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가족? 또 하나의 감옥?
[서평]『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사람 냄새'』(김수박 저/ 보리)
    2012년 07월 14일 01: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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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시작된다. ‘인간의 욕망이 얼마만큼의 악을 묵인하거나 용서할 수 있을까요?’

너무나 ‘인간’적인, 거대한 질문처럼 느껴져 나는 선뜻 대답은 못하고 쭈뼛대며 서둘러 책장을 넘기려다가 문득 깨닫는다. ‘아, 이 모든 것이 다름 아닌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지.’

인간의 욕망이라니. 갑자기 책장을 더 넘기기 두려워진다. 나 역시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하는 보통의 인간 존재. 따라서 저 질문이 ‘삼성’을 향할 뿐만 아니라, ‘나’를 향하고 있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괜히 자신이 없어진다.

‘또 하나의 가족’을 외면하고 인간의 생명을 무참히 짓밟는 대기업의 거대한 그 ‘욕망’에,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주고 비료까지 뿌려주면서 그 욕망이 무럭무럭 자라는데 일조했을지 모르는 ‘나’의 시커먼 욕망과 잔인한 무관심을 보는 것이 두려운 거다.

그러나 두렵더라도 반드시 봐야 했다. 내 스스로 이 질문 -‘인간의 욕망이 얼마만큼의 악을 묵인하거나 용서할 수 있을까요?’-에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랐다.

간신히 책장을 넘겨가며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지 2년 만에 백혈병을 얻어 끝내 사망하게 된 딸의 비극을, 그 역시 힘겹게 이야기하는 한 아버지의 비극에 귀 기울인다.

삼성이라는 이름의 욕망: 삼성‘을’ 욕망하다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 사람 냄새’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故황유미 씨와 그 가족들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2003년,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열아홉 살의 나이에 삼성반도체에 취직한 딸이 입사 2년 만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다시 2년 동안 병과 싸우다 어느 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자신이 운전하는 택시 뒷좌석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취직한 후, 월급 받으면 제일 먼저 가족들 선물을 챙기고, 남은 돈은 꼬박꼬박 저축해 두며, 주말에는 가끔 멋을 부리고 친구를 만나러 나가기도 했던 유미씨, 그리고 한없이 착했던 딸의 죽음을 누군가에게 반복해서 들려줘야만 하는 황상기 씨의 비극은, 마치 ‘나’와 ‘내 아버지’의 비극처럼 느껴져 책장을 넘기면서 몇 번이고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황유미씨가 스물 네 살의 나이로 사망한 2007년 당시, 나는 ‘삼성 열린 장학금’을 받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딸이 삼성에 입사한 뒤 주위 사람들에게 열심히 삼성 제품을 홍보 하고, 가끔 딸 얘기를 하면서는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다는 황상기씨처럼, 나의 부모님께서도 ‘삼성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 다니는 나를 자랑스러워 하셨다.

나 역시 등록금 걱정을 덜어준 삼성에 고마운 마음까지 가졌었던 것 같다. 당시 뉴스에 자주 등장하곤 했던 삼성의 불법 대선 자금 지원, 경영 승계 비리 등의 문제는 분노해야 마땅한 것이었고 또 우리가 그걸 ‘몰랐던 건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에게 더욱 피부로 와 닿았던 문제는 바로 ‘우리 딸이 삼성에서 장학금을 받는다’는 그 사실 자체였다.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몸속에도, 또 ‘국민 기업 삼성’ 이데올로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쉬운 평범한 사람들 머리 속에도, 삼성은 교묘하게 암세포를 퍼뜨리고 있었다.

여전히 삼성은 유해 물질로 인해 병에 걸린 노동자들의 몸 안에서 자라는 암세포는 철저히 외면한 채, 사회 곳곳에 삼성‘을’ 욕망하는 이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는 또 다른 암세포를 주입하고 있다.

2012년 현재, 유미씨와 똑같이 스물네 살이 된 나는 더 이상 삼성에 고마운 마음 따위는 가지지 않지만 대신 이런 말들을 더 자주 듣게 되었다. “OO네 집 딸/아들이 이번에 삼성 취직했단다.”, “OO선배, 삼성 입사했대!”

이 책을 읽으면서도 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졸업 전에 삼성에 취직했다고 한 턱 거하게 냈던 친구의 웃는 얼굴, 2년 전 잠시 필리핀에 살았을 때, 삼성 전자 제품이 최고라고 말하며 부러워하던 현지인들 얼굴, 그런 그들에게 다시금 ‘대한민국=삼성’의 공식을 재확인 시키곤 하던 한국 교민들의 자긍심 가득한 얼굴, 그리고 얼마 전 약 2년 동안 다니던 삼성전자를 그만둔 후 가족들과 지인들로부터 ‘철모르는 놈’이라는 비난을 귀에 달고 산다는 한 선배의 쓴웃음 띤 얼굴까지.

이 책에도 나오는 예처럼, 한국의 대다수의 학생들은 ‘삼성’에 취직하길 희망하고, 부모님들은 자녀가 ‘삼성’에 취직한 것을 가문의 영광쯤으로 여기며, 외국에 나갔을 때 삼성 광고가 나오는 전광판을 본 한국인들은 뭉클한 자부심을 느끼곤 한다.

삼성의 얼굴은 삼성‘을’ 욕망하는 이들의 얼굴 위에서 만들어진다. 이 ‘자랑스러운’ 얼굴이 삼성의 한 단면이기는 하다. 그러나 문제는 삼성의 또 다른 얼굴이 철저하게 가려져, 삼성‘을’ 욕망하는 이들로 하여금 거짓욕망까지도 욕망하게 한다는 점이다.

황유미씨와 황상기씨 역시 삼성‘을’ 욕망하던, 우리와 똑같은 얼굴을 가졌던, 평범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삼성이 교묘하게 은폐하고 외면했던 추악한 욕망의 얼굴이 유미씨를 비롯한 노동자들의 비극으로 나타난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 욕망의 얼굴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삼성의 욕망을 우리의 욕망으로 믿어 결국 삼성‘을’ 욕망하게 된 우리들이 이 질문 – ‘인간의 욕망이 얼마만큼의 악을 묵인하거나 용서할 수 있을까요?’ – 과 마주하고서, 비난이라든지 비판 혹은 의심의 화살을 날려야 할 것 같은 대상은 삼성이라는 거대한 기업인 동시에, 삼성의 악취 나는 욕망도 묵인했던, 그러면서 삼성‘을’ 욕망하기도 했던 나 자신이기도 할 것이다.

삼성에서 일을 하든 하지 않든, 또 삼성의 공장 노동자이든 삼성 생명의 직원이든 간에 모든 사람들이 삼성‘을’ 욕망하도록 만드는 것. 그래서 결국은 삼성‘이’ 욕망하는 것과 나의 욕망을 동일시하게 하고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들의 비극과 각종 비리들을 외면하도록 만드는 것. 삼성이라는 욕망은 이미 너무나 커져버린 암 덩어리 그 자체다.

‘사람냄새’ 나지 않는 ‘또 하나의 감옥’, 삼성

‘사람냄새’가 출판된 지 약 두 달 뒤인 지난 5월 7일, 삼성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6년간 일하다 악성 뇌종양에 걸려 세상을 떠난  故이윤정 씨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미 몇몇 언론에서는 삼성의 암세포가 ‘자생’하는 수준에 도달해있어,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은 어김없이 외면당한 것이다.

5월 10일 서초구 삼성 본관 앞에서 이윤정씨의 노제가 있었고, 나는 사진을 통해 이윤정씨의 8살 난 아들이 상주 완장을 차고 영정 사진 속 젊고 예쁜 엄마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

정말 인간의 욕망이 얼마만큼의 악을 묵인하거나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의 6살 난 막내딸은 아빠 품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기를 쓰며 온 몸으로 매달려 있었고, 이윤정씨의 남편은 죽은 아내의 관에 손대려하는 삼성 본사 직원들에게 그 역시 온 몸으로 분노를 토하고 있었다.

대체 누가 어떤 권한으로, 다른 사람들을 짓밟으며, 그들이 온 몸으로 절박하게 부딪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그들의 생을 비극으로 치닫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고 황유미씨와 이윤정씨의 비극은 자사가 국민 기업임을 내세우는 삼성의 기업 윤리가 인간의 하찮은 욕망을 인간의 존엄한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닌지를 의심하게 한다. 서평을 마무리하는 즈음, 트위터를 통해 다음과 같은 멘션을 읽었다.

삼성에 노조를 만들려는 한 삼성 해고자가 잔잔히 웃으며 말했다. “이해가 안돼요. 수많은 삼성 노동자들이 고통 받는데, 왜 문제가 안 알려질까. 내가 분신이라도 할까……. 그래서 차에 휘발유를 두 통 싣고 다녀요.”

다시 책을 펴서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질문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인간의 욕망이 얼마만큼의 악을 묵인하거나 용서할 수 있을까요?’

아,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인 모든 악(惡)과 악취,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수많은 비극들이 바로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에서부터 비롯된 거지, 다시 한 번 상기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삼성이 내세우는 ‘또 하나의 가족’ 캠페인 TV 광고들을 검색해 하나씩 봤다. 그리고 질문에 답해보기 위해 다시 책을 폈을 땐, ‘욕망’이라는 글자를 오래 들여다보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하물며 ‘사람 냄새’라니. ‘가족’이라니.

필자소개
학생. 연세대 노수석 생활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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