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의 순간,
    과연 국가가 나를 지켜줄까?
    [책소개] 『위기의 국가(지그문트 바우만 외/ 동녘)
        2014년 10월 19일 12: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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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우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사건은 바로 세월호 참사다. 전 국민이 300여 명이 넘는 생명이 수장되는 과정을 생생히 지켜봤던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참사 이후 드러났던 정부의 무능한 대처를 보면서 우리는 과연 내가 위기에 빠졌을 때, 국가가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피로사회》의 저자인 철학자 한병철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살인자는 애초 선장이 아닌 신자유주의”라고 밝혔다. 신자유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국가는 ‘사회’의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

    기존에 국가가 담당해왔던 모든 영역들, 교육, 의료, 수송과 통신, 경제계획, 국민통화의 발행, 심지어 국방, 그리고 재난 구조까지 모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기업들이 맡아서 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민영화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극단적 형태를 세월호 참사에서 똑똑히 목도했다.

    이 책은 오늘날 국가에게 닥친 ‘위기’에 대한 정의에서 출발해 변화하는 현시대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들의 다양한 양상들을 하나하나 검토해간다.

    이를 위해 저자인 카를로 보르도니와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 사회를 분석한다. 이 책은 오늘날 서구 사회가 직면한 위기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체제와 얽혀 있는 변화, 앞으로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게 될 심대한 변화의 징후라고 말한다.

    또한 이 책은 오늘날 위기와 관련된 문제의 기원에 권력과 정치의 분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말하자면, 정치인은 존재하지만 과거처럼 권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정치의 역할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권력’은 일이 되게 하는 능력이고, ‘정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능력인데, 현시대는 이 둘이 이혼한 상태이고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한다.

    위기의 국가

    왜 사회가 만든 문제를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로 시작된 ‘정의 열풍’과 이창곤의 《어떤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은가?》, 오건호의 《나도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다》 등 ‘복지국가 논쟁’을 거쳐 최근에는 우리가 믿어 왔던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이 흔들리면서 우리 사회의 지배적 담론이 서서히 ‘국가’로 옮겨가고 있다.

    2011년에 출간된 김상봉, 박명림의 《다음 국가를 말하다》에 이어, 유시민이 본격적으로 국가의 본질을 묻고 진보정치가 지향해야 할 바를 논하는 《국가란 무엇인가》가 독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우리는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통치’만 하려고 하는 비정상적 국가를 목도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할 국가가 그 구조의 책임마저 ‘외주화’하고 있는 이상한 현실을 지켜본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독자들 관심 경향의 연장선에 있는 책이다. 국내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세계적 석한 지그문트 바우만이 국가와 민주주의의 위기에 관해 입을 열었다.

    홉스, 마키아벨리, 마르크스, 스미스, 포퍼, 하이에크, 보댕 등의 고전 사상가는 물론 하버마스, 벤야민, 발리바르, 바티모 등 최근 사상가들까지 두루 살피면서 다양한 국가론의 기원과 이념적 갈래를 면밀히 고찰하고, 이러한 분석 틀을 토대로 지금 세계의 국가론을 분석·조명하며, 나아가 ‘정의로운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방향을 모색한다.

    또한 이 책은 근대국가의 위기에서 대의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신자유주의 경제에서 현재 진행 중인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국가 없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서구 사회의 현 상태에 대한 독창적 분석을 제시한다.

    이 책은 바우만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개념인 ‘액체 사회’의 쟁점들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생생한 토론이자 현재를 이해함으로써 미래를 준비하려는 시도다. 이 책은 일종의 위기 사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위기와 관련된 온갖 주제들에 대해 독창적인 논의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은 지지 않고 통치만 하려고 하는 비정상적인 국가

    오늘날 가장 첨예한 사회문제, 이를테면 불평등 문제의 해결책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이 문제의 해결책을 ‘국가’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이제 국가가 뭔가를 해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지금의 ‘위기’는 예전의 그것과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권력과 정치가 분리되면서 세계를 움직이는 실질적 권력이 국가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미 넘어가 있기 때문이다.

    바우만은 이 책의 1장에서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통치만 하는 오늘날 비정상적인 국가를 일컫는 “국가 없는 국가주의”라는 발리바르의 표현을 빌려 이런 상황을 들여다본다. 2장에서는 바우만의 전공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의 위기를 불러온 모더니티에 관한 논쟁을 보르도니와 함께 나눈다. 3장에서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를 다루면서 사람들의 ‘분노’가 어디에서 연유하고 있는지 살피며 민주주의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이 책의 기본 주제는 서구에 닥친 위기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경제적, 사회적 시스템과 관련되어 있으면서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심원한 변화를 암시한다는 것이다. 보르도니는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의 위기, 정치의 공백기를 주장하는 반면, 바우만은 ‘액체 근대’ 이론의 틀 내에서 새로운 해결책을 제안한다. 이 책은 구체적으로 현대 국가의 위기에서 대의제까지, 신자유주의 경제학에서 대중 사회로부터의 계속적인 탈출에 이르기까지 현대 서구 사회의 상황을 분석한다.

    “국가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왜 존재하는 것입니까?”

    이 책은 근대성 문제에 대해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지그문트 바우만과 카를로 보르도니가 시급하게 제기되고 있는 국가의 문제를 ‘위기’라는 키워드에 담아서 대담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은 주로 유럽의 위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이 문제들은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문제들은 서구의 현실에 한정되는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 한국 역시 비슷한 실정에 처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모델로 삼고 달려온 그 서구의 근대성 역시 우리가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드러나는 다양한 문제의식들은 지금 여기 한국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생생한 현장감으로 육박해오는 절박한 사안들이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에 목격했던 일련의 상황들은 바우만과 보르도니의 대담에서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있는 “국가 없는 국가주의”의 사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독자들은 유럽의 위기에 대한 논의가 우리 자신의 현실로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무능한 정부, 또는 민의를 대의하지 못하는 정치인과, 정치제도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무엇을 의미하고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바우만과 보르도니는 다양한 철학적 용어들을 동원하면서도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위기’에 대한 인상적인 분석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논의를 위해 참고해야할 지적 풍경을 펼쳐 보여준다는 점이다. 최근 논의에 참가하고 있는 다양한 이론가들을 거론함으로써 또 다른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그렇다고 전문적 배경이 없는 독자들이 따라가기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친절하고 자세한 옮긴이 주는 정치 이론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더라도 충분히 대담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아울러 마지막 장에서 다루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관한 바우만과 보르도니의 생각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한 신선한 관점을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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