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헌법 9조'
    해석과 변천 그리고 개정 시도
    [번역] 아베 정권의 집요한 평화헌법 무력화 추진
        2016년 02월 04일 09: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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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7일 “(헌법의) 어떤 조항을 어떻게 개정할지의 문제는 국회와 국민적 논의의 이해가 깊어지는 과정에서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참의원 본회의)

    1월10일 “여당만으로 (개헌 의석) 3분의 2는 대단히 어렵다. 오사카유신회처럼 개헌에 긍정적인 당도 있다. 개헌에 긍정적이고 미래에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과 3분의 2를 구성하고 싶다” (NHK방송 프로그램)

    1월21일 “드디어 어떤 조항을 개정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단계에 들어섰다” (참의원 결산위원회)

    1월27일 “자민당은 당의 기본 방침으로서 창당 이래 줄곧 헌법 개정을 내세워 왔으며 앞으로도 (참의원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걸고 호소할 것” (중의원/참의원 본회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헌법 개정과 관련한 발언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달 27일 중의원/참의원 본회의에서 ‘헌법 개정’을 올여름 참의원 선거의 공약으로 내세울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로써 작년 9월 안보법제 개정안 강행 처리를 계기로 촉발된 헌법논쟁은 해석의 문제에서 개헌의 문제로 확대되게 되었다.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우익 세력은 전후 70년간 유지되어온 평화헌법 개정에 성공할 수 있을까?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과 작년 12월에 결성된 시민연합(안보법제의 철폐와 입헌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시민연합)은 이를 저지할 수 있을까? 올해 일본 정치권의 쟁점은 이렇게 단순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일본의 헌법논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91년 PKO협력법안 통과 이후, 99년 주변사태(안전확보)법안과 2004년 육상자위대 이라크 파견, 2015년의 안보법제 개정안에 이르기 까지, 90년대 이후 논쟁은 자위대의 활동 범위와 대상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원래 ‘자위대’와 헌법9조 사이의 쟁점은 자위대의 ‘활동’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에 있었다.

    이러한 헌법논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논문을 요약 게재한다. 필자인 이와마 아키미치(岩間昭道)는 현재 치바대학 명예교수(헌법학)로 재직 중이다. 번역자는 일본의 유학생이다. <편집자>

    「憲法九条と解釈・変遷・改正」千葉大学法学論集 22(3), 1-14, 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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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1

    신헌법 제정을 보도한 신문기사(아사히신문 1946년10월8일자) 「민주헌법 성립하다/다음 달 1일 경 공포/중의원, 재수정안에 동의」

    일본정부는 일본국헌법 제정 당시 헌법 9조에 대해서 ‘일체의 전쟁을 포기하고 일체의 전력(군사력) 보유를 금지한다’고 설명했다. 당시의 헌법 교과서도 9조를 같은 내용으로 설명하면서 인류 역사상 획기적인 평화헌법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일본국헌법은 패전의 충격으로 실의에 빠진 당시의 일본국민들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주었고 전쟁으로 잃어버린 도의(道義)를 회복하는 데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일본국헌법(현행 헌법)은 1946년 5월 16일 제90회 제국의회 심의를 거쳐 같은 해 11월 3일 공포되었다. ‘평화헌법’ ‘쇼와헌법’이라고도 한다. 역자주]

    그러나 이러한 헌법에도 불구하고 일본에는 헌법제정 이래 줄곧 강력한 군사력이 존재해 왔다. 때문에 전후의 일본은 헌법과 현실 사이의 모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특히 자위대가 창설된 1954년 이후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동안 모순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①9조의 해석을 변경하는 방법 ②헌법 변천의 법리를 원용하는 방법 ③9조를 개정하는 방법 ④미일안보조약을 해소하고 자위대를 폐지하는 방법 등이 제기되었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와 의회는 9조의 해석을 변경하는 방법을 채택해 왔지만 최근에는 헌법 개정도 검토되고 있다.

    9조의 해석

    헌법 해석으로 군사력 보유가 정당화(합헌) 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어떤 해석방법을 택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헌2

    1994년 7월 정례국회에서 자위대 합헌 발언을 하는 무라야마 총리. 사회당은 무라야마 위원장을 총리로 하는 자민․사회․사키가케 연립정권 시기에 ‘자위대 합헌’으로 기존의 입장을 변경했다.

    헌법 해석은 일반적으로 문구와 취지를 중시하는 방법과 문구에 구애되지 않고 탄력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으로 나뉜다. 1970년대 무렵까지는 대체로 전자가 우세했다.

    이 입장에 따르면 군사력 보유는 비록 자위 차원이라고 하더라도 해석의 한계를 초과하는 것으로 (키요미야 시로(清宮四朗)의 표현을 빌리면 ‘가짜해석’) 반드시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에 반해 탄력적 해석방법은 자위를 위한 군사력 보유는 해석의 한계 내에 있는 것(경우에 따라서는 올바른 해석)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헌법 개정이 필요 없다고 보았다.

    탄력적 해석방법에 대해서 이토 마사미(伊藤正己)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헌법과 사회적 요구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바람직한 방법은 헌법 개정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러나 경성헌법(硬性憲法) 하에서는 개정 절차가 까다롭고 정치적 분쟁이 발생할 소지도 있어 사실상 회피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헌법을 탄력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운영으로 헌법이 오히려 강인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미국연방헌법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이토의 주장과 같이 일본국헌법 하에서도 (특히 인권 규정은) 경우에 따라 탄력적인 해석 방법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성문헌법주의 이념과 일본국헌법이 정하는 개정 절차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헌법 내용을 근본적으로 변경하거나 또는 새로운 국가 목표를 신설하는 경우 탄력적인 해석방법은 허용될 수 없다.

    9조의 변천(變遷)

    헌법 변천에 대한 논쟁은 최근에 거의 볼 수 없지만 헌법 9조의 논쟁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또 향후에 재연될 가능성 또한 없지 않기 때문에 간략히 정리해 두고자 한다.

    헌3

    미노베 다츠키치(美濃部達吉 1873-1948)는 ‘다이쇼 데모크라시’의대표적이론가(헌법학자)로 ‘천황기관설’과 의회정치를 주장했다. 메이지헌법을 최대한 자유주의적/입헌주의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헌법변천’ 개념을 도입했다

    헌법 변천(変遷)이라는 개념은 옐리네크(G.Jellinek)에서 유래한다. 일본에서는 메이지헌법 하에서 미노베 다츠키치(美濃部達吉)에 의해 소개되어 일본국헌법 하에서는 1960년대를 중심으로 논의되었다. 당시에는 주로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헌법 변천은 위헌 사례(지배적 학설이나 여론에 의해 위헌 소지가 상당하다고 의심되는 사례)가 오래 지속되어 학설과 판례, 나아가 대다수 국민에 의해 그 사례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것으로 승인되는 경우, 해당 사례의 기초를 이루는 헌법적 해석이 실제 헌법 조항의 내용을 구성하게 되고 그 결과 해당 헌법 조항이 사실상 개정된 것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게 되는 사태를 가리킨다.

    당시 학계에서는 헌법 변천이 일본국헌법 하에서 수용 가능한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는데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이 유력했다. 다만 긍정설도 9조에 관해서는 학설과 판례, 대다수 국민이 자위대의 합헌성을 인정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 즉 변천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았다.

    반면에 부정설은 위헌 사례가 학설이나 판례, 국민에 의해 승인된다고 하더라도 헌법 조항이 동일한 이상 이는 어디까지나 위헌 사례가 지속되는 것에 불과하고 따라서 이로 인해 헌법의 내용까지 변경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결국, 긍정설도 부정설도, 9조는 엄격히 해석되어야 하고 해석을 통해 자위대를 합헌으로 간주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9조의 개정

    일본국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부분 보수주의 정당에 의해 제기되었다. 보수주의 정당은 일본국헌법을 자신들의 내각에서 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의 기본적인 내용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이들은 1952년 연합군(GHQ)의 점령이 종료되자마자 ‘자주헌법’ 제정을 목표로 하는 ‘강요된 헌법론’을 개진하였다. 이들은 천황의 원수화(元首化)와 자위대의 승인, 기본적 인권의 축소 등 헌법의 전면적인 개정을 주장했다.

    한편, 정치적 공론장에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일본국헌법 제정 직후부터 1970년대에 걸쳐서 보수주의 정당의 주장과 내용을 달리하는 개정 논의가 학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예를 들어 1949년에 도쿄대학 헌법연구소에서는 헌법 1장을 헌법의 기본원리로 하고 2장을 기본적 인권으로, 3장을 상징천황으로 변경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검토한 바 있다.

    또한 같은 해 츠지 키요아키(辻清明) 아리쿠라 료키치(有倉遼吉) 등 정치학자와 헌법학자들로 구성된 공법연구회는 헌법 1장에 ‘인민주권 선언을 포함한 기본적인 인권 규정’을 두고 국회 승인 하에 황위 계승이 이루어지도록 하며, 9조 1항의 ‘국제분쟁 해결의 수단으로서는’이라는 조문을 삭제하는 대신에 2항의 ‘전 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를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도’로 수정해 압정(壓政)에 대한 저항권을 명문화할 것을 주장했다.

    이외에도 카게야먀 히데야(影山日出弥)는 ‘마르크스주의=사적유물론에 기초를 두는 원리론’ 형식을 지향하면서 ‘지배계급’을 제외한 ‘인민’에 국가권력을 귀속시키는 ‘인민주권’으로서의 가능성을 검토했다. 당시 일본의 헌법학계에서는 일본국헌법을 ‘부르주아민주주의헌법’으로 규정하고 사회주의헌법 또는 공산주의헌법으로의 이행을 조망하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전망과 과제

    그렇다면 헌법 9조의 문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헌법 9조가 비무장 규정으로서 견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첫째, 9조가 전제로 하고 있는 전쟁관은 기본적으로 타당하고, 둘째,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은 이후에도 계속되어야 하며, 셋째, 9조는 국제사회가 지향해야 할 안전보장체제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 전쟁관

    9조는 특정한 전쟁관을 전제로 하고 있다. 헌법 초안을 기초한 국무대신 시데하라 키주로(幣原喜重郎)는 제국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체의 군비 보유를 금지하는 9조에 대해 “꿈같은 이상”이라고 “냉소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사려있는 사람”이라면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3차 세계대전이 인류의 파멸을 부를 것이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도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소리야 말로 꿈같은 이상에 다름 아니다”. “일정범위 내로 무력을 규제하고 또 이를 합리화하려는 시도야 말로 과거의 실패를 무한 반복할 뿐이다. 문명과 전쟁은 궁극적으로 양립 불가능하고 문명이 서둘러 전쟁을 절멸시키지 않으면 전쟁이 문명을 먼저 절멸시키게 될 것이다”

    시데하라의 발언은 핵무기와 생화학무기의 위협이 증가한 오늘날 더욱 타당하다. 그러나 현대 전쟁이 언제나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설령 파멸적인 결과가 예상된다 하더라도 위법한 침략이 자행된 경우라면 이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주장을 완전히 배척하기는 힘들다. 때문에 비무장 규정 9조를 단지 전쟁의 양상만으로 정당화 할 수는 없다.

    -침략전쟁과 반성

    9조는 지난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으로 제정되었다. 비록 헌법 제정 당시 제국의회 심의 과정에서 명확하게 표명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념적으로는 9조가 그러한 반성을 기반으로 제정된 것으로 봐야 하고 반성의 마음도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본도 주권국가로서 자위권이 있고 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야할 의무가 있는 이상 위법한 침략에 대해서는 군사력을 가지고 격퇴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주장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 다만 자위권 개념이 가지고 있는 약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자위권’ 개념은 원칙적으로 국제법상 금지된 군사력 행사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에 불과다. 따라서 국제법적으로 자위권이 인정된다고 해서 어떤 특정 국가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헌법상 군사력을 보유하지 않기로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9조는 지난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으로 제정되었고, 자위권의 존재 자체가 군사력을 보유해야 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책무가 있고 위법한 침략의 가능성 또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도 명백하다. 이와 같은 국제사회의 현실이 있는 이상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만으로 비무장 규정 9조를 정당화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 안전보장체제

    9조를 비무장 규정으로서 견지해야 하는 보다 기본적인 이유는 9조가 향후 국제사회가 지향해야할 안전보장 방식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현행 유엔헌장은 가맹국 고유의 군사력 보유를 전제로 하고 있고, 비록 제한적이라고는 해도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에 대한 고유한 권리(51조)’ 행사를 인정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가 분쟁의 공적인 해결을 추구한다는 점은 분명하고, 나아가 향후 가맹국 고유의 군사력 보유를 금지하는 등 한 차원 높은 집단안전보장 체제가 형성될 가능성 또한 적지 않다. 향후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방식으로서 집단안전보장체제를 지향해야 한다는 입장에 동의한다면 헌법 9조는 이러한 안전보장체계에 적합한 비무장규정으로서 견지되어야 한다.

    – 향후 과제

    위와 같은 이유로 비무장 규정으로서 9조를 견지하고자 한다면, 이제 9조는 일본이 지향하는 목표를 규정하는 조항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게 되고 아울러 이러한 목표에 공권력은 구속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본의 국회와 내각은 고차원의 집단안전보장 체제의 형성에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과 같은, 9조가 지향하는 목표를 실현할 책무를 지니게 된다.

    다만 오늘날 국제사회의 현실을 고려했을 때 9조의 즉각적 실현을 요구할 수는 없다. 현실 국제정세 하에서 9조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어떠한 조치가 강구되어야 하는지, 이에 대해서는 정치부문에 일정한 재량권이 부여되어야 한다. 하지만 재량권을 인정한다고 해도, 주의해야 할 것은 9조가 단지 정치적 공약이나 강령규정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되고, 이러한 정치부문의 조치가 재량권의 일탈 또는 남용에 해당되는 경우에 해당 조치는 즉시 위헌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9조는 재판규범의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9조가 단순히 정치적 공약이나 강령이 아니라 정치 부문을 구속하는 법규범으로서 존속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들 사이에서 보다 높은 차원의 집단안전보장체제가 목표로 설정되고 9조가 이러한 목표에 적합하다는 폭넓은 컨센서스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컨센서스가 형성되고 9조가 더 이상 개정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일본국헌법을 심화 발전시키는 방향으로의 헌법개정(예를 들어 환경권의 추가)도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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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4월 자민당이 발표한 ‘헌법개정초안’ 중 일부. 조문의 수정 및 신설은 밑줄로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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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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