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르스 사태에도
    반성 없는 의료민영화
    [민중건강과 사회] 정진엽 장관 취임 후 본색 드러내
        2015년 10월 31일 06: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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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전달체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 43개 상급종합병원의 외래환자 가운데 가벼운 질환자의 비중이 평균 16%로 나타났다. 상급종합병원 외래환자 6명에 1명이 경증환자인 셈이다.

    이처럼 경증 외래진료 환자가 대형병원에 몰리며 전체 건강보험 급여비에서 동네의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3년 45.5%에서 2014년 27.5%로 급락했다. 동네 개원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내과 기피 현상으로 이어지며 인력 부족으로 업무가 과중해진 내과 전공의들이 잇따라 파업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 이후 부실한 국가방역체계에 대한 지적과 붕괴된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질타가 잇따랐다. 이에 대한 책임으로 보건복지부 장관 교체 후 새로 취임한 정진엽 장관은 의료전달체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며 일차의료 기능 강화를 당면 과제 중 하나로 내세웠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건복지부의 행보를 보면, 이는 의료공급자 및 의료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눈속임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차등수가제 폐지, 납득하기 어렵다

    의원급 차등수가제가 올해 12월에 폐지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이를 의결했다. 차등수가제는 의사 1인당 1일 진찰건수가 75건을 초과할 경우 그에 비례해 진찰료를 차감 지급하는 제도다. 2001년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를 위한 한시 조치로 도입된 후 현재까지 폐지되지 않고 유지돼 왔다.

    차등수가제 도입 취지가 특정 의료기관에의 환자 쏠림현상 방지와 적정 진료시간 확보를 통한 의료 질 제고였지만 그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판단 하에 폐지를 결정했다고 보건복지부는 전했다. 적정 진료시간 확보는 동네의원급보단 대형병원급에 더 필요성이 크기 때문에 내년 9월부터 병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한 ‘의료질평가지원금’ 평가 지표에 평균진찰시간 등을 도입하여 그 결과에 따라 차등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환영하는 입장이다. 그간 의료계와 국회 등은 제도 도입 목적(건강보험 재정 흑자 등)이 이미 달성됐고 ▲적정 진료시간 확보 효과가 없으며 ▲진료과별 특성 고려가 없어 일부 과목에만 차감이 집중되고 ▲병원급 이외에 의원급에만 적용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지속적으로 폐지를 촉구해왔다.

    그러나 차등수가제 폐지에 대한 논리는 타당성이 떨어진다. 차등수가제는 적정 진료시간 확보하기 위한 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한 공급자 통제의 의의를 지닌다. 만약 이 제도의 효과가 없다면 그 목적에 맞게 수정 보완해하는 것이 마땅하다.

    공급자의 의료제공 행태에 대한 보완적인 통제 대책은 고민하지 않고 기존 제도를 단순히 폐지하는 것은 공급자에 대한 통제기전을 포기한 채 수입만 보장해주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공급자의 이해관계만을 고려한 조치일 뿐이다. 의원급에만 적용돼 형평성에 어긋난다면 차등수가제를 병원급으로 확대 강화 적용해야 마땅하다.

    이 제도의 폐지는 일차의료 활성화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일차의료 강화는 단순히 일차의료의 수입을 보상해줌으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병원-의원 간 경쟁하는 기존의 구도와 이미 포화상태인 도심지역에 계속하여 의원이 과밀해지는 문제가 지속되는 한 일차의료의 하락세는 계속될 것이다.

    의료기기 자본의 이해만 대변하는 보건복지부

    장관 교체 이후 박근혜 정부의 의료정책 방향이 더욱 분명히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원격의료다. 정 장관은 “원격의료는 공공의료를 수행하는 유용한 수단이며, 의료세계화에 대비해 필요하다”,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목적으로 원격의료가 필요하다”라고 말하며 취임 전부터 현재까지 초지일관으로 원격의료 추진에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꾸준히 문제제기 된 바 있듯이 원격의료는 비용-효과성, 안전성, 개인질병정보 유출의 위험성 모두에서 낙제점을 받았고, 그 시범사업 진행과 평가 과정이 논란 투성인 정책이다. 1, 2차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대부분 대·중소 도시지역의 의료기관에서 경증이나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의료접근성이 취약한 지역에 정말 필요한 건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원격모니터링 서비스가 아니라 응급의료와 분만의료 등의 필수의료서비스이다.

    정부는 원격의료가 의료취약지 주민을 대상으로 한 보완책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시범사업 행태를 보면 오히려 대도시 지역에서 원격모니터링 기반의 건강관리 시장을 형성하려는 목적이 명백해 보인다. 이런 방식의 원격의료는 장기적으로 지역의 일차의료 몰락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에서 일차의료 강화 정책과 모순적이다. 차등수가제 폐지마저도 일차의료 강화보다는 원격의료 추진을 위해 동네의원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포석처럼 보인다.

    원격의료에 대한 수많은 문제점과 논란, 근거 법조차 완비되지 않은 상황에도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원격의료 제도 기반 구축 예산에 올해 보다 3배 증가한 12억 원을 배정했다. 이는 정진엽 장관의 개인적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

    8월 임명장을 받고 있는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정진엽 장관은 분당서울대병원장 재임 시절 의료-IT 융합 병원정보시스템 구축을 통해 중동 지역에 의료수출을 적극 추진해 온 의료산업화의 대표주자이다. ‘원격 진료 서비스 시스템 및 방법’ 특허까지 등록·보유하고 있다. 원격의료·의료수출 등 여태까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왔던 의료민영화 정책 방향에 꼭 맞는 맞춤형 인사인 셈이다.

    게다가 그는 의료기기 상생포럼 총괄운영위원장을 지낼 만큼 첨단의료기기산업 관계자들과 밀접한 인물이다. 원격의료 관련 정책이 의료기기자본의 이해를 대변할 것이라는 의혹이 더욱 강하게 제기되는 이유이다.

    정 장관의 의료기기자본에 대한 특혜는 이게 끝이 아니다. 지난 9월 21일 보건복지부는 임상시험을 거쳐 식약처 품목허가를 받은 의료기기의 경우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지 않고 먼저 환자에게 사용한 다음, 1년 후에 신의료기술평가를 받게 하는 내용을 담은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하였다. 지난 9월에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신의료기술 사후 평가안의 문제점에 대해 질타가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아무런 해명이나 개선 없이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시행령 공포한 것이다. 이는 막무가내 행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며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의료기기자본의 이윤을 담보해주려는 속셈임이 명백하다.

    기만적 행태를 중단하라

    우리는 메르스 사태를 통해 부실한 국가방역체계와 의료전달체계의 붕괴, 무엇보다도 공공의료의 공백을 실감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제2의 메르스 사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병원협회장 출신인 성상철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정진엽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기재부 2차관인 방문규를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임명했다.

    메르스 사태를 통해 드러난 취약한 한국의료의 공공성을 개선하긴 커녕 병원, 의료기기, 제약 등 재벌 의료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책을 추진하려는 의지를 명확히 내비추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하반기 의료민영화 정책은 이뿐만이 아니다. 제주도에 제1호 영리병원을 허가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영리병원 설립의 우회로를 만들어주는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을 추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전달체계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한편에서는 차등수가제 폐지, 원격의료 및 신의료기술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기만적 행태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의료전달체계를 진정으로 개선하려면 병원과 의료관련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책이 아니라 공공병원 확대, 병상 총량제 등의 거시적 정책과 함께 주말 외래 진료 확대 등 대형병원의 무분별한 돈벌이 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규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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