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피해자, 반핵평화의 생생한 증인
[책소개] <나는 反核人權 에 목숨을 걸었다>(김형률/ 행복한책읽기)
    2015년 05월 16일 09: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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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반핵인권운동에 목숨을 바친 운동가가 있었습니다. 서른다섯 해 불꽃같은 삶을 살다 이 땅을 떠난 고 김형률이 그 주인공입니다. 고 김형률은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에 피폭된 원폭1세 피해자였던 어머님의 몸을 통해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온갖 원폭후유증으로 고통을 겪은 원폭피해2세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온갖 질병들로 병치레를 하였고, 성인이 되어서도 몇 번이나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진 그의 병명은 ‘선천성면역글로불린결핍증.’ 원폭피해로 인해 유전적으로 체내의 면역력을 높여주는 면역글로불린이 결핍되어 세균에 쉽게 노출되다 보니 기관지 폐색이나 폐렴에 쉽게 걸리고 심하면 각혈로 목숨까지도 위험하게 되는 병입니다.

자신의 병명이 밝혀진 후 고 김형률은 그 병의 원인이 된 원폭피해와 원폭피해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2년 3월, 자신이 원폭피해2세라는 것을 커밍아웃하면서, 원폭피해자와 원폭피해2세들에게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인권이 있다는 ‘인권선언’을 합니다.

그리고 이후의 삶은 원폭피해2세 환우들의 인권회복과 생존권보장을 위핸 지난한 투쟁과 투병의 삶이었습니다.

반핵인권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때 누군가는 그 ‘관심’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다

그가 원폭피해2세임을 커밍아웃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원폭피해자와 원폭피해2세의 삶에 대해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관심조차 갖지 않을 때 고 김형률은 그 ‘관심’을 위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인권’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원폭피해자와 원폭피해2세에 대한 건강실태조사를 할 것을 수없이 요구하고 진정서를 넣어 마침내 정부기구에 의한 최초의 “건강실태조사”를 이끌어냅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원폭피해1세와 원폭피해2세의 인권 회복을 위해 동분서주한 결과, 마침내 TV와 신문, 잡지 등에서 원폭피해2세의 삶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원폭피해자와 원폭피해2세야말로, 반핵평화운동의 살아있는 생생한 증거이며, 원폭피해자와 원폭피해2세에 대한 인권을 회복하는 일은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의 가해자이면서 원폭피해자인 체 해온 일본의 위선의 가면을 벗겨내는 일이란 것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래서 식민지배의 가해자였던 일본, 원폭 투하의 당사자인 미국, 자국민의 생존권이라는 헌법을 수호할 책임이 있는 한국의 정부들을 향해 국가의 직무유기를 비판하며 ‘한국 원자폭탄 피해자와 원자폭탄2세 환우의 진상규명 및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온힘을 기울였습니다.

결국 그는 병약한 몸을 이끌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원폭피해2세 환우들의 인권을 위해 애쓰던 중 지병이 급격하게 악화되어 2005년 5월 29일 짧았던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목숨을 바쳐 로드맵을 만든 특별법 제정은 이제 남겨진 이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 유고집은 원폭피해자와 원폭피해2세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며 서른다섯 해 짧은 생을 살았던 고 김형률의 10주기를 맞아 그의 삶의 행적과 생생한 육성, 그리고 그가 남긴 여러 기록들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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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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