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자신의 언어, 내 계급의 언어
    [서평]『취향의 정치학』(홍성민 저/ 현암사)
        2012년 07월 14일 12:37 오전

    Print Friendly

    학과공부를 하다보면 마르크스나 베버 등 저명한 사회학자들의 저작들 접할 때가 많다. 그 때의 뿌듯함과 설렘도 잠시, 그것을 읽어서 과제라도 해야 할 때에는, 아무리 찬찬히 읽어보아도 어느 순간 맥을 놓치고, 무슨 말인지 몰라서 고민하다가 자책에 빠지기 십상이다.

    어색한 번역 탓을 해보기도 하고, 나의 적성을 다시 생각해보기도 하고, 결국 소리 내어 읽어보지만 쉽지 않다. 과제를 떠나서, 생애 한 번은 스스로 읽어 내보고 싶다는 욕심과, 직접 읽을 때만 나에게 번뜩이는 문장을 만나는 즐거움과의 괴리를 느낄 때 번번이 좌절하는 것은 아마 모두의 경험일 것이다.

    따라서 나보다 잘 아는 누군가가 단순히 그 학자의 이론 요약이 아니라, 대표작 한 권의 ‘흐름’을 차근차근 짚어준다면, 무척 반가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의 원래 쓰인 자체의 구성을 무시하지 않고, 각 장에서 부르디외가 어떤 맥락과 흐름을 가지고 썼는지 그려주며, 그의 생각을 소개한다.

    부르디외는 마르크스의 경제적 자본을 기준으로 한 계급 분류에 문화적 자본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보다 복잡한 요즘의 사회에 맞는 계급을 정의한다.

    각 계급의 구성원들은 단순히 외재적인 구조의 압박이나 억압에 영향을 받아 행위하기보다는, 암묵적으로 사회의 것들을 내면화시켜 매 순간 자기 스스로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부르디외는 그러한 선택들, 즉 개인의 ‘취향’을 연구하여, 계급의 특성을 밝혔다. 이처럼 내가 선호하는 그림, 내가 좋아하는 가구와 옷, 내가 좋아하는 미디어 프로그램 등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기에, 재구성된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는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다. 추상적이지 않고, 나의 삶과 밀접한, 나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기에 쉽게 납득이 가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고 ‘나의 그러한 취향과 기호들의 근원에 대해, 그 영향에 대해 이러한 설명이 가능하구나.’ 하며 감탄하게 된다. 이렇게 내 스스로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고, 그간 미처 알지 못했던 사회에서의 나의 위치, 내가 받고 있는 구조적 영향력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한편 저자인 홍성민은 그러한 취향의 문제, 감성의 문제로서 사회를 분석한 부르디외의 시도가 가진 의의와 가능성도 놓치지 않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 사회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문화자본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고, 그것이 학교로 대표되는 교육에 의해 차별적으로 주어지고, 불평등이 더욱 커진다는 그의 설명은 지금도 낯설지 않다.

    한편, 계급에 시간적 차이를 반영하여, 그간 추상적이었던 중간계급에 대한 분석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한 점도 눈 여겨 보아야 한다. 그간의 계급분석과 달리, 지금의 중간계급의 과거를 분석하여, ‘중간계급으로 올라온 이들’과 ‘중간계급으로 떨어진 이들’을 나누어 분석하자는 그의 시도는 유의미한 결과들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경제적 성공을 통해 중간계급으로 상승한 이들의 과시욕은 분명 정통 부르주아의 취향과 다르며, 그들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비 일관적인 취향은 오늘날의 애매했던 현상들에 대해서도 보다 분석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힌트가 된다.

    특히 이들 계급의 과시욕과 상층계급을 흉내 내려 애쓰는 시도와 어색한 결과들, 그리고 내가 누리려는 문화의 그 자체의 내용보다는 내가 그것에 얼마만큼의 돈을 쓰는지를 은근히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기대들에 대해, 특히 개인적으로 매우 공감하며, 스스로에 대해 뜨끔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취향, 나의 계급적 위치에 대한 깨달음은 곧 다른 사람들의 취향과 계급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로 이어진다. 이 책에서는 부르디외가 실증조사의 결과를 가지고 나눈 계급과 그 계급적 특성을 보기 좋게 정리하며 꼼꼼하게 다시 설명한다.

    이 때 ‘아, 이 계급의 사람은 내 주변의 누구……’, ‘내 친구 누구의 행동도……’,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그 취향은……’ 등 쉽게 내 주변의 사람들을 떠올리며 읽을 수 있었고, 이는 그들을 다시 관찰하고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한편, 저자는 부르디외가 말한 여러 가지 계급적 특성이나 계급 이동의 현상들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연구들을 엮어 함께 소개한다. 이러한 구성은 책을 읽고 흐름을 파악하는 동안, 내가 경험한 사람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떠올려 연결지어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직접적인 내 주변 사람을 넘어서 과거 프랑스가 아닌,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을 다시 관찰하고 이해해보는 경험의 실마리가 되어주었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 나의 개인적이고 아주 일상적인 취향의 영역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부르디외는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모두가 자신을 새롭게 이해한 지금, 저자는 이제 그간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던 「구별짓기」의 8장을 강조하며, 사적인 영역을 공적인 영역과 연결 짓는다.

    즉 문화와 취향이기만 했던 것을 정치적인 것으로 끌어오는 것이다. ‘왜 그들은 그런 취향을 선택하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하는데, 특히 하층계급이 오히려 더 보수적이고 자신들을 억압하는 문화를 지지하는 현상에 대해 논의한다.

    이렇게 진행된 책 속의 이야기는 지금의 우리나라에 매우 의미 있을 것이다. 놀랍고 의아했던, 계층별, 세대별 투표결과들에 대한 분석의 새로운 시작을 구성할 것이다.

    또 이전과 다르게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정치’가 새로운 모습과 다양한 형태로 다가오고 들어오는 요즘, 하나의 문화로서, 하나의 감성으로서 정치가 어떻게 이용되는지에 대한 분석도 필요할 것이고, 여기에 저자가 강조하는 부르디외의 ‘문화와 정치’에 대한 설명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책 전반에 사용되는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자신의 경제적, 문화적 자본 상황에 맞는 ‘자신의 언어’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교육과정 속에서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언어를 마땅히 갖지 못했을 때, 다른 계급의 취향을 무조건적으로 흉내 내거나, 자신에게 반하는 도덕이나 관념, 정책 등을 지지하게 된다.

    어떤 언어를 가르칠 것인지 정하는 것은 하나의 정치적인 결정이다. 개인적, 자연적 취향이라는 믿음 아래 경제적, 구조적 모순을 내 스스로 은폐시키도록 해왔던 결정을 폭로하고, 내 언어를 되찾자는 의지와 시간이 필요하다.

    홍성민을 통해 새롭게 읽는 부르디외는 너무나 쉽고, 차분하게 그런 의지를 돋운다. 그리고 정말로 그가 그려준 큰 줄기를 지도 삼아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를 직접 읽어볼 용기도 난다. 그리고 이러한 용기는 지금 여기를 새롭게 보는데 필요할 것이다.

    필자소개
    학생. sibroot5@hanmail.net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