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괭이부리말 문화체험관
    지자체 치적용 생색내기
    "가난의 상품화" 비판 쏟아져
        2015년 07월 13일 03: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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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동구청이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인 인천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쪽방촌에 ‘옛 문화 체험관’을 설치할 예정인 가운데, ‘가난의 상품화’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인천 동구청 측은 지역 발전을 위해 내놓은 계획이라고 해명했지만, 주민들과의 사전 공청회 등 어떠한 의견 수렴과정도 없이 일방 강행하고 있어 지자체장 치적을 위한 사업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인천 동구청은 지난달 15일 구청 홈페이지 내 ‘전자구보’를 통해 「인천광역시 동구 옛 생활 체험관 설치 및 운영 조례」를 입법예고했다. 옛 사람들의 생활공간을 재현해 일반 시민의 체험 및 관람의 장소로 활용하겠다는 것이 입법 취지다.

    이 지역 주민의 편의시설인 사랑방이라는 곳을 관광객을 위한 숙박 시설로 용도변경한다. 주민이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사랑방은 관광객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내부에 화장실을 설치하고 주방 등을 리모델링한다. 시설에는 옛 사진, 요강, 흑백 텔레비전 등의 소품을 설치해 관광객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시설사용료는 1박당 1만원이다. 자세한 사용신청서도 등도 나와 있다.

    그러면서 동구청은 16일까지 이에 대한 의견서를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밝혔다. 구보를 내고 다음날 바로 찬반 의견을 내라는 것이다. 공청회 계획에 있어선 아예 ‘개최계획 없음’이라고 못 박았다. 구청은 사실상 주민의 의견을 들을 생각이 없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업에 대한 상세한 계획은 적시돼 있지만 사업을 통해 마을 주민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사업으로 인해 주민이 겪을 수 있는 불편함은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등 부작용에 대한 대책에 전혀 나와 있지 않다. 지역 사업에 지역 주민만 쏙 빠진 셈이다.

    인천 동구청 측은 전자구보에 홍보를 했지만 의견을 제출하는 주민이 없었고, 주민협의체에서도 이견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컴퓨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지 못하는 고연령층이 대부분인데다가 젊은 층이라도 일부러 동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구보를 찾아서 읽어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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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괭이부리마을의 모습(사진=인천도시공사)

    이 마을의 한 주민은 13일 오전 S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체험관 관련해서는 주민들을 찾아와 이야기를 하거나 또는 설명회를 한 게 전혀 없었다. ‘인터넷에 구보에 이 조례 안을 올려놨다, 이의가 있었으면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되는 거 아니었냐’라고 하는데 실제로 여기 거주하고 계시는 분들의 연령대가 고령이다. 그리고 인터넷 또는 컴퓨터와 친한 세대는 아니다. 그런데도 (인천 동구청 측은) 알릴 만큼 알렸다는 태도로 그런 답변을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옛 생활 체험관이라는 것을 지어서 마을 주민들에게 큰 상처를 남기는 잘못된 행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가난한 마을에 산다는 이유로 주민들의 고단한 삶이 구경거리가 되는 꼴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구청에서는 이런 계획이 철회될 수 있도록 하고 분명히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김중미 작가 또한 이날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동구청에선 주민 협의체에서 논의를 했다고 하는데, 주민 협의체에 들어가 있는 분들은 전혀 듣지를 못했다(고 한다)”며 주민협의체에서 논의했다는 동구청의 주장을 반박했다.

    옛 문화 체험을 빙자해 가난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괭이부리말 마을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실제로 이 마을의 가난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온다는 데에 있다. 이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는 주민도 더러 있다.

    김 작가는 “여기가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 진 곳이라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예전 판자촌의 모습이 곳곳에 남아 있어서 사진기를 들고 오시는 분들이 간혹 있다”며 “지난 어린이날에는 관광버스 4대가 마을에 들어와서 관광객들이 동네 골목을 다니면서 하는 말이 어린 아이들에게 ‘너희들도 공부 못하면 이렇게 살게 된다.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라’라고 했다는 거다. 그러니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이 그런 소리를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겠나”라고 했다.

    지역에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동구청의 주장에 대해 김 작가는 지자체장이 치적을 쌓기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강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박에 만 원이다. 그리고 저희 마을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런 곳에 한 곳을 체험관으로 만드는 것이니까 큰 시설도 아니다. 하루에 한 가족이 와봤자 얼마가 되겠나. 주민들에게 어떤 도움도 않는다”며 “그런데 이게 지자체장에게는 ‘나는 여기를 이렇게 바꿨다’라는 치적이 될 수는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인천 동구청 관광개발과 이경철 과장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이 사업과 관련해서는 지난 6월 중에 입법 예고를 통해서 의견을 들었는데 그 당시에는 들어온 의견은 없었다”고 말했다.

    공청회 등 주민과 대면해 설명하는 자리가 있었냐는 질문에 이 과장은 “그 지역에 2014년도 1월부터 주민협의체가 구성돼 있었다. 그동안에 주민협의체를 통해서 여러 차례 활용 방안을 논의한 바 있는데 그 당시에 구체적인 활용 계획이 없어서 저희가 옛 생활 체험관을 계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민협의체가 분명하게 체험관에 대한 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는 물음에 그는 “저희가 입법 예고나 과거 도시재생과에서 매달 한 번씩 그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주민협의체가 있는데, 그 지역에서 이 사안에 대해서 여러 차례 논의한 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답을 되풀이했다.

    그럼에도 주민협의체는 물론 다수의 주민도 구청의 계획에 대해 몰랐다 지적에 “그것은 일부 주민들께서 개별적으로 알려드리지 못한 부분을 두고 얘기하시는 것 같다”며 말끝을 흐렸다.

    이어 “저희가 현재 만석동의 주민들께서 가난을 상품으로 하는 이유로 체험관 운영에 반대하고 계시지만 향후 이 사업을 통해서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통해서 아마 여론을 수렴해 보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민의 반대가 크다면 사업을 철회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이 과장은 “일단 오늘 동구 의회에서 조례 심사 결과에 따라서 향후 사업 진행 여부가 결정되겠지만 저희 동구는 각종 개발 사업이 지연되면서 늘어나는 공 폐가를 그대로 방치해 둘 수만은 없다”며 “공 폐가를 활용해서 지역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고 동네를 떠나신 분들이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더 좋은 방안이 있다면 얼마든지 수정이나 보안은 가능하다고 본다”며 사업 철회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동구청이 ‘비밀리에’ 발표한 옛 ‘생활 체험관 설치 및 운영 조례(안)’은 이날 의회에서 조례 심가를 거쳐 오는 17일 의회 본회의 심의에서 통과되면 다음 달부터 운영을 시작한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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