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쉬운 해고' 강행 위해
    정부, 생색용 간담회 개최
    "이 정권은 노동자를 다 죽여야 경제가 산다는 폭력정권"
        2015년 12월 30일 03: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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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노동부가 30일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관련 2대 행정지침에 대한 전문가 간담회를 열었다. 노동5법 중 기간제법·파견법과 함께 노동계의 강한 반대에 부딪힌 것이 2개 행정지침이다. 이날 간담회는 정부가 적당한 수순을 밟고 2개 행정지침을 발표하겠다는 엄포와 다르지 않아 노·정 간 갈등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직무 능력과 성과 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 및 취업규칙 지침 관련 전문가 간담회’에선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등 2개의 가이드라인에 대해 논의한다.

    노동계는 1년 가까이 이러한 정부 노동정책에 반대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대부분 당초의 노동정책에서 조금도 변화된 것 없는 내용을 간담회 발제문으로 내놓았다.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명분쌓기 간담회’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노동계 등 노동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의 간담회 출입을 차단하기도 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가이드라인은 크게 2개지만 쟁점은 3개로 나뉜다. ▲직무성과에 따른 인력관리 즉 통상 일반해고로 불리는 ‘저성과자 해고’와 ▲기존 연공제에서 직무성과에 따라 임금을 달리하는 직무성과급제 ▲노동자의 집단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노동조건을 불이익하게 변경할 수 있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다.

    이 같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의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해고 대란’과 ‘노동조합 무력화’다. 정리해고 제도 도입 이후 발생한 쌍용자동차 대량 해고 사태가 저성과자 해고 제도라는 박근혜 정부의 가이드라인으로 재연될 수 있다는 지적은 이미 수십 차례 나왔다. 더군다나 희망퇴직이라는 명목 하에 현재도 사실상의 해고가 자행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부가 회사의 음성적 해고(희망퇴직)을 양성적으로 합법화하는 법적 근거까지 마련해주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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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청사 앞 규탄대회(사진=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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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진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정책실장은 저소득층 노인을 간병·간호하는 방문간호사 A씨가 저성과자로 해고된 실제 사례를 소개하며 성과 중심의 평가를 통한 해고 등의 비합리성에 대해 지적했다.

    김 정책실장은 “A씨는 공공기관에서 위탁한 용역업체 소속의 간호사다. 업체는 ‘성과’를 위해 양로원이나 경로당에 가길 권했다. 경로당에 가면 한 번에 여러 명의 진료를 볼 수 있어 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로당까지 올 수 있는 분들은 굳이 방문간호사가 필요가 없다. 그래서 A씨는 거동이 어려운 노인들의 집을 직접 찾아갔고 업체는 성과가 낮다는 이유로 저성과자로 낙인찍어 해고했다. 화성시(A씨가 일한 지역)는 평가위원회도 구성하고 동료들도 평가에 결합하는 등 절차를 잘 지켰으나, A씨는 해고됐다. 그리고 부당해고 소송에서 결국 패소했다. 무엇이 진짜 성과인가”라고 말했다.

    김 정책실장은 “우리가 경험하게 될 저성과자 해고, 일반해고라는 것이 무수히 경험해왔던 것이고 경험하게 될 일이기도 하다”며 “기업이 시키는 비합리적인 행위를 하고, 상급자에게 잘 보이려는 행동만 하는 자들만 남고 기업의 비합리적인 문화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자들이 얼마나 쉽게 해고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저성과자 해고제도 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저성과자에 대한 객관적 평가 기준을 제시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 기준 또한 회사가 자의적으로 정하는 것이라 객관적 평가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계속되고 있다. 회사의 자의적 평가가 노조를 향할 것이라는 전망이 허황되지 않다는 것은 현재 성과급제가 이뤄지고 있는 회사가 조합원들에게 내려지는 가혹한 평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정부가 노동자를 바라보는 인식도 문제다. 이날 정부의 전문가 간담회 발제문은 현재의 연공 중심의 인력운영의 한계로 “채용 이후에는 직무능력과 성과보다는 연공에 따른 평가와 보상이 중심을 이루고, 이 결과 공정하고 합리적인 임금체계 결여 및 근로자 능력개발에 소홀”을 지적했다.

    또 “직무능력과 성과에 따른 공정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동기유발이 약화, 생산성 향상 촉진 효과에 한계가 있고 이는 물량 위주의 생산방식을 유발하여 근로시간은 OECD 최장수준이나 생산성은 미국의 절반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회사가 감시하고 압박하지 않으면 노동자의 업무 효율은 높아지지 않는다는 취지다. 능력개발과 낮은 생산성의 밑바닥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완전히 간과한 채 ‘노동자는 쪼지 않으면 일하지 않는다’는 전제만 깔고 있는 셈이다.

    이날 오전 정부의 2개 행정지침과 관련한 전문가 간담회가 열린 정부서울청사 앞에선 노동계의 규탄대회가 열렸다. 민주노총은 노동5법 입법과 가이드라인 저지를 위해 총파업·총력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계획이지만 이날 규탄대회에선 혀를 내둘렀다. 노사정위원회 합의안을 만든 한국노총은 물론 민주노총, 야당까지 노동계 전체와 정치권 일부가 노동개악에 반대하며 재논의를 촉구함에도 개의치 않고 연일 강행 행보에 나선 박근혜 정부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노동개악 중 노동자에게 가장 잔혹한 것이 일반해고와 저성과자 해고”라며 “한해 10만 명 이상이 쫓겨난다. 경영상의 이유가 아니라도 위장하고 회계조작해서 대량 해고한 사례가 바로 쌍용차 사태다. 우리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1년 내내 싸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직무대행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 노동자를 다 죽여야 경제가 산다는 폭력정권이 존재할 수 있나. 이 울분과 분노 참을 수 없다”며 “노동법 학자 70% 반대했고,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설문조사에선 90%가 노동개혁 아니라 ‘노동개악’이라고 하는데 정부는 어떻게 이렇게 계속 노동개혁이라고 우겨댈 수 있나”라고 개탄했다.

    박경득 서울대병원분회 분회장은 임금피크제를 불법 강행한 오병희 병원장 고발 건에 대해 거론하며 “노동청이 며칠 전 이 사건 조사를 연기하겠다고 했다. 노동청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겠나”라며 “불법을 불법 아니게 바꾸자는, 곧 불법도 불법이 아닌 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병원 이사회가 자행한 불법적 임금피크제 도입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 완화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후엔 더 이상 불법이 아니다. 취업규칙 관련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노동자에게 불이익하게 근로조건을 변경할 때 집단적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노동청의 조사 연기 통보는 선제적으로 정부의 노동개악을 실현한 사용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인 셈이다.

    이어 저성과자 해고에 대해서도 “해고가 합법이 된다면 우리가 의료민영화, 복지, 교육을 위한 싸움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며 노조 무력화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김혜진 정책실장은 “가이드라인이라고 하니까 너무 우습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 현장에서 막고 싸우면 되지 않을까 쉽게 생각한다”며 “그런데 노동시간 문제 생각해봐라. 법에는 분명히 52시간인데, 고용노동부가 멋대로 자기들 지침으로 12시간 연장근로에는 8시간 휴일근로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정부 해석 68시간, 근기법 기준 52시간).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 이걸 가지고 새누리당은 법으로 명확히 하자면서 6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늘리자고 한다. 가이드라인은 법원의 판결의 기준이 되고 쌓이고 쌓여서 또 다시 법안이 개악되는 일이 반복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정부의 밀실 간담회와 논의되는 2개 가이드라인에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정의당 노동시장개혁똑바로특별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기어이 그들만의 토론회를 개최하며 어떻게든 정부 지침 발표의 명분을 쌓고자 하는 모습이 볼썽사납기만 하다”고 비판했다.

    특위는 저성과자 해고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해고제한 제도를 형해화하고, 경영상 해고나 희망퇴직 등을 우회하여 사실상 구조조정 합법화 수단으로 악용되기에 충분하다”며 취업규칙과 관련해선 “사용자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시간을 늘리고, 징계나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취업규칙을 변경해도 사업장내에서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노조로 조직되지 않은 90% 넘는 우리 사회 대다수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제거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위는 “정부 지침은 법적 효력이 전혀 없지만 노동현장에서는 강력한 규범력을 갖는다”며 “법률 개정의 곤란을 피하기 위한 탈법적 수단으로서 악용될 2대 지침은 법률의 포괄적인 위임을 제한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위배하는 것이며 헌법 제32조와 근로기준법 입법취지를 근본적으로 몰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근로기준법을 무력화시키는 2대 지침이 갈 곳은 땀 흘려 일하는 노동현장이 아닌 쓰레기통”이라며 “정부는 일방적인 밀실 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2대 지침을 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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