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긴급조치는 위헌,
    그러나 긴급조치 실행은 적법?'
    정의당, 통합진보당, 민주노총 일제히 비판 입장 밝혀
        2014년 10월 31일 05: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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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이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위헌 판결을 하고도 당시 수사와 재판 행위에 대한 국가 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31일 판결해 일부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이 들끓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이상훈)는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재심을 통해 명예를 회복했던 서 모 씨와 장 모 씨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를 근거로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해 수사를 진행하고 재판에 넘긴 수사기관의 직무행위와 유죄 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직무행위는 불법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며 이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한 불법행위가 유죄 판결과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별도로 따져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지 결정해야 한다”며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재심에서 무죄로 밝혀졌다면 복역 등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긴급조치’는 당시의 ‘실정법’이었기 때문에 이에 따른 공무원들의 직무행위를 불법으로 볼 수 없고 고문이나 가혹행위, 수사기관의 증거조작 등 구체적으로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것이 입증돼야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날 정의당 김종민 대변인은 논평에서 “대법원에는 세상과는 어떤 또 다른 상식이 존재하는 건가. 잘못된 법이라도 집행한다면 국민은 따라야 한다는 궤변이 아닌가”라며 “해괴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독일은 나치 청산을 단행하며 유태인 학살 등을 지시한 수뇌부뿐만 아니라 지시를 받고 실행에 옮겼던 이들에게도 죄를 함께 물었다”며 “시작이 잘못됐고 결과도 잘못됐다면 그 과정 역시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게 상식이다. 역사는 그렇게 바로 세우는 것이다. 그래야 누구도 다시는 똑같은 행위를 저지를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국가가 저지른 죄악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면 응당 국가가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판결은 국가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선언이다”이라면서 “대한민국에는 책임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긴 하는지 모르겠다. 독재자의 야욕에 국민들이 고초를 겪어도, 국가의 방조로 애꿎은 생명이 죽어나가도, 누구 하나 책임이 없다고 한다”고 질타했다.

    통합진보당 홍성규 대변인도 같은 날 논평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참담하게 짓밟았던 끔찍한 박정희 유신독재에 대하여 면죄부만 안겨주는 반역사적 판결”이라며 “사법부의 느닷없는 궤변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홍 대변인은 “더 심각한 것은 현재 박근혜 정권의 공안통치를 묵인하고 부추길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신호를 노골적으로 보냈다는 점”이라며 “박정희 독재정권의 ‘긴급조치’는 40년이 지나 현재 박근혜 정권 하에서 그대로 되살아나고 있다. 1974년 1월 8일, 유언비어를 금지하고 방송·보도·출판 등 전파행위를 금지한다는 <긴급조치 제1호>가 사이버상에서 허위사실 유포사범을 엄중하게 단속하겠다는 ‘사이버 검열’로 되살아나지 않았나”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현 박근혜 대통령의 눈치를 보며 그 아버지인 박정희 유신독재마저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는 명백한 정치판결”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노총도 이날 논평을 통해 “지금도 공무집행이라며 걸핏하면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는 일이 비일비재할 정도인데, 이번 판결처럼 민주적 가치와 천부적 인권보다 국가규율을 우선시하여 무조건 따라야 한다면, 국민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협에 놓이게 된다”며 “악법도 법이라는 것은 명백히 권력 중심의 독재적 발상이다. 이에 따른다면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이들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국가폭력의 하수인이 될 것이고, 국가의 자정능력 또한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주노총은 “권력의 눈치를 살핀 정치적 판결은 아닌지 다분히 의심스럽다”며 “긴급조치는 위헌적 범죄였지만 그 행위는 책임질 수 없다니, 고작 이런 것이 보수인가. 민주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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