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후의 생존국?
    2016년 04월 18일 09: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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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반북주의 광풍이 거센 적도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냉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대북 유엔 제재에다가 남한과 일본 등이 제각기 국내법 격의 독자적 제재까지 가해서, 사실 합법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대북 교류는 극소수의 부문(일부의 구호지원 활동 등)으로 좁혀지고 말았습니다.

일본의 경우를 한번 보시죠. 일본의 합법적인 영주권자인 조총련 간부들이 북조선으로 왕래할 경우에는 재입국이 불허된다는 것이 지금 일본 정부의 공식 방침입니다. 영주권자로부터의 거주권/입국권 박탈은 세계 사법 관행상 국적 박탈만큼이나 드문 것인데, 일본의 대북 제재는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역사상 미증유의 일이죠.

대북 교통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예컨대 북한 항구를 최근에 방문해 기항한 적이 있음에도 이를 미신고하여 일본 항구에 기항하는 중국 선박의 선장이 “북조선 항구 방문 미신고죄”로 잡혀가는 것이 요즘 일본의 풍경입니다. 총성이 들리지 않을 뿐이지, 이 정도면 “포성이 없는 경제전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남한의 개성공단 폐쇄 조치도 마찬가지죠. 자국에 막대한 손실을 (그것도 불황기에!) 입히면서 한 일인데, “실제상의 (경제) 전쟁”이라는 맥락 이외에는 상상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경제전쟁뿐인가요? 한-미-일의 각종 군사훈련들은 사실상 대북 침략과 북한 지도부 제거를 예습하는 부분까지 포함합니다.

대북

도대체 여기까지 왜 왔을까요? 이는 오로지 박근혜와 아베 같은 한-일 집권 극우들의 작품일 뿐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극우가 아닌 오바마까지 힘을 합쳐 대북 광풍을 일으키는 원인은 뭘까요? 한 번 이 일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고찰해보죠.

1991년, 쏘련/동구권의 패망 이후로는 서방측은 몇 가지의 “후속처리” 정책을 실행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구 동구의 유럽연합에의 흡수, 그리고 사실상의 준식민화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그냥 흡수당하기에 지나치게 덩치 크고 제3세계 “블럭불가담운동”의 전력이 많았던 유고연합은 해체 당했으며 그 해체에 저항을 시도한 세르비아는 1999년에 공습을 당해 결국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동시에 또 하나의 “후속처리” 조치는 제3세계 사회주의적 색채의 민족주의적 개발주의 정권들에 대한 “정리”이었습니다. 이 “정리”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 일부 국가 주도의 민족주의적 “적색 개발주의” 지향의 정권들은 그냥 조용히 대미 종속을 수용했습니다. 인제는 그 장교들을 미국 사관학교에 보내 교육시키는 알제리는 대표적 사례죠.

2. 일부의 경우에는 소련의 위기/붕괴에 따른 지원 중단으로 바로 동반 붕괴돼 친미정권 등으로 교체됐습니다. 1991년에 그 말로를 밟게 된 “사회주의 에티오피아”는 대표적입니다. “사회주의적 아프가니스탄”도 그 후 1년 정도만 버티고 패망됐죠.

3. 쏘련의 붕괴 이후에 신자유주의 노도 속에서 일단 어느 정도 시장화를 수용한 정권의 경우에는 격차사회의 심화에 따라 당연히 내부갈등들이 심화됐습니다. 서방측이 이런 갈등들의 폭발을 이용하여 일부 “적색 개발주의” 지향의 제3세계 국가에서 내전을 유도해 그 내전에 개입함으로서 거기에서의 민족 국가 자체를 해체시켜놓았습니다. 리비아 같은 경우에는 사실상 국가로서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유지돼도 영토국가로서의 과거의 시리아는 더이상 존재하지는 않죠. 그만큼 서방측의 소기의 목표는 달성됐습니다.

4. 내발적 붕괴 유도 공작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이라크 경우와 같은 직접적인 침략과 점령의 방법도 이용됐습니다. 안정적인 친미괴뢰정권 수립 계획은 좌절됐지만 사담 후세인 시절의 석유산업 국유를 깨서 석유를 국제재벌들에게 내어준 (“사유화”시킨) 계획은 성공적으로 (?) 실행됐죠.

5. 침략에 따를 비용들이 매우 높은 것으로 예산되거나 (이란) 내부 붕괴란 정권이 여전히 고인기인 상황에서 불가능한 경우 (쿠바), 이미 침략이 실패된 적이 있었던 경우 (베트남) 등 같으면 포섭전략이 실행됐습니다. 서방 측이 이런 포섭전략을 통해 이 나라들에서의 “시장 개혁”, 즉 국가 주도 “적색 개발주의” 유산의 완전한 청산과 철저한 민영화를 유도하려고 지금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해서 50-80년대 “제3세계 운동”의 모든 주도국들이 없어지거나 (리비아, 사실상 시리아) 사실상 항복했거나 (알제리) 각종의 포섭 대상이 됐습니다 (쿠바, 베트남 등). 정치적 비중이 없는 일부 국가 (라오스 등)나 서방측이 아직도 쉽게 넘보지 못하는 제2, 3세계 대국들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을 제외하면 아직도 – 동구권 패망 25년후에! – 서방측에 의해서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딱 유일한 “제3세계 해방운동국”은 바로 북조선입니다. 마지막 생존국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거죠. 북조선이 생존에 성공해온 것은, 서방측의 압력이 약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압력을 받아도 “끝까지 가겠다”는 투지를 보여서죠.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면서요.

서방/남한 측의 대북 전략을 시기별로 간단히 정리하면 쏘련 패망 이후부터 약 1999-2000년도까지 압력에 의한 붕괴 유도책이었습니다. 북조선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그 압력에 대항하는 과정에서는 일부 추측에 의하면 미증유의 기아 속에서 총인구의 약 7-10%를 잃었습니다. 한국 전쟁 때의 손실률에 버금가는 대참극이었죠. 한데 서방/남한측이 원했던 “붕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전략이 먹히지 않자 김대중 등이 주도해서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의 포섭전략이 시도됐습니다. 한데 북조선 관료통치층은 햇볕정책에 적극적으로 응하면서도 핵과 로켓 개발 등의 독자 행보도 아울러 지속했습니다. 일정 수준 시장 자본주의를 수용하면서도 말이죠.

결국 약 2008년부터 “햇볕”은 끝나고 압력이 재개됐는데, 요즘 북-중 갈등의 요소를 이용한 미국과 남한 등은 그 압력의 수위를 거의 냉전 시대 이상의 수준으로 높여버리고 말았습니다. 거의 완전한 무역봉쇄에 가까운 북조선 선박 관련 제재 등은, 사실 거의 유례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제3세계 해방운동”과의 전쟁에서 완승을 거두려는 이와 같은 전략의 끝은 어딜까요? 핵보유국인 북조선에 대한 이라크 식 직접 침략은 그다지 가능성이 크지 않고, 또 시리아나 리비아 식의 내부 갈등을 이용한 내전 유도책과 개입책도 그 가능성은 다소 희박합니다. 총동원 체제인 만큼 리비아나 시리아보다 약점 노출이 그다지 없는 거죠.

결국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역사상 유례없는 외부 압력 속에서의 국가 유지의 대가로서의 다수의 빈곤의 지속이죠. 즉 성장세의 둔화와 “생존 경제”로의 회귀죠. 아파도 필요한 약을 찾지 못하는 환자들의 고통이 지속되고,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담백질의 섭취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많은 지방민들의 고통도 지속되고…

서방인과 남한인들이 진심으로 “북한 인권”을 걱정해준다면 북조선 환자들의 치료 향유권의 보장을 위해서, 북조선 아동들의 담백질 섭취권의 보장을 위해서라도 무역 봉쇄와 같은 살인적인 경제전쟁 조치들을 삼가주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문제의 핵심은, “북한 붕괴”를 노리는 저들이 그 어떤 “인권”에도 그 어떤 관심도 실제 없다는 것입니다…가장 무서운 것은, 서방 내지 남한 지배자들이 꼭 처음부터 계획하지 않아도 긴장 지속의 상황에서 국지전이 생겨 상당한 규모의 무력갈등으로 번져 한반도가 다시 전장화될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런 긴장 상황에서는 남한에서의 재권위주의화도 속속 진행되고, 또 “한일 화해” 미명하에서 미국의 두 번국인 남한과 일본의 “군사협력”도 머지 않아 가시권에 들 것입니다. 대북 경제전쟁을 전개하고 있는 미국의 속셈은 바로 이와 같은 한-일 “후국” 사이의 (묵시적으로 중국에 대항하는) 군사적 유착의 공고화에 있지 않을까요?

지금과 같은 대북 정책들은 “인권”과는 무관합니다. 사실 대립과 봉쇄는 “북한 인권” 상태에는 악영향만 미칠 수 있죠. 이는 과거 “제3세계운동” 세력에 대한 잔인한 “정리”의 일환이며, 그 궁극적 목적은 세계체제 주변부에 대한 미국/서방측 패권의 공고화에 있을 뿐이죠. 한반도인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정책은 우리 삶터에 화약고를 만들어 거기 옆에다가 불을 대는 일과 같습니다. 우리는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 위에서 꼭 살아야 하나요? 그러고 싶지 않는다면 일찌감치 “가만히 있지 않기”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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