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국경 허무는
난민들의 용기와 저항
9월 12일 난민 위한 유럽행동의 날
    2015년 09월 07일 05: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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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터키 해안에서 죽은 세 살배기 쿠르디는 지난 14년 동안 이주 과정에서 사고나 범죄로 죽은 14만 명의 이주민 중 한 명이 됐다. 또 유럽 이주를 시도하다가 지중해에서 죽어가는 하루 10명 중 한 명이 됐다.

이들은 시리아같은 곳에 남아서 제국주의 폭격으로 죽거나 독재자의 학살로 죽거나, 굶어죽어야 하는 처지를 거부했다. 또 누군가를 죽이거나 아니면 죽음을 당해야 하는 운명을 거부했다. 하지만 희망을 찾아나선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국경문을 굳게 잠그고, 장벽을 높에 두른 강대국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희망의 땅을 밟지도 못하고 바다에 빠져 죽고 사막에서 목말라 죽어 갔다. 최근 오스트리아에서는 국경을 넘던 트럭 안에서 질식사한 71명의 난민 시신이 겹겹이 쌓인 채 발견되기도 했다. 그 좁고 숨막히는 곳에서 절규하며 죽어가는 순간에 그들의 머리 속에서 사라져 갔을 꿈을 생각해보자.

난민 모습1

기차에 오르려는 난민들의 절규의 몸짓(방송화면)

지난 몇 년간 유럽 각국 정부는 울타리와 철조망을 더 높고 길게 치고, 난민을 가로막는 법과 제도를 강화해 왔다. 예컨대 헝가리는 175킬로미터에 달하는 난민 차단 철조망 장벽을 설치했다. 그러면서 죽음은 더 늘어났다. 난민들은 ‘요새화’된 유럽의 문턱 바로 앞에서 쿠르디처럼 죽어갔다.

특히 지중해에서 유럽연합은 기존의 수색 구조 작전을 군사적 차단 작전으로 변경했다. 구조 활동을 중단하고 예산도 줄이고 ‘프론텍스’라는 국경수비대는 해상 밀입국 단속 활동을 강화했다. ‘바다를 건너는 게 어렵고 위험하다는 것이 알려지면 이주가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여권과 비자가 없는 난민들은 위험한 바닷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지중해를 건너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자 당연히 브로커들은 난민들에게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기를 팔아서라도 돈을 마련해 위험한 보트를 타려는 난민은 지난 1년 사이에 크게 늘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살고 있던 시리아, 리비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이 계속 생지옥이 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지옥에서 자기 아이들이라도 벗어나게 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서방언론들이 말하듯이 단지 ISIS때문이 아니다! 진정한 원인은 중동지역의 석유를 차지하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미국과 유럽 강대국들의 시도에 있었다. 저들은 이를 위해 침략과 폭격, 점령을 밥 먹듯이 해 왔고, 독재자를 후원하고 무장반군들을 육성해 왔다. 이라크에서 ISIS가 탄생한 것도 바로 이 과정에서였다.

2011년 ‘아랍의 봄’은 바로 이러한 제국주의와 독재자들에 대한 민중의 도전이었고, 독재정권들이 줄줄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제국주의자들은 시리아 내전에서 시작해 이집트 반혁명을 거치며 이것을 파괴해 버렸다. 저들은 ‘민중 : 독재자’의 대립을 ‘문명 : 이슬람주의’의 대립으로 바꿔치기해 버렸다.

아사드의 학정에 맞서 시작된 시리아 혁명도 서방 강대국, 친미 반군, 독재자 아사드의 아귀다툼 속에 사라져 버렸다. 강대국들은 ‘독재자 아사드를 견제하기 위해’, 또는 ‘ISIS를 제거하기 위해’라는 이름으로 시리아를 폭격해 왔다.

이처럼 미국, 유럽, 러시아, 아랍 독재자들이 바로 중동북 아프리카에서 전쟁, 빈곤, 종파 분쟁을 만들어낸, 그래서 수천만 명의 난민을 만들어낸 주범이다. 전 세계 난민 6천 만 명 중에 2천만 명이 지난 2년간 이 지역에서 발생했다.

저들은 특히 시리아를 ‘감히 혁명을 꿈꾸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범케이스로 만드는 데 일치단결했다. 저들은 ‘아랍의 봄’을 악몽으로 바꿔버린 현 상황에 만족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에 가장 많은 살상무기를 보낸 8개 나라가 가장 적은 수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해 왔다.

하지만 지금 역사에 남을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난민들 수천 명이 마케도니아에서 국경수비대를 뚫고 철조망을 넘어섰다. 그리스 섬에서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고, 오스트리아에서 수용소의 담장을 무너뜨렸다. 헝가리에서 철로를 점거하고 독일로 도보 행진을 시작했다.

자식을 목마 태운 부모, 동생 유모차를 미는 아이, 목발로 걷는 발목 없는 청년들의 행진이 국경수비대를 무너뜨리고 유럽연합 지배자들을 뒤흔들고 있다. 미국의 사회주의자 조나선 닐은 이렇게 말했다.

“난민 위기는 비극적이지만 새롭고 영웅적이고 중요한 순간이다. 이들 난민들은 최초로 집단적이고 대중적으로 함께 국경을 넘고 있다. 그래서 유럽 정부들이 그 수천 명을 쏘아죽일 수 없도록 효과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들은 어둠 속에서 겁먹은 작은 무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그리스, 독일, 마케도니아, 헝가리, 체코에서 놀라운 고결함이 등장하고 있다. 어느 한 조직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말이다. 4년간 막대한 대가를 치르며 아사드의 잔악한 학대에 맞서던 시리아 민중의 정신이 세계로 퍼지고 있다. 침략당하고 폭격당하고 총살당했던 이라크인들과 아프간인들이 그 길에 함께하고 있다. 그들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냉정하기로 유명한 독일 총리 메르켈과 유럽 각국 정부가 난민에 대한 유화책을 들고 나오게 한 진정한 힘은 여기서 나왔다. 물론 저들은 유럽에 들어 온 40여만 명의 난민 중에 10~15만 명만을 일시적으로 받겠다는 것이다. 여전히 ‘합법적 난민’과 ‘불법 이주민’을 구분하고 있다. 무슬림이 아니라 기독교도만 받겠다는 정부도 있다.

가난한 이주민과 난민들이 ‘무슬림 테러리스트’라며 인종주의를 부추겨 온 게 서방의 지배자들이었다. 지금도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는 멕시코 이주민들을 강간범으로 묘사하고 있다. 독일에서 네오나치들이 난민 거주지에 방화하고, 기차역에 누워있는 난민 아이의 몸 위에 소변을 보는 행위까지 저지른 것은 그 결과였다.

심지어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일부 지배자들이 ‘시리아 폭격’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난민을 구하기 위해서 뭐라도 하라’고 하자 흉측하고 충격적인 답변을 내놓는 것이다. 침공과 폭격이 낳은 비극을 보고도, 이런 식이니 정말 미쳤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공개 참수하는 ISIS를 두고 볼 수는 없다’고? 그러면 지난해에만 ‘반정부’, ‘이교도’ 등의 이유로 175명을 공개 참수한 친미·친서방 국가 사우디아라비아는 왜 그냥 두는가?

2011년에 서방이 리비아에서 카다피를 제거한 후 리비아는 1000개의 무장반군들이 아귀다툼을 하는 지옥으로 변했고 난민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쿠르디를 죽인 범인은 단지 아사드와 ISIS만이 아니라 바로 서방 지배자들이며, 중동 민중을 죽음으로 내몬 범죄자 중에 하나가 다른 하나를 폭격하는 것은 결코 대안이 아니다. 그것은 중동 민중을 더 큰 피바다로 몰아갈 뿐이다.

독재자와 위선적인 지배자들은 오로지 아래로부터 민중의 투쟁과 국제적 연대 투쟁을 통해서만 막아낼 수 있다. 그 점에서 유럽의 수많은 평범한 민중들이 난민을 돕기 위해 나서고 있는 것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지지금, 먹거리, 잠자리 제공 등이 눈덩이처럼 모이고 있고 축구장에서도 팬클럽들은 ‘난민 환영’ 배너를 내걸고 있다.

국경을 넘어 온 난민들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아이의 팔에 인형을 안겨주는 유럽 민중들의 모습을 보면 눈가가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다. 시리아 난민을 거의 수용하지 않고 있고, 난민 신청자 중에 겨우 3%만 받아들이는 한국 정부가 더욱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유럽에서 난민을 환영하는 모든 사람들은 ‘9월 12일 난민을 위한 유럽 행동의 날’에 총집결할 것이라고 한다. 난민들의 불굴의 의지와 이러한 국제적인 연대가 결합돼, 지금 열린 국경의 문이 완전히 활짝 열리고 영원히 닫히지 않게 되길 응원하고 염원한다.

필자소개
변혁재장전 rreload.tistory.com 준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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