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치의 패배는
    복지와 공공성의 후퇴"
    [인터뷰-1] 정의당 나경채 공동대표
        2016년 01월 03일 12: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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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정의당으로 통합하여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진보결집 플러스’의 한민호 회원이 나경채 정의당 공동대표를 인터뷰하고 기고 글로 보내왔다. 공동대표 이전에 관악구의원으로 지역활동을 통해 진보정치를 시작했고 지금도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나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진보정치의 기본과 미래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이다. 인터뷰 기고 글은 2회에 나눠 싣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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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22일 지금의 ‘통합’정의당은, 기존의 정의당, 진보결집 더하기, 노동정치연대, 국민모임 네 개의 조직이 하나가 됐다. 그로인해 지금처럼 야권이 소용돌이 속인 이 상황에서도 정의당만은 지지율이 어느 정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지금의 정의당에는 한 명의 상임대표와 두 명의 공동대표가 있다. 당직 선거를 통해 당선된 심상정 상임대표와, 노동정치연대를 제외한 각 조직의 대표들이 정의당 공동대표가 됐다.

    진보결집 더하기의 대표였고 지금은 정의당 공동대표가 된 나경채는 진보정당의 지역 정치인의 표상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으로 당선됐다. 한남운수 해고자 복직문제, 도림천 생태하천 복원, 친환경 안전급식, 공공 도서관 건립 추진 등 임기 4년 동안 누구보다 서민에 가까운 의정활동을 펼쳤다. 거대 양당이 지역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3당 후보가 서울의 2인 선거구에서 당선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나경채 공동대표는 심상정, 노회찬과 같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명망가 출신도 아니다.

    그런 그는 진보정치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자신이 살아왔던 지역에서 찾는다. “관악구에서 진보정당 당원으로 살아온 시간이 10년이 훨씬 넘었기 때문에, 동네에 계신 누구 아저씨네 가게 앞을 지날 때 ‘저 분 임대로 때문에 힘들 텐데’하는 생각, 아니면 누구 만나러 갈 때 보게 되는 도림천을 보고 ‘이렇게 방치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든다. 동네 곳곳에 진보정치가 개입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눈에 밟힌다.”

    그러나 그는 다음 선거에서 아쉽게 낙선했다. 그가 낙선하자마자 관악구는 ‘유사 중복 복지사업 통폐합’이라는 명목 하에 영유아 통합 복지센터 ‘시소와 그네’를 없앴다.

    “냉정한 거다. 우리가 선거에서 진다는 건 그냥 그 후보 몇 명이 떨어졌다는 게 아니라, 그동안 그나마 지켰던 가치관이 뒤집어지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 따라서는 죄악이기도 한 것이다.”

    인터뷰를 하기 전에는 진보정당에 더 많은 나경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터뷰를 진행하며 생각이 바뀌었다. 더 많은 나경채를 지속시킬 수 있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 그 환경은 정당의 성장과 깊은 고민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나2

    관악구의원 시절의 나경채 정의당 공동대표

    한민호(이하 한): 최근에 정의당 공동대표가 되셔서 많이 바쁠 것 같다. 하루 일정이 어떻게 되나?

    나경채(이하 나): 많이 바쁘다. 내년 총선을 지역에서 준비하고 있어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 하는데, 아직은 당의 전체적인 일정을 따라가는 데 바쁘다. 하지만 관악 지역에 만나야 될 사람들도 있고 여러 정책이라든지 선거와 관련된 구상들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바쁘다. 또 연말이라 송년회도 많다. 어제만 해도 거제시위원회 송년모임에 초대돼서 오전에 상무위원회의 마치고 다섯 시간 걸려서 거제에 갔다. 가서 거제 지역의 당원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밤 아홉시 반쯤 거제에서 출발해서 새벽 두시쯤에 인천에 도착했다. 인천에 도착해서 모텔에서 잠깐 자고 아침 일곱 시에 두산인프라코어 사옥 앞에서 인천시당 동지들과 그곳 조합원들과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희망퇴직의 부당함을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한: 통합당대회가 11월 22일이었고 (인터뷰 당시) 지금이 12월 22일이니까 오늘이 나경채 대표가 정의당 동공대표로서 활동한 지 딱 한 달째 되는 날이다. 한 달 동안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었나?

    나: 방금도 말했다시피 공동대표로서 당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 당의 여러 상황과 조건 등 현황을 파악하는 가장 빠른 길은 문서를 쳐다보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우리 전망과 비전 또 위협 요소와 대안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듣느라 가장 분주했다. 다만 그 와중에서도 12월 15일 날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기 때문에 당연히 지역구 출마를 고민하는 후보로서 지역 주민들에게도 소홀하면 안 됐다. 시간이 잘 나지를 않아서 그런 게 힘들었다. 지역주민들 중에 “왜 이렇게 안 보이냐?” 이렇게 물어보시는 분들도 많이 계셨다. 나름대로는 이유가 있지만 지역주민들 입장에서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그게 참 쉽지는 않았다.(웃음)

    한: 최근에 관악 주민 한 분이 “나경채 의원님이 전국구로 활동하시면서 요즘 안 보이네요. 힘 없고 가난한 관악의 수많은 약자 편이셨던 나경채를 돌려주세요.”라고 나경채 대표 SNS에 남긴 글을 봤다. 지역 주민들이 정말 많이 아쉬워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지방의원으로서 작년까지 일을 했기 때문에 여러 지역 현안이나, 말할 길 없는 사람들의 문제를 같이 해결하려고 노력해왔는데,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꽤 많다. 새로 생긴 문제들도 꽤 많다. 지난해 7월 달에 지방의원 임기를 마치고 올해 11월까지 노동당 대표로서 노동당 안에서 통합을 추진하는 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고, 그 이후에 당 밖에서 진보결집을 위한 조직을 만들었다. 사실은 지역활동과 진보결집 둘 다 하기는 도저히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진보결집의 흐름을 진보정당들과 함께 만드는 데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문제를 우선 풀어야 다시 진보정당의 당원으로서 제대로 된 활동을 보여드릴 수 있겠다고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까 지역에서는 “아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여기도 좀…”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SNS에서 호출도 당해보고 그랬다.(웃음)

    한: 그럼 이번엔 공동대표로서 좋았던 것, 행복했던 것은 무엇이 있나?

    나: 어쨌든 당원으로서 공동대표로서 당 업무가 바쁘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물론 총선을 앞두고 있지만 꼭 선거 때문만이 아니라 여러 문제를 우리당을 통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노동개악 관련해서 굉장히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그런 걸 정부여당은 밀어붙이려고 하고 제1야당은 왠지 믿음직스럽지가 않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이나 대중운동단체들은 민중총궐기를 3차에 걸쳐서 했고, 그 와중에 물대포에 맞아서 심각한 상태에 놓인 분도 생겼다. 아까 말씀드렸던 두산인프라코어 문제라든지 빈민, 청년 문제, 이런 것들에 대해 당이 제 목소리를 내야한다. 테러방지법도 그렇다. 정말 지금 권력을 잡고 있는 집단이 총칼만 안 들었다 뿐이지 노동자, 시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전에 준하는 공격을 일삼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정의당이 자꾸 호출당하는 것은 우리 당의 역할이 그만큼 막중하다는 것이다. 그런 걸 확인할 때마다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하면서 그와 동시에 그렇게 호출당하는 정당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한: ‘나경채’하면 진보정당의 지역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진보정당 내부에서 지역이 중요하다는 얘기는 계속 나오지만, 정작 지역 활동을 하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주거가 불안정한 사람을 중심으로 1년에 지역주민의 4분의 1이 이사 간다는 통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뭐가 있을까?

    나: 서울의 경우에 서울시에서 하는 마을 만들기 사업의 근본적 한계가 바로 그것이다. 지역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고 쉽지는 않은 문제이다. 다만 정치라는 것도 특정한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고 또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대부분 단일 생활권이기도 하고 중요한 구조적인 문제가 지역별로 약간은 다르게 각각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미국 같은 경우는 굉장히 넓기도 하고 사법체계가 그렇기도 하고 주마다 정립된 제도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어떤 지역의 문제가 그 지역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전체의 문제와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지역주민들이 다수 바뀐다고 해서 그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일차적으로 있다.

    또 진보정당이 손을 내밀어야 하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이 소위 부동산 집값 때문에 자주 이사를 다니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가난한 사람일수록 그 지역에 오래 살았다는 것 또한 중요한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돈으로 삶의 기재를 얼마든지 형성할 수 있다. 서울 살다가 다른 지방으로 이동하는 게 자유롭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가난한 사람일수록 특정 지역에서 맺고 있는 인간관계와 네트워크는 삶을 유지하는 데 중대한 자산이다. 그래서 돈 많은 사람들에 비해 이사를 다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보다 고통스러운 문제다. 비록 가난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이사를 다니고 있긴 하지만 이 동네에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 또한 강하다. 그런 문제에 진보정당의 구성원들이 인간적인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함께 우리 동네를 만들어간다고 하는 것, 어떤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보고자하는 것이 정주(定住)율을 높이고 정주한 사람들의 동일한 정치적 경험을 만드는 것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기초의원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 있나?

    나: 성공시키지는 못했는데, 임기 말에 다루게 된 사안 중에 ‘시소와 그네’라고 하는 영유아 통합복지 서비스를 제공했던 기관이 있었다. 그 복지서비스가 관악구청의 예산 중단으로 없어졌다. 그걸 막기 위해서 ‘시소와 그네’에서 일했던 사회복지사들, 지역주민들과 함께 공동행동을 같이 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시소와 그네’는 폐쇄됐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남긴 건 참 많았다.

    최근에 정부에서 ‘유사 중복 복지사업 통폐합’이라는 명칭 하에 복지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그래서 굉장히 많은 복지서비스가 없어졌다. 지자체가 고유하게 운영했던 복지서비스가 우선 없어졌고, 다음에 국비 지원이나 실비 지원을 통해서 특정 지역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제도들이 많이 없어졌다. 장애인단체들이 더욱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활동보조서비스에서 활동보조인에 대한 보조금 예산이 많이 삭감됐다. 이런 걸 정부는 중복 유사사업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복지제도를 정비하면서 예선을 절감하겠다고 계획을 세운 건데, 그 초입에 ‘시소와 그네’ 사업 폐쇄도 있었던 것이다. 그 때는 관련자, 지역주민들 모두 함께 노력했지만 결국 막아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지금 비슷한 일을 당하고 있는 지역 시민사회 단체들, 진보정치 영역에서 활동하는 당원들이 ‘시소와 그네’ 사례를 보고 이제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확고히 가지게 됐고, 네트워크도 여전히 살아있는 등 여러 평가를 남긴 일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싸웠던 분들이 비록 이 투쟁은 실패했지만, 나에게 혹은 같이 싸웠던 이동영 전 의원에게 많이 했던 말이 “정치가 이렇게 중요한지 몰랐고, 앞으로 투표할 때 정신 차리고 하겠다.”였다.

    나1

    한: ‘시소와 그네’는 당시 진보정당 기초의원들 낙선하니까 바로 없애더라.

    나: 냉정한 거다. 우리가 선거에서 진다는 건 그냥 그 후보 몇 명이 떨어졌다는 게 아니라, 그동안 그나마 지켰던 가치관이 뒤집어지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 따라서는 죄악이기도 한 것이다.

    한: 내 소신과 지역구의 여론이 다를 때는 어떻게 하나? 요즘 같아서는 고시촌이 몰려있는 관악 지역에서 사시존치로 인한 갈등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텐데.

    나: 민감한 질문이다.(웃음) 정치인으로서 지역주민들을 만나다보면 내가 가진 소신과 지역주민 다수가 요청하는 방향이 다른 경우를 만날 수 있다. 사시 존치 문제도 비슷한 경우다. 열린우리당 정부 시절에 사시제도를 대체해서 로스쿨 제도가 추진 됐는데,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당시 국민의 지지를 받아 제도를 개혁할 수 있었던 것은, 사법제도를 개혁하자는 문제의식의 일환이었다.

    당시 내가 속했던 민주노동당은 사법개혁이 분명 필요하지만 미국식 로스쿨 제도의 위험성 때문에 로스쿨 제도 자체는 반대했다. 하지만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는 가난한 사람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도록 정원을 확대하고 장학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방향 전환을 했다. 비슷한 외국의 예로 쿠바의 의대는 전액 무료다. 대신 졸업하면 몇 년 동안은 자국 내 혹은 해외 봉사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쿠바가 전 세계에서 의료 봉사단을 가장 많이 파견하는 나라다. 이게 가능한 제도적 근거는,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필수 인력을 국가가 책임지고 교육한다는 정책적 근거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학사장교 제도가 있지 않나. 그런 점에서 로스쿨 제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거의 무료에 가깝게 장학혜택을 보장하되, 지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공익적 활동에 일정기간 동안 복무하도록 제도를 설계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내가 살고 있는 신림동은 고시산업이 존재한다. 하숙집, 식당, 당구장, 술집 등이 예전에 사법시험 시장이 활발하던 시절에 비해 경기가 안 좋다고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사시가 부활하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냐는 지역주민들의 순박한 생각이 있는데, 이걸 정치권과 정부여당과 법조계 일부가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지금 경기가 안 좋고, 자영업자가 힘든 것은 사시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럼 다른 지역 골목상권은 튼튼한데 유독 이 동네만 안 좋아지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주거 밀집 지역 골목상권에서 공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고시촌이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은 신림9동이다. 그런데 신림9동의 젊은 층 인구는 줄지 않았다. 예전에 고시생이 채웠던 자리를 지금은 신입사원, 일용직 노동자, 이주민들이 채우고 있다. 그들이 예전 고시생들처럼 돈을 쓸 수 없는 주머니 사정은 무엇이냐를 고민해야 한다. 인구는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돈을 안 쓰고 가게는 망해가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정치권이 주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주민들은, 우리의 골목경제와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한 대안이 무엇인지 요구해야 하고, 정치인들은 그것을 응답하기 위해 경쟁해야한다. 지금의 사시존치 논쟁은, 애초에 로스쿨 제도를 통해 사법제도를 개혁해서 국민들에게 좀 더 접근 가능하고 편리한 사법 서비스를 만들자는 취지가 있었다. 그것을 지역 주민들이 장사가 안 된다는 이해관계 때문에 다시 사법시험을 부활하자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이런 서민들의 곤궁함을 악용하는 정치세력은 참 나쁘다.

    한: 주변에 같이 운동을 하다가 그만둔 분들도 많을 것 같다. 아직까지 진보정당운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 내가 당 활동을 시작하게 된 장소가 중앙당이나 시당이 아니라, 옛날말로 하면 지구당, 지금은 지역위원회인 우리 동네에서부터 지역정치를 경험했던 게 오래갈 수 있었던 이유인 것 같다. 관악구에서 진보정당 당원으로 살아온 시간이 10년이 훨씬 넘었기 때문에, 동네에 계신 누구 아저씨네 가게 앞을 지날 때 ‘저 분 임대로 때문에 힘들 텐데’하는 생각, 아니면 누구 만나러 갈 때 보게 되는 도림천을 보고 ‘이렇게 방치하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든다. 동네 곳곳에 진보정치가 개입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눈에 밟힌다.

    지난 14~5년 동안 바꾸려고 노력해왔던 것들,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지만, 이런 것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에 이 동네를 떠나지 않는 한은 이런 문제들과 씨름하면서 해결하는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상대적으로 많이 했다. 그리고 내가 봐도 당이나 진보정치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분들은 지역에 기반을 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발을 땅에서 떼려야 뗄 수 없고 떼본 적도 없는 분들이 그래도 이 당을 버티게 하는 주춧돌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그렇다고 중앙당에 계신 분들의 중요성을 간과하자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역 곳곳에 진보정치가 필요하지 않은 곳은 없다는 경험을 계속 했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또 하나는 지금까지 진보정치라고 하는 것은 주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 발 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데 상당히 많은 능력부족을 보여줬다. 그건 지역주민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서 상근자가 항상 빈곤하게 생활할 수밖에 없었고,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새로운 진보정치는 지역주민들의 경제적인 문제, 먹고 사는 문제를 우리 문제와 동일시하면서 고민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마을 만들기나 협동조합, 경제공동체 운동에 우리 당이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건 단순히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것 이외에도 우리 스스로가 봉착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 당 내부에서도 당원 상호간에 우리 스스로가 가진 문제를 개인적 문제라고 치부하지 말고 우리 당원들이 가진 곤궁함의 문제를 정당답게 정치적 방식으로 고민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2부에 계속)

    필자소개
    정의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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