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에서 목격한
청춘의 방, 청춘의 삶들
[책소개] ⟪청년, 난민 되다⟫ (미스핏츠/ 코난북스)
    2016년 01월 09일 03: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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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에게 절망은 ‘한순간’에 일어나는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에 스는 곰팡이 같은 것 아닐까. (…)
이전 세대가 오르막길을 오르는 고단함을 짊어졌다면,
지금의 청년들은 끝을 알 수 없는 내리막을 마주하고 있다. _프롤로그 중에서

누구든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내 집 마련’은 일생의 숙원이고 성취였다. 그러나 집은 꿈도 꾸지 못하고, 방 한 칸 마련하는 것조차 버거운 청년 세대가 도래했다.

등록금은 1년에 천만 원에 육박한다. 취업에 필요한 ‘스펙’의 종수가 늘어날수록 이를 준비하는 데 드는 돈 역시 늘어난다. 수도권 대학 원룸의 평균 보증금은 1418만 원, 월세는 42만 원이다. 주거비를 스스로 마련하려면 수업시간보다 긴 시간을 노동해야 한다. 그렇게 얻은 방도 치솟는 주거비에 맞춰 6개월, 1년 단위로 떠돌아야 한다. 주거는 이렇게 청년에게 현실을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덫이 된다.

언제든 박스 몇 개에 나눠 담을 수 있도록 인생을 정리한다는 것. 원치 않지만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 도시에서 안정적으로 공간을 빌릴 자본이 없는 청년은 잠재적 난민이다. 원치 않는 이동을 반복하고, 안전하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공간을 떠돌면서 소진된다. 불안과 상실을 대가로 꿈을 좇을 기회를 얻고, 질 낮은 생활을 감수하는 상황이다. 268쪽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주거의 조건도 있다. 통학에 다섯 시간이 걸리지만 경기도에 산다는 이유로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기숙사, 기숙사나 공공주택을 늘리려 해도 극렬하게 반대하는 지역 주민, 집 열쇠를 따로 갖고 언제고 방에 들어오는 집주인, 옆방 소음을 늘 듣고 살아야 하는 조악한 원룸…….

이것은 과연 한국만의 현실일까. 벗어날 순 없을까. 20대 독립 언론 미스핏츠는 그 답을 직접 찾기로 했다. 2015년 초 타이완, 홍콩, 일본으로 떠났다. 그곳 청년들의 집을 찾아갔고 이들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들었다. 타이완 새둥지운동, 홍콩 우산혁명에 참여한 청년 단체도 만났다. 일본에서는 새로운 주거 실험을 하는 긱하우스, 청년 주거자립 지원 단체를 방문했다. 한국에서는 직접 주거 대책 포럼을 열기도 했다.

《청년, 난민 되다》는 이렇게 지난 1년 가까이 직접 겪고 듣고 만난 청년 주거의 절망과 희망에 관한 기록이다.

청년 난민되다

동아시아에서 목격한 청년의 방, 청년의 삶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전제가 충족될 때 성립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과연 지금 청년들에게 청춘은 그런 것이라고, 고진감래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에 담긴 청년들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준다. 비단 한국사회의 문제만은 아니다.

특히 주거 문제는 이들의 삶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90년 치 월세를 모아도 살 수 없는 타이완의 집값, 소득은 떨어지는데 나날이 치솟는 홍콩의 주거비, 프리타나 파견직 같은 불안정 노동자는 신원 보증이 안 돼 방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운 도쿄의 주거 시스템……. 이 변수들이 맞물리면서 인생의 설계도를 그리는 일은 요원해진다.

원래 집 한 채인 공간을 여러 개 방으로 쪼갠 타오팡(타이완), 큐비클(홍콩), 탈법 셰어하우스(일본), 하숙형 원룸(한국), 무엇이라 불리든, 이 기형적인 주거 공간이 묘하다 싶을 만큼 공통적으로 청년에게 주거 공간으로 주어진다. 그 안에 ‘편의시설’이 하나씩 놓일 때, 볕 한 줌을 원할 때 부담해야 할 비용은 늘어난다. 아니면 가진 비용에 맞춰 그것들을 포기해야만 한다. 포기하는 것은 그뿐이 아니다.

직장을 구하는 것, 집 구할 돈을 모으는 것, 가정을 지탱할 수준의 돈을 모으는 것이 이곳에서는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경험으로써 확인될 때, 무언가를 포기하게 된다. 이곳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바라던 것 중 일부를 ‘포기’하게 되는 거다. 그렇게 한국과 홍콩에서 ‘N포세대’가 탄생한다. 포기해야 하는 것들의 목록은 점점 늘어간다. 또는 그렇게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어떻게든 실현해보기 위해 ‘이곳’이라는 조건을 버린다. 그렇게 우리 청년들은 한국에서도 홍콩에서도 무언가 많이 포기하거나, 탈출을 꿈꾸며 ‘탈조선, 탈홍콩’을 이야기하게 된다. 126쪽

《청년, 난민 되다》는 이렇듯 수치와 통계로 다 담을 수 없는 청년 주거의 현실을 저자들 자신의 1인칭 경험담과 직접 만나 경청하고 또 목격한 관찰자의 시점에서 또렷하게 들려준다. 당사자인 청년들의 이야기와 오랫동안 대안을 모색해온 단체, 각종 자료와 자신들의 경험담을 교차해 이 현실의 의미를 탐색한다.

저자들이 동아시아 도시에서 만난 청년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우리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매매를 선호해 집을 임대하기 꺼리는 타이베이, 10년 동안 공공주택에 청년 세대는 단 한 명도 입주하지 못한 홍콩, 낮아지는 노동의 질에 블랙기업의 횡포가 맞물려 도시에 사는 게 ‘무리’인 도쿄의 삶. 그러면서 집을 사라고 부추기고, 소유자 위주의 부동산 정책을 입안하고, 삶의 기반을 무시한 채 노동문제로만 청년 문제를 접근하는 정부까지.

저자들이 이곳에서 만난 문제가 한국사회와 교집합을 이룬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되묻는다. 우리 사회가 탈홍콩을 꿈꾸듯 탈조선을 꿈꾸는 게 당연한 게 아닌지, 소득 2백만 엔 이하 청년의 77퍼센트가 부모에게 ‘기생’한다는 일본처럼 활력을 잃은 사회가 되는 게 아닌지를.

‘불행 배틀’대신 가느다란 희망의 대안을 모색하다

저자들이 타이베이, 홍콩, 일본을 찾은 이유는 분명했다. 그곳에서 벌어진 희망의 몸부림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타이베이 시민 2만 여명은 2014년 10월 한 채에 수백억을 호가하는 디바오 지구 렌나이 아파트, 우리로 치면 타워팰리스 같은 호화 아파트 앞에 드러누웠다. ‘새둥지운동’이다. 여기서 이들은 주거의 권리, 부동산 세제 개편, 공공주택 확충 등 다섯 가지 요구안을 제시했다. 곧이어 11월 치러진 선거에서 여당 대신 이들의 요구안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한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었다. 홍콩의 ‘우산혁명’ 당시에도 민주화라는 큰 구호 아래에는 주거의 문제, 청년의 문제를 들고 나온 이들이 있었다. 홍콩 청년들의 불만이 무엇인지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는 장기 침체 이후 청년 문제(히키코모리, 프리타, 니트족)를 자생적으로 해결하려는 여러 형태의 셰어하우스와 지원 단체들이 생겨났다. 주거가 삶의 최후의 보루라는 인식 아래 생각이 비슷한 사람끼리, 혹은 자립이 필요한 사람을 모아 주거부터 해결하자는 움직임들이다.

해외의 사례들을 그저 부러움의 시선으로 본 것만은 아니다. 국내에서 새로운 방식의 주거 운동을 벌이는 각 대학 총학생회, 청년 단체, 사회주택협동조합 등을 만나 가능한 대안이 무엇인지 모색했다. 현재 시행 중인 공공주택정책에 허점은 없는지도 꼼꼼하게 살피고 대안들을 이 책에 담아냈다.

저자들은 ‘주거가 정치’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변화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세상을 리셋하자고 말하는 대신 실효성 있는 정책, 여기에 힘을 싣는 정치가 뒷받침된다면 청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어도, ‘청춘의 방’을 삶의 근거지이자 희망의 산지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흙수저 게임’이라는 보드게임이 있다. 이 보드게임은 ‘금수저 물고 태어나는 플레이어’와 ‘흙수저 물고 태어난 플레이어’를 가정하고 시작한다. 금수저가 기본으로 가진 아이템은 집 세 채와 유동자산 칩이다. 두 채는 임대 수입을 얻는 수단이다. 흙수저는 초기에 유동자산 칩만 가지고 시작한다. 게임하면서 자기 차례가 돌아올 때마다 각 플레이어는 매달 칩으로 월세를 내고, 월세를 받고, 대학에 갈지 말지, 취업을 할지 말지 선택해야 한다. 일종의 ‘인생 게임’이다. 이 게임은 얼핏 보면 금수저에게 유리하게 설정되어 흙수저의 ‘좌절’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매 턴마다 흙수저와 금수저가 자신들을 위한 ‘법안’을 발의하고, 그에 따라 이 모든 선택의 질서를 바꾸는 데 있다. 이것이 이게임의 핵심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바꿀 수 있다. 게임의 법칙 자체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다. 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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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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