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납치되어 즐거운 까닭
    [그림책 이야기] 『우리 가족 납치 사건』 (김고은 글 그림 / 책읽는곰)
        2015년 09월 10일 10: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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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빠를 찾아보세요!

    오늘 아침 7시 30분. 우리 아빠 전일만 씨는 일해역 3-1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대요.
    -본문 중에서

    첫 장면의 우측에는 지하철이 승강장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하철 지붕에는 위에 옮겨 놓은 텍스트가 적혀 있지요. 아마도 그림을 보지 못 하고 텍스트만 읽고 있는 분들은 이 장면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상상도 못 할 겁니다.

    이 장면의 왼편에는 승강장을 가득 메우고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틈 하나 없이 다닥다닥 줄지어 선 사람들의 표정이 저마다 다릅니다. 표정만 다른 게 아니라 그렇게 선 채로 서로 다른 일을 합니다. 누군가는 코를 골며 자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높이 들고 봅니다. 누군가는 책을 보며 눈물을 짓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빠 전일만 씨를 단번에 찾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족 납치

    우리 가족이 납치됐다!

    그런데 아빠는 지하철에 타질 못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떠밀려 승강장에 나자빠지고 말았거든요.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빠 가방이 입을 쩍 벌리더니 아빠를 꿀꺽 삼켰어요. 그리고는 어디론가 달려가 버렸습니다.

    게다가 아빠만 납치된 게 아니었습니다. 출근하던 우리 엄마 나성실도, 학교에서 공부하던 나 전진해도 어디론가 납치되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왜 우리 가족을 모두 납치한 걸까요?

    무시무시한 제목의 그림책

    우리 가족 납치 사건? 과연 김고은 작가는 제정신으로 이런 제목을 지었을까요? (농담입니다!) 그림책이라는 예술장르의 특수성 때문이라도 다른 작가라면 이렇게 무시무시한 제목은 좀 망설였을 겁니다.

    그런데 김고은 작가는 아주 당당하게 ‘우리 가족 납치 사건’이라는, 그림책 역사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제목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제목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듯이,『우리 가족 납치 사건』은 ‘김고은’ 표 코미디의 새로운 버전입니다.

    어떻게 새롭냐고요? 이제 김고은 작가한테는 개연성 같은 건 기대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 황당하고 당당하게 유쾌하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세상에! 아빠 가방이 아빠를 납치해도 되는 겁니까? 게다가 해변으로 납치된 아빠가 그렇게 좋아해도 되는 겁니까?

    김고은 작가는 아주 뻔뻔하게 그리고 아주 신나게 우리 가족이 납치되는 과정을 척척 지어내서 보여줍니다. 『우리 가족 납치 사건』은 하나도 무시무시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족 납치 사건』은 너무 웃겨서 독자들로 하여금 배꼽을 잡고 떼굴떼굴 구르게 만듭니다.

    아빠는 왜 해변으로 납치되었을까?

    물론 궁금한 점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하나씩 차근차근 생각해 봅니다. 우선 아빠 가방이 아빠를 납치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혹시 평소에 아빠가 가방에게 부탁을 한 것은 아닐까요? 사실 아빠는 일하러 가기가 싫어도 가장이라 회사에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가방에게 언젠가 자기를 납치해 달라고 매일매일 기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가방은 아빠를 왜 바닷가로 데려갔을까요? 이것 역시 아빠가 늘 가고 싶었던 곳이 바로 바다였을지 모릅니다. 회사 가지 말고 바다에 가서 수영하고 싶다고 속으로 늘 주문을 걸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추측한 내용이 맞는다면, 납치된 아빠가 바다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것도 자연스럽게 설명이 됩니다. 아빠는 납치된 것이 아니라 평소에 진심으로 바라던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바다에서 신나게 놀 수밖에 없습니다!

    위험해 보이지만 정말 중요한 생각

    출근하던 아빠엄마가 바닷가로 납치됩니다. 교실에서 공부하던 나도 같은 바닷가로 납치됩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바다에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가족 납치 사건』의 기둥 줄거리입니다.

    아빠 엄마가 회사에 가지 않고 나도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 가족은 행복합니다. 『우리 가족 납치 사건』은 어떤 사람에게는 굉장히 위험해 보이는 작품입니다. 어른들이 회사에 안 가고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가는 세상을 여러분은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 김고은 작가의 천재성이 있습니다. 아무도 하지 못하는 상상을 해낸 것입니다. 김고은 작가는 회사에 가지 않는 아빠 엄마와 학교에 가지 않는 어린이를 상상해냄으로써 엄청나게 큰 물음표를 엄청나게 웃기게 독자에게 던집니다.

    여러분은 왜 회사에 다닙니까? 여러분은 왜 학교에 다닙니까? 모두 사랑하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런데 회사와 학교가 오히려 가족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그래도 계속 회사와 학교에 다녀야할까요? 『우리 가족 납치 사건』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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