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땅의 ‘호갱’들이 사는 법
    [에정칼럼] 사후가 아니라 사전에 모니터링 할 수 있어야
        2014년 11월 19일 09:2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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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호구” “공갈빵 외교” “깡통 외교” “대국민 사기극” “단군 이해 최대 국부 유출”

    모두 MB정부의 해외자원외교를 비꼬는 말이다. 언론이 공식적으로 뽑은 기사 제목만도 이 정돈데, 네티즌들이 분노로 쏟아내는 말들은 도저히 옮기기 힘든 정도다.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실패 사례만 봐도해외자원외교는 사실상 국가를 아작 낸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어땠기에?

    한국석유공사는 2009년 하베스트의 정유회사인 ‘날(NARL)’을 약 1조1000억 원이나 주고 매입했고, 지난 5년간 회사를 정상화시킨다며 약 4,700억 원 정도를 시설에 추가 투자했다. 하지만 ‘날’은 나날이 나빠져만 갔고, 결국 운영비마저 5,800억 원 손실을 기록하며 회생불가능한 기업이 됐다. 다 합쳐 부실기업 인수의 대가로 한국석유공사가 투자한 총액은 도합 2조원이 넘는 셈이다. 한국석유공사는 결국 ‘날’을 미국계 상업은행인 ‘실버레인지(Silver Range)’에 약 338억 원에 매각했다.

    더 웃기지도 않은 것은 ‘날’의 인수가 1주일 만에 뚝딱 결정됐다는 점이다. 원래 한국석유공사는 모회사인 ‘하베스트’만 인수할 예정이었지만, ‘하베스트’는 ‘날’의 동반 인수를 제안했고, 석유공사가 이를 통 크게(?) 받아들인 것이다. 그것도 외국계 컨설팅 회사인 메릴린치가 1주일만에 만든 검토보고서를 토대로 말이다.

    원래 ‘날’은 1986년 캐나다 국영석유기업이 민간에 단돈 1달러를 받고 판 부실기업이었다. 매입당시부터 이제 곧 부도가 날 것으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이런 기업에 우리나라는 국민세금 2조원을 쏟아 부었다. ‘글로벌 호구’란 소리를 들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날’ 인수 참극과 평행이론 수준으로 유사한 사례가 또 있다. 한국광물자원공사가 주도한 멕시코 볼레오 동광개발 사업이 그것이다. 광물자원공사는 2008년 원래 가격의 10배나 되는 7,600만 달러를 지불해 광물공사의 지분을 얻었다. 이후 2011년에 개발사업이 착공했지만 고작 1년만인 2012년에 부도가 났다. 이후 대주단에 끌려다니며 정상화를 위한 증액을 계속해 결국 2조원의 순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멕시코 볼레오 동광개발사업 역시 초기부터 부도 소문이 있던 곳이다.

    이쯤되면 우리나라는 ‘글로벌 호구’ 수준이 아니라 ‘국제 쓰레기 처리반’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심지어 광물자원공사는 환경보존구역인 미국의 국유림 지역에서 광산을 개발하겠다고 380억 원을 투자했다가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놓여있다.

    그렇다면 MB 정부의 대표적인 치적사업으로 꼽혔던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유전 개발사업은 어땠을까?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우리도 드디어 유전을 갖게 됐다”고 말했던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유전에는 그간 1,000억 원 가까운 예산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투자회수율은 9%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비유망자산 평가를 받고 있어 앞으로도 수익이 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석유가스 자주개발률이 4년 사이 4%에서 14%로 늘어났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지만, 당시에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수치였다. 게다가 자주개발률이 다소 늘어났다고 해도 그 가치의 수 배에서 수십 배의 국가세금이 낭비됐는데, 무엇이 그렇게 감격스러웠을까?

    이렇게 해외자원개발사업은 국민적인 공분을 사며 속살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지금이라도 밝혀져서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2008년 자원외교를 천명한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가 왜 지금에 와서야 이슈가 되는 건가라는 아쉬움이 더 크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 등 야당들이 “사자방”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해외자원외교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는 건 참 반가운 일이지만, 너무 뒤늦게 이슈화가 된 감이 있다. 이미 진행 중인 사업에 추가적인 투자가 필요한 상황도 있고, 계약이 된 사업까지 있어 앞으로도 수조 원의 세금을 더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국정조사를 거부하고 있지만, 해외자원외교 실패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다. 지금의 실패를 눈감아주는 것은 다음의 실패도 허락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반드시 국정조사를 통해 관계자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왜 해외자원외교가 이 지경까지 왔느냐 하는 점이다. 에너지의 수입비중이 97%가 넘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해외자원개발은 필수불가결한 면이 있다.

    하지만 이런 자원개발사업이 환경이나 인권과 같은 보편적 가치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것인지 면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런 시스템이 없다. 정부의 자원외교는 국가기밀이란 이유로 통제되고 있고, 기업들의 사업은 기업기밀이란 이유로 접근이 제한된다. 지금 상황에서는 사단이 일어난 이후에나 국민이 알 수 있다는 의미다. 씁쓸하지만 정부가 ‘글로벌 호구’라면 우리는 그 호구가 또 살뜰하게(?) 챙겨가는 ‘호갱’에 불과하다.

    책임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일련의 상황을 투명하게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더 중요한 이유다. 해외자원개발법과 정보공개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얼마 전 단통법 시행 이후 전 국민이 ‘호갱’이 됐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이통사의 배만 불리는 이 법에 열 받기는 하지만, 해외자원개발 문제는 핸드폰 가격 수준의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수십조 원인데 앞으로 얼마나 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여야할지 두렵기까지 하다.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건 단 하나다. 이 땅의 ‘호갱’들이 사는 법.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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