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당했다,
    말로만 들었던 전세 사기
        2014년 11월 18일 04: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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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6일이었다. 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과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인근 커피숍에 들러 기사를 정리 중이었다.

    개인적인 일로 임대차계약서를 기관에 보낼 일이 있었는데, ‘갱신계약서’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니 임대차계약서상의 집주인과 등기부 등본상의 집주인이 다르다는 말을 들었다.

    황급히 등본을 확인해본 결과 우리가 입주하기 바로 하루 전날, 집주인이 바뀐 것을 확인했다. 그러니깐 우리는, 집주인이 아닌 사람에게 전세보증금을 준 것이다. 문제는 끝이 아니었다. 바뀐 집주인은 받을 수 있는 최대한으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갔다. 날벼락은 그렇게 한가로운 오후에 일어났다.

    입주 당일에도 등본 확인했는데, 어떻게 전세보증금은 날아갔나

    우리는 2013년 2월에 지금의 신혼집을 찾아 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금 10%를 지불하고 확정일자를 받고, 4월 10일 잔금을 치루고 입주하기로 했다. 근저당이 없는 깔끔한 집이이라는 사실 역시 미리 확인했다.

    4월 10월 잔금을 지불하는 날에도 집주인과 부동산에 만나 당일자로 등본을 한 번 더 출력해 확인한 뒤 계약을 완료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는 사기를 당했다는 걸 깨닫자마자 쓰던 기사를 중단하고 부동산으로 달려갔다. 중개사를 다그쳐 물어본 결과, 실제 매매일은 우리가 입주한 며칠 뒤였다. 새 집주인과 전 주인이 매매계약서를 써달라며 찾아왔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약일을 4월 9일로 고쳐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다시 중개사를 다그쳐 당시 매매계약서를 보니, 부동산중개인이 자격이 있는 사람일지 의문이 드는 계약서를 보여줬다. 당시 시세보다 2천5백만 원이나 높은 ‘업up 계약서’ 작성은 물론, 전 주인이 매매금 전액을 모두 받은 것처럼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주인에게 확인한 결과, 전세보증금을 제외한 차액만 받았다.

    만약 우리가 전세계약이 만료되어 이사를 갈 경우, 새 집주인은 매매계약서를 근거로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면 그만이고, 전 주인은 시세보다 높은 값에 집을 판 이유로 ‘작은 사기’에 ‘공모’만 했을 뿐인데도 문제가 터질 때는 전세보증금을 반환할 책임이 생긴 것이다.

    이 사건의 주범과 공범들을 밝혀내는데 2~3일이 걸렸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그것이 사실인지 판단하는데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사건의 주범자는 경매 등 부동산 투기에 능한 임대업자 A였다. 그는 서른살 청년 B에게 이러한 사기 행각을 지시한 인물이다. B는 전 임대인 C에게 시세보다 높은 값을 쳐주겠다며 접근했고, C는 왜 이렇게 후한 돈을 지불하는지에 묻지 않았다. 그저 계약일을 임대차계약일보다 앞당겨 달라는 말에 동의해줬다.

    부동산중개인 역시 문제의 매매계약서로 임차인과 전 임대인 모두 피해가 갈 수 있다는 걸 예견하지 못(않)한 채 계약일을 변경해주고, 계약서의 잘못된 문구들을 바로잡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입주 5일만에 사기를 당한 것이다. 지금까지 몰랐던 이유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주 후 보일러 고장으로 전 임대인 C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너무나도 쿨하게 보일러 수리비를 입금해줬고, 새 임대인은 당연히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은 좋은 집을 구해줘서 고맙다며 선물을 사들고 간 나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전 임대인 C는 ‘아무 것도 모른다’, ‘무섭다’며 다그치지 말아달라고 하소연했지만, 돌이켜보면 2천5백만 원의 댓가를 분명 알았을지도 모른다. 부동산중개인 역시 중개계약서로 높은 수수료를 받았을 테니, 고맙다고 선물을 사들고 간 새색시의 선의를 애써 외면했을 것이다.

    명의자 B는? 그는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을 것이다.

    임차인이 확정일자까지 받았는데, 어떻게 대출이 가능했을까?

    등본에서 확인한 새 임대인이 대출을 받은 기관은 인근 지역의 한 은행이었다. 확정일자는 근저당 설정 날짜보다 빠르지만, 전입신고는 그보다 늦었던 우리는 불안했다.

    임대인을 가장해 해당 지역의 대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전세로 살고 있는 임차인이 확정일자만 받고 전입신고는 아직 안한 상태인데, 담보대출이 가능한가요?”라고.

    담당자는 차 떼고 포 떼면 대출 가능한 금액이 1천만원 수준이라고 말해줬다.

    다시 나는 사실은 임차인 신분이라고 밝히며 “임대인이 전세보증금과 맞먹는 금액을 당신의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갔다, 어떻게 대출이 가능했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임대인의 이름을 물으며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날 바로 해당 은행에 찾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출 사고인지, 은행 직원이 협조한 사기 대출인지 확인해야겠다고.

    다행히 담당 직원은 솔직히 이야기해줬다. 나와 통화를 끝낸 뒤 곧바로 대출 서류를 확인해본 결과, 명의자 B가 서류를 위조해 제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명의자 B는 임차인이 월세 세입자라고 속여, 월세계약서를 허위로 만들어 제출했다. 명백한 사기 대출이었다.

    임대차

    부동산실명제 위반, 사기, 사문서 위조…”돈 줄래요, 소송 갈까요?”

    상황을 종합하자면 주범인 A는 B를 시켜 매매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해 소유권 등기를 했고, 대출 서류도 위조해 대출을 받아갔다.

    사전에 예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뿐더러, 사후에라도 ‘우연’이 아니면 알 수 없었다. 만약 모르고 있었다면,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전세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행히 나는 나름 ‘기자’였고, 사건을 인지하자마자 부동산중개인 이씨, 전 주인 C, 실소유자 A, 은행 직원 등을 만나 모든 대화를 녹음했다. 더 다행인 것은 지인이 변호사였고, 이 과정에서 변호사의 법률 조언을 아낌없이 들었다. 때에 따라 이들을 회유하고 협박하면서 사실을 추궁했고, 상당 부분 범죄 사실을 확보했다.

    실소유자 A는 처음부터 ‘별 일’ 아니라고 여유를 부렸다. 약속 시간과 장소를 일방적으로 정해주는 것은 물론, 부도나면 그만일 약속어음을 써주면서 큰 인심을 쓰는 듯 굴었다. 공증사무실에서 각서에 들어갈 내용을 작성하고 있는 나에게 “계약이 있어 빨리 가야 된다”며 신경질도 냈다.

    약속어음과 전세보증금 반환 각서라도 받아야했던 나는 화를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러나 A는 공증비가 두 배로 든다는 이유로 각서에 공증을 받는 걸 거부했다. 결국 나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고, 변호사는 “각서 공증 해주시고, 12월 6일까지 명의자 B를 찾아오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제서야 A는 순순히 공증을 받아줬다.

    하지만 이후 대출 사기까지 확인한 우리는 불안했다. 어음이야 부도나면 그만이고, 김씨가 여러 채의 집을 갖고 있더라도 지불 능력이 없는 하우스 푸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특히 대출 사기건은 충격이었다. 작정하고 사기를 친 사람에게 순순히 돈을 받을 가능성이 너무 낮다고 판단했다.

    결국 우리는 정식으로 변호사를 선임하기로 했다. 변호사는 관련 녹음을 모두 들은 결과 범죄 사실이 확실하다며 승소 가능성을 내다봤다. 물론 소송으로 갈 경우 A뿐만 아니라 공범자인 B, 중개인 이씨, C에 대한 소송 역시 불가피했다.

    지불 능력이 없는 전 임대인 C는 전세보증금 전액에 대해 반환 책임이 있고, 부동산중개인은 자격 중지와 벌금, 명의자 B 역시 벌금, 주범인 A는 과징금 5천여만 원은 물론 구속도 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전 임대인 C 역시 A를 상대로 매매계약 무효 소송을 벌이고, 은행 또한 A를 상대로 대출 사기로 고소해야 할 판이었다. 은행의 담당직원은 은행으로부터 징계나 최악의 경우(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 해고까지 갈 수도 있었다. 복잡하고 긴 소송이 예견된 것이다.

    변호사와 논의 끝에 우리는 타협점으로 전세보증금 100%와 합의금을 요구하기로 했다. 만약 이 약속을 이행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은 묻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만난 A는 임차인인 우리가 아닌 변호사에게 애원했다. 합의금을 깎아달라고. 아들 모두가 ‘고위직’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어차피 떼먹지도 않을 뿐더러, ‘지금까지 이런 일이 있어도 안준 적이 없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A의 하소연은 절반은 ‘어차피 줄 건데 왜 굳이 변호사를 선임해 일을 크게 만들었냐’였다.

    남편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합의금 따위 필요 없으니 그냥 고소해야겠다”고. 나 역시 A의 뻔뻔한 태도에 화가 났다. 역시나 피해자는 우리가 처음이 아니었다는 말까지 들으니, 이런 분은 콩밥을 드셔야 정의가 구현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합의금을 ‘깎아주는’ 선에서 합의를 봤다. 물론 약속된 날까지 보증금과 합의금을 주지 않으면 소송에 돌입하겠지만, 사태의 전개과정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같은 서민들이 줄소송에 돌입하는 건, 상상도 하기 힘든 싸움이다. 합의에 이른 날까지 10여일 동안 피가 바짝 바짝 말랐던 날들만 돌이켜봐도, 우린 ‘정의 구현’보다는 ‘실리’를 선택했다.

    ‘너가 당했으니 망정이지, 나였으면 눈 뜨고도 당했겠다’

    이 사태를 알고 있는 지인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네가 당해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만큼 복잡하고 악의적인 사기였기 때문이다.

    빠르게 등본을 확인하고, 관련자들을 만나거나 통화해 사건의 전말을 알기 위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변들을 녹음하고, 주요 대화를 정리하는 일이야 닥치면 하게 된다지만, 즉각적으로 가까운 변호사에게 아낌없는 법률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처음 사기 당한 것을 깨달았을 때 서울시의 관련 상담센터에 전화했을 때에도 ‘문제가 있다. 빨리 사태를 확인해라’라는 조언 정도가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조언이었다. 변호사 선임비 역시 지인이었기에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저렴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각종, 신종 전세 사기 범죄가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그 사기 행각들은 너무나도 기상천외했고, 방지하기란 어려운 내용들이 다수이다. 그저 ‘주의’ 정도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빨리 인지해 소송으로 간다하더라도 높은 변호사 선임비도 마련해야 할 뿐더러 승소할 가능성도 높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임차인이 승소한다 하더라도 100% 모두 반환 받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을 뿐더러, 임차인의 피해금액은 일반적인 경제범죄의 피해액보다 적기 때문에 가해자에게 높은 형량이 나오지 않을뿐더러, 부동산중개인 역시 솜방망이 처벌이 대부분이다.

    말로만 듣던 전세 사기, 처음에는 왜 저걸 모르고 사기를 당해, 확인 안 해봤나? 라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당해보니 알겠다. 임차인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사기 치는 사람이 너무 영악하기 때문에 당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은 끝없이 자책감에 시달린다. 임대인 김씨가 우리에게 보증금을 반환해주기 위해 다른 세입자에게 사기를 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는 ‘폭탄’을 얼굴도 모르는 다른 세입자에게 던져준 걸지도 모른다.

    필자소개
    장여진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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