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덤 서머’ 50주년,
끝나지 않은 인종 문제
[책소개] 『프리덤 서머 1964』(브루스 왓슨/ 삼천리)
    2014년 08월 23일 01: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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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014년은 프리덤 서머 50주년이다. 미국 PBS에서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미국의 경험’(American Experience) 프리덤 서머 편을 6월 24일에 방영했다. 25일에는 미국 남부 미시시피 주 잭슨 시 컨벤션센터에 “우리 승리하리라” 노래가 울려 퍼졌다. 반세기 전 그 뜨거운 여름, 백인과 흑인들이 손을 맞잡고 인종차별 철폐를 불렀던 곳이다.

그것도 잠시 최근에 경찰이 10대 흑인을 총으로 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흑인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급기야 미주리 주 퍼거슨 시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100년 전 W. E. B. 듀보이스가 “20세기는 인종차별이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듯이, 여전히 인종 문제를 제쳐두고 미국의 민주주의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다. 민권운동 하면 어디서나 로마틴 루터 킹과 로자 파크스라는 이름이 나오고 주류 언론도 그들 이름만 되풀이된다.

이 책에 나오는 수백 명의 이름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더라도, 이제 우리는 패니 루 헤이머와 밥 모지스, 그리고 굿먼, 체이니, 슈워너 세 청년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

1960년대 미국 민주주의와 인종분리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DC 한가운데 20만 명이 넘는 군중 앞에서 마틴 루터 킹은 그 유명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했다.

킹 목사가 “지난날 노예였던 이들의 아들들과 지난날 노예소유주였던 이들의 아들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을 그날”을 꿈꾸고 있다고 말할 때, 백인의 71퍼센트는 “흑인은 냄새가 다르다”고 말했다. 언젠가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평가 받게” 되리라는 킹의 희망에 군중들이 환호할 때, 여론조사 참가자의 절반은 “흑인은 날 때부터 지능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킹이 점점 감정이 고조되어 “흑인과 백인, 유대인과 비유대인, 개신교와 구교를 떠나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손에 손을 잡을 수 있는” 날을 꿈꾸고 있다고 말할 때, 여론조사 참가자의 69퍼센트는 “흑인들은 도덕관념이 느슨하다”고 답했고, 네 명 가운데 세 명이 “흑인은 꿈이 별로 없다”고 답변했으며, 90퍼센트는 딸이 흑인과 사귀는 걸 절대로 허락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특히 남부에서는 73퍼센트가 흑인의 지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고, 88퍼센트는 “냄새가 다르다”고 여겼으며, 89퍼센트가 “도덕관념이 느슨하다”고 생각했다. 미시시피는 그런 남부의 대표적인 주였다.

프리덤 서머

KKK와 남북전쟁의 망령이 떠도는 남부, 미시시피

에이브러햄 링컨의 노예해방령이 발표되고도,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은 ‘시민’이 되기 위해 끝없이 싸워 왔다.

1954년 ‘브라운 대 캔자스 주 토피카 교육위원회’ 판결은 공립학교의 인종분리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1955년 말,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로자 파크스는 버스에서 자신이 선택한 좌석을 포기하지 않았고, 흑인들이 버스 보이콧 운동에 참여하여 공공버스의 인종분리와 차별에 항의했다.

1956년에 연방 법원은 몽고메리 공공버스의 인종분리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1957년, 아칸소 주 리틀록에서는 마침내 센트럴고등학교에 흑인 학생 아홉 명이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

1964년 여름, 세계적인 목화 주산지 미시시피 주에서는 지난날 노예들의 후손들이 여전히 백인 소유의 대농장에서 목화를 따고 있었다. 얼마 전 피살당한 젊고 잘생긴 대통령 존 F. 케네디를 좋아했지만, 흑인 대부분은 그들 손으로 대통령을 뽑지 못했다. 연방의원은 물론이고 주지사나 시장을 뽑는 선거도 할 수 없었다.

미국 헌법이 인종분리와 차별을 금지했지만 백인우월주의와 KKK의 폭력 앞에 흑인들은 무력했다. 당시 미시시피는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에서도 가장 심했다. 다른 주의 흑인 투표율은 50퍼센트가 넘었지만 유독 미시시피만은 7퍼센트도 안 되었다. 흑인을 정치권력에서 배제하기 위해 미시시피 백인이 얼마나 극악무도하게 날뛰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테러와 폭력의 공포 앞에서 부른 ‘우리 승리하리라’

1964년 여름, 그야말로 모든 것을 걸고, 목숨까지 걸고 수많은 백인 청년학생들이 미시시피로 가는 버스 앞에 섰다. 같은 시각 또 한 무리의 미국 젊은이들은 수렁에 빠진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고 있었다.

미국 전역에서 자원한 700명이 넘는 대학생은 인종분리와 백인우월주의, KKK의 본거지인 남부로 가기 위해 모였다. 이상주의와 용기, 희망을 품은 젊은이들은 극도의 공포와 좌절감 속에서 “우리 승리하리라”를 부르며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계절학기와 아르바이트를 잠시 미루고 여름 한 철 활동하기 위해 온 이 학생들은 그 뜨거운 ‘프리덤 서머’에 온몸을 바친다.

“미시시피는 올 여름 지옥이 될 거예요. 우리는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의 중심부로 들어갑니다. … 감히 말한다면, 미시시피 실무자는 모두 적어도 한 번씩 폭행을 당했고 총격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어요. 우리가 갈 곳이 어떤 곳인지 상상하기 어려우실 거예요. 지금은 나도 상상하기 어렵지만, 곧 알게 되겠죠…….”(6월 17일 가족들에게 보낸 크리스 윌리엄스의 편지)

일부 활동가는 버클리 자유언론운동, 반전운동, 여성운동 같은 1960년대를 규정한 사건들의 맨 앞자리에 서게 되고, 뒷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선출하는 데 큰 힘을 보탠다. 또 다른 활동가들은 미시시피에서 흡수한 이상을 퍼뜨리며, 늘 권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언제까지나 평범한 민주주의자로 살았다. 젊은 날의 딱 한 철이 그들 마음에 영원히 감동을 준 것이다. 그러나 먼저 그들은 ‘프리덤 서머’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버클리 이른바 명문대 재학생이자 중상류 계층의 자녀들인 이 청년들은 SNCC(학생비폭력실천위원회)와 함께 미시시피에서 활동하는 흑인 민권운동가들과 결합한다. 머나먼 미시시피로 내려가 흑인을 유권자로 등록시키고 자유학교를 열어 흑인 아이들을 교육했다. 가난한 흑인의 판잣집에 머물며 질퍽한 흙길을 걸어 자유와 평등의 메시지를 전했다.

백인 단체의 위협과 폭력, 테러가 난무하는 그곳에서 미국 헌법은 그들을 지켜주지 않았다. 백인 대학생들은 “미국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천천히 때로는 알아챌 수 없을 만큼 느리게, 변화는 미시시피에 찾아왔다.

이듬해인 1965년, 흑인투표권법이 통과되었다. 여섯 달 안에 미시시피 흑인의 60퍼센트가 투표할 수 있었다. 그리고 43년이 지나 미국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얻을 수 있었다.

청년들이 모인 날 밤, 인종으로 갈라진 나라에서 최악의 불안을 자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앤드루 굿먼, 제임스 체이니, 마이클 슈워너, 이 활동가 세 명이 실종된 것이다. KKK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세 청년의 죽음은 미국을 들끓게 했고, FBI 요원이 파견되고 CIA가 조사에 착수했다.

대중 가수 피트 시거와 해리 벨라폰테가 미시시피로 내려가 민권운동의 대열에 참여하고, 필 옥스는 돌아와서 〈미시시피에 들려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린든 존슨, 로버트 케네디, 마틴 루터 킹, 존 루이스, J. 에드거 후버 같은 그 시대의 명망가들이 바삐 움직였다.

프리덤 서머의 기획자이자 민권운동의 소크라테스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인 밥 모지스와 흑인 성녀 페니 루 헤이머는 애틀랜틱시티에서 열릴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여하여 흑인의 실상을 알리고 백인들만의 미국의 민주주의와 미시시피에 이의를 제기했다.

자유와 평등을 향한 드라마, ‘미시시피 버닝’

영화로도 제작된 이 믿을 수 없는 몇 달에 대한 브루스 왓슨의 매혹적인 서술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에피소드에 새로운 빛을 비춘다.

1960년대 미시시피는 남북전쟁의 망령에 사로잡혀 흑인 주권 문제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시대와 동떨어진 곳이었다. 활동가들이 주 전역에 퍼져 활동하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다. 곧이어 폭력이 격화되고 교회가 불타 잿더미가 되었다. 하지만 천천히 때로는 알아챌 수 없을 만큼 느리게, 변화는 미시시피에 찾아왔다. 미시시피 흑인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자유라는 궁극적 목표를 나날이 더 추구해 갔다.

세 사람의 실종에 대해 마지못해 이루어지는 FBI의 수사 과정이 액자를 이루고 있는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두 줄기로 전개된다. 네쇼바 카운티의 사력댐 아래 묻힌 끔찍한 비밀을 한 줄기로, 그 여름의 활동이 치달은 절정, 1964년 해안도시 애틀랜틱시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를 다른 한 줄기로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이 책은 지난날의 활동가들이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사를 지켜보는 장면을 묘사한 에필로그로 끝난다. 누구도 워싱턴 DC에 가지 않고 그저 저마다 자신의 공간에서 TV를 통해 감동적인 장면을 만감이 교차하며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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