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애호가를 위한
    신고전주의 작곡가 힌데미트
    [클래식 음악 이야기] 파울 힌데미트(1895-1963)
        2014년 09월 18일 10: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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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말. 말.

    “음악은 그것을 노래하고 연주하고 듣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것”

    “작곡을 위한 작곡은 자신에게서 영원히 사라졌다.”

    독일 작곡가 힌데미트(Paul Hindemith, 1895-1963)는 무대를 없애 버렸다. 아니 연주자들을 무대 위에서 끌어내렸다.

    연주자와 청중이란 경계선을 엄격히 긋고 있는 무대는 매우 권위적이고 엄숙한 신성한 장소로 여겨진다. 청중은 턱시도와 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연주자들에게 환호의 박수를 치며 작곡가의 작품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무대 위와 아래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청중의 모든 시선은 무대 위의 연주자들에게 모으고 숨죽이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선율과 화음에 집중한다.

    특히 낭만시대의 무대 음악이 그러했다. 작곡가들은 자신만의 특성을 살리기에 바쁘고, 연주자들은 작곡가 혹은 자신의 작품을 표현하기 위해 본인들이 개발한 테크닉으로 청중을 매료시키기에 분주하다. 연주자의 뛰어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협주곡, 독주곡 등이 등장하여 피아니스트 리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들의 음악은 비이성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인간의 내면세계, 동경과 무한의 세계, 즉 환상적인 세계로 청중의 마음을 유혹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쇼맨십과 묘기에 가까운 대단한 테크닉을 겸비한 비르투오 연주자에 대한 우상화는 작품과 청중과의 거리감을 만들어 냈다.

    무대 위에 화려하게 펼쳐지는 장면은 감히 근접할 수 없는 물리적 거리감과 함께 그저 환상적 세계로 이끌려 질 뿐 실제로 느끼고 만질 수 없는 정신적, 물리적 거리감만 가져다준다. 여기서 무대 위의 조명을 받고 있는 연주자들의 위력은 눌려 무대 아래 위치해 있는 청중의 존재는 매우 나약하기 그지없다. 음악을 그저 좋아하고 사랑하는 아마추어 음악가들은 감히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청중과 연주가의 거리감을 좁혀서 음악적인 이해를 더 쉽게 하려 한 힌데미트는, 이러한 스펙타클하고도 기교적인 낭만주의 음악에 거부감을 가졌다. 반낭만적 성향을 가진 그는 청중이 어떤 생각을 할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오로지 작곡가 자신의 창작 세계만 집중하는, 즉 음악 자체로만 존재하는, ‘음악적 자율성’에 대한 사고를 가졌던 당시의 음악 경향을 비판했다. 그리고 음악을 인간의 삶에 그리고 ‘일상생활에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힌데미트는 음악이 더 이상 전문 음악가들의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음악을 인간의 삶, 일상생활 속에 되돌려주어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음악인들이 진정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작곡가 역시 자신의 영혼을 만족시키려고 작곡하는 예술가라기보다는 오히려 특정 목적을 위한 사회적 요구에 맞춰서 만들어 내는 장인이었다. 그리하여 연주자와 청중을 따로 구분 짓지 않고 서로 교감을 느낄 수 있는, 즉 청중이 쉽게 다가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쉬운 음악을 작곡하기에 이른다.

    그는 음악이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님을 강조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즐기는 모든 사람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음악을 추구했다. 그는 작곡가라는 존재는 신적이고 우상화된 고립해 있는 인간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 음악을 도구로 삼아 자신의 기능을 활용하여 교우들과 교류하는 것이 의무라고 밝혔다.

    “음악을 신중하게 이해하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애호가들은 음악을 직업적으로 다루는 사람만큼이나 우리 음악 문화의 중요한 구성원입니다. …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은 직업 음악가의 과제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연주해 보는 것은 애호가의 과제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인은 음악적 발전에 똑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옳은 말이다. 직접 연주해 보지 않고 어떻게 무대 위에 설 수 있을까. 힌데미트는 전문음악인들의 화려한 등장으로 인하여 그동안 소외되었던 아마추어 음악애호가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아마추어 음악애호가가 있음으로서 해서 전문음악가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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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힌데미트가 사회의 일원인 음악 애호가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가지게 된 배경에는 그의 불우한 가정환경이 한몫했다.

    가난한 노동계급의 도장공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면서 실리적이고 실용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된 힌데미트는, 어린 시절 카페나 댄스밴드, 극장등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생활을 꾸려 나갔다. 그러면서 거의 모든 종류의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게 되었고, 그 덕택에 그는 철저한 생활인 음악가가 되었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과 성향은 실용적인 음악을 작곡하는 계기이자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이 힌데미트가 주창한 ‘실용음악Gebrauchsmusik’이다.

    여기서 말하는 ‘실용음악’이란 지적 취향의 감상용 음악이 아닌 일반 청중들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고 비전문가나 어린이도 호기심을 가지고 연주해 보고 싶어지는 그런 음악을 말한다. 힌데미트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요구하는 바를 수용하여 재즈, 대중음악을 비롯하여 유흥음악을 예술음악에 수용하였고, 그렇게 만든 음악을 ‘라디오음악’이나 ‘교육용 음악’ 등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힌데미트는 현대적 주법이지만 기교가 그리 어렵지 않아 초보자도 연주할 수 있는 <기악합주를 위한 학교용 작품 Schulwerk für Instrumental-Zusammenspiel, op. 44>(1927)을 작곡했고, 어린이들이 간단한 반주와 함께 노래할 수 있는 <우리 함께 마을을 만들어요 Wir bauen eine Stadt>(1930)라는 노래극도 만들었다.

    그 외에 인형극 음악으로 <어릿광대의 영웅적 행동의 음악 Musik zu Kasperls Heldentaten von Pocci(1915?), 요술쟁이 바이올리니스트의 듀엣 Duett aus Die Zaubergeige von Pocci(1916); <음악 애호가를 위한 유희음악 Sing und Spielmusik für Liebhaber und Musikfreunde, op. 45>(1928-9) 등을 만들고, 아이들의 음악 수업용 작품으로 <음악의 노래 Lied von der Musik(1940), <피아노 푸가 Fuge für Klavier(1940), 감격 (Enthusiasm> (1941), 야누스 데이와 도나 노비스 (Agnus Dei und Dona nobis>(1941) 등을 작곡했다.

    힌데미트가 실용음악을 만들기 위해 도입한 음악 성향들은 19세기 낭만주의 음악 양식과 사상을 거부하는 반낭만적 성향의 ‘신고전주의,’ ‘신객관주의,’ ‘신바로크주의’이다.

    전통적 요소를 단순히 수용하지 않고 개성 있게 변화시킴으로서 성립되는 ‘신고전주의’는 낭만시대 이전의 전통적 음악에 접목한 음악경향을 지칭하고, ‘신객관주의’는 낭만시대음악의 과다한 감정표현을 거부하는 객관적인 경향의 음악을 의미한다. ‘신바로크주의’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에서 이상적 모델을 찾는 음악을 말한다.

    음악애호가를 위한 반 낭만적 성향을 가진 실용음악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은, 20세기 초 주된 음악 흐름이던 무조음악, 12음 음악에 대한 반발과 함께 ‘바흐로 돌아가자’는 복고운동에 대한 동참으로 이어진다.

    조성음악에 익숙한 일반 청중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고 듣기 쉬운 감정이입이 용이한 음악이지 기법적으로도 복잡하고 즐기기에 부담스러운 난해한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청중과 공유해야하는 음악의 사회적 본분을 저버린 것이라고 힌데미트는 생각했다.

    힌데미트는 바로크 모음곡 형태 안에서 대위법적 양식으로 진행시키면서 현대적 감각과 리듬을 추가로 삽입함으로써 음악 애호가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썼다.

    그의 <소관현악을 위한 실내악 Kammermusik No. 1, op. 24>(1922)은 일반 클래식 음악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하모니움(Harmonium)을 포함한 12개의 독주악기(타악기, 피아노, 트럼펫, 플룻, 클라리넷, 바순 등)로 구성된 4악장의 작품이다.

    구체적인 악장 구성을 보면 1악장. Sehr schnell und wild(매우 빠르고 거칠게) 2악장. Mäßig schnelle Halbe (보통 빠르기의 2분음) 3악장. Quartett: Sehr langsam und mit Ausdruck(매우 느리게 그리고 표현을 가지고) 4악장. Finale 1921: Lebhaft (활기차게)로 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 악장 피날레에는 현대적 우아함의 모던 댄스인 ‘폭스트로트(Foxtrot, 여우의 춤)을 삽입하여 대중성을 높였다.

    1922년 작품인 <피아노 모음곡 op. 26, Suite ‘1922’ for piano op. 26>에서는 전통적인 모음곡 형식(March(행진곡) – Shimmy(지미) – Nachtstück (야상곡) – Boston – Ragtime)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켰다. 2박자 계통의 재즈(Jazz) 춤인 지미(Shimmy), 3박자의 느린 왈츠에서 유래한 가볍고 빠른 춤곡인 보스톤(Boston)이 경쾌하게 어우러지고, 미국의 뉴올리언즈 재즈에서 유래한 음악인 규칙적인 비트와 그에 맞서는 당김음syncopaition(규칙적인 강박과 약박의 역할을 바꿈으로써 음악에 의외성과 활기와 발랄한 감정을 유발시키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선율이 특징인 래그타임(Ragtime)이 곡 전체의 흐름을 주도한다.

    힌데미트는 작곡가와 연주가였을 뿐민 아니라 음악이론가이자 교육자이기도 했다. 그는 저서 <작곡지침서Unterweisung im Tonsatz>(1937)에서 음악의 자연법칙(근본적 자연 배 음렬로부터 유추된 원리)과 조성을 강조한 독자적인 화성 이론을 확립한다. 더 나아가 <작곡기법>(1941, 개정 1945), <전통적 화성법A Concentrated Course in Traditional Harmony>(1943), <음악가의 기초훈련 Elementary Training for Musicians>(1946), <작가의 세계 A Composer’s World>(1952) 등 다수의 이론서를 집필했다.

    힌데미트가 직접 대본까지 쓴 <화가 마티스Mathis der Maler>(1934)는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오페라이다. 이 오페라는 같은 제목의 교향곡(1악장: 천사의 합주 Engelkonzert, 2악장: 매장 Grablegung, 3악장: 성 안토니우스의 시련 Versuchung des heiligen Antonio)으로도 만들어졌다. 오페라 <화가 마티스>는 독일 종교 화가이자 궁정화가였던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hias Grünewald, c. 1470-1528)의 시민항쟁 속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주인공의 모습에는 힌데미트 본인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주인공은 농민 편에 서서 농민항쟁에 가담하다가 결국 사망한다. 이처럼 교회의 억압, 폭정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오페라는 나치 정권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유대인 출신 음악가들과 실내악 연주 활동을 한 힌데미트에게 집중되는 시선이 곱지가 않았다. 이때 궁지에 몰린 힌데미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이 게르만 혈통의 지휘자가 푸르트뱅글러(Wilhelm Furtwängler, 1886-1954)이다.

    푸르트뱅글러는 정치가 음악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힌데미트를 옹호했다. 이에 나치 정부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 이에 맞서 푸르트뱅글러는 베를린필 상임직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정치적.예술적 공직에 사표를 냈으며 이후 출국금지령까지 당했다 한다.

    그러나 푸르트뱅글러의 희생적 도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힌데미트는 추방당한다. 이것이 바로 음악사에서 유명한 ‘힌데미트 사건(Hindemith Scandal)’이다.

    힌데미트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두려움과 어려움으로 쉽게 다가서지 못했던 소심한 아마추어 음악애호가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그들을 위해 작품을 썼으며 그들을 위해 지침서를 냈으며, 자신의 주장을 몸소 실천한 음악가였다. 독일인으로서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유대인 음악인들과 활동했으며, 클래식 음악의 실용화를 위해 기꺼이 무대 위에서 내려왔다.

    힌데미트는 말한다.

    “… 애호가를 위한 음악, 어린이를 위한 음악, 라디오 음악, 메카니즘 악기를 위한 음악 등등. 이러한 종류의 음악이 나는 음악회용 음악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음악회를 위한 음악은 단지 음악가를 위한 기술적 과제를 보일 뿐이며, 음악의 계속적 발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한양대 음악대학 기악과와 동대학원 졸업. 미국 이스턴일리노이대 피아노석사, 아이오와대 음악학석사, 위스콘신대 음악이론 철학박사. 한양대 음악연구소 연구원, 청담러닝 뉴미디어 콘테츠 페르소나 연구개발 연구원 역임, 현재 서울대 출강. ‘20세기 작곡가 연구’(공저), ‘음악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번역), ‘클래식의 격렬한 이해’(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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