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명이 필요한 시기란?
    [책소개] 『대서사의 서막』『1789』(주명철/여문책)
        2015년 12월 12일 12: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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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이 다시 한번 폭발해야 한다.”
    “우리는 노예상태에서 자유로 아주 빨리 넘어왔다.
    그런데 우리는 자유에서 노예상태로 더 빨리 걸어간다.”
    (루스탈로, 『파리의 혁명』)

    2015년이 차츰 저물어가는 이때, 새삼스럽게도 우리는 ‘자유’의 의미를 다시금 물어야 하는 사태에 직면해 있다. ‘자유’의 대척점에는 ‘부자유’와 ‘억압’, ‘독재’가 자리하고 있다. 곳곳에서 역사의 시곗바늘을 뒤로 돌리려는 무망한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역사를 왜 배우는가? 과거에서 유용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교훈이 오늘의 실수를 막고 미래를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자는 고립되거나 필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장강과도 같은 역사는 어느 한 개인이 이끌어온 것이 아니라 면면히 이어져온 인류의 집단적 의지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는 무수한 혁명들이 있었다. 신석기 혁명(농업혁명), 철기혁명, 산업혁명 외에도 영국 명예혁명, 미국 독립혁명,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중국 문화혁명, 쿠바 혁명, 우리의 4·19혁명, 최근 불거진 아랍권의 혁명 등 저마다 배경과 시기와 발발 원인은 다르지만 인류사에서 혁명은 늘 엄청난 변곡점을 이루어왔다.

    그렇다면 ‘혁명’이란 무엇인가? 원래 혁명을 뜻하는 단어 ‘revolution’[레볼루션]은 ‘천체의 운행’을 뜻했다. 그 자체로 ‘큰 변화’, ‘대변혁’이라는 의미가 담긴 이 말은 사회·정치적 측면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하기에 이르렀다.

    근본적 변화란 무엇인가? 이제까지의 익숙했던 삶이 송두리째, 뿌리부터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삶에 아무런 불만이 없는 세력이라면 혁명은 당연히 불온한 것이 된다. 그러나 다수를 위해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세력의 입장에서는 피의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쟁취해야 할 필연적인 것이 된다. 그러므로 같은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누가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렇다 해도 군사정변이 곧 혁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군사정변은 소수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전체주의를 지향하고 혁명은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자유를 지향한다. 두 가지가 비슷하게 보일 때도 근본 원칙에서 확연히 다른 것이다.”

    한국인 저술 최초의 프랑스 혁명사 대서사시

    한국서양사학회 회장을 지낸 주명철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가 이런 문제의식 아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이라는 대작의 첫 두 권을 선보여 학계와 출판계의 주목을 끈다.

    226년 전인 1789년 7월 14일, 무장한 민중이 바스티유 감옥을 ‘정복’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그동안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논문과 관련서가 나와 있는 역사적 대사건이었다.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저서와 번역서가 나와 있는 편이긴 하지만 이번처럼 혁명이 시작된 1789년부터 테르미도르 반동이 일어난 1794년까지를 무려 10권에 세밀히 다루려는 저작은 아직까지 출판된 적이 없다.

    남의 나라에서 오래전에 일어난 혁명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프랑스 혁명의 교훈은 언제라도 우리에게 유용할뿐더러 그간 우리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해왔다는 것을 자각하고 우리 목소리로 또 우리 시각으로 프랑스 혁명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앙시앵레짐(구제도, 구체제)에 대한 충분한 고찰 없이 막연히 앙시앵레짐은 모두 사라져야 마땅한 모순투성이 체제였으며 루이 16세는 무능하기 짝이 없었고 그의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와 향락으로만 일관한 개념 없는 왕비였다는 식의 무비판적 혹은 몰역사적 선입견을 가진 채 프랑스 혁명을 바라보고 서술해온 그간의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앙시앵레짐 자체에 대한 면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밝힌다.

    더불어 그간 별 문제의식 없이 일본에서 들여온 용어를 그대로 따라 써온 (혐의가 짙은) 학계의 나태한 관행에 일침을 가하면서 이제라도 우리의 관점을 확고히 세우고 학문적 비판의 날을 벼려야 함을 역설한다.

    저자가 특히 비판하는 용어는 ‘삼부회’인데, 이는 일본 학계에서 ‘三部會’라고 이름붙인 것을 우리나라 세계사 교과서 편찬자들이 단순히 한글 음만 따 붙였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비판하며 ‘전국신분회’로 명명한다. 또한 흔히 외국어를 그대로 차용해서 쓰는 ‘망탈리테mentalites’라는 용어도 ‘집단정신자세’라는 용어를 고수하고 있으며 ‘총독’으로 번역하는 ‘gouverneur’[구베르뇌르]는 ‘군장관’이라 해야 더욱 명확하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나아가 독자의 귀에 익숙한 ‘바스티유 함락’이라는 용어보다는 ‘바스티유 정복’이라는 말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정복’의 주체는 행동하는 인간이고 ‘함락’의 주체는 대상이라는 점, 그런데 역사는 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밝힌다(물론 그 시대 사료에서 ‘함락’이라는 뜻으로 쓰는 사례를 소개할 때는 ‘정복’을 고집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자유, 평등, 우애’라는 높은 이상을 내걸고 실천하려는 프랑스 혁명도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과정이었고, 그렇게 해서 겨우 틀을 갖추고 조금씩 실현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 생각하는 기회를 마련하자는 것”이며, “역사는 살면서 기억하고 생각하고 꿈꾸고 행동하는 인간의 기록이다. 인간은 기록을 통해 다른 사람의 경험을 배우고, 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는 동시에 창조적으로 행동한다. 그것이 인류의 발전을 가져왔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라도 프랑스 혁명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2권 도입부에서 그동안 역시 별 비판의식 없이 받아들여온 “프랑스 혁명은 전형적인 시민혁명”이라는 명제에 대해서도 근본부터 되짚어야 함을 역설한다.

    독자 가운데에는 고등학교 시절 “프랑스 혁명은 전형적인 시민혁명”이라고 배운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물론 무조건 그렇다고 외워야 했지 왜 그렇게 정의하는지 설명을 듣지는 못했으리라.

    먼저 ‘전형’이라는 말의 뜻을 생각해보자.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관찰자의 위치와 가설이 달라지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데, 어찌 나라마다 다른 형태로 일어나는 혁명에 전형을 얘기할 수 있을까? 이것은 독특한 역사관을 반영한 말이 분명하다. ‘전형’이라는 말은 같은 부류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본보기라는 뜻인데, 프랑스 혁명이 각 나라마다 다른 맥락에서 일어난 혁명의 특징을 모두 갖추었다고 판단할 근거는 무엇인가? 이 말에 대답하기 어렵다면 이제 ‘전형적인 시민혁명’이라는 말로 넘어가 다시 한번 물어보자. 프랑스 혁명이 시민혁명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본보기인가? 그렇다면 ‘시민혁명’이란 무엇인가?

    유감스럽게도 세계사 교과서에 그 말을 쓴 저자들은 시민혁명의 뜻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시민’을 ‘부르주아’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듯하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주의자)가 말하는 ‘부르주아 혁명’을 우리말로 ‘시민혁명’이라고 간단히 옮겼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마르크스(주의자)가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말할 때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그것을 시민혁명이라고 번역할 때 문제가 발생했다. 부르주아를 시민이라고 옮길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면 우리는 부르주아 혁명과 시민혁명을 구별해야 한다. (중략) 부르주아 혁명을 시민혁명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회적 개념인 부르주아와 정치적 개념인 시민을 혼동한 셈이다.

    이렇듯 저자는 용어 하나하나부터 면밀한 고찰과 세심한 선택을 통해 역사를 서술하는 것의 중요함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앙시앵레짐과 프랑스 혁명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저자는 혁명가들이 앙시앵레짐을 거부한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 되며, 차라리 혁명을 낳고 변형되거나 폐지되거나 먼 훗날 부활하지만 그때의 사정에 맞게 변질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1789년 왕정이 타성에 젖어 변화를 싫어했기 때문에 혁명이 일어났다고 하는 말을 신중하게 되새겨볼 필요가 있으며, 프랑스 혁명은 무엇보다도 경제문제 때문에 일어났다는 점, 왕정이 빚을 많이 지고 더는 돈을 끌어올 곳을 찾지 못한 채 세제개혁을 하려 했지만 특권층의 반발로 실패하면서 혁명이 일어났음을 강조한다.

    한편 그 사실 못지않게 왕정은 그 나름대로 국가를 ‘근대화’하려고 노력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점도 피력한다. 요컨대 역사적 대사건이었던 ‘프랑스 혁명’은 전체를 조망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큰 산과도 같은 것이며 이제라도 우리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읽고 토론하면서 오늘의 반면교사로 삼자는 것이다. 족히 원고지 만 장 이상을 써내려가야 하는 노학자의 대장정이 학계와 출판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어 진지한 인문서, 역사서들이 더욱 많이 나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의 시리즈 이름인 ‘리베르테Liberte’는 프랑스인들이 1789년을 ‘자유의 원년’으로 명명한 데서 따온 것으로 프랑스 혁명의 가장 큰 의의는 무엇보다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자유’를 민중이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사건이었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대서사의 서막

    1권의 주요 내용

    1권은 혁명이 일어나기 전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측면, 이른바 구체제를 집중적으로 살핀 뒤 1789년 혁명의 첫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전국신분회 소집까지 다룬다. 프랑스의 제3왕조였던 위그 카페로부터 절대군주정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루이 14세를 지나 루이 16세가 왕위에 오르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면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오스트리아의 황녀 마리 앙투아네트와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통해서는 그간 막연한 선입견에 가려져 있던 앙투아네트의 또 다른 일면을 소개한다. 정치적으로 또 성적으로 무능한 인물로 그려져온 루이 16세에 대해서도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당시의 경제문제를 책임졌던 재무총감 튀르고와 재무총재 네케르의 상반된 경제정책을 통해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민중에게는 우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는 점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좌우의 정책이 뒤바뀌었다는 점이며(네케르는 곡물의 자유거래를 규제하는 반자유주의 정책을 썼다), 1789년 7월에 그를 해임했다는 소식을 들은 민중이 화가 나서 들고일어났다는 점에서 민중은 외국인인데다 평민 출신이며 더욱이 개신교도였던 네케르를 자기네 편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튀르고의 곡물 자유거래 정책은 도시가 농촌을 착취하는 구조를 바꾸려는 목적을 가졌지만 당장은 곡물가가 치솟아 가난한 사람에게 더욱 고통을 주었기 때문에 ‘밀가루 전쟁’이라는 민중 폭동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튀르고의 반대편에 서서 자유주의를 비판한 네케르의 정책이 돋보였다. 또한 네케르는 1788년에는 전국신분회를 소집하기에 앞서 제3신분 대표의 수를 두 배로 늘리는 데 힘씀으로써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편 당시 혁명을 주도한 다양한 인물들의 면면이 잘 소개되어 있으며, 특히 시에예스 신부의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가 프랑스 사회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도 선명히 드러나 있다. 시에예스 신부에 의하면 “제3신분은 실상 전부인데도 지금까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자각으로부터 제1신분 종교인, 제2신분 귀족과 마찬가지로 제3신분 평민의 대표수를 어떻게 정하는지가 중요한 정치문제로 부상하는 과정과 이후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끝내 제3신분의 요구를 관철하는 과정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어 당시 사회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오늘날의 정치에서도 ‘수의 문제’는 얼마나 중요한가!).

    무엇보다 1권의 특징 중 하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세히 서술된 적 없는 왕의 대관식과 축성식 과정을 생생히 복원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관점으로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행사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거의 전 국민이 독실한 가톨릭교도였던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왕의 신성성을 확인받는 과정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행위예술’이었음이 잘 묘사되어 있다.

    1789

    2권의 주요 내용

    2권은 1789년 전국신분회가 첫 회의를 열 때부터 루이 16세와 가족이 파리에 정착할 때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175년 만에 열린 전국신분회를 통해 루이 16세는 당면한 경제문제의 해결책에 동의를 구하고자 했으나 경제적 고통을 가장 많이 떠안아야 할 제3신분의 요구는 묵살한 채 각 신분 대표들의 자격심사 문제를 먼저 명한다. 이에 제3신분은 세 신분이 함께 자격심사를 하자고 주장했고 특권층은 분열했다.

    절대다수의 귀족이 제3신분과 대화를 거부했지만 종교인은 하위직 성직자들의 영향을 받아 대화를 하자는 축이 거의 3분의 2나 되었다. 그리하여 제3신분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특히 앙시앵레짐 시기에는 특권층만의 전유물이었던 정치활동이 이제 국민에게 낱낱이 공개됨으로써 그 현장을 목격한 시민들의 정치의식이 날로 향상됨에 따라 여론을 형성하여 입법가들을 지지하거나 압박하면서 정치적 바람을 일으키는 과정은 오늘날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읽는 재미를 더한다.

    각 신분 대표들은 곧 국민의회를 결성하고 이는 차후 국회로 발전하게 된다. 이들이 마침내 왕에 맞서 자신들도 신성하다며 면책특권을 결의하는 동안 정치적 구심점은 베르사유가 아닌 파리로 차츰 옮겨간다.

    마침내 무장한 시민군이 악명 높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 죄수들을 풀어줌으로써 혁명이 발발하는 역사적 장면과 함께 혁명의 기운이 지방으로까지 확산되는 과정, 파리에 코뮌이 결성되는 과정, 농촌을 휩쓴 ‘대공포’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1789년 하반기에 이르러 제헌의회의 활동이 구체화하면서 당시 의원들의 헌법 제정 과정이 매우 자세히 소개된다(시공간만 치환하면 거의 오늘날과 다를 바 없는 모습에 놀라게 될 것이다). 더불어 당시 의원들이 여러 날에 걸쳐 오랜 논의 끝에 탄생시킨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비록 가진 자들의 이익을 우선했다는 한계가 있지만 얼마나 인류의 보편적 가치들을 잘 담아낸 바로미터인지를 확연히 깨닫게 된다(실제로 이 인권선언은 이후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우리나라의 제헌헌법이 얼마나 선진적인지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그러나 국회에서 이처럼 중요한 역사적 문건이 탄생되는 동안에도 민중의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으며 왕과 수구세력은 여전히 혁명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왕이 민중의 신임을 받던 네케르를 해임했다는 소식에다 여전히 부족한 곡물과 치솟기만 하는 빵값에 분노한 시민들이 드디어 다시 떨쳐 일어났다.

    파리의 생선장수 아낙들이 주축이 되어 저마다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손에 들고 대포까지 끌고서 왕과 그 가족이 있는 베르사유 궁으로 행진해 간 민중은 마침내 왕을 굴복시켜 파리로 데려오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 편이어야 할 프랑스 수비대 병사들이 빵을 달라는 아낙들에게 총을 겨눌 수 없다며 민중의 편에 선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며, 왕을 만나기 전에는 그토록 왕을 원망하던 민중이 막상 왕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기절을 한다거나 왕이 파리로 순순히 가겠다고 하자 곧바로 “왕 만세!”를 외치는 장면에서는 당시 민중의 순박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절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로써 앙시앵레짐은 과거의 유물로 묻히게 되었다. 이제 ‘제빵사’ 노릇을 하러 파리로 끌려간 루이 16세의 앞날은 어찌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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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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