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혈사 나한전 - 민화가 있는 절집
[목수와 함께 가는 옛집 나들이②] 자그마한 절집
    2012년 07월 16일 12: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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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절집이 좋다.

90년대 초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나오며 우리 문화에 대한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목수가 되기 한참 전인 그 당시 나는 한 단체의 사무국장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 단체가 주관하는 주민 참여 프로그램 중 하나가 답사모임이었다. 이때, 높은 식견을 가진 좋은 분들과 방방곡곡을 누볐다.

이름 높은 절집도 많이 다녔다. 합천 해인사, 영주 부석사, 양산 통도사, 안동 봉정사, 구례 연곡사, 김천 직지사, 영천 은혜사, 청도 운문사…유명한 대찰은 더 이상 고즈넉한 산사가 아니었다. 번잡한 관광지였다.

자그마한 절집, 공양주 보살과 스님 몇 분이 수양하는 조용한 절집. 차가 절 마당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걸어가야만 하는 절집. 버스에서 내려 걷다보면 어느새 마음은 경건해지고 자세는 낮아지는 절집.

어느 때부터인가 호젓한 작은 절집이 좋더라.

1634년에 중건된 자그마한 절집

성혈사는 소백산 주봉인 비로봉(1439m)과 국망봉(1421m)사이 남쪽 골짜기에 있다. 옛 지도에는 성혈寺가 아니라 성혈庵이라 표기되어있다. 불과 삼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나한전 외에 자그마한 요사와 함담정이란 정자만 있었다. 성혈사는 근래에 대방, 선방, 일주문, 참선 체험장, 삼성각 등의 전각이 마구 들어서는 바람에 단아한 맛을 잃고 말았다.

성혈사 나한전은 채 여덟 평이 되지 않는 자그마한 건물이다. 종도리 묵서에 의하면 나한전은 1553년(명종 8년) 창건되었고 약 80년이 지난 1634년(인조12년)에 중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화를 입었을 가능성이 크다. 중건된 나한전은 부분적인 보수는 있었지만 지금까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2009년 나한전 지붕에 비가 샜다. 스님이 임시방편으로 지붕을 비닐로 덮어 놓았지만 이미 지붕 아래 서까래와 도리 등의 목부재가 상당히 부식되었다. 2010년 봄부터 다음해 가을까지 계속된 나한전 보수공사에 나는 혼신의 힘을 쏟았다. 370년 전 중건을 책임졌던 김돌시(金乭屎) 대목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나한전의 얼굴 – 통판투조문

성혈사 나한전은 1985년 1월 8일 대한민국 보물 제832호로 지정되었다. 1634년 중건된 전면 세 칸, 측면 한 칸의 다포계 맞배집인 나한전은 아무리 보아도 보물로 지정될 만한 격은 아니다. 그렇지만 결정적 이유가 있으니 그게 바로 전면에 있는 창호다.

나한전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정면 창호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한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민화풍의 불화가 창호에 베풀어져 있다.

눈으로 감상하시라.

자, 지금부터 자세히 살펴보자

화면의 배경은 연잎이 가득한 못이다.

연잎, 연꽃, 연밥

활짝 핀 연잎, 살짝 펴지려는 연잎, 도르르 말려있는 어린 연잎, 심지어 잎맥까지도 섬세하게 표현해 놓았다. 맑은 날 자세히 보면 희미하지만 녹색과 붉은색의 단청흔적도 보인다.

연못에는 연잎만 아니라 연꽃과 연봉오리도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자그만하게 올라오는 봉오리, 수줍게 살짝 피어오르는 봉오리, 활짝 핀 연꽃, 만개를 지나 가운데에 연밥을 안고 있는 연꽃, 이미 꽃잎을 떨어뜨리고 연밥이 된 것도 있다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더러운 곳에서도 아름답고 청정한 꽃을 피워내는 모습이 오탁악세(五濁惡世)의 사바세계에 존재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비유되기 때문이다. 연꽃의 각 부분도 각각 상징하는 것이 있다.

활짝 핀 연꽃은 우주를, 줄기는 우주의 축을, 연밥에 있는 아홉 개의 구멍은 구품을, 세 개의 연뿌리는 불, 법, 승 삼보를, 천년이 지나도 꽃을 피운다는 씨앗은 불생불멸을 상징한다.

물고기와 게

통판으로 조각을 해 놓은 창살에는 일곱 마리의 물고기가 있다. 여섯 마리는 화면 하단에 있어 마치 연못에서 헤엄치는 듯하다. 잉어 두 마리와 붕어 네 마리로 보인다. 나머지 한 마리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상단 자그마한 새의 부리에 잡혀있다. 계율로 살생을 금하는 종교이나 동물의 먹이사슬은 인정하는 너그러움이 보인다.

게도 화면 아래쪽에 두 마리가 보인다.

게는 불교와 별로 인연이 없다. 게의 등딱지는 한자로 ‘갑(甲)’이라고 한다. 그래서 갑각류다. 갑은 십간(十干)의 첫 번째로, 시험 성적으로 치면 가장 우수한 경우를 말하기에 장원급제를 암시한다.

시험을 앞둔 사람에게 게 그림을 많이 선물했다. 화폭에는 주로 게 두 마리가 그려지는데, 초시와 대과 두 번의 시험에 모두 장원 급제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모두가 조선시대의 풍속이다. 종교도 시속(時俗)을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화염에 쌓인 여의주, 그 여의주를 향하는 용도 새겨져 있다.

용은 동양에서 기린, 봉황, 거북과 함께 네 가지 신령한 동물, 즉 사령으로 여겼다. 불교의 용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것인데 인도의 뱀을 신격화한 것이다. 동아시아 불교에서 용은 인도 불교에서 보다 훨씬 중요하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불교에서 용은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중이지만 이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의 불교는 호국불교를 내세우며 왕권과 불교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때부터 다른 나라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절대 권력의 상징인 용이 불교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다섯 마리의 새가 있다. 화면 아랫부분에 학으로 보이는 새가 양쪽으로 대칭으로 있다.

오른쪽 위편에는 기러기로 추정되는 커다란 새가 하강하고 있다. 양편 위쪽에는 조그마한 새가 한 마리씩 있는데 참새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오른쪽 작은 새는 송사리쯤 되는 작은 물고기를 부리에 물고 있다. 참새는 물고기를 먹지 않고 식물의 씨앗을 먹는다. 그냥 작은 물새라고 해두자.

동자승

커다란 연잎배를 노 저어가는 동자승.

몇 해 전 누군가 만져서 지금은 얼굴 부분이 조금 떨어져 나갔다. 너무 아쉽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성혈사를 찾게 되거든 제발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만지지는 말아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

개구리

오른쪽 하단 커다란 연잎에 개구리가 한 마리 있다.

참 조신하게 앉아있다. 생김새를 보니 개구리 중에서도 맹꽁이가 분명하다.

그냥 연못에 많이 사는 동물을 새겨 놓은 것일까?

 나한전의 창호는 원래 저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다.

다음의 세 가지 이유로 원래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먼저 창호의 수가 여섯이 아니라 원래는 열 짝 이상이었을 것이다. 정면창호는 대칭이 되어야만 하는데 지금의 여섯 짝은 그렇지 못하다. 원래는 가운데 칸은 지금과 같이 통판으로 된 투조문양의 문이, 양옆으로 모란이 새겨진 문이, 그 양가에는 투조문양이 없는 꽃살문만이 있었을 것이다. 원래는 꽃살문/꽃살문 – 꽃살문/모란무늬문 – 연꽃무늬문/연꽃무늬문 – 모란무늬문/꽃살문 – 꽃살문/꽃살문 의 순서로 배치되었던 것이 어떠한 이유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지금과 같이 바뀐 것으로 보여진다.

두 번째로는 문의 비례에서 찾을 수 있다. 창호 하부 아무런 새김 없이 판자로 막힌 곳이 궁판이다. 나한전 문은 문양이 새겨진 윗부분에 비해 판자로 막힌 궁판 부분이 너무 작아 비례가 맞지 않다. 문을 떼어 문울거미 아랫부분을 보니 궁판이 하나 더 있었던 홈이 있는데 이는 나한전에 맞추려고 궁판 한단을 떼어내었던 흔적이다.

마지막으로 건물과 문의 결합방식이다. 건물에 문을 달 때 보통 돌쩌귀를 사용한다. 나한전에서는 돌쩌귀가 없고 상부는 창방에 결합된 둔테에, 하부는 귀틀에 홈을 파서 결합해 놓았는데 이런 방식은 다른 데서 찾아보기 어렵다.

위의 이유들로 볼 때 나한전 창호는 다른 건물에서 가져왔거나 중건되기 이전의 창호를 재활용하였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소백산으로 오시라.

이제 여름휴가철이다.

백두대간의 중간, 소백산의 품으로 한번 오시라.

부석사, 소수서원도 좋지만 자그마한 절집, 성혈사 나한전도 좋다.

 

필자소개
진정추와 민주노동당 활동을 했고, 지금은 사찰과 옛집, 문화재 보수 복원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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