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양대 노동 지침,
    사용자 위한 '쉬운 해고 매뉴얼'
    "협의하자"던 정부, 정작 협의 토론 자리엔 불참
        2016년 01월 12일 09: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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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양대 지침(일반해고·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이 사용자를 위한 ‘쉬운 해고 매뉴얼’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달 30일 정부가 발표한 전문가 간담회 자료는 상당 부분 해고 절차를 설명하는 데에 소요하면서도 노동자가 사용자의 해고 회피 노력 등에 대해선 매우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비판의 근거다.

    하지만 정부는 그간 모호했던 해고 제도를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통해 ‘억울한 해고’를 막기 위한 것이 지침의 취지라고 강변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주최로 12일 오후 국회에서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요건완화 지침의 문제점과 대책,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지난달 30일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 마련을 위한 논의’라는 전문가 간담회에서 양대 지침에 관한 상당한 우려가 제기된 것에 따른 야당 주최의 논의 자리다.

    토론회에는 양대 노총을 비롯한 법조계·학계 등 인사들이 정부의 양대 지침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제기했다. 다만 지침 초안을 공개한 고용노동부는 이번 토론회 참석요청에 일정상의 이유를 들어 불참을 통보했다. 사실상 토론 자리를 회피한 것이다.

    토론1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토론회(사진=유하라)

    사용자 위한 해고 절차는 ‘장황’, 노동자 위한 해고 회피 노력은 ‘간략’

    토론자로 나선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소속의 박성우 노무사는 정부가 거론하는 해고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평가’의 속성 자체가 주관성과 재량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라는 말 자체가 노동자를 상시적으로 해고할 수 있는 새로운 해고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고용노동부의 30일 간담회 자료 가운데 해고에 관한 부분을 살펴보면 정부는 간략하게 해고의 유형을 설명하고 본격적으로 ‘업무능력 결여, 근무성적 부진을 이유로 한 통상해고’와 관련한 판례를 제시한다. 근무성적 부진으로 인해 해고된 사례가 있고, 이러한 판례에 기초해 지침을 통해 저성과자 해고를 사실상 합법화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해고를 위한 요건 ▲해고 사유 명확화 ▲평가 ▲해고 대상자 선정 등의 항목을 판례와 함께 15페이지 가까이 할애한다. 반면 노동자를 위한 해고회피 노력 항목은 고작 1페이지를 조금 넘는데 그쳤다. 이마저도 이미 해고 압박 수단으로 전락한 전환배치나 교육훈련 등에 관한 설명이다. 정부가 ‘쉬운 해고’와 ‘공정 해고’ 중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춰 일반해고 지침을 만들고자 하는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성우 노무사는 “정부 간담회 자료는 (해고 절차에) 긴 분량을 여기에 할애한다”며 “반면 더 중요할 수 있는 업무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훈련 제공, 해고 회피 등은 굉장히 짧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쉽게 자르고, 평가라는 법적 쟁점을 피해갈 수 있는 매뉴얼을 제시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제시한 판례 대부분 왜곡”

    정부가 상당부분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 저성과자 해고 판례들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일단 명백한 저성과자 해고에 관한 판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해고 관련 판례 자체는 ‘저성과자’가 아닌 노동자의 비위 등 징계 사유에 방점이 찍히는데 이를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변의 강문대 변호사는 “법원 홈페이지 들어가서 정부가 주장한 대로 ‘업무능력 결여 해고’, ‘근무성적 부진 해고’, ‘저성과자 해고’ 이렇게 검색해서 나오는 판례가 거의 나오는 게 거의 없다”며 “(업무능력 결여, 근무성적 부진, 저성과자 해고가) 순수하게 해고 사유로 다뤄 축적된 판례가 많지 않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동부가 판례 소개하는데 저성과라는 부분이 징계사유와 함께 제기됐거나 불성실하거나 태만할 경우 거기에 초점이 있는 것”이라며 “저성과자가 해고 자체가 정당한지 사전에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나와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강 변호사는 “그럼에도 정부는 저성과자 해고를 유형화하려는 것은 우려했던 일상적 구조조정, 축출해고를 하기 위해 사용자에게 길을 터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노무사 또한 “(정부는) 저성과, 근무성적 부진은 근로계약 본질을 고려할 때 통상해고 사유가 된다고 전제를 깐다. 하지만 이러한 판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통상해고, 저성과자, 이런 논리에 의해서 해고가 합당하다고 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동부가 판례를 마음대로 왜곡했다는 문제가 있다”며 “지침에 나와 있는 판례를 보면 정확하게 업무능력 결여, 저성과, 평가 부진과 함께 근로자 개인의 비위 행위, 귀책사유나 징계 사유가 있는 한에서 해고가 정당하다고 한다”며 “성과 부진의 경우 해고가 아니라 직위해지나 대기발령, 전직 등의 인사 명령에 대한 정당성을 판단한다. 그런데 이러한 판례를 끌고 와 왜곡된 주장을 한다”고 비판했다.

    취업규칙 ‘노동자 과반 없이’ 불이익 변경….
    “고용노동부의 천박한 노동 인식 드러낸 사례”

    정부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 일반해고와 함께 대대적으로 강행하고 있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지침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할 때 노조나 과반 이상의 노동자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데 정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근거로 노동자 동의 없이 사용자가 노동조건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취업규칙 요건은 노동조건에 관한 것인 만큼 노동자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그럼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사내 취업규칙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고, 노동자에게 불리한 요건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토론자들은 정부가 노사 자율 결정에 달린 취업규칙 요건 개입하기 전에 취업규칙에 대한 심사부터 제대로 하고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노무사는 “취업규칙의 효력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며 “우리 회사 취업규칙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우리 주위에 보면 위법한 취업규칙도 널려있다. 이런 것들도 다 노동부의 심사를 거친 취업규칙이다. 노동부가 과연 제대로 심사를 하고 있나”라고 반문했다.

    박 노무사는 또한 “취업규칙 개정은 노사 대등 근로기준의 원칙, 근기법의 대원칙의 장치”라며 “임금피크제를 중심으로 한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정부가 취업규칙을 건들인 것은 대단히 위험한 접근”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용노동부의 노동자 인식의 천박함을 분명히 드러난 것”이라고 질타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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