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부들의 사회, 배제당한 언어
    2012년 07월 13일 11: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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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북조선과 같은 사회를 비판할 때에 늘 그 사회의 성역들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입니다. 세습적인 통치자들을 바꿀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비판마저도 할 수 없는 게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은 아마도 가장 일반적일 것입니다.

“언어의 단속”이라는 북조선 지배자들의 전략이 해방적 의미의 근대성의 근본적인 원칙들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야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전략이 남한 통치자들의 전략에 비해서 별로 효과적이지도 않다는 것도 사실인 듯합니다. 통치자들을 신주단지처럼 모셔온 사람들이, 그 통치자들이 전혀 신성시되지 않는 새로운 환경 속에 들어가게 되면, “숭배”의 태도는 너무나 쉽게 “환멸”과 “증오”로 바뀔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남한에 와서는 오히려 “강경 반북주의자”가 되는 일각의 탈북자들을 보시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실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는, 이쪽 전략은 훨씬 효율적입니다. 바로 “반대자들의 주변화” 전략입니다. 일부의 테마들이 이쪽에서도 사실상 공식/비공식 검열에 걸려서 공석에서 논의될 수 없지만 – 북조선 문제라든가, 김구 등 한국 극우파 민족주의 아이콘들의 진면목, “대한민국 정통성”의 허구성 등등입니다 – 나머지에 대한 “말”은 직접 단속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류언론이나 공식 서술 (교과서, 박물관 전시 등등)에서 배제된 소수자들의 발언들이 게토화되어, 소수자 차별과 배제에 익숙해진 다수에게는 단지 “또라이들의 이야기”로 비추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수에게는 어떤 새로운 환경에 가도 전혀 잘 동요되어지지 않는 사상적 “확신”이 생깁니다. “언어의 단속”이 만들어낼 수 있는 “믿음”에 비해서 훨씬 더 강한 “확신”이죠.

요즘 박근혜 공주님까지도 열심히 거론하는 “경제민주화” 문제를 보시지요. 신규 순환출자 규제부터 오너 (창업주 가문 – 사실상의 세습적 통치자)의 지배권 제한 내지 철폐를 위한 보다 포괄적인 규제까지는 다수가 접할 수 있는 언론에서는 쉽게 등장될 수 있는 언설입니다. 장하준 류의 재벌옹호론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김상봉 교수의 “노동자 경영권 획득” 이야기만 해도, 이미 “주류”가 완벽하게 묵살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이 정도의 “위험한 말”이면 남한의 공론장 구조상 게토화/주변화의 대상이죠. 김상봉 교수보다 더 “왼쪽”에 속하는 이야기는? 공론장에서는 그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예컨대 삼성전자의 경영에 노동자들이 참여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기업이 주식회사로 남자면 그 주식의 대부분은 국유화되고 나머지는 노동자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보통의 남한 사람이 평생동안 접할 확률은 몇 % 정도일까요?

아마도, 보통의 북조선 사람이 고 김정일 위원장이 백두산이 아닌 하바롭스크 근처의 한 병원에서 “유리 김”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접할 확률과 대략 비슷할 것입니다.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가 “북조선은 악한 독재, 우리는 선한 민주국가”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요?

지금 컴퓨터를 오래 쓸 수가 없어서, 한 가지 사례만 더 들겠습니다. 북조선의 세습적 통치자들의 공식적 역사가 상당부분 가공, 윤색, 과장, 허구로 짜여져 있듯이, 남한에서 가르쳐지는 공식적인 역사서술은 기본적으로 근대지상주의적인 목적론적 도식에 불과하고 광의의 “신화”에 가깝습니다.

한영우씨 등 관악학파 거두들이 애써 조선왕조 건국의 “진보적 의미”, “신진사대부”들의 “합리성”, “근세사”로서의 조선왕조사 성격 등을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많은 의미들에서는 성리학적인 지주-관료들의 등장과 집권은 조선사회 약자들의 삶의 조건을 악화시켰습니다.

노비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남과 동시에 그 신분 해방의 길이 막히고 말았고, 특히 여성들의 지위가 빠른 속도로 하락되기 시작했습니다. 세종대 이후로는 여성들의 “풍기 바로 잡기” 차원에서 그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까지 처벌되어지지 않았던 “간통사건”들에 대한 철저하고 잔혹한 수사, 처벌이 시작됐습니다.

유감동 (兪甘同)과 같은 재능 많은 여성 시인이 (실제로 기녀 생활했다 해도 양반 신문이라는 이유로) “40여 명의 남성들과 관계했다”고 해서 관비가 돼 곤장 맞고 머나먼 지방으로 쫓겨나야 됐는가 하면 관료 이귀산의 아내 유씨가 자신이 옛날부터 사랑해온 남자와 간통했다고 해서 사형까지 당하고 말았습니다.

유씨는 3일동안 음란한 여자라는 표찰을 달고 저자에 세웠다가 목을 베고, 조서로는 개국공신의 적장이므로 형을 면한다는 것이 세종의 결정이었다. 그림은 신윤복의 '춘화도'

세종이라는 임금은 “지나치게 자유로운” 여성들을 “모범 케이스” 삼아 성리학적인 도덕주의의 독재를 확립시킨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종시 이름을 맨날 듣고 광화문에서의 세종동상을 봐야 하는 우리들은, 이와 같은 이야기를 소수의 페미니즘 서적에서 아니면 쉽게 접할 수 있을까요? 북조선에서는 그쪽 나름의 민족주의적 신화들이 존재하는가 하면, 이쪽에서도 이쪽 나름의 민족주의적 신화들이 그대로 존재합니다. 형식상의 “말의 자유”가 있다 해도, 이 신화들을 그 누구도 제대로 흔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제도적인 “표현의 자유”가 있는 만큼 우리 사회의 무수한 터부들이 공고합니다. 소수자들이 철저하게 주변화된 “표현의 자유” 사회에서는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 다수가 강력한 “면역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우리에게 사회화 과정에서 아주 잘 내면화됩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가 “주류” 서술을 당연지사, “사실”로 알게끔 길들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가 주어져도, 우리가 특별히 다수의 의견과 다른 “표현”을 어차피 할 줄 모릅니다. 우리를 구속하는 족쇄들이 보이지 않는 족쇄입니다. 그러나, 이 족쇄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날, 이 족쇄들이 풀리기 시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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