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읽기에 들어간
    제주도 영리병원 설립
    [민중건강과 사회] 의료민영화 빗장 풀리는 것 막자!
        2016년 01월 25일 09:32 오전

    Print Friendly

    작년 12월 18일 녹지국제병원(이하 녹지병원)이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승인받았다. 영리병원은 병원에서 발생한 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분할 수 있어, 주식회사형 병원으로도 불린다. 영리병원은 병원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모두 병원에 재투자하는 비영리병원에 비해 의료의 질이 낮다. 비용을 낮추기 위해 인력을 줄이고 돈이 되지 않는다면 의학적으로 필요한 부문도 구조조정 해버리기 때문이다. 반면 돈을 잘 버는 진료과나 비싼 시술을 대폭 확대해 의료비는 더 비싸진다.

    하지만 정부는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 외국인 투자 비율 50퍼센트 이상이라는 조건만 갖추면 영리병원을 세울 수 있도록 허용했다. 또한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어디에나 영리병원 설립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1

    한국인의 우회 투자 의혹

    제주도는 2007년부터 끊임없이 규제를 완화하며 영리병원 유치를 희망해왔다. 2013년에 중국 의료기업인 CSC(China Stem Cell)가 제주도에 피부미용과 항노화 진료를 하는 영리병원인 ‘싼얼병원’을 짓겠다고 보건복지부에 사전심의를 요청했다. 정부는 이를 6차 투자활성화 대책에 모범 사례로 소개했으나, 정작 CSC의 모기업이 사실상 부도상태이며 회장이 사기 혐의로 구속된 것이 드러났다.1) 보건복지부는 그제야 싼얼병원 설립을 불허했다.

    2015년 4월 제주도는 또 중국 자본인 녹지그룹이 제1투자자로 참여하는 영리병원인 ‘녹지병원’ 설립 승인을 보건복지부에 요청했다. 녹지그룹은 부동산기업으로 병원 경영 경험이 없다. 그렇다면 누가 병원 운영을 맡을까? 녹지병원의 제2투자자인 북경연합리거 소속의 서울리거 병원이 녹지병원의 설계와 운영을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리거는 한국 BK 성형외과 원장이 설립 운영하는 병원이다. 즉, 한국 의사가 중국을 우회해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세우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국내 병원의 우회 투자를 부인하며 녹지병원 설립을 허가했다.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사실 확인을 위해 녹지병원 관련 정보 공개를 요청했으나 복지부는 거부했다. 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적법하게 신청되면 허가를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2) 제주도는 왜 영리병원 유치를 이토록 간절히 원할까?

    제주도는 왜 의료관광에 매달리나

    제주도는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관광산업에 목매고 있다. 제주도가 2015년 발표한 ‘제주경제 활성화 종합 추진계획’에 따르면 8대 정책과제 중 하나가 관광산업의 고부가가치화이다. 이를 위한 주요 사업으로 의료·관광·IT산업의 융복합을 통한 스마트 웰니스 서비스를 제시하고 있다. 또 제주도는 정책과제를 위한 총 사업비의 66퍼센트를 관광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하지만 제주도민 다수는 영리병원에 반대한다. 2008년 7월에는 영리병원 허용을 두고 주민투표까지 했지만 결국 부결된 바 있다. 작년 7월 15일 제주도의회의 설문조사에서 도민 57.3퍼센트가 반대했으며 찬성은 19.7퍼센트에 불과했다.3) 제주도민들은 중국 자본이 주도하는 대대적인 투자가 유발시킬 문제들에 대해 큰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영리병원 도입으로 인해 다른 의료기관들이 상업화되고 의료비가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제주도가 도민 의견을 묵살하면서까지 관광산업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한국 지방자치제도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지자체의 취약한 재정여건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는 충분한 예산을 배정하지 않는다. 지자체가 세수 확보를 통해 스스로 살아남을 것을 강제하는 것이다. 지자체는 세수를 늘리기 위해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제1의 목표로 삼고, 지방행정에 민간 경영기법을 도입하고, 지역을 신자유주의적으로 개조한다.4)

    중앙정부는 경제자유구역법, 제주특별자치도법 등을 만들어 이러한 변화를 법적으로 뒷받침해 준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중국 자본의 공격적인 제주도 투자이며, 녹지병원 설립은 이런 맥락 속에 위치하고 있다.

    제주2

    대형 영리병원 설립으로 가는 관문?

    첫 번째 영리병원 설립은 더 큰 재앙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제주도의 2기 보건의료발전계획(2011~16) 보고서에는 영리병원 유치를 위한 전략이 나온다. 전략1은 실질적인 영리병원 설립에 대한 내용이다. 초기 단계와 중장기 단계 계획으로 나눠져 있다. 초기 단계는 바로 성형, 피부미용과 같이 비급여가 많고 국내외 환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진료과를 중심으로 한 전문병원 유치이다. 바로 녹지병원이 성형과 피부미용 중심 병원이다.

    중장기 계획은 중증질환까지 모두 치료하는 국내 빅5(아산, 삼성, 서울대, 세브란스, 성모) 병원 분원이나 외국의료기관을 유치하는 것이다. 국내 의료기관인 빅5 병원이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설립하려면 제주특별자치도법을 개정해야만 한다. 이미 국무총리실에서 해당 내용의 법안을 2010년에 발의한 적이 있다. 결국 제주도 보건의료발전계획에는 국내 의료기관의 영리병원 설립이 포함되어 있고, 이를 위한 포석으로 녹지병원을 활용했다는 게 이 계획에서 드러난다.

    한편 전략2에는 영리병원을 원격의료와 연계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현행 제주특별자치도법에는 외국면허 소지자에게 의사-의사 간 원격의료가 허용되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계획에는 이를 통해서 국내 상급종합병원 또는 해외 유명 의료기관과의 원격의료를 시행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또 제주특별자치도 외 지역의 내국인 환자를 위해 환자-의사 간 원격의료가 시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녹지병원에서 원격의료 인프라를 구축하고 국내 상급종합병원 원격진료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면 서울 유명병원의 진료를 원하는 내국인 환자들이 크게 몰릴 것이다. 이는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을 심화시키고 의료비를 크게 증가시킬 것이다.

    영리병원과 의료관광사업은 보건의료체계를 어떻게 망치나

    1990년대 후반 싱가폴, 태국, 인도 등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의료관광을 활성화시켰다. 이 국가들이 의료관광 사업을 하면서 겪은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수한 인력이 의료관광업을 하는 민간영리병원으로 빠져나갔고, 또 전체적인 의료비가 상승했다.

    태국에서는 공공병원에서 민간영리병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의사 수가 2005년에 연간 7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공공병원에 부족한 의사 수는 6,000명에 이른다. 또 외국인 환자가 몰려드는 특정 전공 선호 현상으로 인해 환자 치료에 필수적인 전공과들이 외면 받고 있다. 인도에서는 결핵과 설사 질환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가 매년 100만 명이 넘지만, 정작 가장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는 부문은 인공관절치환술, 녹내장수술 등이다.5)

    인도에서는 1995년부터 2004년까지 인도 도심부의 입원료가 공공병원에서는 9퍼센트 증가했고, 민간병원에서는 36.5퍼센트 증가했다.6) 의료관광의 메카로 불리는 싱가폴에서는 2010년 부터 말레이시아의 병원을 이용했을 때도 싱가폴인들이 평소에 의료비를 지급받는 메디세이브 계좌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의료관광 사업으로 인해 싱가폴의 의료비가 지나치게 상승해서 가격이 싼 말레이시아 병원을 이용하라는 취지였다.7)

    빗장이 풀리는 것을 막자

    보건복지부의 승인이 떨어진 이상, 이제 설립 절차는 제주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원회)의 심의와 도지사의 허가만 남았다. 심의위원회 위원들은 다행히 영리병원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다수지만, 문제는 위원들이 설립 허가에 대한 의결권은 가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심의위원회를 하면서 녹지병원과 관련된 정보 공개를 요구하거나 관계자 출석을 요청할 수 있기 때문에 간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런데 제주도는 2017년 하반기에 심의위원회를 열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는데,8) 현재 위원들의 임기는 2017년 9월 6일까지다. 조속히 심의위원회를 열어 녹지병원의 운영과 투자 주체에 불법적으로 끼어든 한국 의료기관이 없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에 대한 투쟁이 필요하다. 제주도 영리병원 설립은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삼성을 필두로 한 의료자본과 정부가 공동으로 준비해왔던 의료민영화 계획의 일부분일 뿐이다. 특히 제주도의 영리병원 구상에 현재 뜨거운 감자인 원격의료 허용이 포함되어 있는 만큼 영리병원과 원격의료 의제를 함께 묶어서 운동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을 비판하고 저지 투쟁을 벌여나가는 한편, 녹지병원 설립 허가권자인 제주도지사를 압박하는 전국적인 반대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빗장이 풀리지 않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참조>

    1. 김새봄 외. 중국 사기 대출 기업이 박근혜 정부 제1호 영립영원 설립?. 뉴스타파. 2014년 8월 22일.

    2. 김대휘. 원희룡 지사 “영리병원 신청이 적법하면 허가할 것”. 노컷뉴스. 2015년 12월 21일.

    3. 김호천. 제주도민 57.3% 외국영리병원 반대… 도의회 설문조사. 연합뉴스. 2015년 7월 15일.

    4. 장진범. 5.31 지방선거를 둘러싼 정세와 사회운동의 대응. 사회운동. 2006년 5월.

    5. Y.Y. Brandon Chen and Colleen M. Flood, “Medical Tourism’s Impact on Health Care Equity and Access in Low- and Middle-Income Countries: Making the Case for Regulation”, Journal of Law, Medicine & Ethics. 2013 Spring;41(1):286-300.

    6. Ibid.

    7. Chee HL. Medical tourism and the state in Malaysia and Singapore. Glob Soc Policy 2010; 10: 336-57.

    8. 박엘리. 제주 영리병원 中녹지병원 착공…내년 하반기 개원. 이투데이. 2016년 1월 14일.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