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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담론] 잃어버린 세대
        2015년 05월 18일 09: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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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년대 한국은 매우 농업적이고 전근대적인 사회였다. 70년대 초반이 되면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집단이 등장한다. 대도시의 대학생들이다. 문화적으로 보면 김민기나 양희은 아니면 윤형주나 김세환 등이 이들을 대표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해찬이나 정동영 등이 이들 세대이다.

    이들은 72년 시작된 유신체제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러나 70년대 대학생은 20~24세 인구의 7% 정도에 불과했다. 여기에 김대중. 김영삼 등 유력 정치인, 재야인사, 종교계 등을 결합해도 70년대 관점에서 보면 유신체제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학생들 중 일부가 몇 가지 중요한 담론을 도입한다. 민중론, 자연친화적 감수성, 인본주의 등이다.

    민중론은 역사의 주체가 민중이라는 사회역사이론으로 확대되었다. 학생만으로 유신체제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는 조건에서 민중(노동계급)은 이들의 소망을 실현시킬 사회적 주체였다. 자연친화적 감수성은 유신 체제의 경제개발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들의 시각에서 보면 무차별하고 부조리한 개발보다는 인정 많고 따뜻했던 전통이 더 낫게 보였을 것이다. 경제 개발 과정에서 도입된 과도한 입시경쟁과 군사적 잔재, 실용 학문 중심의 정책에 대응하는 것이 인본주의였다.

    돌이켜 보면 70년대 대학생들의 모색은 다분히 낭만적이었다. 70년대 한국은 매판적이고 봉건적인 유제가 잔존하여 자본주의화 될 수 없는 불구화된 경제였다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성장하는 양상이었다. 70년대 민중론, 자연친화적 감수성, 인본주의 등은 유신에 대한 대항 이데올로기로 작동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고 있었다.

    87년 6월항쟁은 양자 사이의 간극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경제는 명확히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인문사회과학 특히 현장 운동권을 지배하고 있던 담론은 NL/CA/PD였다. NL은 아예 한국사회를 봉건사회 정도로 규정하고 있었고 CA는 20세기 초 러시아 상황을 그대로 차용했다. PD는 그나마 나았지만 이들 또한 19세기 이론에 집착했다.

    6월항쟁

    87년 6월 이한열 장례식 때의 서울시청 앞 모습

    6월항쟁을 정치적으로 대변했던 것은 양김과 중산층이었다. 그러나 일선에서 거리를 장악했던 것은 한국사회의 발전 전망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고 점진적인 민주화가 아니라 급진적인 혁명을 주장하는 어린 학생들이었다.

    90년대 이들이 사회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들이 다분히 분열적인(?) 감수성을 내재한 채 사회로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혁명의 시대에 살았다. 그러나 그들의 미래는 매우 풍요롭고 희망적이었다. 데모 경력은 사회진출의 장애가 되기는 커녕 자랑스러운 과거가 되었고 대학 때 전공공부를 소홀히 했어도 일자리가 넘쳐 났다. 학원, IT 업계 등 새로운 기회의 땅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가 교수가 되고 논객이 되었다.

    IMF 그리고 2000년대가 또 다른 기점이 된다. 90년대 한국경제의 극적인 성장 특히 인터넷, 도시화 등의 물결을 타고 02년 역사적으로 가장 역동적인 시대가 열렸다.

    서민과 청년층의 격정적인 지지를 안고 태어난 노무현 정부는 탄핵 사태를 거쳐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하는 초유의 정치 환경을 맞이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머뭇거렸다. 긴 역사적 안목에서 보면 교육과 부동산이 문제였다. 노무현 정부가 교육과 부동산 문제에 대한 급진적 재편에 실패하면서 한국사회는 우파 주도의 정치지형으로 넘어간다.

    여전히 운동진영 그리고 그것의 확장으로서의 진보정당이나 지식계는 NL/CA/PD라는 낡은 도그마에 빠져 있었다. 사람들은 NL을 무슨 괴물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큰 맥락에서 보면 NL이나 CA/PD는 같은 맥락에 있는 사람들이다.

    상황을 종합하면 여전히 진보는 70년대 중반 유신독재에 절망했던 어린 대학생들이 갖고 있었던 생각, 민중론/자연친화적인 감수성/인본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그들은 70년대, 90년대, IMF 이후 그랬던 것처럼 나름 풍족하고 기회가 많은 집단이다.

    이른바 386세대들이 갖고 있는 이 괴리가 화를 불렀다. 386세대들은 혁명론, 인문고전에 경도되었지만 다행히 그들의 생각을 시대가 뒷받침해 주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르쳤던 세대(지금의 30대)는 그들과 달랐다.

    학생 시절이야 어찌어찌 버틸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졸업을 하면서 상황은 심각해지기 시작한다. 이들에게는 386세대 일부가 할 수 있었던 활동, 강연이나 저술을 통해 먹고 살 수 있는 길도 봉쇄되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과외나 학원강사가 대부분이었다.

    386세대는 그들의 생각과 그들의 사회경제적 처지가 분리되어 있었지만 시대가 그들의 미래를 보장해 주었다. 그러나 지금의 30대는 그들과 달랐다. 그들의 생각.문화와 현실의 괴리는 어떤 형태로든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진보성향의 청년들이 애타게(?) 대학원을 찾았지만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길이 끊어져 버렸다.

    이 간극에서 비롯된 가장 극적인 사태가 저출산이다. 생각과 현실의 괴리를 그나마 봉합하고 지연시킬 수 있는 길은 결혼을 하지 않고 청년으로 그냥 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정하게 세상을 본다면 한국사회의 가장 극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저출산이다. 어떤 세대가 자신의 생각과 미래 사이의 연결점을 찾지 못하면서 그 도피처로 삼았던 탈결혼이 그들 본인은 물론 한국사회 전체를 파국으로 몬 것이다.

    물론 저출산 문제를 위와 같이 분석하는 것은 과도할 수 있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지식과 삶, 생각과 시대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소개
    민경우
    전 범민련 사무처장이었고, 현재는 의견공동체 ‘대안과 미래’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서울 금천지역에서 ‘교육생협’을 지향하면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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