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노조,
총회 통해 20년만에 파업 결의
    2014년 10월 23일 03: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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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에 명촌에서 막걸리 한 잔하고 집에 와서 민지랑 저녁 밥 챙겨먹고, 아내가 들어와서 비빔국수 먹고 싶다고 만들어 준 비빔국수까지 조금 먹고 있는데, 핸드폰이 계속 징징댄다.

핸드폰을 켜보니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총회 개표 결과 파업 결의”라는 소식들이 연달아 올라온다.

‘아,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20년만에 파업에 시동을 거는구나’ 가슴이 벅차다.

내가 얼마 전 글을 올려 고발했듯이 현대중공업 회사 측은 노동조합의 파업 결의(조합원 총회)를 방해하기 위해 조합원들을 회유, 협박하고, 투표장 부근에서 위압적인 시위를 하고, 인사고과를 들먹이는 등 갖은 수법으로 조합원 총회를 방해 했다. 이에 맞서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서 조합원 총회 성사를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과정에서 현대중공업 회사 측은 “중역들 전원 사퇴서 제출”이라는 고강도(?) 구조조정을 통해서 현대중공업, 미포조선, 삼호중공업의 임원 중 31명을 짤라 버리고,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인 정몽준의 장남인 정기선 수석부장을 상무로 승진시키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면서 “기업 경영 위기설”를 증폭시켜 노조를 압박해 왔다.

최근 현중 노조에 의해서 현대중공업 회사 측이 이번 총회 과정에서 또 다른 부당노동행위(총회 개입)를 한 것이 드러났다. 노조가 공개한 ‘투표 참여 일일면담 점검표’를 보면 조합원의 성명과 직위 등과 함께 일자별 투표 참여 여부를 확인해 기입하는 공란이 있다. 공란은 O(참여), △(중도), X(불참)으로 나눠서 매일매일 해당란에 체크하도록 돼 있다.

또한, 노조는 점검표 외에도 특정 사업부 투표소를 모니터링 할 담당자 명단과 행동지침을 하달하는 회사 측 문건도 공개했다. 회사는 이토록 악랄한 수법가지 동원해 노조의 파업 결의를 원천봉쇄하려고 발악했던 것이다.

현중개표

22일,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파업찬반 투표 개표장 풍경

그러나 이런 회사 측의 방해 책동에도 불구하고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10월 22일 오후 조합원 총회 투표함을 열어 개포 한 결과를 발표했다.

총원 – 17,906명

투표자 – 10,313명(57.6%)

찬성 – 10,011명(투표자 대비 97.1% / 재적대비 55.9%)

반대 – 248명(2.4%)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조합원들의 파업 결정은 1997년 이후 18년 만이다. 노조는 1996년 7월 조합원 77.4%의 찬성으로 파업을 결정한 바 있으나 당시 실제 파업은 하지는 않았다. 만약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조합원 총회 결과 “파업결의”를 등에 업고 총파업에 나설 경우 1995년 이후 진짜 20년만에 파업투쟁이 재개되는 셈이다.

1987년 그 뜨거웠던 7~9월 투쟁 당시 현대엔진 노조 결성에 이어 현대중공업 민주노조가 만들어진 후, 샌딩머신과 지게차를 앞세우고 남목고개를 넘어 공설운동장, 시청까지 진격했던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진원지가 된 곳이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다. 그 후 128일 총파업과 골리앗 투쟁, 현총련 공동파업, 1994년 투쟁까지 현대중공업노조는 강성노조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1995년부터 소위 친회사, 일명 어용노조가 들어서면서 현장 조직력은 무너졌고, 지난해까지 단 한 차례의 파업도 없이 사측과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다. 특히 2009년 2월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사측에 위임해 현장노동조직으로부터 “노동조합이기를 포기한 배신행위”라는 강력한 반발을 샀다.

그러다가 지난해 10월, 제20대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에서 ‘어용’세력은 패배하고 민주노조를 지향하는 정병모 위원장(57) 체제가 들어서면서 노동조합의 기본권인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파업권)을 온전하게 되살려 놓았다.

​나는 그동안 현대중공업 노사관계를 지켜보면서 시시때때로 마음을 졸여 왔는데 오늘 밤, 조합원 총회에서 과반수 이상의 총회 참가와 재적대비 과반수 이상 조합원의 찬성을 통해서 “파업권”을 확보했다는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소식을 들으며 스스로 감동한다.

미포만, 전하동 1번지, 현대중공업 노동현장에서 무너진 민주노조를 되살리고, 골리앗 전사들의 총파업 깃발을 되찾기 위해 20년 가까이 고군분투해온 현중 노조 동지들의 노고가 새삼 존경스럽다.

​그들은 당장의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민주노조 운동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또다른 현실로 증명하고 있음이다.​

필자소개
박유기
전 현대자동차노조 위원장, 전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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