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세월호 1주기 앞두고
    나쁜 시행령과 돈으로 여론 호도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들 52명 눈물의 삭발식
        2015년 04월 03일 02: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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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던 달인 4월이 되자마자 정부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금액을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52명의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은 진상규명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실종자를 찾기 전까진 배·보상 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며, 삭발까지 감행했다.

    참사가 있었던 지난해 4월만큼 이날의 세월호 광장은 처참했다. 지난 4월 16일, 갑작스럽게 아들과 딸, 형제, 자매, 부모를 잃었던 그 당시보다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피해자 가족들의 절망감은 그 깊이가 더해진 모습이었다.

    피해자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들과 딸을 생각하며 머리를 밀었고, 일부 유가족은 고개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오열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1일 오전 6시 배·보상 금액에 대한 자료를 배포했다. 해수부 자료에 따르면, 사망자 1인당 평균 배상금이 단원고등학교 학생은 약 4억 2천만 원, 교사는 약 7억6천만 원이다. 그리고 이날 10시 30분, 해수부는 모금단체에서 걷은 모금액과 보험사에서 지급해야 할 보험금까지 합한 금액을 정부에서 지급하는 배·보상금인 양 보도자료를 재배포했다. 총액은 학생 1인당 약 8억 2천만 원, 교사는 11억 4천만 원이다. 배보상금 ‘뻥튀기’도 그렇지만, 자식을 잃은 피해자 가족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낸 것은 배보상금 발표 시기다.

    이 시기에 배보상 금액 발표를 하면 피해자 가족들의 반발이 크리라는 것을 정부가 예상 하지 못할 리 없다. 피해자 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 요구 초창기부터 배보상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고 정치권에 끊임없이 말했기 때문이다. 진상규명과 온전한 선체인양을 하라고 광화문과 청와대 등 전국을 돌며 정부에 요구했다. 그런데 정부는 4월 1일, 돌연 배보상금액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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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보상으로 세월호 참사 진상 외면하는 정부 규탄 회견(이하 사진=유하라)

    박근혜 정부, 참사 1주기 앞두고 배·보상 금액으로 ‘선수 치기’

    정부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4억이든 7억이든 정부가 배보상금을 발표하자마자 여론은 악화됐다. 먹고 살기도 힘든 마당에, 가뜩이나 잔뜩 오른 세금에 심기가 불편했던 사람들을 자극하기에는 딱 좋은 선택이었다.

    다수의 언론은 앞 다퉈 해수부가 차례로 공개한 배보상 금액을 보도했고, 기사에 달린 댓글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단 1원도 줄 수 없다’, ‘온갖 특혜를 누리려 한다’는 식의 댓글이 다수였고 더러 ‘정부를 가해자 취급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정부가 4월이 되자마자 헐레벌떡 배보상 금액을 발표한 데에는 4월에 다시금 정부에 불리하게 악화될 여론을 돌리기 위해서라는 지적이 있다. <한국갤럽>의 지난해 4월 말 여론조사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10%이상 떨어졌다. 해경 해체 등 정부는 후속 대책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대책을 내놓았고, 당연하게도 지지율은 멈추지 않고 하락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정부에 등 돌린 여론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 시점은 단원고 생존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학 특례입학 얘기가 나왔을 때였다. 그 여세를 몰아 여당은 수시로 배보상금에 대해 언급했다.

    그때부터 여론의 화살은 정치권이 아닌 세월호 유가족에 향했다. 참사를 애도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던 댓글은 눈에 띄게 줄었고 유가족을 자식 팔아 돈이나 챙기려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댓글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정부와 여당은 그렇게 유가족과 돈 문제를 엮어 하락하는 지지율을 끌어 올렸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침통한 마음으로 1주기를 준비하고 있다. 선체 인양을 촉구하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독립성을 요구하면서 말이다. 여론은 ‘아직도 찾지 못한 희생자가 있는지 몰랐다’, ‘보상금 받고 다 끝난 줄 알았다’며, 다시금 세월호 참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늘 하던 대로 다시금 배보상 문제를 소환했다.

    정부, 시행령안으로 진상규명 여지까지 차단
    세월호 참사 원인인 관피아 문제 면죄부 비판…

    정부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을 냈다. 이 안의 핵심은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기획조정실장으로 투입돼 특조위를 좌우한다는 점이다.

    알려졌다시피 해수부는 정부를 대신해 대형 선박의 안전성을 점검하는 기관인 한국선급 등에 로비를 받고 봐주기 관리 감독을 해왔던 것이 밝혀진 바 있다. 또 해수부 공무원이 퇴직한 후 한국선급 등에 재취업을 하는 이른바 관피아 문제도 참사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 또한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해수부는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집중적으로 조사를 받아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정부는 조사를 받아야 할 대상을 특조위에 투입했다. 조사를 할 의지가 없다는 의사를 표현한 셈이다.

    이석태 특조위 위원장은 정부의 시행령안에 대해 지난 달 30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서 “(정부의) 이 시행령안을 보면 (진상규명의) 의지가 없다”며 “오히려 특위를 통해서 정부가 그동안 해온 조사 내용이라든가 여러 정책이나 이런 것들에 대한 면죄부를 받으려고 하는 의도가 보인다”고 비판한 바 있다.

    또 하나는 본래 세월호 특별법의 취지와도 완전히 벗어난다는 점이다. 세월호 특별법은 지난 참사들의 원인을 되짚어보고, 향후 무분별한 규제 완화나 비리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안전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들어진 법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 시행령안에서 특별법을 세월호 참사와 해양사고에만 국한하도록 하고 있다. 조사할 수 있는 범위를 대폭 축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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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시행령안 폐기·선체 인양·특조위 독립성 훼손 중단 촉구하며
    52명 세월호 가족 ‘눈물의 삭발식’

    4.16가족협의회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2일 오후 1시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희생자와 피해가족들을 돈으로 능욕한 정부 규탄 및 재보상 절차 전면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정부 시행령안을 즉시 완전 폐기하고 특조위의 시행령안을 수용하라 ▲참사 1주기 이전에 온전한 세월호 선체 인양을 공식 선언하고 구체적인 추진일정 등을 발표하라 ▲정부 시행령안 폐기와 세월호 선체인양을 공식 선언할 때까지 모든 배보상 절차를 전면 중단하라고 박근혜 정부에 요구했다.

    세월호 가족들의 삭발식이 시작되면서 여기저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머리를 깎아주는 사람도, 유가족도, 길을 지나던 사람들도 눈물을 훔치고 숙연한 모습이었다. 특별법 제정 논의에서도 줄곧 이성적인 모습만 보였던 유경근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도 이날 눈물을 보였다. 머리를 깎는 내내 침통한 표정을 하다가 나중엔 결국 고개를 숙이고 오열했다.

    단원고 고 최성호 군의 아버지는 이날 삭발을 마친 후 “4월은 우리 아이들의 기일이 있는 날이다. 왜 하필이면 기일이 있는 날에 돈 얘기를 하는 것인가”라며 “아직도 마음이 아프고 풀리지 않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라고 착잡한 심경을 밝혔다.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 또한 “참사가 발생하고 부모들은 거리로 나왔다. 목숨 걸고 단식도 했다. 이유는 특별법이었다. 12월에 힘들게 통과됐다”며 “그런데 정부의 시행령이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고 있다. 세월호가 다시 침몰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 구보현 양의 어머니 김경애 씨도 삭발을 한 후 “그냥 자식을 잃은 엄마로 봐달라”면서 “왜 돈으로 포장을 하려고 하나. 이 나라가 너무 싫다”고 울분을 토했다.

    생존 학생의 부모도 함께 했다. 장애진 양의 아버지 장동원 씨는 “주변에서 네 자식은 살아왔는데 왜 그러냐고 한다. 그런데 제 딸의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이 다 죽었다” “사고 나고 처음으로 학교 가는 날, 딸이 학교 가다 말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민정이가 보고 싶다고 했다. 저한테 ‘아빠도 같이 진상규명할거지?’하더라. 못된 어른이 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꼭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정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안은 진상규명을 방해하기 위한 안이었다. 그래서 다시 풍찬노숙을 시작했다. 오직 시행령안 즉각 폐기와 세월호 선체 인양을 해내기 위해서”라며 “그러던 차에 정부는 뜬금없이 배보상 기준을 발표하며 4억이니, 7억이니 하는 배보상 금액을 지껄여대는 비열한 짓을 저질렀다”고 질타했다.

    이어 “시행령안 폐기와 세월호 선체인양을 촉구하는 여론을 잠재우고, 돈 몇 푼 더 받아내려고 농성하는 유가족으로 호도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정부의 행태에 분노하고 또 분노한다”며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추모와 진상규명의 열기가 높아져 가는 이때에 정작 져야 할 책임은 회피하고 돈으로 희생자와 피해가족들을 능욕하는 정부가 진정 대한민국 정부란 말입니까”라고 거듭 비판했다.

    한편 가족협의회와 세월호 대책회의는 참사 1주기인 16일 안산 합동분양소에서 합동분향식을 하고 서울광장에서 범국민추모제를 연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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