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자부심 느낄
문명의 유일한 대상이다”
[책소개] 『책의 문화사』(데들레프 블룸/ 생각비행)
    2015년 03월 01일 11: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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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매체혁명

책은 네 번의 매체혁명을 거쳤다. 육체의 기억에서 문자 기억으로, 파피루스 두루마리에서 코덱스 도서 형태로, 필사본에서 인쇄본으로, 인쇄본에서 디지털 도서로 변모한 것이다.

첫 번째 매체혁명을 설명하려면 유럽 도서문화의 기원인 호메로스(Homeros)라는 이름으로 시작해야 한다. 기원전 8세기에 그가 작품을 쓸 무렵, 입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를 문자로 기록하는 형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순간을 유럽 역사 최초의 매체혁명이라 부를 수 있다.

인류는 이전까지 돌, 점토 조각, 나무나 동물 가죽에 글을 썼다. 하지만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사용하면서 비로소 복잡한 내용의 문맥을 문자로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제대로 된 의미의 책이 탄생한 것이다.

말로 전하는 방법이 아닌 문자를 기록하는 새로운 방식에는 확실한 장점이 있었다. 문학 창작물은 집필자가 나름의 형식을 갖춰서 쓰기 때문에 동시대인과 후대인들이 모두 같은 글을 읽는다.

예전에는 가수나 음유시인이 내용을 빼거나 덧붙이거나 아예 바꿔버릴 수도 있었지만, 책은 원본에 충실하게 (만약 필사본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내용을 재생산할 수 있고, 시간에 관계없이 언제든 읽을 수 있다.

문학의 향유자가 청자에서 독자로 바뀌면서, 독자는 작품에 대한 시·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내용을 쉽게 퍼뜨리고 -우선은 협소한 범위에서라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었다.

첫 번째 매체혁명의 결과로 저자는 작품의 최종 형태를 확정할 수 있게 되었으나, 이로 인해 자신의 지적 소유물인 작품을 도용하는 행위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

누군가 필사본을 하나씩 만들 때마다 저자가 일일이 추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또 필사한 사람이 의도했거나 혹은 무신경하거나 실수 때문에 작품의 내용이 바뀔 수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어떤 작품을 자기가 쓴 것이라고 내놓아도 막을 수 없었다. 설사 저작권 도용에 대해 전해 들었다 한들 그 시대에는 먼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일일이 대응할 수 없었다. 통신과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의 문화사

두 번째 매체혁명

기원전 2세기까지 긴 글은 오로지 파피루스(Papyrus)에 기록했다. 고대 서점에서는 동방의 가두시장에서 나는 것 같은 냄새가 났다.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백향목 기름과 사프란을 칠했기 때문이었다.

가장자리가 풀리지 않도록 두루마리 단면은 광택을 내고 색을 들였다. 두루마리는 쉽게 사용할 수 있게 살을 중심으로 돌려 감도록 만들었다. 강독을 한 뒤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다시 처음 상태로 되감았다.

각각의 작품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위쪽 가장자리에는 티툴루스(titulus)를 달았는데, 이 띠에 작가와 작품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책을 읽은 후 두루마리들을 장이나 서가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도서관(Bibliothek)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책을 의미하는 비블리온(b?blion)과 서랍장을 의미하는 테크(theke)의 합성어다.

고대 작가들은 문서 두루마리를 빈번하게 사용하면, 이를 200년 이상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견고함이 떨어지는 파피루스의 단점을 양피지가 대체했다. 이로써 기원전 2세기부터 양피지에 옮긴 그리스어 문서들이 낯설지 않게 되었고, 1세기에 양피지는 학술적인 작품을 담는 확실한 재료가 되었다. 이 새로운 종이는 장점이 뚜렷했기 때문에 인기가 급상승했다. 보존력이 뛰어난 양피지는 양면에 문자를 적을 수 있어 공간과 소재를 절약할 수 있었다.

양피지에서 발전한 전혀 새로운 방식의 도서 형식이 발명됨으로써 유럽 도서 역사의 두 번째 매체 혁명이 일어났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책의 모습인 코덱스(Codex)라고 하는 특수한 도서 형태가 1세기에 생겨난 것이다.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코덱스에 의해 밀려나면서 책값이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이는 양피지가 비싸긴 해도 모두가 원하는 재료였기 때문이다.

중세 필사실은 코덱스의 산실이었다. 그곳에서 필사자는 자신이 맡은 원본을 실수 없이 베껴 써야 하고, 편집자는 동일한 작품의 상이한 수서본들 중에서 원본 텍스트를 재구성했고, 주석가는 더 나은 이해를 위해 사본에 주해와 원전 표기를 달았다. 필사화가와 특수 도서 장식화가는 오늘날에도 경탄과 탄성을 자아내는 예술서적을 만들었다.

교회에 설치된 학교와 수도원 학교 외에 11세기부터 유럽에 대학이 건립되기 시작했다. 이로써 교회의 지식 및 교육 독점 상황이 서서히 와해되기 시작했다. 이런 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양피지로는 연구 문헌, 법률사무실 문서, 학문과 그밖에 문헌 등으로 끊임없이 증가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특히 가격이 문제였다.

중세 후기 유럽은 기록을 위한 새로운 재료를 필요로 했다. 이를 위해 스페인에서는 1150년에, 이탈리아에서는 1250년에, 프랑스에서는 1338년에 최초의 제작소가 세워졌다. 이 시대에 책을 만들 새로운 재료는 바로 종이였다.

세 번째 매체혁명

양피지와 비교하면 종이는 스무 배나 저렴했지만 견고했다. 많은 양을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양피지에서 종이로 재료가 바뀌면서 책은 중세시대에 누렸던 독점적인 지위와 성스러운 후광을 잃어버렸다. 책은 성장하고 있는 궁정과 도시 고위층의 매체가 되었다. 그들은 이미 성직자의 후견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11세기 중엽부터 13세기 말까지, 250년 동안 대학과 사무실의 건립, 종이의 전파, 사회의 완만한 도시화, 안경 발명 등의 변화를 거치는 사이에 독서에 익숙한 상위층이 생겼다. 또한 11세기 말부터 13세기 말까지 이뤄진 십자군전쟁은 정치·군사적으로 실패했지만, 이 시대에는 동방과 밀접한 무역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번창하는 무역과 팽창하는 금융업의 수혜자는 서서히 성장하는 시민계급이었다. 그들은 자유롭고 자의식을 갖춘 계층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부유한 시민계층은 귀족과 성직자 계급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새로운 도시문화를 만들어냈다. 이들 덕분에 도서 생산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손으로 필사하는 방법으로는 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오늘날 크기가 고르고 균형 잡혀 있고 눈에 띄게 아름다운 손글씨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런 경우 우리는 “마치 인쇄한 것처럼 글을 쓴다”고 말한다. 그런데 구텐베르크는 정반대로 생각했다. 그는 애초에 손글씨를 모범으로 삼아 필사본처럼 인쇄하기를 원했다.

구텐베르크의 발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단순하지만 활자를 이용한 인쇄라는 점에서 그의 천재적인 발명품은 매우 중요하다. 더구나 그는 현존하던 인쇄기술을 활판인쇄에 맞게끔 상당히 많은 부분을 개선했다. 결정적으로 구텐베르크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납, 주석, 안티몬 같은 금속을 최적의 비율로 합금해 다양한 활자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구텐베르크의 발명품은 다양한 기자재를 세심하게 맞춰낸 것이지만, 이는 기술적인 측면의 특수성을 기술한 것뿐이다. 활판인쇄술이 매체의 역사에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 활판인쇄 방식은 책을 찍을 때 판(版)을 제작해 완벽하게 동일한 내용을 무제한으로 재생산할 수 있었다.

그 시대에는 일반적으로 300~500권을 한 쇄(刷)로 찍었다. 필경사가 한 권을 제작하는 데 드는 시간의 한 토막만 있어도 수백 부의 책을 생산할 수 있었다. 또한 납 활자는 다른 책을 인쇄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고, 전혀 다른 형태의 활자를 주조하기 위해 다시 용해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발전된 인쇄 방식으로 말미암아 단행본의 가격이 급격히 떨어졌다. 독서를 원하는 폭넓은 계층이 손쉽게 책을 구할 수 있었다. 책이 유일한 대중매체가 되는 길이 그 시대에 열렸다.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은 가장 거대한 매체혁명이었다. 이로써 인류는 도서문화 역사의 새로운 장으로 들어섰다. 여타 정치혁명과 달리 구텐베르크의 매체혁명은 단시간에 이뤄진 결과가 아니라 50년에 걸쳐 진행되었으나 구텐베르크의 기술은 지식의 민주화와 정보화된 공론장의 형성을 촉진했다.

“인쇄술은 신이 내린 최고이자 최선의 선물이다. 왜냐하면 신은 이런 수단을 통해 진정한 종교를 세계 끝까지 알리고자 하시며 모든 언어로 전달하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어느 탁상연설에서 밝힌 루터의 이런 확신은, 그가 자신의 이념을 유포하기 위해 인쇄술에 어떠한 가치를 두고 있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독일어 성경의 발행부수와 관련된 기록은 마르틴 루터가 16세기의 가장 성공한 작가였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 아니라 종교개혁이 출판물을 타고 바람처럼 빠르게 퍼졌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빛과 같은 속도로 인쇄되어 광범위하게 퍼진 속보책자가 없었다면 종교개혁의 양상은 다르게 전개되었을지도 모른다.

네 번째 매체혁명

사람들은 인쇄된 책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인쇄된 책이 예술, 건축 혹은 사진을 담은 화려한 화보집으로, 사랑스럽게 만들어진 아동 및 청소년 도서로, 대중문학과 질적으로 가치가 높은 전문도서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실용서와 사전, 취미와 여가를 위한 문학 등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런 분야의 책이 인쇄본으로 5년 아니 8년 후에 언급할 만한 매출을 낼 수 있다고 진지하게 믿을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점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가까운 미래에 책은 단지 디지털로 나타날 것이다. 매체혁명의 정점은 전자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순간 도래할 것이다. 구텐베르크시대의 활판인쇄기는 새로운 매체의 기술적인 가능성을 인식하고 사용될 때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전자책에서는 광속으로 완수된다. 텍스트, 이미지, 문서, 웹 링크, 비디오, 오디오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이 전자책에 사용된다. 새로운 매체는 이제 막 시작되었으나 엄청나게 방대한 복잡성, 기능성, 편리성을 지닌 하나의 생산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인터넷이 점점 일상화되는 이 시대에 문화 콘텐츠에 대한 오픈액세스와 지적 소유물에 대한 저작자의 권리가 충돌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네 번째 매체혁명의 결과로 우리는 지적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보장하거나 아니면 법적으로 오용되는 현실 앞에서 굴복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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