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 브라더의 요새, 팔로 알토
        2014년 11월 13일 05: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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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지금 특강 때문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 여행 중에 있습니다. 곧 떠나겠지만, 현재는 스탠퍼드대 근방의 팔로 알토 (Palo Alto)시에 있습니다.

    실리콘밸리 중심의 도시인 팔로 알토, 아마 미국에서 물가가 제일 비싸고 소득이 제일 높고 고학력자가 제일 많은 이곳에서 저는 “구미권”의 어떤 아주 본질적 특징들을 다시 발견한 것 같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종족계급(ethnoclass)의 출현입니다. “하이테크” 도시인 팔로 알토에서 “거주”를 하는 주로 정보기술산업 종사자들의 대부분은 백인이거나 동아시아인, 그리고 인도인들입니다.

    물론 정보기술산업의 먹이사슬 안에서도 그 관계는 절대 평등하지 않아 아시아인들이 주로 “기술자”로서의 하위 배치가 경향이지만, 좌우간 이 두 그룹은 “주류”를 이룹니다.

    그러나 이 종족적 배경 (백인/아시아인)이 있는 중상층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자면 서비스클래스, 즉 팔고 날라주고 닦고 쓸고 하는 사람들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십중팔구는 중남미 출신이거나 흑인, 일부는 중국인, 동남아시아인들입니다.

    이런 종족적 배경을 가진 하층은, 팔로 알토에서는 “거주”를 못합니다. 강남 수준의 집값과 오슬로 수준의 물가를 감당하지를 못하죠. 그들만이 거주하는 게토는 이 도시의 동쪽 부근에 있습니다. 백인-아시아인-히스패닉-흑인, 상류층-관리자층-기술자층-하층, 서로 겹치는 이런 위계 서열들은, “미국”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돈과 신분의 서열 체계를 이룹니다.

    물론 저들의 이데올로기로는 “미국”과 “서열”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 이데올로기를 (주로 백인 출신의) 하이테크 산업 계통의 중상층들이, 말하자면 그 귀한 몸으로 그대로 표현해주고 대변해줍니다.

    캐주얼 위주의 근무 복장, 부하들 앞에서 웃어주고 부하들의 비판을 이성적으로 잘 들어주는 “민주적” 관리자들. 커다란 사무동 사이를 자전거로 쿨하게 타고 다니는 구글사 직원들, 그들에게 회사는 “창조성 극대화” 차원에서 거의 모든 규제들을 풀어줍니다.

    근무시간에 사무동들 안에서 자유왕래를 해도 되고 음식을 만들어도 되고, 그냥 밖에서 커피 마시면서 사색에 잠겨도 되고,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이죠.

    이미 회장실의 커다란 화면에서 전 세계 각국의 실시간 주요 인기 검색어들의 부침을 다 확인할 수 있는 이 빅브라더 격의 회사가 전 세계인들의 모든 인터넷 활동, 나아가서 모든 말과 모든 생각을 완벽하게 잘 관리할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그런 아이디어들 말입니다.

    googleplex-5

    구글사 내부의 모습

    구글사 등 하이테크 기업들의 다음 관심사는, 아마도 언어인식 기계들의 완벽화 및 산업화일 듯합니다. “말”을 “텍스트”로 옮겨 그 텍스트를 다 인터넷에 퍼붓게 되면, 인터넷상의 모든 활동을 다 체크할 수 있는 구글은 “세계인들의 모든 말을 다 들을 줄 아는” 세계의 하나의 커다란 “관리자”가 되겠죠?

    그 다음의 스텝은 아마도 머리속 생각을 텍스트로 바꾸는 “의식 인식 기기”일 걸요? 모두들의 모든 생각들을 읽을 줄 아는 기업, 오웰이 자다 깨어날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러니까 이 민주적이고 쿨하고 캐주얼한 고학력, 고소득의 하이테크 신동들은, 지금 전 세계를 하나의 커다란 빅브라더 왕국으로 만들려고, 열심히 그 창의성을 발휘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사무동을 쓸고 닦는 중남미계 노예들과 말을 섞기라도 할까요? 그들의 돈벌이이자 세계 지배 도구인 컴퓨터들을 만드는 중국 노동자들이 사는 중국 관동, 절강성의 산업도시들을 평생 한 번이라도 방문할까요? 그들이 개발한 디지털 지도 등이 뒷받침하는 미군 무인폭격기 폭격들로 죽은 아이들의 얼굴을 볼 일은 있을까요? 정말 공포스러운 멋진 신세계입니다.

    지배자와 지배체제 관리자, 그리고 그들의 벌이를 뒷받침해주고 그들의 무기 장사를 위해 마루타가 되어 어디에선가 죽임을 당하는 이 세계의 짓밟힌 자들 사이의 문화적, 언어적, 지리적 각종 간격들은 이제 거의 절대화된 셈입니다.

    쿨하고 여유만만하고 리버럴한 척하는 지배체제의 상류층과 저들에 의해서 망가진 이라크의 폐허 속에서 살아야 하는 지배체제의 낙오자들은, 서로 소통을 할 기회라고 없죠. 저런 세계에서는 과연 “밑”의 무장 공격들, 즉 지배자들이 이야기하는 “테러”란 꽤나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지배/피지배 관계가 이 정도로 절대화되면 그 관계 사이를 가로지를 수 있는 것은 폭력과 죽음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지배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퍼붓는 죽임의 질과 양을 생각하면,앞으로 새로운 ‘이슬람국가(IS)’들의 출현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아, 혁명이라는 “사건”이 개입되지 않는 이상 이 디지털 빅브라더 왕국은 가면 갈수록 최악의 야만으로 떨어져갈 것은 볼 보듯 뻔한 일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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