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소년의 맛있는 고백
    [책소개]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김봉석/ 북극곰)
        2015년 04월 11일 11: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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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때 <씨네21>과 <한겨레신문> 기자로 일하며 <숏 컷>이란 칼럼으로 ‘김봉석 마니아’를 양산하기도 했던 그는, 책을 통해 중구난방이랄 만큼 다양한 대중문화들의 섭렵한 과거와 작품들을 소개한다.

    눈에 띄는 점은 그의 대중문화 소비방식이 지적 허영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책을 통해 그는 무차별적일 만큼 광범위하게 빨아들인 대중문화가 그를 키운 대지였고, 어머니였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무척 사적일 수밖에 없는 자기고객이 읽는 이들에게 동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그가 만화나 음악은 물론 영화가 소설까지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전공자로서 자신이 습득한 문화의 소산들이 본인의 삶과 어떤 개연성이 있는지를 성찰하고 성찰한 그대로를 써 내려간 것이, 전문가들의 비평과 확연히 구분되는 그 무엇을 던져주고 있다.

    책에 따르면 그는 심약한 소년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말을 더듬기 시작하면서 그는 세상과 소통에 두려움을 느꼈다. 안으로만 침잠하던 그의 유일한 낙(樂)은 형과 누나가 남겨놓은 집안 가득한 문학전집이나 영화와 만화책들이었다.

    하지만 그가 안착한 작품들은 위대한 걸작들이 아니다. 작가 스스로 ‘쓸모없거나 싸구려’라고 표현한 문화 부산물들이다. 이 심약한 소년은 세상을 피해 달아날 곳이 필요했고, 그렇게 발견한 곳이 시시껄렁한 것들인 공상과학이나 추리소설들이다.

    그곳에는 명작엔 없지만 소년을 위로하는 재미와 ‘나’가 있다. 추리소설 속 살인자의 살인 동기와 가해심리가 궁금했고, 공상과학 속 주인공의 외로움에 동질감을 느꼈다. 그곳에서 소년은, 실재에서 부재한 자신을 만났다.

    대중문화 표류기

    20세기 끄트머리 겪은 소년의 ‘독백’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는 20세기 끄트머리인 80, 90년대에 유년과 청춘을 보낸 작가가 어떻게 대중문화와 조우하고 커왔는지에 대한 성장기다.

    이소룡과 성룡을 통해 ‘강한 남자’를 꿈꾸고, <화성연대기>와 <그랑 블루> 속 주인공에게서 절대 고독을 경험했던 김봉석 작가는, 중학교 시절 부산으로 가족여행을 가서 처음 맛본 일본 영화잡지 <스크린>을 통해 느꼈던 문화 충격에 대해 얘기하고, 팀 버튼의 <배트맨>과 <크리스마스 악몽>을 보며 가면놀이 같은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다.

    고등학교 시절, 조직(패밀리)을 완성하기 위해 산산이 조각나는 가족(패밀리)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영화 <대부>를 통해 “패밀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패밀리를 부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법칙”임을 알게 되는 식이다.

    싸구려 문화를 향유하던 작가는 그 지평을 시와 만화와 음악으로 넓힌다. 흡입에 가까운 수준으로 섭렵한 청춘 시절들의 작품들 속에 자신이 어떻게 매료됐는지 설명한다. 허영만의 <고독한 기타맨>나 <카멜레온의 시>와 전혜린의 <북해의 별> 그리고 <아르미안의 네 딸들>, <공작왕>, <북두의 권> 등 장르를 불문한 그만의 싸구려 탐닉에 대해 고백하고 있다.

    씹을수록 맛있는 기억

    제목에서 보듯 그는 그의 문화 탐닉이 대단하거나 거창한 이유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세상과 조금 동떨어진 소년이 있었고 그 소년의 유일한 위안거리가 소설이고 영화였으며 만화이고 음악이었다는 것이다.

    머리가 조금 커지면서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았을 뿐 ‘싸구려 대중문화’는 그에게 굉장히 재미있는 놀이터였다. 그 놀이터에서 자신이 주로 갖고 놀던 놀이기구가 무엇이며, 어떤 기구가 재미있었는지를 얘기한다. 작가는 그렇게 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른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체득하며 삶의 자양분을 얻었다. 너무나 사적인 회상에 불과할 수도 있는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가 씹을수록 맛있는 기억이 되는 이유는 우리 모두 자라면서 한 번씩 고민했던 지점에 그가 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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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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