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온하게
나이 들 권리가 있다”
[책소개] <나이 든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빌헬름 슈미트/ 책세상)
    2014년 12월 27일 03: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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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발달로 ‘늙음’을 정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커지면서 ‘나이듦’은 고독, 불안, 우울, 빈곤 등과 같이 부정적이고 불쾌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젊음이 경쟁력인 시대, 은퇴 설계가 필수인 시대, 주름을 없애고 몸을 단련하며 노후 연금과 은퇴 후 취업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오늘도 늙음에 맞서 싸워나간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나이듦에 대한 초조함과 두려움의 반영이 아닐까. 나이듦은 이렇게 어떻게든 무찔러야 하는 정복의 대상일까.

‘영혼의 치유사’로 불리는 독일의 저명한 대중 철학자 빌헬름 슈미트는 나이듦에 대한 부정 일변도의 세태에 반기를 들며 삶과 나이듦의 의미를 새로운 관점에서 살피고 있다.

죽는 순간까지 평정을 잃지 않았던 어머니의 노년과 60 문턱에서 자신의 노년을 준비하는 저자 스스로의 삶에 대한 성찰은 저자로 하여금 나이 들어가는 삶에 있어 ‘마음의 평정’이란 가치에 주목하게 했다. 늙음을 부정하며, “사그라지는 인생에 대한 울분을 피어나는 생명에 분풀이하는 그런 분노의 노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멋지게 나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이듦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나이 든다는 것’은 각종 능력이 쇠하고 외형이 볼품없어지면서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의 성장을 돕고 경험을 이어 전달하며 인생의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가면서 ‘늙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인간들을 욕망으로 선동하고 교란하며 삶을 소용돌이치게 하면서” 단순히 늙어가게 만든다. 때문에 삶이 각박해지고 서글퍼질수록 노년을 향해 가는 우리는 평정한 일상과 평정한 노년의 삶에 대해 동경하게 된다.

평정은 지금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남은 삶을 더 풍성하게 해줄 정신적 원천이다. 특히 평정은 고대 에피쿠로스의 아타락시아(불안해하지 않음) 이래 중요한 철학 개념 중 하나였다.

고대 철학의 실천적 성격을 이어받은 저자는 이 개념에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서 삶의 고통과 의미 상실을 치유하는 ‘삶의 기술’로서의 가치를 부여한다. 하지만 평정은 바란다고 저절로 생겨나는 것도, 나이가 든다고 자연히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평정은 온 생에 걸쳐 추구하고, 삶을 오롯이 마주하며 인식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가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삶의 기술로서의 철학과 철학의 대중화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저자의 삶에 대한 통찰과 어렵지 않고 담백하게 풀어낸 사색의 결과, 그리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삶에의 조언들은 불안과 좌절, 초조함으로 점철된 우리에게 유의미한 삶의 지표가 되어줄 것이다.

나이 든다는 것

마음의 평정은 내 삶이 가치를 지닌 채 잘 흘러가게 한다

하루하루의 일상이 쌓여 ‘삶’이라는 큰 덩어리를 만들어낸다. 저자는 삶을 네 분기로 나눠 각 시기가 지닌 의미를 파악하여 다시 “전체로서의 삶”의 이해하고 의미를 살피는 것으로 평정을 향한 첫발은 내딛는다.

이른 아침과도 같은 인생의 첫 분기에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익히며, 나에게 부여된 가능성들을 발견해, 인생의 밑거름과 삶을 개척하는 원동력을 만든다. 늦은 오전과도 같은 인생의 두 번째 분기는 스스로를 평가하고 가늠하는 때이다. 잠재력을 실제 능력으로 입증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은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지만, 이때만 느낄 수 있는 삶에 대한 역동성은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잊기 쉽게 만들어준다.

앞으로만 향해 있던 삶이 차츰 회고적이 되면서 우리는 인생의 세 번째 분기로 접어든다. 중년의 위기와 갱년기를 겪으면서 삶에 대한 시각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나이듦에 대한 거부감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저자는 지금까지 쌓아온 능력을 인생 전반에 걸쳐 발휘하면서, 이 시기에만 가능한 것들을 익히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것을 내려놓는 것, 부족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닌 죽음을 생각해보는 것, 살아온 인생을 찬찬히 떠올려보는 것. 우리는 이런 것들에 익숙해지면서 죽음과 맞닿아 있는 인생의 네 번째 분기를 맞이한다. 생애 초기로부터의 발달 과정을 역방향으로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되는 이 시기는 ‘죽음’이라는 마침표로 생을 마감 지어준다.

전체로서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노년을 향하는 시기에만 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이런 특권과도 같은 사색의 기회를 통해 나이듦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삶의 각 시기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잊었던 가치를 찾아낸다.

늙어버린 외형까지 감싸 안아, 경험이라는 재산과 쌓인 시간의 결과로 우리 앞에 온 ‘나이듦’을 찬찬히 살피면서 긍정하고 그것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젊음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기 위해 억지 애를 쓰는 것은 부정적인 에너지만 더할 뿐이다. “삶의 각 시기들에 그것이 본디 차지하고 있는 시간만큼을 할애해주는 것”, 이것은 평정을 향한 기초공사와도 같다.

나이 들어가는 시기의 평정을 위해 필요한 것들

우리는 노화 방지라는 시대적 기류에 편승해 늙어감에 맞서 싸울 게 아니라 “나이듦과 더불어 태연하게” 잘 나이 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에 필요한 삶의 기술은 접촉, 사랑과 습관과 행복, 고통과 사색 등에서 얻을 수 있다. 이것들은 모두 부정적인 에너지를 줄이고 긍정적인 기운을 북돋우는 데 의의가 있다.

‘좋은 향과 티 없는 피부’만을 인정하는 지금의 문화는 마치 노인이 죽음을 옮기는 죽음의 감염자인 양 나이든 사람과의 접촉을 기피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접촉은 일종의 관심이다.” 접촉이 없는 삶은 인간을 영적으로, 끝내는 육체적으로 피폐하게 만들어 시들어버리게 한다. 접촉을 하지 못하고, 받지 못한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 전부터 고독 속에서 죽어가는 것이다.

점점 줄어들어가는 접촉을 의식적으로라도 계속해나가는 것은 나이 들어가는 삶에서 평정을 얻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접촉을 통해 느끼는 친밀감은 아직 유지해나갈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존재에 의미를 불어넣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랑’은 삶의 어느 시기에든 평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타인과 관계를 맺게도 하고 유지하게도 해준다. 인생을 통해 “반복 가능성과 신빙성”이라는 특징을 구축해온 ‘습관’은 우리를 좀 더 수월하게 살아나갈 수 있게 하며, 소박한 즐거움이 제공하는 ‘행복’은 “살면서 겪었을 노고를 보상해준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늘어가는 불행과 문제들을 잘 다루는 것은 ‘고통’으로부터 에너지를 지킬 수 있게 하며, 삶을 돌아보게 하는 사색은 지나온 삶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해 평정을 얻을 수 있게 할 것이다.

죽음은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경계선을 그어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죽음을 접할 기회도 많아진다. 우리는 죽음이 삶의 종착지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한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 하지만 저자는 “삶뿐만 아니라 죽음도 해석의 문제”라고 말한다.

“죽음은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경계선을 그어준다.” 끝없이 살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어떤 일을 위해 수고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한정된 삶 동안 머릿속에 그린 종착지에서 삶을 되돌아보고, 평가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남은 삶을 새롭게 꾸려갈 수도 있다. 남은 사람들, 내 죽음 후의 일, 내 죽음의 의미 등을 고민해보는 것은 죽음에 익숙해지게 해 불안감은 덜어주면서 평온은 더해줄 것이다.

노년을 말하는 많은 이들과 달리, 저자는 삶과 죽음을 개인의 실존뿐만이 아니라 좀 더 넓고 큰 철학적 범주에서 풀어내기도 한다. 에너지총량법칙에 따른다면, 내게서 빠져나간 에너지가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이다.

나를 살아가게 했던 그 에너지들은 어디로 갔을까? 저자는 그 에너지가 다른 생명체의 생성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죽음은 개별자들의 삶을 중단시킨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생명을 위한 터전을 마련한다.” 에너지뿐만이 아니다. 우리 삶과 함께 쌓인 수많은 경험과 재산은 다른 사람 혹은 다음 세대의 가능성이 될 수도 있다. 과거 철학자들의 사유가 지금까지도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면서 생각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를 품에 안은 자연은 어느 순간의 소멸이 아닌, “나이듦이라고 하는 느긋한 과정”을 선물했다. 이를 포함한 전체로서의 ‘삶’은 죽음으로 완성된다.《나이 든다는 것과 늙어간다는 것》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이 ‘마음의 평정’이라는 삶의 기술을 추구하며 얻어갈 때, 좀 더 편안해지고 풍성해지면서 유의미해질 것이라 말한다.

저자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담백하고, 문학적이면서도 사색적인 문장들은 깊은 울림을 주며, ‘나의 나이듦’과 ‘평정’에 대해 생각해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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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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