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예정자라는 이름
[청춘일기]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2015년 02월 03일 11: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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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20대 청춘들의 삶과 고민, 생활의 이야기를 담는 <청춘일기> 연재를 시작한다. 한 명이 고정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20대 필자들의 삶을 담은 이야기를 게재할 예정이다. 관심을 부탁드리며, 20대의 적극적인 기고를 부탁드린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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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에서 졸업예정자로 분류된 이후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토익 공부도, 인턴 활동도 아닌 SNS 계정을 비활성화 하는 것이었다. 비활성화 상태란 계정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휴식상태를 갖는 것이다. 화학용어에서는 생물이 활성을 잃는 상태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졸업예정자인 나는 잠시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휴면기간을 갖기로 했다. SNS 속에는 행복한 사람들의 얼굴이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어두운 그림자를 비추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다. 내가 그들에게 측은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활성 상태가 아닌 비활성 상태에 머물렀다.

가장 큰 이유는 왠지 모를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것은 SNS 계정만을 비활성화 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나의 생활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주변 지인들이 연락해올 때마다 인사처럼 묻는 말이 있었다.

“힘들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살아가던 나는 생각했다. 난 그렇게 힘들지 않은데. 힘들어야만 하는 시기구나. 나는 그들의 안부에 “그럭저럭요.” 혹은 “네 힘드네요.” 정도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냥 행복한 날들만 보낼 수는 없는, 취직 준비로 힘들어야만 하는 20대 중반의 졸업예정자였다. 대학에서 글 쓰는 것을 전공으로 했던 난, 스펙 쌓는 일보다는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는데 일관했다. 그러나 나에 대해 알아가기는커녕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 보니 어느새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있었다.

나에게 그 시간은 좋아하거나 잘하는 것을 찾기에 너무나도 짧았다. 누군가는 스펙을 쌓기 충분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스펙 쌓는 것과는 무관한 일들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청춘 멘토들의 말처럼 내가 무작정 하고 싶은 일들을 하다 보면 미래의 나는 분명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기에 “그래도 토익 점수나 자격증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와 같은 말들을 웃어넘길 수 있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현실에 얽매여 있다면 내가 원하는 일들을 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졸업예정자로 사는 요즘, 남들처럼 살아도 막막한 세상에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해대고 다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니 나에게 남은 것은 평점 3.8의 성적과 700이 넘는 학자금 대출뿐이었다.

더러는 나에게 대학생 신분을 이어가기 위한 졸업유예를 신청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학생 신분일 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으므로, 취업을 준비하는 것이라면 졸업을 미루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졸업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끝이 결정되지 않은 기간 동안 불안감에 지쳐 현실에 안주해 버리고 더 이상 내 미래에 대해 기대하지 않게 될 것 같았다. 나에게 졸업예정자로 살 수 있는 기간은 한 달도 남지 않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나는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나의 결정은 어떤 죄악감의 연속이었다. 스펙을 쌓고 자기소개서를 쓰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여행을 가겠다고 결정했으니. 딸자식만 바라보고 사는 부모님께 불효자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남들은 나를 도피자 혹은 낙오자로 바라보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가기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가 필요했다.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졸업예정자라는 이름을 가진 나를 채용하려는 고용주는 많지 않았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찾아간 곳이 교복점이었다. 2달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하겠다는 조건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일하게 된 교복점은 인기 있는 연예인의 광고는 없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아이들보다는 부모님들이 선호하는 중소기업의 교복업체다.

교복

교복가게 자료사진

이곳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표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학생들의 표정은 대부분 두 가지로 나뉜다. 어리숙한 표정으로 부모님의 소매를 잡고 들어오는 학생들 또는 브랜드 업체에서 사고 싶지만 억지로 끌려와 입술이 삐죽 나온 학생들이 그렇다.

엄마를 따라 억지로 들어온 학생들에게 원단도 다르지 않고, 그저 광고 때문에 같은 교복이 비쌀 뿐이라며 설득해보려 하지만 학생들에게 교복의 질은 중요치 않다. 그들에게 중요한건 이름과 가격뿐이니까.

비싼 이름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나 이름에 집착하는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내가 겪어온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겪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졸업예정자 혹은 취준생 혹은 청춘 혹은 청년. 내가 가진 가장 비싸고 아름다운 이름 중 하나는 아마도 ‘청춘’이라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청춘’이라는 단어에 대해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기성세대는 눈만 높은 청춘들이 취직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사회보다는 청춘들의 마음가짐을 탓했다. 위로를 빙자한 상술로 청춘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청춘으로 불리는 것이 겁이 났다.

하지만 나는 청춘이라는 이름을 잃고 싶지 않다. 청춘이 가진 긍정의 기운을 잃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당연한 아픔이 아닌 당연한 행복을 찾고 싶다.

이것이 내가 결정한 여행이 죄악감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부푼 기대로 느껴야 하는 이유다. 남들이 집착하는 비싼 교복이 아닌 이름 모를 브랜드의 원단도 다르지 않은, 새로운 옷을 입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나의 여행에 많은 짐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적당한 설렘과 도전정신이면 충분하다고 믿는다. 겨울잠은 이쯤이면 충분하다. 이제 나는 깨어나야만 한다.

필자소개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해 문화재단 입사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는 생애 첫 비행기를 타기 위해 교복전문점에서 한 달 꼬박 쉬지도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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