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힐링캠프'
    과연 진보는 누구를 '힐링'할 수 있나
        2012년 07월 25일 10: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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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 키워드 ‘짜증’

    시대의 키워드를 누군가는 ‘소통’이라고 했다. 불통사회, 어떤 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고, 토론이 상실된 시대라고 했다. 맞다. 대통령은 100회에 가까운 라디오 주례 연설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의 말만 들으라고 강요한다.

    우리는 지금 권력을 가진자들의 목소리만 존재하는 지독한 일방통행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삶은 팍팍하다. 집한칸 마련하기도 벅차고, 삶의 희망인 자식놈 대학 공부 시키는 것도 막막하고, 언제 실업자가 될지 모르는 이 악순환의 고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달라질 기미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시대의 화두는 ‘짜증’과 ‘상실’이다. 몇 년 전부터 출판계의 트랜드는 ‘힐링’과 ‘위로’ 그리고 ‘멘토’였다. 시집의 판매량이 예외없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치인에게도 ‘힐링’을 기대한다.

    힐링캠프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영악한 프로그램이다. 수도 없이 많은 토크쇼가 있었다. 떼로 나오든 혼자 나오든, 혹은 진지하든 그렇지 않든 유명인사를 두고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고 나면 바로 핫 이슈가 되곤 했다.

    시시껄렁한 신변 잡기도 있고, 진지하게 삶의 철학을 논하기도 했다. 무릎팍 도사가 인기 있던 이유는 단 한사람의 유명인사가 나와 1:1로 수다를 떨었고, 상당히 민감한 – 하지만 시청자들이 궁금해 마지 않는 – 질문을 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도대체 이승연이 나와서 강호동과 함께 가슴 실리콘이 터졌다는 루머를 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어디 있단 말인가. 강호동이라는 노련한 진행자는 출연자에게 기존의 언론이나 토크쇼에서 질문하지 않았던 예민한 질문을 던져댔다.

    그래서 무릎팍 도사는 종종 ‘문제적 연예인의 복귀 수순’을 위한 변명의 장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물론 대부분의 토크쇼가 그렇듯 최근 출연 영화나 드라마, 앨범의 홍보의 유력한 수단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당신만 아프지 않아’라는 위로

    그런 계보를 잇고 있는 프로그램이 바로 ‘힐링캠프’다. 자신의 마초성을 숨기지 않으면서, 여전한 인기를 구사하고 있는 연예계의 대선배이며, 약간의 짜증스런 직설적 언어를 장기로 가지고 있는 이경규, ‘어록’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위로’의 아이콘이 된 김제동, 그리고 약간은 뜬금없는 듯한 질문으로 ‘꺽기도’신공을 보여주는 한혜진이 프로그램의 고정 MC다.(토크쇼의 여성 MC 역할에 대해선 여전히 불만이 많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놀러와의 김원희 정도라고나 할까)

    그들의 조합은 출연자에게 다양한 스타일의 질문을 던진다. 출연자들은 딱히 ‘힐링’이 필요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인기도 구가하고 있으며, 차기작 홍보도 하고, 부족할 것 없는 사람들이 출연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인기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내가 동경하는, 그래서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사람도 크든 작든 하나씩의 상처를 안고 살고 있으며, 치유(힐링)이 필요하다는 것 아니었을까.

    고소영이 나와 누군가의 아내로 규정지는 스트레스와 배우로서의 상실에 대해 말했다. 아픈 아이를 두고 있는 김태원의 이야기나 교통사고나 대마초로 맘 고생했던 빅뱅도 나왔다. 골도 못넣는 스트라이커, 한물간 라이언킹이라 놀림받은 이동국도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고, 조금씩 상처를 털어놓았다.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이 편한 장소에서 촬영되는 영민함도 보여줬다. 이효리는 어릴 적 가족이 살았던 이발소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만 팍팍하고 아프게 사는게 아니었구나라는 묘한 위로를 받았을 게다. 사람들은 혼자만 아프지 않다는 것에 오히려 위로 받았던 것이 아닐까.

    ‘직업’에 ‘사연’을 더하다.

    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기존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바꾸는데도 이런 류의 토크쇼는 상당히 위력적이다. 재치있는 대답이나 촌철살인, 위트가 툭툭 튀어나오는 순간이 있다. 재미없는 공부벌레 모범생 교수님 같은 안철수가 복수혈전 이야기를 할 때와 같은 순간은 출연자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SBS 힐링캠프 안철수 편의 장면들

    바로 ‘직업’에 ‘인간’을 더하는 과정이다. 웃기는 개그맨이 아픈 가족사를 말하고, 딱딱한 정치인이 유머를 발휘하고, 진지하기만 그가 농담을 하며 깔깔웃는 모습이 방송되고 나면, 그의 개그나 그의 음악 등 본업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사연이 있는 웃음’이나 ‘사연이 있는 언어’가 되어 스토리가 부여되는 것이다.

    최근 이 프로그램이 뜬(?), 그리고 문제적 프로그램이 된 이유는 유력 대선주자들의 출연일 터 였다.

    1월에는 박근혜 의원과 문재인 의원이 연이어 출연했다. 박근혜 후보에게는 수첩공주나 발끈해라는 별명에 대해 물었다.

    물론 의도된, 그래서 변명의 기회를 주는 질문이겠지만 어떤 언론이 유력 대선 주자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고 또 오랫동안 변명할 기회를 줄 수 있겠는가.

    딱딱한 글 속에 한번 걸러지고 포장되어진 정치인이 아니라 친숙한 연예인과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쉬운 것이 아니다. 유권자(시청자)들 역시 바라던 것이었다. 정치에 스토리를 부여하는 그래서 인물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이 과정이야 말로 강력한 정치 마케팅의 정점이다.

    출연의 순서 때문에 박근혜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비교당할 수 밖에 없었는데, 시청률로만 보면 박근혜의 승이다. (박근혜 편 12.2%, 문재인 편 10.5%) 시청률은 지지율이 아니라 보다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한 후보에 대한 호기심의 차원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문재인은 프로그램에 나와 특전사 경력을 말하기도 했고, 아내와의 로맨스도 말했다. 사람들은 보여지는 정치인의 이면에 관심을 가졌다. 가십을 유포하고 그것이 또 정치인의 ‘스토리’로 연결되는 이미지 메이킹이다.

    결국 우리도 미디어 정치의 시대가 온 것 일까. (그런 차원에서 폐기하기는 했지만 특전사 경력 등을 강조한 ‘대한민국 남자’ 슬로건은 안습의 궁극이었다. 그냥 힐링캠프 출연으로 대중 사이에 회자되는 것에 만족했어야 했다)

    1분에 수십권씩 팔린다는 박근혜의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로 회자되는 안철수 편은 18.7%가 나왔다. 역시 지지율 보다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는 당최 왜 대선에 도전하려는지, 아니 진짜 대선에 나올 것인지 궁금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게다. SNS도 방송 이후까지 그의 어록이 돌아다니고, 그의 철학이나 공약을 미루어 짐작하고 분석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고소영이 출연했을 때 가장 재미있었던 내용은 장동건이 출연하고 있는 <신사의 품격>에 대해 ‘나도 못해본 백허그를…’ 이라며 팔짱끼고 웃지도 않고 티비를 거의 노려보듯 본다는 내용이었는데, 웬지 고소영이 그렇게 본다니 <신사의 품격>이 더 재미있어졌다.

    아마도 문재인편과 안철수편은 박근혜가 팔짱끼고 공부하듯 봤을 꺼라는 상상을 하니 그의 약간은 졸린 듯한 말투마저도 흥미로워져 버렸다.

    이 와중에 가장 서글픈 것은 ‘진보정치’다. 정당정치가 아니라 인물정치로 매몰된다거나 오죽 정치인들이 구리면 정치경험이 없는 그에게 대중의 기대가 이렇게 높을까.

    기존 보수 정당의 실망이 왜 진보정치로 소급되지 않는가 따위의 진지하고 어려운 분석 따위는 집어치우고 과연 대중은 우리를 궁금해 하는가. 우리는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매력적인가. 단 몇 개의 질문을 티비 앞에 앉아 던지면서 급속도로 우울한 나머지 애꿎은 냉장고 더덕주만 비웠다.

    누군가의 말대로 진보정치는 힐링캠프가 아니라 ‘킬링필드’다. 중학생도 안다는 ‘경기동부’ 이야기가 검색어 상위 순위에 오르는 동안 더 이상 우리는 ‘기대’나 ‘대안’이 아닌 ‘지랄’과 ‘육갑’의 상징이 되었다.

    ‘진보’라는 이름은 정당이나 정치인에 상관없이 싸잡아 한덩어리가 되어 욕을 먹고 있다. 억울한 자들도 부지기수일게다.

    우리는 과연 ‘정치’에 ‘사연’(혹은 스토리)를 더할 만한 매력적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가. 한숨은 깊어간다. 정치의 계절, 예능 프로그램에 대선주자들이 나오는 이 마당에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노동자 서민의 삶을 어루만진다고 자부했던 ‘진보’는 과연 누군가를 ‘힐링’할 자격이 있나. 스스로의 힐링조차 해내지 못하는 정당이 누굴 치유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나.

    26일 통합진보당은 이석기, 김재연 두 의원의 제명을 논의 한다고 한다. 26일은 멕시코-한국 올림픽 축구 예선전이 있는 날이다. 런던 올림픽이 코앞이다.

    필자소개
    [체르노빌 후쿠시마 한국]의 저자, 은근 공돌 덕후 기질의 AB형 사회부적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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