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 엄마가 아이에게
    [기고] 세월호 참사 추모 예술제에 함께 해주세요
        2014년 11월 13일 09: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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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흙반죽처럼 부드러워지고 싶다

    무엇이든 되고 싶다

    작은 항아리가 되어 벤자민 화분과 함께 네 책상 위에 놓이고 싶다

    네 어린 시절의 큰 글씨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알맞게 줄어드는 글씨를 보고 싶다

    토끼의 두 귀처럼 때때로 부드럽게 접힐 줄 아는 네 마음을 보고 싶다

    베여나간 오리나무 밑둥 향기에 공손히 인사하듯 길게 구부러지는 너의 훌쩍 자란 등뼈를 만져보고 싶다

     

    세상의 모든 비밀을 전해 듣고

    분노 속에서 네가 어떤 것도 다시 건드릴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을 느낄 때

    단 하나의 사물이 되고 싶다

    네 커다란 손에 잡혀 검은 벽을 향해 던져지며 부서지는 항아리가

    단단하게 굳어 제대로 모양 잡힌 유일한 기억이

     

    한밤중에 일어나 연인의 잠든 얼굴을 한번 만지고

    나쁜 꿈의 물풀들을 네 손으로 천천히 쓰다듬는 날이 지나가고

    너의 늙어가는 얼굴 가득 물결처럼 번져가는 흰 주름을 보고 싶다

    공원 벤치에 잠시 지팡이를 세워두고

    새벽의 별들처럼 아침이 고요하게 거둬들이는

    네 마지막 숨결을 느끼고 싶다

     

    ‘찾아 주세요. 사위 권재근, 손자 혁규.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있나 봐요. 저는 베트남에서 왔어요.’(*)

     

    진흙 반죽처럼 부드러워지고 싶다

    무엇이든 되고 싶다

    지금 내 곁의 빈 나무관 속을 떠돌며

    반쯤 부패해가는 네 얼굴 위로 내려앉기를 기다리는 톱밥먼지만 아니라면

     

    진흙 반죽처럼 부드러워지고 싶다

    너를 위한 기억의 데드 마스크로

    망각 법원의 길고 어두운 복도마다 걸려 있고 싶다

    쌓인 먼지를 털면

    가장 오래된 슬픔의 죄수들이 쇠창살 사이에서 기웃거리는 표정처럼

    ———————————–

    * 25일 오후 2시께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차려진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 들머리에 베트남에서 온 아버지 판만차이(62)씨와 딸 판록한(24)씨가 손 팻말을 들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는 사위 권재근(51)씨와 손자 혁규(6)군을 찾아 달라는 것이었다. “한 달이 넘게 언니의 장례식도 못 치르고 있어요. 함께 장례라도 치를 수 있게 빨리 형부와 조카를 찾아주세요.” 딸 판록한씨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 2014년 5월26일 한겨레신문 기사

    [세월호, 연장전]

    전국의 문화예술인들이, 이런 식으로 세월호 참사를 덮고, 잊고 넘어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마음으로, 우리 모두에게 세월호는 무엇이었냐는 질문으로, 우리 문화예술인들이 창작과 기억의 도구로 사용하는 각종 연장들은 어떠해야 하느냐는 물음으로, 11월 15일(토) 오후 1시 광화문 세월호 광장으로 모이기로 했습니다. 304개의 빈 의자와 책상이 놓일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무엇을 잃어버렸고, 잃어가고 있는지 함께 해주시기를 희망합니다.

    ■ <세월호, 연장전> 문화예술인 선언 소셜펀치 페이지(바로 클릭!)

    세월호연장전-웹포스터(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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