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은 언제까지
여성 사제를 미룰 것인가
    2014년 09월 02일 11: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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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 관련 기사 링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진보의 아이콘으로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수녀 등 가톨릭 내 여성의 지위는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불평등 구조가 계속되면서 2014년 현재 미국에는 49,883명의 수녀들이 있지만 2010년 이래 13%가 감소했으며, 1965년 이후로 거슬러 올라가면 72% 감소했다는 것이다.

남아있는 수녀들도 병원, 노숙자 쉼터 등 다양한 곳에서 봉사하고 있지만 그들이 역할에 비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사제직에 대한 도전 역시 막혀 있어 좌절감이 크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처럼 가톨릭교회 내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과 여성의 사제직 임명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음에도 바티칸은 예수의 12사도가 모두 남자였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성서에서 나와 있듯이 예수 운동과 원시 기독교에서는 여성들은 다른 남성 제자들과 평등했고, 공동체 상층부에 여성이 포함됐기 때문에 가부장적인 당시 문화에 시달리던 여성들에게는 교회는 일종의 해방구 같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교회가 제도화되면서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의 태도를 가진 남성들이 교회 구조를 독점하면서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여성은 교회에서 배제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교에서 여성의 역할이 급격히 축소된 시점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소집한 325년 니케아 공의회였다.

그전까지 그리스도교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부제품’을 받고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물론 여성 부제의 역할이 여성만을 위한 봉사에 한정되었고, 4세기에 들어 세례성사를 줄 수 없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여성 부제를 성직자로 간주했다.

그러나 니케아 공의회가 “여성들이 더 이상 주교로부터 어떠한 안수도 받아서는 안 되며,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라고 단언한 뒤로 남성만이 교회 업무에 참여할 수 있었다. 829년 파리 시노드(교회의 전통과 규칙을 정하는 회의)에서는 여성에게 전례용기 접촉 금지령을 내리고 초를 켜거나 종을 울리는 일조차 금지하고 위령기도도 바칠 수 없게 했다.

9세기와 10세기를 거치면서 교회 개혁운동은 사제 생활의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졌고, 여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경향을 보였다.

바티칸으로부터 파문당한 독일 신학자 한스 큉은 가톨릭교회의 남성 지배권은 “신약성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성직자 결혼 금지령이 없었다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라면서 “사제 독신법은 성직자와 교권제도, 사제 계급이 ‘평신도’인 백성과 분리돼 완전히 그들 위에 군림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큰 위력을 발휘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사제들의 결혼을 금지하기 위한 논의는 교황 레오 9세(1049~1054)때 본격화되다가 1139년 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종지부를 찍고 당시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하던 성직자의 아내는 첩으로 취급받고 자녀들은 노예로 교회 재산에 귀속됐다. 이때부터 사제와 평신도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생겼고, 특히 여성과의 분리는 더욱 심화됐다.

불교에서 여성이 남성승려(비구)의 해탈을 방해하는 대상으로 그려진 것과 같이 가톨릭교회에서도 성모 마리아를 제외하고 보통 여성들은 흔히 사제들을 유혹하는 성적 존재로 각인된 것이다.

그리스도교 내에서 오랫동안 금기시되던 여성 사제직 논의가 대두된 것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3년)이후이다. 이를 계기로 페미니즘 운동이 교회 내부까지 확산되기 시작했는데,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여성 서품 혹은 안수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이후 대부분의 개신교단에 속한 여성들이 안수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1992년 영국 성공회는 여성 사제를 수용하는 결단을 내렸다. 여기서 더 나아가 2006년 미국 성공회에서는 캐서린 제프리 쇼리라는 사제가 성공회 역사상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관구장직(Primate)을 오르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보수적인 사제들은 성공회를 탈퇴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등 큰 진통을 겪었다.

개신교나 성공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의 경우는 여전히 완고하다. 2008년에는 교황청 신앙교리성 명의로 여성 사제 서품을 금지하는 교황 교령을 발표하고 “여성이 사제품을 받으려 하거나 여성에게 사제품을 주는 모든 이는 자동처벌의 파문 제재에 해당한다”는 강경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거세다. 2012년 12월 미국 남부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는 로마가톨릭 여성성직자협회’(Association of Roman Catholic Women Priests, ARCWP)주관으로 다이앤 도허티(Diane Dougherty, 당시 67세)라는 여성의 사제 서품식을 거행했다.(아래 사진)

여성사제

사진은 백찬홍님 페이스북

도허티의 서품식에서는 다른 5명의 여성이 사제 바로 아래 직인 부제가 됐다. 도허티는 20년 넘게 가톨릭 학교와 교회에서 수녀이자 교육자로 봉직하고 2010년 플로리다 주 사라토사에서 부제가 됐지만 “여성은 사제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교적에서 제명된 바 있다.

바티칸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ARCWP는 현재까지 2002년 자신들이 처음으로 7명을 서품한 이래 지금까지 10명의 주교를 포함해 약 140명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교황청은 이들을 예외 없이 파문시켰고 도허티에 대해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여성을 우정으로 대했지만 12사도에는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 사제는 성경에 위배된다”며 파문결정을 내렸다.

요한 23세(1958~1963) 이후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교회안팎의 기대와는 달리 2013년 9월 동성 결혼과 여성 사제 서품을 옹호하던 그렉 레이놀즈라는 호주 신부를 파문해 여성계에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이처럼 교황청이 여성 사제직에 대해 강력하게 제재하고 있지만 과연 언제까지 여성 사제직을 막을 수 있을 지 의문이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남성 사제 수가 격감하는데다 나라를 불문하고 성추행 사건이 계속적으로 불거지면서 교권의 마지막 보루인 사제들의 결혼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공중파 방송인 NBC가 도허티의 사제 임명이 이슈화되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가톨릭 신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 사제를 허용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사제 허용은 가톨릭교회의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교황이 아무리 겉으로 좋은 얘기를 해도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가톨릭교회가 오랜 폐습에서 벗어나 하루빨리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갈라디아서 3장 28절)라는 예수의 길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씨알재단 운영위원.'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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