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고리.
    [에정칼럼] 고리1호기, 수명 연장 이어 또 재연장이라니
        2014년 08월 26일 10:55 오전

    Print Friendly

    난데없이 괴물이 나타난다. 괴물에게 오빠를 잃은 여성은 외딴 집에 숨어들고,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기만 살 궁리에 집중하며, 불신에 차 논쟁만 계속한다. 괴물들의 공격은 거세지지만,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정부 당국은 숨고 피하기에 급급하다. 알아서 대피하라는 식의 간단한 대응지침만 내리는 게 전부다. 결국 집의 방어선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괴물에게 무참히 살해된다. 한 흑인이 사투를 벌이며 끝까지 살아남았지만, 그 역시 좀비를 소탕하기 위한 민병대에 의해 사살 당한다. 아무도 남지 않았다.

    어디서 한번쯤은 봤음직한 이 줄거리는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원제 : Night of the Living Dead)의 줄거리다’.

    비록 ‘좀비’란 말은 로메로 감독의 추후작인 ‘시체들의 새벽(원제 : Dawn of the Dead)’에서 처음 등장하긴 하지만, 좀비영화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좀비영화의 효시로 꼽히는 걸작이다. 이후 ‘좀비’는 죽지 않고 계속 살아나는 무언가를 일컫는 관용어가 되었다.

    뜬금없이 좀비 영화를 언급하는 까닭은 이 이야기가 기시감을 일으킬 정도로 어디선가 한번쯤은 봤을 법한 이야기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세월호 사태를 둘러싼 흐름이 이 이야기와 거의 일치하고, 최근 군에서 일어난 사고와 대응 과정 역시 여기서 멀지 않다. 멀리는 4대강 사업과 소득격차 문제도 해석에 따라 대입이 가능하다.

    그리고 지금 또 하나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열리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국내 최고령 핵발전소인 고리 1호기의 수명을 또 연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고리 핵발전소 1호기는 1978년 준공 이후 2007년 설계수명 30년을 다했다. 하지만 정부가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2008년부터 10년간 수명연장을 결정했다. 그 사이 크고 작은 사고들이 일어났지만 고리 1호기는 정부의 극진한 노력(?)으로 꿋꿋이 우리 곁에 있다.

    그런데 얼마 전 한수원이 발전소 설계전문회사인 한국전력기술과 ‘고리 1호기 예비 안전성 평가’용역을 맺은 것으로 드러났다.

    원자력안전법이 원전의 수명 연장을 원할 경우 설계수명 2~3년 전에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2차 수명연장을 위한 사전작업임이 명백하다. 2차 수명 연장 신청기한이 내년 6월까지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주기적 안전성 평가에 불과하다는 설명이지만 올해 말에는 장기전력공급계획을 포함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세워지기 때문에 사실 옹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정부와 핵마피아들은 핵발전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탈핵 여론이 높은 지금 핵발전의 상징인 고리 1호기를 폐로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폐로 역사를 가져본 적 없는 우리로서는 폐로과정 자체가 하나의 시대가 가는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탈핵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핵발전 유지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모두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수명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결국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의 폐로 여부에 따라 핵발전 체계의 운명이 급변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고리1호기

    가장 노후되고 위험한 원전 고리1호기 국내에 ‘보고된’ 원전사고 654번,
    그 중 고리1호기 사고만 129번으로 국내 원전사고의 20%가 발생했다 (사진=나눔문화)

    하지만, 그런 관점이 아니더라도 고리 1호기의 수명 재연장은 그걸 생각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매우 부적합하다. 당시 정부가 사회적 반대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수명 연장을 강행했던 것은 차치하더라도, 2012년 고리 핵발전소에 전원 공급이 12분간 중단되면서 노심용융 직전 사태까지 간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건이다.

    하지만 한수원측은 이 사실을 은폐해 물의를 빚었는데, 당시 부산 시의원이 술자리에서 직원들끼리 하는 얘기를 우연히 들어 세상을 놀래킨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재난 안전팀의 직원들이 근무시간 중 필로폰을 상습 투여하는 해외토픽 감의 사건이 일어난 곳도 고리 핵발전소다.

    또 발전소 간부가 수억 원의 뇌물을 받았고, 그걸 조사하는 과정에서 고리 핵발전소에 나간 중고부품이 새부품으로 둔갑해 다시 납품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국적으로 대량 납품됐던 짝퉁 부품이 고리 핵발전소에도 어김없이 쓰였다. 이런 시설의 수명을 다시 연장한다는 건 납득의 문제를 넘어 수명연장 시도가 있다는 것 자체가 황망하기 짝이 없다.

    월성 1호기 연장도 불허해야 하는 판에 고리 1호기 수명 재연장이라니 이게 과연 생각조차 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중국과 한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전세계적으로는 이미 핵발전소 수명 연장이 아니라 핵발전소 폐로가 주된 흐름이다. 세계 19개 국가의 149기 핵발전소가 영구정지되었고, 독일 등지에서 총 21개 핵발전소가 순차적으로 영구정지될 계획이다. 심지어는 해체를 완료한 원전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정부는 아랍에미리트연합 등과 핵발전소 수출 계약을 맺으면서 핵발전소 건설이 우리나라의 신성장산업이 될 거라고 공언했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심지어는 국제원자력기구조차 핵발전 폐로 시장규모가 2030년에 500조원, 2050년 1000조원에 이르러 핵발전소 건설보다 핵발전소 폐로시장이 훨씬 더 시장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경우 가동 중인 핵발전소 중 10기가 2020년대에 설계수명이 만료된다. 오히려 전략적으로 폐로 기술을 확보해 시장을 점유하는 것이 산업측면에서도 훨씬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소 신규 건설과 수명 연장을 신처럼 떠받들기만 하는 것은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다. 사회 여론과 공공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잘 알고 있다. 오히려 폐로 시장에 진출할 경우 자신들의 기득권-그렇게 부르고 싶지는 않지만-이 2050년까지도 끄떡없다는 발상은 왜 못하는 걸까.

    우리는 핵발전소라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원하지 않는다. 만에 하나 불의의 사고가 일어날 경우 세월호 사태처럼 우왕좌왕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할 게 분명한 현 시스템은 더욱 원하지 않는다. 시체들이 살아나도록 만들려는 시도는 아예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 고인은 좀! 보내드리자.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