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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기반해야
    노회찬과 함께 한 네덜란드-벨기에 여행기 -3
        2015년 04월 13일 10: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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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4일 토요일의 동포 강연회를 마치고, 3월 15일 일요일에 노회찬-김지선 일행은 공식일정 없이 헤이그 인근을 방문하고 저녁에는 동포 가족을 초대하여 저녁식사를 했다. 유럽 여느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일요일은 대부분의 행사가 자제된다.

    네덜란드에는 세 개의 문화가 있다. 그것은 개신교, 카톨릭, 그리고 노동계급(사회주의) 문화다. 여기에 상류문화는 제외한다. 상류문화는 네덜란드 왕실을 정점으로 귀족들의 문화로 물론 일반대중들에게는 베일에 쌓여 있다.

    20세기가 오면서 노동자계급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넓히면서 자신들의 까페와 문화회관(민중의 집과 비슷), 스포츠클럽을 만들었고, 자신들의 신문과 라디오를 듣고, 자신들의 정당에 투표하는 노동자 집단문화를 이루었다.

    장1

    20세기 초반 노동당의 전신인 사회민주주의노동당 선거포스터, 붉은 깃발을 든 당당한 노동자, 그리고 그 밑에 노동자들을 저지하는 자본가,공포에 떠는 자본가가 있는 전형적인 포스터

    네덜란드의 개신교도 역시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었다. 이들은 주중에는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 일과 가족, 교회, 성경 읽기가 이들의 삶의 양식인 것이다. 이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는 지금도 일요일에는 마을 주민들이 대부분 교회에 가고, 상점들은 문을 닫고, 시끌벅적한 축제는 열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캘비니즘의 전통에 따라 생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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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신교마을의 전통복장을 한 가족. 피임을 꺼려서 자녀들이 많다.

    네덜란드의 동부와 남부에는 카톨릭 문화권이다. 그들은 개신교에 비해서 덜 금욕적이고, 카니발 축제도 즐기는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이루었다. 카톨릭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적인 노동자들과 별도의 노동조합을 이루고 있다.

    카톨릭 교회는 신자는 많지만 개신교만큼 열심히 교회에 다니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크리스마스 때만 교회에 다니는 떡신자라는 말이 있듯이, 이들도 평생 세 번 교회에 간다는 말이 있다. 즉 첫 번째는 애기 때 세례 받으러 가고, 두 번째는 결혼식 때 가고, 세 번째는 죽은 후 관에 들어가서 한번, 딱 세 번 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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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톨릭 축제 카니발에 참여한 발컨엔드 총리(2002-2007년 총리역임)

    세 문화권 모두 일요일에는 쉬자는 데 의견 통일을 보았고, 대부분의 상점은 일요일에 문을 닫았다. 물론 네덜란드 사회도 점차 미국화되어 일요일 시내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이 늘어서 암스테르담 시내 중심가는 일 년 365일 옷가게와 관광상품점들이 문을 열고 있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노회찬-김지선 일행은 네덜란드식으로 휴식을 취했다.

    3월 16일 월요일 사회당 방문과 헤이그 대학 강연

    아침부터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고 시원한 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봄날, 우리는 차로 한 시간을 달려 사회당 중앙당사가 있는 아머스포르트(AMERSPOORT)로 갔다. 인구 15만의 작은 도시지만 700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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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은 아머스포트의 광장에 시장이 선 날의 광경이다. 가운데 교회종탑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유서 깊은 도시에는 어김 없이 높이 약 백미터의 종탑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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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은 아머스포르트의 대표적인 중세 유적인 아치형 수문과 성곽이다.

    네덜란드 사회당은 한국 진보정치인 혹은 연구자들이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당이다. 특히 유럽 대부분 나라들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우경화되고 신자유주의적인 경제노선이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가운데, 사회민주주의정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대안으로 더 왼쪽에 있던 정당들을 선택하게 되는데 네덜란드 사회당 역시 이런 부류에 속한다.

    사회민주주의 왼쪽의 네덜란드 사회당

    네덜란드 사회당은 70년대 네덜란드 브라반트지방의 모택동주의 정치서클에서 시작해서 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폐기하고 의회민주주의체제를 전면 수용하고, 선거를 통한 집권을 표방한 후 선명한 좌파 노선을 걸으며 약 1.5%의 지지를 받으며 단 두석으로 1994년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하였다.

    2000년대 복지국가의 후퇴와 미국의 아프간, 이라크 전쟁에 대한 선명한 반대, 유럽경제통합으로 인한 자본의 권력의 강화에 반대했고, 노동자들이 권리를 옹호하여 선거마다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2006년에는 16.6%의 지지로 하원 150석 중 24석을 차지하며 제3당에 오르기도 하였으나, 세대교체 후 지지도가 떨어져 현재는 9.7%의 지지를 얻어 제 4당으로 15석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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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을 마치고 당사 앞에서 사진을 찍은 김지선-한스총장-노회찬

    네덜란드의 사회당(SP)과 한국의 정의당의 만남은 서로 많이 닮았으나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의 만남 같았다.

    노 대표는 80년대 전두환의 군사독재시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용접 자격증을 따서 인천의 노동현장에 들어가 노동운동을 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야당들은 독재권력의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고, 산업화 과정에서 가장 착취당하고 억압을 받았던 노동자들을 일깨워서 대중이 각성해서 일어나지 않는 한 정치를 바꿀 수 없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번 네덜란드 방문을 함께한 부인 김지선씨 역시 70년대부터 여성노동자로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조합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다 세 차례나 감옥에 간 이야기를 전했다. 한스 반 하이닝언 사무총장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지금 수준으로 발전한 것은 노회찬, 김지선 같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며 놀라워했다.

    노동운동 사회운동에 기반한 사회당

    70년대 사회당을 창립하고 당을 노동당 다음 가는 좌파정당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당의 대표를 지낸 얀 마라이네스 역시 브라반트지방 작은 공업도시 오스(Oss)에서 노동현장으로 들어가 노동자 신문을 집집마다 돌면서 배포하면서 지역에서 성장해온 정치인이다. 그러기에 사회당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는 곳이나, 사회적인 약자인 노동자와 서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운동에는 그들과 함께 힘을 합쳐 싸우는 정당이라고 소개했다.

    70년대만 해도 유럽에서는 소련의 체코 침공으로 인해 이에 실망한 68혁명세대들이 마오주의에 관심을 가졌다. 헝가리와 체코의 민주화요구를 탱크로 짓밟고 패권주의적인 태도를 보인 소련에 비해, 중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민족해방운동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마오주의는 대중은 물이고 혁명가는 물고기와 같다며 항상 대중과 함께 생활하며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었다.

    사회당의 창립자로 당을 오랫동안 이끌어온 얀 마라이네슨은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대중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냐가 중요하다’며 대중노선을 강조했다. 사회당은 캠페인이나 방송 인터뷰에서 항상 대중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와 활동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지식인의 현학적인 언어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아머스포르트에 있는 사회당 중앙당사 빨간색 탑에는 ‘사람이 우선이다’라는 글이 씌여있다.

    장8

    사무총장 한스는 80~90년대 8년간 부인과 함께 니카라구아에서 살면서 북부 산간지역에서 니카라구아 주민들을 위해서 의료봉사와 주민 생활여건의 향상을 위해서 노력한 전력이 있었다.

    부인의 직업이 의사였는데, 사회봉사를 위해서 멀리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한 나라 니카라구아에 와서 봉사를 하게 되었고, 남편인 한스 역시 80년대 민중혁명으로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시험하던 니카라구아에게 산간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공동체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도우러 갔던 것이다.

    그러던 중 한스는 지방정부의 요청으로 자문위원이 되어 사회개혁 정책에 대한 자문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90년대 총선에서 혁명정부가 패배하고 우익정부가 들어섰을 때 그는 정권의 평화적 이양을 위한 작업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그 일을 하게 된 계기는 권력 이양이 잘 안 될 경우 좌우간에 무력충돌이 벌어져 내전이 발생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스 사무총장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정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노회찬 대표는 한국은 87년 6월 민주화운동으로 대통령 직선제, 지방자치제, 정치범 석방 및 사면 복권, 언론 출판의 자유 향상 등을 이루었고, 바로 한 달 뒤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서 대중적 노동운동이 시작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1992년 총선 이후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가 시작되어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과 2004년 원내입성을 거두었으나 진보정당 내부의 갈등으로 현재는 정의당이 국회의원 5석으로 제3당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한국의 선거제도가 소선거구제로 되어 있어 양대 보수정당이 나눠먹기를 하고 있고, 이런 벽 때문에 진보정당은 비례명부에서는 십 퍼센트 이상의 득표를 하지만 의석수는 훨씬 적다며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들의 표가 동등하게 대접받도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네덜란드는 입헌군주국으로 의회가 상하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실권을 쥔 하원은 전국단일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고, 상원은 광역지방자치의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노회찬 대표는 또 한국에서 통합진보당이 몇 달 전 해체된 것을 얘기하면서 정의당은 비록 통합진보당과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입장 차이로 갈라지긴 했지만,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을 해산 조치한 것에 대해서 반대했다는 걸 전했다. 국민에 의해서 선출된 정당은 선거에서 국민들의 심판을 받는 것이 올바른 길이지 국가가 나서서 해산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경제에 관해서 지난 대선에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확충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한국의 정치는 앞으로 누가 더 국민들의 복지 요구를 잘 들어줄 수 있느냐를 놓고 경쟁하는 장으로 변하고 있다고 했다.

    한스 사무총장은 미국과 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북이 핵무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의 전망을 노회찬 대표에게 물었다. 노회찬 대표는 앞으로도 미국과 북한 사이에 긴장이 지속되고 전쟁위험이 증가되거나 감소될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평화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회적 합의와 좌파정당

    두 사람은 네덜란드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대표는 네덜란드의 사회적인 합의 모델에 대한 사회당의 입장을 물었다. 한스 사무총장은 노사 간의 사회적 합의는 양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 떨어질 때 제대로 굴러갈 수 있으나, 노동자를 대표한 노조대표자들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관철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70년대까지는 노사가 힘의 균형을 이루었으나 80년대 이후 지금까지는 사회 전반에 경쟁의 법칙이 관철되고 노동자의 단체협약을 통한 권리 보호가 점점 약화되어 왔다고 말했다. 이는 노동조합이나 노동당이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자본 측의 압력에 한발 두발 양보하며 물러서다 보니 노동자들의 조직력은 약화되고 싸울 의지조차 잃어 버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회당은 2004년 우파 정부의 광범위한 노동제도 변경 시 강력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있은 후 노사 간의 합의기구인 사회경제위원회(Sociaal-Economisch Raad)에서 노사정 3자간의 합의가 이뤄지자 합의안은 노동자들에게는 너무나 미흡한 것이라며 노동조합원들에게 반대표를 던지라고 요구했었다. 사회당에는 노동당에 실망하여 돌아선 활동적인 노동운동가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영국의 노동운동이 80년대 마가렛 대처의 강력한 우파개혁에 맞서다 역사적 패배를 한 것에 비하면 네덜란드 노동운동은 대화와 타협으로 심각한 패배는 피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한스 사무총장은 ‘조금씩 조금씩 빼앗기는 패배의 연속 보다는 완전한 패배가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마치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앗 뜨거워 하고 바로 도망나오겠지만, 미지근한 물에 넣고 천천히 데우면 저항도 못하고 잠든 채 죽는 것처럼 말이다.

    현재에도 우파인 자유민주당과 좌파인 노동당이 연정을 하고 있지만 노동당이 자기의 지지기반의 이해관계를 반영시키기보다, 자유민주당의 정책을 쫓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창문 밖 길 건너편의 건물이 과거에는 노인 요양시설이었으나, 정부는 이런 시설의 절반의 지원을 중단하여 문을 닫게 하고, 노인들이 일반 주거시설로 옮기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일반 주거지역으로 옮긴 노인들을 보살필 방문 돌봄이 제도를 더 강화해야 하는 게 정상인데, 이런 방문 돌봄이 회사에 대한 지원도 동시에 줄여서 가난한 노인들은 아무런 보호와 보살핌을 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9

    정부의 의료복지 예산 감축에 반대하는 시위에는 어김 없이 노조와 사회당의 활동가들이 다수를 이룬다

    또 노동당은 2차 대전 이후 사회복지와 노동권 신장을 가져온 사회민주주의 이념은 이미 그 역사적 임무를 다했으므로 이젠 더 이상 할 역할이 없다고 선언하였지만, 지금 생활인들은 사회민주주의가 후퇴해서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노동당이 스스로 집권당으로서 사회민주주의를 허물어트리면서도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한탄했다.

    그 결과 코앞으로 다가온 3월 18일 광역지방의회선거에서 노동당이 참패를 할 것이고 사회당은 좀 더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18일 선거 결과 노동당은 모든 지방에서 패배하며 1등을 한 지역이 하나도 없는 최악의 선거결과를 받았고, 사회당은 4년 전보다 지지율이 상승하며 최초로 노동당보다 더 많은 득표를 했다. 좌파에서 1, 2위가 바뀐 것은 네덜란드 현대사에서 처음 일어난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북부지방인 흐로닝언에서는 사회당이 1위를 기록하여 최초로 한 도의 집권당이 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표1

    *광역지방의회선거 결과 비교 (2011년-2015년)

    장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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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당 사상 최초로 광역지방선거 제 1당의 자리를 차지한 흐로닝언의 도의원 1번 산드라 베커만과 사회당 전 대표 얀 마리이네슨

    한스 사무총장은 사회당이 성장하게 된 것은 네덜란드에 노동-자본의 힘겨루기에서 자본의 힘이 너무 강해진 신자유주의시대에 신물을 느낀 노동자들이 사회당을 찍고 있기 때문이라며, 자기 당이 성장하는 것은 좋지만, 노동자들이 고통이 커지고 있는 현실은 결코 즐겁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1990년대 사회당이 최초로 의회에 들어갔을 때, 노동당의 정책을 비판할 때면 당시 제1당의 대표로 내각의 총리로 있던 빔 콕은 사회당이 대정부 질문에서 노동당을 비판하면 철 지난 맑스주의자들의 잠꼬대인 양 무시하곤 했었다. 그러나 노동당의 우향우가 계속 되고 사회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면서 사회당은 어느새 노동당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었다. 아래 표와 그래프는 1994년 이후 양당의 의석수 변동을 보여준다.

    표2

    장11

    자본의 막강한 힘을 잘 통제하여 빈부의 차이를 줄이고, 경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좌파 정부의 집권이 필요하다. 그러나 좌파가 집권하면 거대한 기업들은 해외로 본사를 옮기거나 해외로 자본을 옮기는 일을 하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 사회당은 무슨 대안이 있을까?

    한스 사무총장은 그건 기우에 불구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당대표인 에밀 루머와 함께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들이 브라질에서 사업하는 네덜란드 기업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브라질 노동당이 집권했다고 해서 기업 활동이 위축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세금은 자기 회사만 더 내는 게 아니라 브라질 회사나 다른 외국회사도 더 내는 것이고, 저소득 노동자들에 대한 복지 정책으로 그들이 소비가 증가하여 회사로서는 더 많은 물건을 팔 수 있어서 좋아졌다고 했다. 좌파의 내수 활성화 정책이 오히려 이들 기업에게는 세금 인상을 상쇄할만한 매력있는 호재로 작용하는 것이었다.

    장12

    사회당 대표 에밀 루머(Emile Roemer) 2008년 지방선거 패배로 당이 위기를 겪을 때 당대표로 선출되어 평범한 시민 이미지로 대중들의 인기를 받고 있다

    유럽연합 내의 좌파정당 연합체, 이견과 연대

    네덜란드 정치상황에 이어 유럽공동체에서 사회당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가 이어졌다. 현재 유로화 위기가 계속 되는 난국에서 유럽연합에서 사회당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 지 노대표가 물었다.

    한스 총장은 사회당은 유럽의회에서 GUE/NGL 에 속해 있다. 이 그룹은 SI(사회민주주의정당그룹)보다 왼쪽에 서 있는 좌파정당들의 연합체이다. 독일 좌파당, 프랑스 좌파전선, 그리스 시리자, 영국/아일랜드 신페인당 등 급진적인 좌파 정당들이 들어 있다.

    유럽연합의 나아갈 길에 대한 이 정당들의 입장은 약간 차이가 있다. 남유럽 정당들은 유럽연합의 역량을 강화해서 유럽연합 내의 강대국과 약소국, 빈국과 부국 사이의 차이를 줄이고 하나의 연방국가처럼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 통합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비해 네덜란드 사회당이나 핀란드, 독일 등은 유럽연합의 역할이 너무 비대해지면 회원국의 주권이 축소되고 나라의 민주주의 역시 제약을 받는다고 보고, 회원국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런 입장 차이로 어떤 사안에 대해서 의견 일치를 못 보는 경우도 생기지만 서로 회원정당들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최대한 공동입장을 내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한스 총장은 전했다.

    표4

    한스 사무총장은 사회당이 일본이나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의 좌파 정당들과 광범위하게 교류하고 있다며 앞으로 한국의 진보정당인 정의당과도 꾸준한 교류를 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노회찬 대표는 사회당이 다가오는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더 성장하길 바라고 한국에 꼭 방문해달라고 말했다.

    좌담이 끝난 후 한스 사무총장은 당사 전체를 돌면서 당직자들에게 노회찬 대표와 김지선씨를 소개했다. 당사는 건물 전체를 사회당이 단독으로 쓰고 있었다. 당사를 구입해서 꾸민 비용을 다 하면 한화로 약 30-40억원이 들었다고 했다.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마련했는 지 재정은 어떻게 마련하는 지 물었다. 정당명부제로 선거를 하므로 정당보조금 역시 총선 득표율에 비례해서 나오게 되므로 정당보조금이 크고, 약 4만 5천명의 당원들이 내는 당비와 공직자들이 노동자 평균급여만 받고 나머지는 당에 당비로 내는 제도를 엄격하게 시행해서 당의 재정을 마련한다고 했다. 이런 공직자 당비 납부 의무를 어기는 공직자는 출당 조치를 당하기도 한 바 있다.

    건물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옥상과 지하였다. 옥상은 한쪽에는 당직자를 위한 휴게실로 쓰고 있고, 큰 미닫이 문을 열고 나가면 발코니 식으로 되어 있어서 햇볕을 쬐며 담소를 나누게 되어 있었다. 또 한 켠에는 긴 화단이 있어서 거기엔 화초를 재배하고 있었다. 당직자들의 휴식장소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또 인상적인 것은 지하실의 창고였다. 거기엔 당 캠페인용 시위용품들과 기관지, 선거 홍보물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회당은 선거 때만 반짝 유권자들을 만나고 평소에는 헤이그의 의회에만 머무르는 제도권 정당이 아니라 사회운동에 기반해 있고, 노동자와 시민의 참여로 움직이는 운동정당임을 증명해 보이는 듯 했다.

    두 시간 여의 진지한 환담을 마치고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작별했다.

    필자소개
    네덜란드 거주 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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