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고난 환상과 상상력
    불굴의 음악 열정, 베를리오즈
    [클래식 음악 이야기] 엑토르 베를리오즈 (1803-1869)
        2015년 03월 09일 11: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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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를리오즈 편을 마지막으로 김정진 선생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20편 연재를 마친다. 그동안 연재글을 보내준 김정진 선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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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말. 말.

    “사랑은 음악에 대한 생각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음악은 사랑에 대한 생각을 보여줄 것이다.”

    우리가 아는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Four Seasons>(1723)는 어떤 음악인가? 이 작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을 뜻하는 표제가 있는 “표제 음악”(program music)이다. 싱그러운 봄, 천둥번개가 치는 여름, 풍부한 수확과 기쁨의 가을, 눈 덮인 풍경의 눈의 4계절의 여러 다양한 특징과 모습 등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마치 벽에 걸려있는 한 폭의 회화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 안에서 회화적인 표현을 좀 더 극적인 드라마로, 더 입체적인 효과를 표현하는 그 안에 스토리가 있는 곡이 있다. 그것이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 op. 14)(1830)이다.

    베를리오즈가 <환상 교향곡>을 작곡하게 된 동기는 한 여성에 대한 뜨거운 짝사랑에 기인한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즐겨보던 중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햄릿>의 오필리아 역을 맡았던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해리어트 스밋슨(Harriet Smithson)에 자신의 마음을 주고 만다.

    이러한 그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은 스미슨에 대한 베를리오즈의 절망과 분노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시켜 탄생된 작품인 바로 <환상 교향곡>이다. <어느 예술가의 생애>라는 부제를 단 이 곡은 자신의 자서전적인 내용을 담은 그의 정열적이고 로맨티시즘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4악장 구조를 가진 교향곡과는 달리 이 교향곡은 5악장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각 악장마다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 스토리는 내러이터나 성악가에 의해 불려지는 것이 아닌 순수 기악곡으로 오케스트라가 담당한다. 어떻게? 여기서 베를리오즈의 독창적인 작곡기법 중 하나인 극중 등장인물처럼 일정한 특성을 가진 “고정 상념”(idée fixe)으로 나타난다.

    이 “고정 상념”은 하나의 주제로서 자신이 그렇게도 짝사랑한 연인(선율로 표현하고 각 악장마다 리듬, 악기 등을 변화시켜 사용한다)을 상징하는 데 쓰인다. 전체 5악장을 통해 이 “고정 상념”은 여러 형태로 변하며 나타나고 연인의 외적 내적 상황을 묘사하게 된다.

    베를리오즈는 서문에서 “연인이 예술가에게 선율이 되고 이것이 동시에 고정 상념이 되어 도처에 나타나 들리게 된다.”고 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한 여자를 미친 듯이 짝사랑했고 그녀가 퇴짜놓을까봐 전전긍긍하던 차에 실연을 당한다. 이러한 좌절감으로 현실도피를 위해 아편을 먹지만 자살미수에 그치고 꿈속에서 단두대로 끌려간다. 그리고 그토록 짝사랑한 여인이 마녀가 되어 마녀들의 잔치에 나타난다는 내용이다. 각 악장마다 주제와 이야기가 있다.

    1악장: 꿈과 열정(Revieries Passions):

    젊은 예술가가 사랑할 애인을 만나기 전의 심정을 나타내는 우울한 가락이 연주되는 이 부분은 사랑하는 연인을 나타내는 고정 상념으로 나타난다.

    2악장: 무도회(Un bal):

    연인을 상징하는 고정 상념의 선율이 아름답게 나타난다. 군중 앞에 나타난 그녀의 자태는 뭇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연인은 무도회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춤은 계속되어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3악장: 전원 풍경(Scene aux Champs):

    예술가는 아름다운 경치를 쫓아 시골로 간다. 목가적인 2중주는 그 주위의 화창한 풍경과 솔솔 부는 바람을 표현하며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4악장: 단두대의 행진(La marche au supplice):

    젊은 예술가는 연인을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아 단두대에 끌려가는 꿈을 꾸는데 단두대로의 행진은 어둡고 거칠기도 하지만 눈부실 정도로 빛나기도 한다. 고정 상념의 선율은 여기에서도 잠시 나타나 죽음에 이르러 마지막 순간에 연인의 모습이 떠올린다.

    5악장: 악마의 축제날 밤의 꿈-마녀의 론도 사바(Songe d’unnuit du Sabbat-Ronde du Sabbat)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젊은 예술가는 자기가 무서운 악마들 사이에 끼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예술가의 장례식에 모여든 것이다. 이 때 야비하고 그로테스크한 무도풍의 연인의 선율이 나타난다. 여자의 자태를 본 악마들이 기뻐서 지르는 고함, 난잡한 연회의 잡음과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베를리오즈

    엑토르 베를리오즈 (Hector Berlioz, 1803-1869)

    이러한 이야기를 전개하기위해 베를리오즈는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의 개성 있는 음색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그 표현력을 넓히는데 있어서도 그의 혁신적인 면을 발휘했다. 다른 작곡가들의 총보에서는 보기 힘든 성부 분할을 시도했다. 즉 각 악기 군을 세부적으로 분할해 여러 음향 층을 만들었다.

    특히 마녀들의 축제를 묘사한 5악장의 도입부의 현악기군이 그러하다.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은 각각 세 파트로 나뉘고, 비올라는 두 파트로 분할되고 있어 통상 5성부로 나뉘는 현악기군의 성부는 무려 10성부로 분할되어 두터운 음향 층을 형성한다. 이러한 성부 분할 기법으로 한밤중의 스산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더할 나위 없이 잘 나타내고 있다.

    더 나아가 베를리오즈는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에게 범상치 않는 주법들을 요구했다. 현악 주자들은 잦은 트레몰로(tremolo, 한 음을 빠르게 반복하는 주법)와 아르페지오(arpeggio, 펼친 화음)뿐 아니라, 두 줄을 한꺼번에 긋는 이중 음이나 현을 손으로 퉁기는 ‘피치카토’(pizzicato), 약 음기를 끼고 연주하는 ‘콘 소르디노’(con sordino)등의 다양한 주법을 능숙하게 구사해야만 했다.

    게다가 거의 보기 어려운 ‘콜 레뇨’(col legno, 활대로 현을 치는 주법) 주법의 경우는 5악장에서 마치 해골들이 춤을 출 때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듯 오싹한 느낌을 전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베를리오즈는 한 여성에 대한 자신의 열렬한 사랑을 표제 교향곡인 <환상 교향곡>으로 승화시키고 그 여인을 나타내는 “고정 상념”이 곡 전체에 끊임없이 나옴으로써 그녀의 존재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준다. 그녀가 즉 주인공이라는 셈이다.

    그는 교향곡에서 이야기를 끌어나갈 줄 아는 작곡가일 뿐 아니라 관현악 곡에 어떤 제목을 붙여야 할 줄도 아는 작곡가이기도 했다. 베를리오즈가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 (1838)를 쓴다. 초연은 대실패로 끝난다.

    그는 거기서 관현악곡 몇 개를 뽑아 약간 손질한 후 콘서트용 서곡으로 다시 발표했다. 그 때도 제목을 <벤베누토 첼리니>였다. 이 또한 실패로 돌아갔다. 의욕을 잃은 베를리오즈는 궁리 끝에 한 가지 묘안을 냈다.

    이번에는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의 제 2막 서곡을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제목만 <로마의 사육제>(Le Carnaval romain ouverture pour orchestre op. 9) (1844) 서곡으로 바꾸어 또 한 번 무대에 올렸다. 결과는 대 히트였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내 예감이 적중했군, 청중은 음악을 들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제목을 들으러 오는 거야!” <로마의 사육제>는 베를리오즈가 로마에서 행해진 카니발을 직접 보고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작곡된 곡이다.

    베를리오즈의 또 다른 형태의 집착이 엿보이는 일화 하나가 있다. 베를리오즈의 옆집에 그다지 소질이 없는 아가씨가 매일 10시간씩이나 피아노를 두들겨댔다. 두들기는 곡은 베토벤의 소나타 14번(월광)이었다. 그런데 어떤 부분에 ‘라’음으로 쳐야 할 데를 항상 반음 올라간 ‘올림 라’음으로 쳐대는 것이었다. 참다 못해 베를리오즈는 아가씨에게 편지를 쓴다.

    “아가씨, 위대한 작곡가의 작품을 끈기 있게 연습하시는 데 대해 우선 경의를 표합니다. 다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몇 마디 고언을 할까 합니다. 리듬과 멜로디, 하모니, 무엇보다 작곡가로부터 그 곡을 헌정 받은 아름다운 여성 줄리엣 귀차르디를 위해서라도 저의 고언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아가씨, 제발 마지막 악장의 열번째 소절 끝부분은 ‘라’음으로 쳐주십시오. 그것이 반음 높이 들려올 때는 정말 두렵습니다. …검은 키 대신 흰 키를 쳐주시면 더없이 고맙겠습니다.”

    편지를 보낸 다음날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베를리오즈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그 집 문지기에게 물었다. “아가씨는 어디 갔나요?” “아닙니다. 아파서 누워있습니다. 오늘은 컨디션이 더 내려갔어요.” “아주 내려갈 것까지는 없고 반음만 내려하면 돼요. 반음만.” 베를리오즈는 힘주어 말했다.

    틀린 음을 열심히 끈기 있게 쳐대는 아가씨나 그것을 어쩔 수 없이 끈질기게 들을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을 결국 지적해 주었던 베를리오즈 둘 다 서로 만만치 않은 상대였던 것 같다. 그러한 집착을 보여준 베를리오즈는 ‘음악의 악성’이라고 불리우는 베토벤의 그 유명한 작품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그러했을 것이다.

    베를리오즈는 끈질긴 기질과 불굴의 음악정신을 가진 낭만주의 작곡가이다. 그의 환상과 탁월한 상상력으로 낭만시대를 대표하는 <환상 교향곡>을 작곡하였다. 원래 “고정 상념”이라는 말은 정신과 병 의학에서 ‘환각’을 위한 용어로 쓰인 것인데 베를리오즈가 이를 사용한 것은 교향곡의 줄거리가 환각에 빠진 주인공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베를리오즈 자신의 환각 상태가 “고정 상념”을 통해 <환상 교향곡>에 녹아들어 있다.

    그의 “고정 상념”은 낭만시대의 주요 기법으로서 리스트의 “교향시(Symphonic Poem)” 그리고 바그너의 “라이트 모티브”(leitmotiv, 유도동기, 특정 인물이나 특정상황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짧은 주제선율이며, 동일한 등장인물이나 특정 상황을 묘사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나타남으로써 극의 진행을 음악으로 묘사하는 기법)로 확장 발전되는 기초가 된다.

    “라이트 모티브”란 오페라에서 주인공이 등장할 때마다 특정 선율, 화음 등이 나오는 것이다. 오늘날의 영화에서 ‘…테마’라는 식으로 영화음악이 진행되는 것도 일부는 바그너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베를리오즈가 오늘날 영화음악의 씨앗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문학과 음악을 넘나들었고 전통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던 그는 초대형 오케스트라을 위한 작품들을 시도했다. 그의 <레퀴엠 미사> (Requiem op. 5, Grande Messe des morts)(1837)에서는 140명의 오케스트라 연주자와 대규모 합창단, 네 그룹의 관악기와 팀파니가 무대의 네 귀퉁이에 배치되어 연주하도록 작곡되었다. <테데움>(Te Deum, op.22 (1849)은 독창자와 대규모 오케스트라, 오르간, 각각 100명으로 구성된 2개의 합창단, 600명의 어린이 합창단이 연주하게 되어 있다.)

    우리가 가사가 있는 성악음악을 들을 때는 가사위주로 청취하게 되며 음악은 하나의 배경음악으로서 또는 무대 위의 백 댄서로서의 역할로서 그리 중요하게 들리지 않을 때가 많다.

    반면 우리가 순수 기악 음악을 들을 때는 어떤가. 거기에는 가사가 없기에 우리는 굳이 가사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우리 나름의 그 어떤 상상과 환상도 가능하다. 오로지 음, 화음, 리듬, 박자 등의 변화 속에서 우리들의 경험, 우리들의 이야기들을 감히 그 기악 작품에 감정 이입을 시켜 들을 것이다.

    베를리오즈는 그러한 것을 우리들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표제 교향곡인 <환상 교향곡>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의 내적 감정을 여과 없이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그의 사생활이 일순간 노출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동시에 우리들의 상상력을 동여매어 놓는다.

    그의 음악적 아이디어와 음악외적 상념으로 가득 찬 <환상 교향곡>은 우리의 “환상 교향곡”이 아닌 베를리오즈가 자신의 “환상”속으로 우리를 빠뜨려 그의 심리적 내면적 감정과 공유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글루크(Christoph W. Gluck, 1714-1787)의 오페라에 매료되어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베를리오즈에게 그의 어머니는 간곡히 타일렀다. “얘야, 의사가 되어 훌륭한 일을 하면 천당에 갈 수 있지만, 음악가가 되는 것은 지옥을 향해 돌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어머니의 말에 베를리오즈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머니, 저는 천사들이 우두커니 서 있는 조용한 천당보다는 소란하더라도 음악이 있는 지옥을 택하고 싶습니다.”

    그의 “소란스러운 음악이 있는 지옥”은 그의 <환상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인 “악마의 축제날”을 상기시켜주기까지 하는 어쩌면 그는 자신의 미래의 작품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필자소개
    한양대 음악대학 기악과와 동대학원 졸업. 미국 이스턴일리노이대 피아노석사, 아이오와대 음악학석사, 위스콘신대 음악이론 철학박사. 한양대 음악연구소 연구원, 청담러닝 뉴미디어 콘테츠 페르소나 연구개발 연구원 역임, 현재 서울대 출강. ‘20세기 작곡가 연구’(공저), ‘음악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번역), ‘클래식의 격렬한 이해’(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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