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감축규모,
아직 정부 초안도 없어
[에정칼럼] 쿠오바디스, 역사는 어디로 가는가
    2015년 05월 07일 11:40 오전

Print Friendly

지난해 7월 신산업 창출전략 보고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도전에 찡그리고 산업계가 이 부담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하면 극복도 힘들고 창조적 방법도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이 우리한테는 기회”라고 언급했다. 기업들이 기후변화협약의 대응방침과 동조하려는 정부정책에 반발하자 산업계에게 쓴소리를 내뱉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갈은 1년도 되지 않아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 지난 4월말에 열린 국회와 전경련 주관으로 열린 ‘Post 2020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 시 고려사항과 국가 협상 전략 토론회’에서 쏟아진 산업계의 반발을 보면 누구든지 그렇게 생각할 터다.

“온실가스 감축목표치 제시는 산업 구조상 에너지 소비와 산업 생산이 비례하는 제조업 중심 성장 정책을 펼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탄소배출에 대한 역사적 책임 정도보다 상회하는 수준의 감축 목표 제시는 선도적 국가 이미지는 줄 수 있을 수는 있으나 경제 환경에는 도움이 될 지 의문”

“한국은 국가 위상이라는 명분에 지나치게 얽매이고 있다.”

흡사 정부 정책의 성토장인 듯 강한 어조의 발언이 이어졌다. 정부와 국민을 대상으로 한 협박(?)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경제적 고려가 없이 목표치의 일방적인 배출권 규제는 기업 활동을 제약해 기업을 해외로 유출시키는 탄소누출(Carbon Leakage)을 야기한다.”

이쯤 되면 그간 정부가 적합한 이행 방안을 찾아서 추진하긴 한 건지, 더 나아가 반발하고 있는 산업계를 설득이라도 했는지를 의심해봐야 할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기후변화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인류의 과제”라던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한낱 립서비스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올해가 기후변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해라는 걸 감안하면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의지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짙어진다. 오는 12월 파리에서 열리는 제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는 2020년 이후 전세계 온실가스 감축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회의로 꼽힌다. 사실상 전 지구적 차원의 온실가스 감축량과 개별국가들의 온실가스 감축량을 결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각국 정부는 오는 10월 이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포함해 국가별 기여방안을 제출해야 한다. ‘주요 경제국’들은 상반기 내에 제출하는 것으로 권고됐다. 따라서 보고서를 제출한 후 수개월에 걸친 정리․통합 작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상당수의 국가가 보고서를 제출했거나 이미 사회적으로 윤곽이 드러났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유럽연합(EU) 소속 21개국과 노르웨이, 멕시코 등 31개국만 감축목표를 제출한 상황이다. 특히 온실가스 다배출 국가들의 보고서 제출이 늦어지고 있는데, 우리나라 역시 아직까지 보고서의 초안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세계 7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자 경제규모 15위 수준의 주요 경제국에 속한다.

상반기까지 보고서를 제출을 하는 것이 맞지만, 정부는 10월 마지노선까지 버틸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여기까지는 외교적 전략에 의한 것이라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초안이 나오지 않은 건 납득하기 어렵다. 초안을 발표한 후에 사회적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포함시키려면 적어도 수개월 정도의 기간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시 촉박하게 발표되어 의견수렴과정이라고 공청회나 토론회를 한 차례 정도 진행한 뒤 정부안 그대로 제출하는 형식상의 과정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탄소배출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산업계와 환경단체 등의 의견을 구하는 등의 제스처를 취하고는 있지만, 진척이 거의 없는데다가,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전체 공개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온실가스 감축은 이해관계자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기 때문에 충분한 공개 논의가 되지 않으면 추후 사회적 갈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는 근거는 경제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기업기밀과도 연동되어 함부로 공개해 논의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기가 차는 소리다. 전체 국민이 영향을 받는 문제를 기업기밀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게 과연 타당한 일일까?

그 기밀이라고 하는 것도 각 기업이 생산능력을 해당기업 스스로 ‘예상’하여 보고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 예상들의 총합을 통해 우리나라의 중장기 감축목표를 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산설비의 중장기 투자계획 쯤은 기업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고, 실제로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경기 유동성이 있기 때문에 며느리도 모를 일이다. 그런 걸 기밀로 인정해주고,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도출의 근거를 숨겨버린다면 일반 시민들은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 논의에서 아예 배제되어 버린다. 이것을 의견 수렴이라고 말할 순 없다.

산업계의 반발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온실가스 감축은 화석연료 사용의 억제를 의미하고, 이는 다시 현대 사회가 에너지집약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상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계의 반발은 이해를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 아닌가 싶다.

기후변화대응 문제는 1~2년 거론된 문제가 아니다. 지난 정부에서도 5년 동안 주구장창 ‘녹색성장’ 운운하면서 기후변화대응정책이 수립됐고 -정책결과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더 많지만-, 더 나아가서는 1997년 교토의정서가 체결되면서 기후변화대응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됐다.

20년 가까운 준비기간 동안 넋 놓고 있다가 아직도 경제적 타격을 고려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스무 살이 넘도록 부모에게 땡깡 부리는 것에 불과하다. 거기에 계속 부담을 주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는 건 가출하겠다고 협박하는 것만큼이나 치졸하다. 그간 산업계는 수출주도 경제를 건설한다는 미명 하에 수많은 혜택을 받아왔다. 기업에게 그 만큼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그 말 많고 탈 많은 “비정상의 정상화”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기후변화 대응은 전 지구적 문제기 때문에 국내 상황만을 고려할 수는 없다. 누군가 줄이지 않으면 누군가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다. 따라서 국제적 요구수준을 국가 목표 수립의 또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기업이 요구하는 현실과 더욱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국가 감축목표의 기준과 수준을 공개하고 사회적 토론을 벌여야 한다.

지난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세계 유명 과학자들이 성명서 하나를 발표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앞으로 상승 온도를 2도 이하로 줄이려면 화석연료 중 75%는 그대로 묻어둬야 한다.”면서 “각국이 탄소 배출량을 이번 세기 중반까지 0으로 줄여야 하며 부유한 국가들이 공격적으로 더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