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생번트의 경제학
    [투고] 재벌은 언제나 홈런만 서민은 언제나 희생만..NO
        2012년 07월 09일 11: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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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아 타이거즈의 강타자 이범호 선수가 희생번트를 대고 아웃을 당한다. 동시에 흘러나오는 내레이션. “타자라면 누구나 홈런을 치고 싶지만 팀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번트를 댑니다. 세상에 오직 야구만이 희생이라는 플레이를 합니다.”

    이는 실제 야구경기 중의 장면이 아니라, 재벌기업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TV 광고 중 한 장면이다. 야구를 관람하다 보면 한 경기에도 여러 번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을 콘셉트로 잡은 것이지만,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은 전문 광고모델이 아닌 선수들의 어색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화감의 근원을 해명해준 것은 뜻밖에도 롯데 자이언츠의 외국인 투수 사도스키 선수가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언급이었다. “난 늘 야구장에서 기아 광고를 볼 때마다 이범호가 희생번트를 하는 것을 상상하지만, 왜 내가 던질 땐 그러지 않는지. 희생이라는 건 거짓말!!”

    그렇다. 위화감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광고에 나오는 가상의 경기에서 이범호 선수는 번트를 대지만, 실제의 이범호 선수는 경기 중 번트를 대지 않는다. 타격 실력이 좋은 그는 희생번트를 대지 않고 홈런을 노린다.

    강타자는 결코 희생을 하지 않는다. 언제나 희생을 하는 것은 강타자 이외의 선수들이다. 이를 간파한 사도스키 선수의 이야기는 웃자고 한 말이겠지만 그 농담엔 우리 사회가 간과하고 있는 것을 관통하는 날카로움이 있다.

    재벌은 결코 자신을 희생하는  번트를 하지 않는다!

    재벌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SSM) 영업규제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무분별한 대형마트의 난립으로 인하여 재래시장과 지역 소상공인이 어려운 처지에 당하자, 휴일만이라도 영업의 규제를 통하여 대기업과 소상공인이 상생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법안이었다.

    광고의 취지대로라면 여기서 재벌기업은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고 싶다 하더라도 건전한 대한민국 경제구조 발전을 위해 희생을 하는 모양이 아름다울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의 대변자라 할 수 있는 경총이 제시한 이야기는 “대형마트 영업제한 조치는 결국 유통 생태계에 큰 혼란만 가져온 셈이 됐다. 이는 ‘영세상인 보호’라는 명분에 매몰돼 시장원리와 소비자의 선택권을 무시한 정치권이 초래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라며 아름다운 희생을 거부한다.

    좋다. 여기까지야 그럴 수도 있다고 하자. 희생이라는 것은 자발적으로 할 때 가치가 있는 것이지, 외부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면 공정한 희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롤즈의 정의 규칙에 의한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공리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희생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더욱 복잡한 문제는 불과 며칠 전의 논의에 있었다.

    재벌들의 이율배반적인 모습 

    얼마 전 최저임금의 시급이 280원 올랐다. 한 시간을 꼬박 일해도 점심 한 끼 사먹기 어려운 4860원이 현 대한민국의 최저임금이다. 그리고 경총은 시간당 무려 260원이라는 거액(?)이 오른 이 천인공노할 사태에 대해 분노한다. 아니 분노로 부족해 성명을 발표하여 “어려운 경제상황과 영세·중소기업의 절박한 현실에 대한 고려가 빠진 이번 결정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한다.

    최저임금 인상 캠페인(사진=진보정치 이치열 기자)

    너무나 놀랍다. 대형마트 규제에 관한 논의에서는 영세상인 보호라는 명분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듯, 시장의 자유를 역설했던 이들이 최저임금제 인상에 있어서는, 갑자기 그토록 찬양하던 시장원리를 배반하며 영세상인과 소상공업자의 보호를 들고 나온다.

     경총이 주장하는 위의 논지들은 충분히 논의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주장하는 개개 논지의 충실함이 아닌, 그들이 주장하는 개별 논지들 사이의 충돌에 있다.

    이 충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은 결코 광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희생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에 있다.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따른다면 대형마트 영업규제에서 결국 희생되는 자는 영세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될 것이고, 소액의 최저임금제에 희생되는 자는 치솟는 등록금을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 학생이나, 2교대로 돌아가는 작업장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즉 어떤 주장을 따르더라도 재벌기업의 희생은 없다. 그들은 언제나 강타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여 공동체의 이익을 실현하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이는 광고에서 강조하듯 굳이 야구에서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러한 희생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그 희생이 공평하게 발생해야 한다.

    만일 어느 한쪽만 희생을 한다면 그것은 희생이라기보다는 착취라고 명명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올바른 언어사용법이기 때문이다.

    야구가 재미있는 점은 꼭 강타자만이 홈런을 치는 것이 아니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타자가 찬스에서 통렬한 적시타를 날리는 데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아무리 타격이 약한 타자라 하더라도 언제나 희생번트를 대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다른 선수는 언제나 번트만 대고, 강타자만 타격을 한다면 야구는 별 재미가 없을 것이다. 한국의 사회도 마찬가지다. 재벌기업은 언제나 홈런만 치려하고, 서민은 언제나 희생을 해야 한다면 한국의 경제는 정말로 재미없지 않을까?

    필자소개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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