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엥겔스, 그들의 예술관
[책소개] 『마르크스 엥겔스 문학예술론』(마르크스, 엥겔스/ 미다스북스)
    2015년 05월 02일 12: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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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각종 저서와 기록 중 그들의 예술관을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을 발췌해 번역한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세계 예술 전반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문학, 고전음악, 회화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모두 젊은 시절에는 시를 썼고, 사실 엥겔스는 한때 시인이 되려고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들은 아이스퀼로스, 셰익스피어, 디킨즈, 필딩, 괴테, 하이네, 세르반테스, 발자크, 단테, 체르니셰프스키, 도브롤류보프에게 찬사를 보냈고, 다른 작가들에 대해서도 많은 언급을 남겼다. 또한 그들은 민중예술, 여러 민족들의 서사시와 다양한 유형의 민속, 즉 민요, 설화, 우화, 속담에 대해서도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신들의 저서에서 세계문학의 보고를 광범위하게 활용했다. 문학이나 신화 속의 등장인물들을 자주 인용하거나, 경구, 비유, 직접적 인용 등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저작은 남다른 문체상의 특징을 갖추게 되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술들은 그 내용의 풍부함뿐만 아니라 뛰어난 예술적 장점으로 인해서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빌헬름 리프크네히트는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마르크스의 문체를 격찬했다.

“증오와 경멸, 그리고 자유에 대한 열렬한 애정이 신랄하고 통렬하면서도 고결하게 표현된 적이 있다면, 그것은 『브뤼메르 18일』에서일 것이다. … 문체는 오랜 옛날부터 로마인들에 의해 무언가를 기록하거나 찌르기 위해 사용되었던 날카로운 송곳, 즉 스틸루스와 마찬가지다. 문체란 정확히 심장에 박히는 일종의 단검이다.”

마르크스

예술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혁명가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와 가까운 민주주의적·혁명적 시인과 작가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태도를 취했다. 그들은 전 생애를 통해 당시의 가장 진보적인 작가들을 사회주의 운동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을 교육·단련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자신들의 작품에서 드러난 약점들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인 문학경향의 형성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독일의 위대한 혁명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작품에 미친 마르크스의 영향은 아주 컸다. 그들은 1843년 파리에서 만났다. 하이네의 정치적 서정시와 풍자시의 정수는 그가 마르크스와 긴밀하고 친근한 관계에 있었던 1843~44년에 출현한다. 하이네에게 미친 마르크스의 영향은「슐레지아의 방직공들과 독일」과 같은 훌륭한 시 작품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르크스는 그의 전 생애를 통해 마르크스가의 총애를 받는 시인들 중 한 명이었던 하이네를 칭찬해 마지않았다. 엥겔스 역시 자신의 친구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여 하이네를 “독일의 모든 생존 시인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로 생각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의 반동에 대한 자신들의 투쟁과정에서 하이네의 신랄한 풍자시를 즐겨 인용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데올로기 영향은 하이네의 예술가로서의 발전에 보기 드문 역할을 담당했고 그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의 승리가 필연적임을 깨닫도록 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시인 게오르그 베르트, 그리고 페르디난트 프라일리그라트와도 절친한 사이였다. 이들과는 1848~49년의 혁명기 동안 『신라인 신문』에서 함께 일했다. 엥겔스는 베르트를 ‘독일의 최초이자 가장 중요한 프롤레타리아 시인’이라고 불렀다. 베르트가 죽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의 문학작품들을 수집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1880년대에 엥겔스는 이 작품들을 독일 사회민주주의 신문을 통해 보급하는 데 힘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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