타고 18세기 프랑스로 돌아간 듯 풍광이 이국적이다. 흑인 인구가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데, 18세기부터 아프리카에서 잡혀와 노예로 정착한 사람들의 후손이다. 이들의 눈물과 한(恨)이 뉴올리언스를 재즈의 발상지로 만들었다. 매일 밤 재즈 뮤지션들이 연주하는 수준급의 생음악이 프렌치 쿼터 거리를 가득 채운다.

뉴올리언스는 대부분 지역이 해수면보다 낮다. 그래서 허리케인 피해를 자주 입는다. 2005년 8월 29일 닥친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가장 극심했다. 최고 시속 280km의 폭풍우로 도심의 80퍼센트가 물에 잠겼다(사진 3). 2,541명의 사망, 실종자가 났고 이재민 규모가 110만명을 넘었다. 집과 재산을 모두 잃고 실내 체육관으로 몰려들던 흑인 이재민들의 절규가 지금도 생생하다). 10년이 지난 오늘 뉴올리언스는 그날의 비극을 딛고 해마다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최고의 관광지이자 산업 중심지로 다시 부활했다.

사진3. 카트리나

카트리아 피해 당시의 모습

카트리나 재해민들의 모습

카트리나 재해민들의 모습 houstonchronicle.com

마디그라는 축제가 종료되기 전날 분위기가 절정에 오른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가지각색 분장한 수천 대 차량과 수만 명 사람들이 도시를 관통하는 초대형 퍼레이드를 펼친다. 2014년은 3월 4일이 종료일이다. 그래서 하루 전날 도착해서 다음날 퍼레이드를 볼 수 있게 일정을 잡았다.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예상보다 늦은 오후 3시 경에 오스틴을 출발. 휴스턴을 지나면 대륙을 가로질러 멀리 샌디애고에서부터 이어진 I-10 고속도로를 만나는데, 교차지점을 지날 즈음 해가 지기 시작했다. 처음 달리는 미국의 밤길이다. 하지만 언뜻 봐도 텍사스 주와 루이지애나 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우선 주 경계를 지나자마자 도로 환경이 확 나빠진다. 전체적으로 길의 폭이 좁다. 명색이 고속도로인데도 가로등 하나 없이 칠흑 같은 구간이 십분 이상 이어지기도 한다. 땅 넓고 돈 많기로 유명한 주와 손꼽히는 가난뱅이 주의 차이다.

출발 전 구글맵을 쳐봤더니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면 뉴올리언스까지 8시간 정도 걸린다고 알려준다. 하지만 초행길이고 도로 사정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 주유소에서 기름 넣고 화장실 다녀오는 것 외에는 한번도 쉬지 않고 강행군을 했다. 그랬는데도 목적지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2시.

구불구불 고가도로를 휘돌아 내려선 동네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 낡고 허름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완연 쇠락한 거리다. 나중에 알아보니 뉴올리언스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구역이었다. 축제기간이라 도시 안쪽에는 예약 가능한 숙소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최대한 그럴듯한 숙소를 잡는다고 잡은 것이 레드카펫 인(red Carpet Inn and Suites New Orleans). 하지만 막상 도착해서 보니 그냥 낡고 찌그러진 2층 모텔이다. 웃기는 것은 숙박 카운터가 주차장 입구에 별도로 뚝 떨어져있다는 것.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선다. 구두발을 탁자 위에 올리고 꾸벅꾸벅 졸던 종업원. 꾀죄죄한 체크무늬 와이셔츠에 머리 벗겨진 중년의 백인이 깜짝 놀라 깬다.

사진5. 레드카펫모텔

레드카펫 모텔의 모습

그런데 이렇게 황당할 수가!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게다. 몇 시간 전이었다. 도로 양쪽에 나무들이 높이 도열한 탓에 더욱 캄캄한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었다. 자동차 소음이 커서 조금 있다가 전화 주라고 했다. 그런데 그걸로 끝. 아마도 이 모텔에서 걸어온 예약 확인전화였던 모양이다. 오늘밤은 이 도시의 모든 숙박업소가 그야말로 골든타임이다. 그래서겠지. 무성의한 전화 한통으로 제 맘대로 예약을 취소시켜버린 것이다. 전화를 다시 달라고 분명히 밝혔는데도 말이다. 항의해봤자 소용이 없다. 이미 방이 나가버렸는데 자기도 어쩔 수가 없다는 게다. 이걸 우짜노. 주차장 옆에 차를 세우고 스마트폰으로 급히 인근의 빈 호텔방을 알아본다.

그때 모골이 송연한 일이 일어났다. 누군가가 닫힌 차창을 쿵쿵 두들긴 것이다. 깜짝 놀라 고개 들어보니 덩치가 산만한 흑인 아저씨가 창문을 내려다보고 있다. 무슨 일이냐 물어봐도 대답이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웃통을 훌러덩 벗는다. (어두운데서 봐도) 임산부를 방불케 하는 거대한 배를 드러낸 채 차를 마구 두들긴다.

으악! 꽁지가 빠져라 차를 후진시켜 주차장을 빠져나온다. 남자의 표정이나 행동거지로 짐작컨대 마약을 한 게 아닌가 싶다. 기름이 다 떨어져 근처 주유소에 들린다. 새벽인데도 마당에 개조 차량이 여러 대 서 있다. 엄청 큰 소리로 힙합을 틀어놓고 흑인 청년들이 차 주위를 왔다 갔다 한다. 낸들 여기가 어떤 지역인지 알 수가 있었나. 출발 하루 전에 급히 인터넷으로 예약한 숙소는 아마도 뉴올리언스의 가장 험악한 동네 중 한 곳에 위치했던 모양이다.

빨리 시내로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네비게이션을 켜고 일단 프렌치 쿼터 쪽으로 향한다. 축제가 최고조에 이르기 전날 밤이다. 그러니 시내에 빈 방이 있을 리가 없다. 휘황찬란 불 밝힌 힐튼호텔 앞에는 새벽인데도 시끌벅적하니 요란한 코스튬 의상 차려입은 청춘남녀들이 가득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 안에서 열군데 넘어 호텔에 전화를 한다. “오늘 밤 묵을 방 있어유~?”. 거듭되는 답변은 “sold out”.

낯선 길 열 몇 시간을 달렸으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눈꺼풀이 아래로 추락한다. 어디라도 좋으니 잠시 눈 붙일 곳이 있으면 좋으련만. 시내에서는 숙박 포기, 탐색대상을 외곽으로 넓힌다. 마침내 할렐루야! 중심가에서 2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지역에 빈 방이 나왔다. 딱 하나 남았단다. 감지덕지다. 왔던 길을 30분 되돌려 도착한 곳이 슬립 인(Sleep Inn & Suites) 호텔.

뜨거운 물로 대충 샤워하고 나니 새벽 4시다. 퍼레이드 시작 시간은 당일 오전 8시. 아무리 늦어도 7시 반에는 숙소를 나서야 한다. 세 시간 남짓 잠을 잘 수 있다. 근데 백수 십 달러 짜리 방이 왜 이러냐? 난방 팬 돌아가는 소리가 기차화통 삶아먹은 것 같다. 자는 둥 마는 둥 억지로 눈을 붙여본다.

축제 이야기 하려다가 갑자기 스토리가 호텔 찾아 삼만 리로 빗나가버렸다. 백주 대낮의 길거리에서 말만한 여자들이 훌렁훌렁 젖가슴을 드러내는 깜짝 축제, 해피 마디그라(happy mardi gras!)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 회에 본격적으로 들려드리겠다.

필자소개
김동규
동명대 교수. 언론광고학. 저서로 ‘카피라이팅론’, ‘10명의 천재 카피라이터’, ‘미디어 사회(공저)’, ‘ 계획행동이론, 미디어와 수용자의 이해(공저)’, ‘여성 이야기주머니(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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