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 혁신, 제도개혁이 먼저다
    [책소개]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를 말하다』(최태욱/ 책세상)
        2014년 12월 14일 01: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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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헌법재판소가 현행 선거구 획정 인구비율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후(2014. 10. 30)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의 개헌 논란에서 보듯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정부와 국회, 여와 야 등 이해관계에 따라 셈법과 대응은 다르지만, 지금이 ‘한국 정치의 혁신’을 위한 적기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선거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정치체제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이 책은 ‘비례대표제 확대, 구조화된 다당제, 포괄형 연립정부’를 핵심 요소로 하는 ‘합의제 민주주의’를 한국 정치제도 개혁의 방향으로 제시한다.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가 도입되어 구조화된 다당제가 확립되고, 이를 기반으로 국회 및 정부 차원에서 좌/우/중도 정당들이 연합하는 포괄의 정치가 펼쳐지는 합의제 민주국가 건설을 우리 시대 정치체제의 지향으로 설정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과 같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양당 기득권 체제, 제왕적 대통령제, 승자독식형 민주주의로는 한국의 정치가 지금의 위기를 타개할 수 없으며, 시민들의 삶의 문제 해결도,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라는 시대정신도 실현할 수 없다. 87년 체제에서 비롯된 승자독식형 다수제 민주주의에서 연대와 포괄의 합의제 민주주의로의 이행, 체제전환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그동안 ‘비례대표제포럼’ 운영위원장, ‘새정치비전위원회’ 간사 등으로 활동하며 이론과 실천 두 영역에서 정치제도 개혁을 위해 분투해온 최태욱 교수(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는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지난 10여 년간 집필했던 합의제 민주주의 관련 논문과 칼럼 등을 원재료로 삼아 책의 논지와 이론 틀을 구축한 후 그 틀에 준거하여 2010년 이후 시대정신으로 부상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담론, 그리고 최근 일고 있는 선거제도 개혁과 권력구조 개헌 논의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은 실질적으로 국민을 ‘대의’하고 국민의 살림살이와 밀착된 진정한 ‘정치의 복원’을 촉구하는 제언이자, 우리 사회가 복지공동체로 진보해갈 수 있는 정치제도적 해법을 다룬 일종의 ‘체제전환론’이라 할 수 있다.

    다수제 민주주의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로

    “어떤 민주주의를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것인지는 운명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이 책은 정치학자 아렌트 레이파트의 논의를 따라 민주주의를 ‘다수제 민주주의’와 ‘합의제 민주주의’로 나누고, 정치권력의 분산 정도와 행사 방식의 차이에 따라 두 유형의 특성을 분석한다.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

    먼저,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보면 다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수대표제 또는 다수결형 선거제도로 의회를 구성하는데, 정당 득표율과 의석점유율 간의 비례성이 보장되지 않고 ‘소수 무시’의 문제가 발생한다. 반면,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를 채택하는 합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정당이 시민들로부터 받은 지지만큼의 대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둘째, 정당체계를 보면 다수제 민주주의는 양당제, 합의제 민주주의는 다당제가 전형적이다.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에서는 거대 양당 중심의 정당체계가 확립되기 쉬운 반면, 각 정당이 지지율만큼 의석을 배정받는 비례대표제에서는 다양한 사회세력을 대표하는 정당들이 공존하는 다당제가 발전하게 된다.

    셋째, 행정부 형태를 보면 다수제 국가는 단일정당정부, 한 정당이 총의석의 과반을 차지하기 어려운 합의제 국가는 연립정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넷째, 행정부와 입법부의 힘의 분배 양상을 보면, 다수제 민주주의의 행정부는 통상 입법부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으나, 합의제 민주주의에서는 어느 정당도 독자적으로 안정적 행정부를 구성하기 어려운 만큼, 행정부와 입법부가 힘의 균형을 도모한다.

    다섯째, 이익집단 대표체계를 보면, 다수제 민주주의에서는 무수한 이익집단들이 각자 활동하면서 적대적 경쟁 구도를 형성하기 쉽지만, 합의제 민주주의에서는 주요 이익집단들이 ‘사회적 합의주의’ 또는 그와 비슷한 거버넌스 체계를 형성하여 상호 협력적으로 경쟁한다.

    ‘배제’의 정치 vs. ‘포괄’의 정치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다수제 민주주의는 쇠락하고 합의제 민주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은 다수제 민주주의에 심각한 약점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에 따르면 다수제 민주주의의 근본 문제는 이것이 ‘승자독식/패자전몰’ 제도라는 것이다.

    승자독식 모델인 다수제 민주주의에서는 선거에서 승리한 세력이 정치권력을 독차지한다. 따라서 정권교체기마다 배제 세력이 양산되고, 대립과 갈등이 상존하기 쉽다.

    반면, 단일정당에 의한 권력 독식이 어려운 합의제 민주주의에서는 여러 정치세력들 간의 상호 의존과 협력이 불가피하며 약자와 소수자 및 거부 세력에 대한 포용이 일상의 정치문화로 자리 잡게 된다.

    이렇게 상이한 정치 환경에서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는 합의제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 잘 보장되며, 이는 높은 수준의 ‘사회적 자유’로 이어진다. 합의제 민주국가들에서 경제적 불평등 정도가 덜하고 복지 수준이 더 높으며, 약자나 소수자 배려가 더 철저하고 사회통합 측면에서 더 뛰어나다는 점은 실증적으로도 충분히 검증된 사실이다. 특히 조세나 복지정책 등을 통한 재분배 효과는 합의제 민주국가에서 월등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합의제 민주주의는 비례대표제에서 시작된다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가 더 잘 보장되는 사회, 시장의 우위에 서는 정치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려면 합의제 민주주의로 정치체제를 변혁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메시지다.

    저자는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선거제도의 개혁이며, 합의제 민주주의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의 요체는 비례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현행 선거제도는 246개 지역구에서 각 1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를 기반으로 정당 득표에 따라 54명을 배분하는 제한적 비례대표제 방식이다. 이러한 선거제도는 영 · 호남에 기초한 양대 정당의 독과점 체제로 인해 지역 기반이 없는 다양한 사회세력의 성장을 가로막아 정치의 발전을 저해해왔다.

    이 책은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 개혁 대안으로 비례대표제 확대를 주장한다. 이를 통해 시민들의 목소리가 의석에 반영되고 사회적 정치적 약자의 대표성을 높이며, 이념과 정책 중심의 다당체계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세 가지 개혁안, 즉 중대선거구제, 전면 비례대표제, 비례성이 보장된 혼합형 선거제도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전면 비례대표제’(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소선거구-비례대표 연동제’(독일식 비례대표제), 특히 후자에 주목한다.

    정당명부식 전면 비례대표제

    먼저 전국을 단일 선거구로 하는 정당명부식 전면 비례대표제에서는 유권자들이 광역 선거구나 전국구 차원에서 인물이 아닌 정당에 투표하며, 사표가 발생되지 않는 까닭에 ‘전략적 투표’를 할 필요 없이 ‘진심 투표’ 경향을 보인다. 이는 이념 및 정책정당들의 득표와 의회 진출로 이어지며, 기존 정당들 역시 생존을 위해서라도 인물이나 지역이 아닌 이념이나 정책정당으로 변화하게 된다. 결국 비례대표제가 한국의 정당체계를 구조화된 다당제로 개혁해가리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소선거구-비례대표 연동제(독일식 비례대표제)

    비례성 확보 면에서는 전면 비례대표제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전국구 전면 비례대표제로는 지역대표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비례성과 지역대표성을 동시에 제공하는 혼합형 선거제도가 또 다른 대안으로 제시된다.

    이 중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독일식 비례대표제라고 불리는 소선거구-비례대표 연동제이다. 이 제도에서는 의회의 총의석을 각 정당의 ‘전국 득표율’에 비례해 배분하되, 총의석의 최소 50퍼센트는 소선거구 지역 대표들에게 돌아가도록 한다.

    선거구는 비례대표제 작동을 위한 전국구와 지역 대표 선출을 위한 소선거구로 이원화되며, 투표는 1인 2표제로 한 표는 전국구의 선호 정당에, 다른 한 표는 소선거구의 선호 후보에게 던진다. 전국구 정당 투표 결과를 먼저 확인한 후 의회의 총의석은 각 정당의 득표율에 비례하여 나누어진다.

    독일식 연동제는 정당명부식 전면 비례대표제와 다를 바 없는 높은 비례성을 제공하면서 지역대표성까지도 보장한다는 점에서 현실에서 채택 가능한 세계 최고의 선거제도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이 제도로의 개혁이 심도 있게 논의된 바 있고, 현재도 김두관, 노회찬, 손학규, 심상정, 원희룡, 정동영, 천정배 등의 개혁 정치가들이 독일식 비례대표제로의 전환을 주창하고 있다.

    “사회의 집단지성을 발휘하여 한국 상황에 가장 적합한 비례대표제 도입 전략과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공천제도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 해도 실효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므로 공천제도의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한 개혁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구조화된 다당제, 포괄형 연립정부

    합의제 민주국가를 위한 정체제도 개혁의 출발이 비례대표제라면, 다음 단계는 구조화된 다당제의 발전, 그리고 최종 단계는 노동 친화적인 포괄형 연립정부의 제도화이다.

    비례대표제 강화로 선거제도의 비례성이 충분히 높아져야 이념과 정책 중심의 유력 정당들이 부상할 수 있고, 이러한 정당들이 최소 셋 이상 나와 각기 좌파/중도/우파에 위치한 사회경제 세력들을 대표할 수 있어야 포괄형 연립정부 형성의 전제 조건이 충족된다. 비례대표제 강화로 구조화된 다당제의 발전을 견인해내야 하는 것이다.

    구조화된 다당제에는 물론 제대로 된 좌파 및 우파정당들이 정치력을 확보하고 포진해 있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유력한 중도정당(들)의 존재이다.

    좌파나 우파에 속한 어느 정당(들)도 중도정당(들)이나 반대편 정당(들)과의 연대 없이 자기(들)만으로는 다수파가 될 수 없을 정도의 비중을 중도정당(들)이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좌파와 중도, 중도와 우파, 혹은 우파와 좌파정당들이 서로의 이념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의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포괄형 연립정부 형성이 강제될 수 있다.

    이러한 형태로 정당체계가 구조화된 이후에는 권력구조의 개편을 추진해야 한다. 포괄형 연립정부의 제도화는 구조화된 다당제가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와 결합할 때 견고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권력구조의 전환,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로

    한국이 대통령중심제에서 벗어나 합의제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권력구조로의 전환을 모색할 때 선택지는 의원내각제의 전격 도입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전환이다.

    저자는 권력구조의 개편에 있어 한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의원내각제보다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지향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낸 대통령직선제는 유지하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없애고 민의 반영에 뛰어난 합의제적 민주체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는 방향으로 개혁해나가는 것이므로 국민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직은 존치시키되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대통령의 권력을 의회에서 선출하는 총리와 분담하게 하는 권력구조이다. 핵심은 국민이 뽑는 대통령과 의회가 선출하는 총리 간의 분권 구조에 있다. 가장 일반적으로는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외교·안보·국방 정책 등을 담당하고, 총리는 행정부 수반으로서 내정과 관련된 나머지 정책들을 맡는다.

    한국의 현행 대통령제를 분권형 대통령제로 전환할 경우 개혁 효과는 의원내각제로의 전환 못지않게 크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분점정부 상황에서 대통령의 행정부 장악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대통령의 독주 방지 효과가 분명하며, 선거 과정에서 ‘절대 대권’을 놓고 벌이는 사투 양상도 완화되므로 지역감정이나 금권 등을 무차별 활용하는 폐해도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개혁 효과는 정당정치의 활성화로, 정당이 정치의 중심에 섬으로써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나타나는 반정당적 · 반의회적 정치 행태가 사라질 것이다. 그 밖에 책임정치의 강화, 행정부와 입법부 간 힘의 균형 등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대통령과 총리 간 권력 배분의 어려움, 권력집중형 분권형 대통령제의 가능성 등 분권형 대통령제 역시 많은 위험과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권력구조의 불안정성을 우려하여 선택을 꺼릴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다만 권력구조 개편에 앞서 위에서 살펴본 선거제도의 개혁을 선결 과제로 해결해야 하며, 개헌 논의 국면에서도 충분한 공론의 검토를 거쳐 개편안이 도출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부터 4~5년간에 걸쳐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진지한 노력을 꾸준히 경주한다면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안정적인 새 권력구조의 창출과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의 완성은 느리지만 지속적인 노력으로 도출해낸 사회적 합의에 기초할 때에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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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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