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평범한 책벌레들
[책소개] 『책이 좀 많습니다』(윤성근/ 이매진)
    2015년 01월 10일 12: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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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서재가 궁금하다

책 읽기는 괴롭다. 좋은 대학 가는 지름길이고, 자기 계발의 수단이며, 필수 교양의 잣대다. 한 해에 4만 3146종(2013년)이 쏟아져 나오는 한국 출판계는 늘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다.

몇 만 권을 자랑하는 장서가들은 늘 있지만, 베스트셀러는 줄어들고 판매 부수는 떨어진다. 종이책은 이제 끝났다지만 지금도 이 사람은 책을 만들고 저 사람은 책을 산다. 책 많이 읽는 ‘비정상’들의 각개 약진 덕분에 오늘도 책은 만들어진다.

《책이 좀 많습니다》는 내 옆에 있고 우리 동네 사는 평범한 애서가 23명의 이야기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매진, 2009)을 비롯해 책과 책 읽는 사람들 이야기를 살갑게 들려주는 헌책방지기 윤성근이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장서 수 몇 만 권을 자랑하는 저 위의 장서가가 아니라 그저 허름한 책꽂이 몇 개 있는 내 옆의 애서가다. 넓고 좋은 아파트를 책들에게 내주고 빌라 반지하에서 월세 사는 사람, 도깨비 책이나 고양이 책 등 어느 한 분야만 모으는 책 수집가, 유명인 못지않은 큰 서재를 가진 사람부터 책 없이 못 사는 ‘책 바보’까지. 수의사, 번역가, 대학생, 회사원, 교사, 백수 등 하는 일도 다 다르다.

애서가들의 책 이야기를 듣다보면 모르던 책을 알게 되고 겹치는 책을 읽게 된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가 위에 있다고 생각하거나 책 많이 읽은 것 갖고 허세 부리지 않는다. 자기가 서 있는 곳에서 책 읽으며 묵묵히 살아가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애서가들이 꼭꼭 숨겨놓은 자기만의 서재를 이상북지기 윤성근이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글마다 ‘함께 읽고 싶은 책 이야기’를 덧붙였다.

책 많다

장서의 괴로움? 애서의 즐거움!

책 읽기는 즐겁다. 좁은 집에 책이 많이 쌓이면 괴로워도, 책 읽기는 즐겁다. 장서의 괴로움은 애서의 즐거움을 이기지 못한다.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눈에 잘 안 띄는 존재들이 있다. 장서의 괴로움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애서의 즐거움을 누릴 줄 아는 평범한 애서가 23명의 서재를 들여다보자.

먼저 ‘책 밀림’이라고 할 정도로 서재에 책이 많은 애서가가 있다. 대학생 때 이미 3000권을 넘은 책을 갖고 있었다는 국어 교사 허섭은 여기저기 팔거나 주고 남은 책이 지금도 2만 권이 넘는다. 아예 컨테이너에 개인 도서관을 만든 프리랜서 윤성일, 붙박이 옷장을 고쳐 비밀 서재를 만든 자유기고가 전영석의 서재에도 책이 좀 많다.

다음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특정한 분야의 책을 많이 갖고 있는 애서가도 여럿이다. 추리소설을 중심으로 한 장르 문학으로 책장이 꽉 찬 번역가 이경아, 좋아하는 시인들의 전집을 잘 갖춰놓은 국어 교사 김주연, 자기만의 부엉이 소굴에 만화책을 꽉 채워놓은 북디자이너 이종훈, 요괴와 도깨비로 작은 도서관을 꾸린 대안 학교 교사 전희정, 고양이 책과 고양이 모양 장식품으로 가득한 방에서 고양이를 키우고 돌보는 수의사 임희영, 세계 문학만 따로 모은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는 대학원생 이시욱, 판타지 소설책에 푹 빠져 사는 대학생 이종민, 아예 아이들하고 함께 역사를 공부하는 작은 도서관을 만든 도서관지기 오경선은 어찌 보면 ‘오타쿠 애서가’다.

관심의 폭이 넓은 뿌리줄기식 애서가도 많다. 이런 이들의 서재에는 중앙으로 집중하지 않고 배타적이지도 않으면서 저마다 중심이 되는 책 밀림이 펼쳐진다. 어떤 책이 관심을 끌면 관련된 책은 직성이 풀릴 때까지 사 모아 읽는 국어 교사 허섭, 전공의 벽을 넘어 역사와 철학과 사회학의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대학생 김바름, 대학에서 동양사를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경제 신문 기자를 거친 서찬욱, 국어교육과를 나와 북을 치며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판소리 고수 임영욱, 벤야민과 푸코와 지젝을 중심으로 인문학 전반을 아우르는 책장을 가진 인문학 연구자 최성희, 해외 신문부터 소설까지 한 달에 대여섯 권을 정독하는 활자 중독자 선교 정보 전문가 김재서, 문학과 역사와 사진과 여행이 어우러진 회사원 정무송의 서재에는 세상의 많은 책들이 포근한 그늘을 드리운다.

자신만의 독특한 책 분류 방식과 책 읽기 방식을 가진 애서가들 이야기도 재미있다. 책 커버를 뒤집어 들고 다니는 대안 학교 교사 김유림, 책끼리 키를 맞춰주는 바리스타 김석봉, 책을 나눠 꽂으며 사람들의 생각과 삶에 감동한다는 사서 교사 이영주, 책은 꼭 사서 보고 접어서 흠집을 내지 않으며 밑줄을 긋거나 글씨도 쓰지 않는 프리랜서 편집자 겸 여행 작가 이시우, 인터넷에 기대지 않고 아직도 일일이 책을 뒤져 공부하고 강의하는 농사짓는 수학 교사 조종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장서의 괴로움은 애서의 즐거움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책 사고 책 읽고 책 나누는 사람들

책 읽기는 사람 읽기다. 윤성근은 헌책방에서 일하면서 평범한 사람들 중에 얼마나 많은 애서가들이 있는지 조금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이런저런 사람의 책장을 요모조모 훑으며 사람 보는 눈을 길렀고, 척 보면 보이는 애서가들의 넉넉한 책 인심도 알게 됐다.

다른 무엇보다 책을 먼저 생각하는 고집스러움에 놀라고, 자신만의 책을 향한 한없는 애정에 감탄하다, 먼지 쌓인 책에 이별을 고하는 겸손함에 고개를 끄덕인다.

애서가들의 책장에서는 소수자들의 비정상 회담이 열리고, 한 시인의 전부를 알 수 있으며, 책 좋아하는 사람이 그린 꿈의 지도를 볼 수 있고, 자기만의 판타지가 펼쳐지며, 책무지개가 떠올라 하얀 밤을 지새우게 만들고, 책 읽는 즐거움이 새록새록 돋아나며, 책 욕심을 벗어던지는 비우기의 도가 실현되고, 세계 문학을 일별하는 궁극의 리스트가 만들어진다. 책 속에 담긴 우주는 책 읽는 사람만큼 여러 빛깔을 띤다. 책 읽기는 세상 읽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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