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오스의 총선 풍경들
    [에정칼럼] 주민 권리, 어떻게 행사?
        2016년 04월 10일 10: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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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요즘 매해 봄을 라오스에서 보낸다. 라오스 산간지역의 재생가능에너지 지원 활동을 위해서 3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꼭 두 달은 라오스에서 지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몇 해 동안 나는 잔인한 한국의 4월로부터 비껴서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기로 했다. 날짜를 조정했다. 4월 13일 투표를 위해 귀국했다 다시 돌아오기로 한 것이다. 물론 미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재외국민 선거인등록을 했다면 라오스 시골에서 한국을 오가는 나흘의 시간과 백만 원 가까이의 비용, 2kg의 몸무게는 가뿐히 줄일 만큼의 체력 소모 등은 없었을 것이나, ‘선거일 60일전까지 등록’을 ‘선거일 60일 이후부터 등록’으로 오독한 탓에 막대한 출혈을 하게 됐다. 전에 없던 권리행사 절차였으니 신경을 제대로 썼어야 했는데 부주의한 시민권자의 부끄러움은 이렇게 피로 덮어야할 밖에.

    라오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선거

    여느 해와 다르기 때문일까? 한 밤에 공항에 내렸을 땐 몰랐다. 바로 다음 날 아침 라오재생가능에너지지원센터(이하 라오지원센터)의 주 활동 지역인 싸이냐부리 소읍으로 향하면서 라오스 분위기가 좀 다른 것을 느꼈다. 오는 내내 거리 곳곳에 붉고 푸른 현수막들이 걸려있고 저녁에야 도착한 읍내 중심가에는 마치 성탄절처럼 반짝반짝 꼬마전구 장식들이 드리워져있다. 붉은 현수막과 장식등이라… 무슨 축제와 정치기념일이 겹쳤나?(1)

    다음 날 아침 숙소 주인장이 그 의문을 풀어주었다. 다음다음 주 일요일이 선거일이기 때문이란다. 바로 3월 20일, 18세 이상의 라오스의 시민권자들이, 한국으로 치면 국회의원과 광역의회의원에 해당하는, 인민혁명당 대의원들을 뽑는다. 그래, 요즘 가까운 동남아의 여행지로 타이만큼이나 친근해졌지만, 라오스는 아직 낯선 사회주의 국가였다!

    꼬박 2년을 살고 그 후로도 한 해 몇 달씩은 여기서 지내지만 라오스의 선거를 보게 된 건 처음이다. 인민혁명당의 단위조직이기도한 읍내 중학교(모든 공공기관은 당의 하부조직이다)에 한국국제협력단 봉사단원으로 파견되었을 때는 신입당원대회를 참관하기도 하고 도당 정치위원이 지도하는 교사들의 정기 정치교육, 조직평가회의도 창문 넘어 들여다보곤 했었다. 교사들이 교장(학교 대표)과 교감(부대표)을 선출하는 투표는 물론이고. 그렇게 선출된 학교 대표들이 다시 상급 단위 대표들을 선출한다. 그 무렵 싸이냐부리 교육국 대표(교육감에 해당)는 인민혁명당 중앙위원(국회의원)이기도 했다.

    내가 라오스 선거에 관심을 보이자 씨양쿠왕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원이 3월 7일자 <위양짠 타임즈(Vientiane Times, 라오스 국영 영자신문)>에 싸이냐부리 지역 후보자들 기사가 났다고 알려주었다. 이 동네는 영자신문은 고사하고 보통의 라오스어 일간신문도 들어오지 않는다. 궁금한 우리 지역 후보들의 면면을 좀 보기 위해 가까운 마을사무소(회관)로 갔다. 입구에는 역시 붉은 현수막이 걸려있고 강당 문 위에는 오색 리본장식이 드리워져있다. 깨끗하게 정리된 흰 벽면에 12명의 국회의원(2), 3명의 지역의원 후보 공보가 붙어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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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투표소와 선거공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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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스의 선거 공보

    공보에는 후보자의 사진과 함께 이름, 기호, 생년월일, 출신지, 거주지, 직위와 책무, 학력과 경력, 추천기관이 게재되어있다. 라오스 국회 제8차 선거의 제7선거구인 싸이냐부리 도(道)에 출마했지만 출신 지역도 현재 거주지도 싸이냐부리가 아니고 당연히 책임분야도 싸이냐부리 지역과 특별한 관련이 없는 후보자들도 있다.

    후보들은 대부분 지배적인 민족인 라오족이고 몽(Hmong)족 후보 말고는 다른 소수민족임이라고 밝힌 후보는 없다. 반면 딱 한 명 종교가 불교라고 밝힌 후보 말고는 나머지 모두는 종교를 밝히지 않았다. 단일정당 내 선거이니만큼 소속정당 대신 후보자의 소속기관이기도 한 추천기관이 가장 크고 진한 글씨로 공보의 하단에 기재되어있다. 국회의원 후보는 대부분 도청조직에서 추천했고 국회와 외교부가 추천하는 후보도 있다. 지역의원 후보는 각각 싸이냐부리 군(郡) 지역개발빈곤퇴치조직, 군청 그리고 도교육청이 추천기관이다.

    그런데 아무리 공보를 살펴봐도 후보자들의 출마의 변, 공약과 정책이 없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뽑으라는 것일까? 이건 뭐 의회에서 거수할 직원 채용할 때 쓸 이력서도 아니고. 국회의원 후보들도 지역의원 후보들도 동네, 시장에서는 물론 어떤 행사에서도 본적이 없는 사람들인 것 같아 점점 시큰둥해지려는데, 마지막 지역의원 후보가 아는 사람이다!

    바로 우리의 주요 협력기관인 도교육청이 추천한 후보, 싸이냐부리 직업기술학교 교장. 재생가능에너지 지원 활동의 일환으로 산간학교 교사들과 직업기술학교 학생과 교사들을 소집해 집합교육이 이루지고 있는 그 공간의 대표자다.

    단순 호기심으로 시작한 공보 읽기는 이렇게 좀 아는 한 사람이 눈에 띄자 이런저런 걱정과 의문들을 연이어 낳기 시작했다. 이 교장은 라오스의 직업기술학교들을 전담해 지원해온 독일 정부원조기관(GIZ) 활동가들로부터 부패와 배임으로 단단히 찍힌 인물이다.

    교장은 재작년 활동가와 마찰을 빚고 그 활동가를 소환하고 다른 활동가 파견을 독일기관에 요청했으나 기관도 그 활동가의 소명에 충분히 공감하여 오히려 싸이냐부리 직업학교로의 활동가 파견을 잠정 유보해 두고 있는 상황이란다. (부패와 배임 문제는 당사자로부터, 소환과 파견유보 상황은 싸이냐부리 농업국에서 활동하는 70대 독일 할아버지 활동가가 전해준 이야기다.)

    나도 지원 활동의 성격상 불가피하게 직업기술학교를 교육공간으로 빌려 쓰고 있지만 그를 위시한 교감, 사무처 직원들로부터 교육내용과 상관없는 돈 문제로 황당한 요구를 받고 싸우기도 하고 어렵게 타협하기도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럼 다른 후보들은 과연 어떨까? 사회문화적 관습과 규범에 따라 큰 인식차를 보일 수 있는 부패나 배임 등 도덕성의 문제가 아닌 지역의 미래계획, 정책설계에 있어서는 또 어떨까?

    집행위원회도 아니고 전문분야 대의원도 아닌 일반 대의원이니 지역에너지 정책, 재생가능에너지 정책을 선도적으로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까지 기대하진 않는다. 그래도 아니, 오히려 지역 주민들의 삶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일반 대의원이니 자급자족적인 자연경제에 상당히 의지하는 싸이냐부리 지역, 라오스의 조건과 주민들의 상황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공동체의 재생가능에너지의 독립적인 생산과 사용의 필요성을 주창하고 이에 따라 집행위원회가 적절한 정책을 수립하도록 지도할 수 있지는 않을까?

    라오스의 투표하는 일요일 풍경

    투표일 직전인 토요일, 교생실습 시절부터 친한 아짠(선생님) 집에서 밥도 먹고 술도 한 잔 하면서 한가로운 주말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아짠의 친구 아짠들이 서너 명 함께했다. 아짠들 중에 한 명은 마침 집 건너편 마을회관에서 투표소 설치 업무를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다시 선거에 관해 묻기 시작했다. 싸이냐부리에서 국회의원은 12명 중에 8명을, 지역의원은 3명중에 2명을 선출하게 된단다. 당연히 선거구의 규모에 따라 선출 의원의 수는 다르다. 라오스 전체적으로는 300명 정도 될 거라고. 내일 투표개시 시각은 오전 7시.

    그런데 투표 종료시각이 불분명하다. 4시라고 했다가 2시라고도 했다가. 100퍼센트 투표참여를 위해 병원에 있는 환자까지 찾아간다고, 일찍 투표하고 싶은 사람은 6시에도 투표하고 (원거리 경작지로) 일하러 갈 수도 있다고 자랑스럽고 확실하게 얘기한 것에 비하면 좀 어이가 없었지만, 워낙 부지런한 대부분 중요한 일은 아침나절에 마치는 게 거의 습관 같은 것이 되어 형식적인 종료시간이 의미가 없어진 것이 아닐까 추측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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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선거를 축제처럼 여기도록 전등장식도 달고 투표소도 화려하게 꾸미지만 투표 전 나흘은 밤 10시 이전에 귀가하도록 경찰이 단속한다는 거였다. 그런데 이 또한 상당히 형식적이었다. 실제로 우리가 술자리가 길어져 10시를 훌쩍 넘겨 12시에 가까워 귀가를 했으니 말이다.

    투표 당일 일요일, 선거 공보를 살펴보았던 마을회관으로 갔다. 밖에서 30여분을 기다렸으나 문이 닫히지도 않고 들고나는 사람이 없다. 외국인지만 과감히 투표장으로 들어섰다.(4) 넉살 좋게 눈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사를 했다. 서너 명은 노트북으로 문서를 정리하는 데 모여 있고 예닐곱 명은 물고기 구이, 땀막훙(풋 파파야 매운 생채), 과자 등 안주에 얼음물에 담가 시원해진 맥주를 먹고 있다. 사람들이 나에게도 스스럼없이 맥주를 건넸다. 최소한 이들에게 선거는 엄중한 업무이면서도 축제가 맞는 것 같았다. 사실상의 투표 종료시각도 재확인해 봤다. 답은 지금 누군가 온다면 투표를 할 수 있지만, 이미 오전에 이 마을 1,800명이 넘는 유권자 전원이 100퍼센트가 투표를 완료했다는 것.(5)

    4월 5일 오늘, 라오스 총선 투표가 끝난 지 벌써 3주가 넘었다. 그런데 난 아직까지 투표결과를 어디서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있다. 그 마을회관 선거관계자들은 바로 다음 날이면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월요일 교육청에서 들으니 아직 안 나왔단다.

    어제 <위양짠 타임즈>를 비치해 놓는 호텔 직원에게 물었다. 결과가 나왔을 테지만 신문에 발표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단다. 마지막으로 오늘 영어도 잘하고 라오스 사람치고 사회비판적인 이야기도 서슴치 않는 단골 공항택시 기사에게 물었다. 결과는 나왔을 거란다. 그러나 아무도 그 결과에 관심이 없어 어디에 발표하는지 언제 하는지 모를 거란다. 자신도 그렇단다.

    여느 때와 다르기 때문일까? 라오스의 인민민주주의가 한국의 민주주의와 나의 정치적 권리, 시민권의 내용을 비춰보게 한다.

    <참고>

    1. 시무앙 마을사무소 입구에 걸려있는 라오스의 투표독려 현수
    2. 라오스 제8차 선거의 제7 선거구 싸이냐부리 도(道)의 국회의원 후보 공보
    3. 싸이냐부리 도당 대의원 후보 공보. 기호 3번 후보가 싸이냐부리 직업기술학교 대표, 교장이다.
    4. 투표결과를 정리하고 있는 시무앙 마을 선거 관계자들. 투표 당일임에도 오후는 맥주를 마시며 업무를 볼만큼 한가롭기만 하다.
    5. 시무앙 마을 투표소 내부. 왼쪽이 국회의원 투표함이고 오른쪽이 지역의원 투표함이다. 중앙의 사진은 혁명영웅이자 제2대 대통령 탄(남자 어른에 대한 존칭) 까이썬.

    필자소개
    라오재생가능에너지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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