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숙농성 1000일 지났지만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족쇄 여전
    보건복지부, 법개정안 비용 이유로 반대
        2015년 05월 18일 03: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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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은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며 광화문역 노숙 농성이 시작된 지 1001째 되는 날이다. 광화문역 지하 농성장에는 이 제도로 인해 목숨을 잃은 11명의 영정 사진이 놓여있다. 농성 시작 후 세상을 등진 이들도 수 명이다.

    하지만 1000일 전과 현재를 비교해보면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행정편의를 위해 장애인을 등급으로 나누는 장애등급제, 장애로 인한 빈곤의 부담을 가족 구성원에게만 떠넘기는 부양의무제는 장애인과 그의 가족들을 벼랑 끝으로 떠민다. 하지만 정부는 부족한 예산을 운운하며 많은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공동행동)’은 18일 오전 11시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며, 조만간 국무총리 면담을 요청할 것임을 밝혔다.

    장애등급제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1000일 농성 기자회견(사진=유하라)

    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회견이 끝난 후 장애계는 광화문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서서 이 제도의 폐지를 촉구하는 선전전을 벌였다. 길을 건너는 시민들과 이로 인해 잠시 정차해야 했던 운전자들은 성을 내기도 했다. 왜 당신들의 요구 때문에 타인에게 불편을 주냐는 것이 항의의 이유였다.

    이들이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광화문역 지하에서 노숙농성을 하며, 횡단보도에 서서 잠시 비장애인들을 막아서며,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호소하는 이유는 뭘까.

    2010년 말, 장애인 자녀를 둔 한 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자녀가 수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절망해서 목숨을 끊었다. 2012년 10월 26일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던 김주영 씨는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후 원인 불명의 화재 사고로 사망했다.

    2012년 10월 29일 부모님이 있다는 이유로 활동보조와 장애아동돌봄체계를 받지 못한 박지우·지훈 남매가 화재로 목숨을 잃었고, 2014년 4월 17일엔 장애등급제로 인해 활동보조를 받지 못한 송국현 씨 또한 원인불명의 화재로 숨졌다. 같은 해 5월 1일, 오지석 씨는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후 호흡기가 빠져 목숨을 잃었다.

    장애계는 이 외에도 수많은 장애인 사망사건을 단순 사고나 자살이 아닌, 사회적 타살로 보고 있다. 제도가 폐지되고 바뀌기만 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 13살, 11살이었던 박지우·박지훈 남매의 죽음은 이들이 어린 나이였기에 더욱 안타까운 사례다. 이 남매의 부모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신청하려고 했지만 서비스를 신청할 경우 장애등급 재판정을 받아야 하고, 등급재판정 결과 오히려 등급이 하락해 복지가 축소될 수 있다는 통지서를 받고 서비스 신청을 포기했다. 전형적인 장애등급제의 폐해다.

    부양의무제가 진작에 폐지됐다면 남매 부모 중 한 사람은 남매를 돌볼 수 있었을 것이고, 화재로 인한 사망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광화문공동행동 명희 활동가는 남매의 죽음에 대해 “장애와 빈곤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전가시켜버리고 자기책임을 망각한 국가폭력의 결과”라며 “장애등급제라는 악법이 없었다면 장애남매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이용하고, 활동보조인의 도움으로 목숨을 지켰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건복지부, 비용 운운하며 제도 폐지 거부

    장애계는 고 김주영 씨가 사망한 후 최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를 하루 24시간 보장해줄 것을 요구했고 2013년 보건복지부는 최중증 독거장애인에게 월 최대 360시간 지원, 활동보조 신청 자격을 완화했다. 하지만 장애등급제로 인해 이 제도를 이용하기 어려운 장애인이 더 많았고, 무엇보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면 부양의무제에 따라 일정 수준의 본인 부담금을 내야만 했다.

    지난해 11월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이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고 장애인 활동지원 신청자격을 장애등급과 관련없이 전체로 확대하는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복지부는 예산을 이유로 이 법안을 강하게 반대했다.

    최근 들어 몇 개의 지자체와 서울시에선 최중증장애인에게 24시간 활동지원 제공을 시범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나섰다. 이 같은 제도를 시행할 경우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라 지자체 등은 보건복지부와 협의해야 하는데 복지부는 이를 불수용 처리했다. 비용 문제 때문이다. 사회보장기본법은 ‘박근혜 복지법’으로도 불리며,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장애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제 기준 대폭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은 바 있다.

    장애2

    ‘1000+ 95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에 그린라이트를!’

    이날 공동행동은 ‘1000일의 노숙농성을 딛고 이제는 1000+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에 그린라이트를!’이라는 새로운 구호를 내세웠다.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도 이어졌다.

    연대 발언에 나선 녹색당 이유진 공동운영위원장은 “무려 1000일이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1000일 노숙 농성이 진행됐고, 그 시간 동안 11개 영정이 농성장에 올라와 있는 것을 봤다. 제도가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확인 수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이 정부와 우리 사회에 대해 한탄스럽고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노동당 서울시당 김상철 위원장은 “최근 국민연금 논란이 있다. 우리가 연금 얘기하는 것은, 사회보장 얘기하는 것은 사람답게 살기 위한 조건을 갖추기 위한 것”이라며 “그런데 그것을 자꾸 비용을 맞춘다. 비용문제만 얘기할 거면 이게 사람의 사회인가. 약육강식의 동물의 사회인가”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단언컨대 1000일 플러스 이후의 투쟁은 우리의 현재 필요에 맞춰서 미래를 바꾸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현재 이런저런 조건 때문에 장애인들이 인간 이하의 삶을 방치하는 것은 안 된다. 현재의 필요를 바탕으로 미래를 바꾸는 투쟁을 노동당도 함께 하겠다“고 강조했다.

    노동자, 빈민, 시민사회계 등 모든 계층이 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하나로 모으는 연대 투쟁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계급정당추진위 조희주 대표는 “1000일 이상 싸우는데 변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가 구호로만 남아있다”며 “실제화 하기 위해서 장애인만을 위한 투쟁으론 되지 않는다. 우리 민중들이 어떻게 연대할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장애인 투쟁이 우리 모두의 투쟁이 되도록 노동자, 빈민, 청년, 학생 등소외된 계층이 연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활동가는 “평생 연락도 안하는 가족들이 있다는 이유로, 법이 정하고 있는 최소한의 지원도 권리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이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며 “그런데 이사회는 등급을 나눠서 가난과 장애를 증명하라고 한다. 복지나 권리는 증명할 것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이유로 그대로 보장받고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정부는 그것들을 소득으로 증명하라고 한다. 인권을 증명할 것이 아니라, 인권침해를 증명해야 한다”며 “가난과 장애를 낙인인양 증명하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싸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장애계는 이날부터 노숙농성 3주년이 되는 8월 21일까지 95일간,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출퇴근 시간 횡단보도에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는 선전전을 진행할 계획이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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