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이스버켓 챌린지
“좋은 상품도 사고 좋은 기부도 하고”…연대 아닌 마켓팅
    2014년 08월 21일 10: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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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확산되고 있는 루게릭병 환자들에게 기부하자는 아이스버켓 챌린지 퍼포먼스에 대해  rainygirl님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비판적 글(링크)을 본인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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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를 두고 초치는 소리 안하는 게 좋기는 하지만.

교황 방한을 계기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살핌을 궁리하며 마음 속 부채를 안고 있던 사람들에게 아이스버켓 챌린지는 무척 매력적인 대안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정으로 루게릭병 환우분들을 걱정한다면 아이스버켓 챌린지 얼음바가지가 아니라 의료민영화 막기부터 고민하는 것이 순서였을 것이다.

기부가 약자를 도울 수 있는 건 맞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약자에게 필요한 것은 시혜적 복지가 아니라 생산적 복지이고 사회안전망이다. 사회안전망을 부유층 기부에 의존하는 미국모델만 뒤쫓다간 그냥 미국꼴이 날 수밖에 없다.

아이스버켓

아이스버켓 챌리지 퍼포먼스의 한 모습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실은 루게릭병 환우분들을 돕기 위해 국가의료보험이 아니라, 사설단체인 루게릭병협회가 조직되고 기부금을 받아 해결하는 미국사회 구조의 문제가 드러난 현상이다. 다시 말해 뗌질인 것.

오바마케어부터 시작해서 미국은 사실 사회안전망-의료보험시스템을 처음부터 다 뜯어고쳐야 할 상황이지, 단순하게 ‘오 아이스버켓, 재밌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네’ 라고 칭찬하기만 할 일은 아니다.

진심으로 한국에서도 아이스버켓이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되겠다면, 삼성 이건희 아들 이재용이나 신세계 이마트 오너 정용진부터 얼음물을 뒤집어써주면 수긍할지도 모른다.

불경기가 다가오는 순간 지갑은 닫히고 기부는 줄어들며 취약계층의 삶은 더욱 고달파진다. 때문에 사회안전망 유지를 위해서라도 더욱 경기부양에 매진하고, 낙수효과 따위 운운하는 경기부양책에 희생되는 취약계층의 삶은 다시 고달파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기부에 의존하는 사회안전망 추구란 사실은 악순환의 동참에 지나지 않는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돈으로 무얼 할 것인지에 대한 좀 더 한 단계 나아간 사유와 성찰일 것이다. “빈곤한 나라 어린이를 위해 헌옷과 헌가방을 보내줍시다”라면서 온갖 교회들이 한국 옷을 캄보디아로 보내는 바람에, 캄보디아 의류 내수시장이 개작살 났던 걸 떠올려야한다.

직물공장에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고, 어린이들은 어릴 때부터 양질의 옷이 아닌 ㅇㅇ유치원 ㅇㅇ가스공사 ㅇㅇ찜질방 따위가 쓰인 싼 옷을 선호하는 상황이다. 그걸 사진 찍어다가 동남아 한류라고 내세우는 모습엔 끔찍함마저 느껴진다.

정작 캄보디아 프놈펜 시내 고층빌딩 소유주는 상당수 한국인들이고 이들이 건물 올린다고 내쫓았던 것은 현지 빈민들이었다. 기부하는 한국인과 빈민을 내쫓은 한국인이 한몸 한마음이라는 것은 몸서리쳐질만큼 혐오스러운 일이었다.

퍼포먼스와 버즈효과로 기부금을 더 얻어냈다는 사실에 이런저런 NGO들이 머리 굴리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려온다. 기부금을 얻은 NGO들과, 기부금을 내는 부유한 분들에게는 좋은 행사겠지만, 그 기부금을 받게 될 사람들에겐 진정으로 좋은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 직후 유족들이 기부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음에도 수많은 모금운동이 진행되었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에게 우리 사회는 ‘보상금을 더 원하느냐?’ ‘대학을 보내줄까?’ 는 질문이나 던지고, ‘추모공원 조성하자’ 는 새로운 토목공사 제의나 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우리 사회는 본질적 해결이 아닌, 문제를 우리 눈 앞에서 감추는 데에만 급급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좋은 상품도 사고 좋은 기부도 하고”는 본질적으로 상품 마케팅의 연장이지, 약자를 위한 연대가 될 수 없다.

자본주의 질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각자가 만족하는 수준에서 자신의 부 그리고 선의를 뽐내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사실 라이온스클럽 같은 걸로도 충분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감정 호소에 매달리는 사랑의 리퀘스트가 아니라 올바른 PD수첩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사유와 성찰이 필요하다.

기부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기부가 아니라 탄탄한 사회안전망과 공공의료보험제도가 더 절실하다. 루게릭병뿐만 아니라 질병해결, 기아, 전쟁난민, 정의사회를 위한 공공감시 등 우리의 진짜 ‘후원’을 필요로 하는 곳도 이미 무척이나 많이 줄 서 있다. 즐거운 퍼포먼스나 이벤트가 아니라 구호 차원으로라도 당장의 도움이 필요한 곳들이다.

다들 즐겁자고 하는 건데 왜 노잼이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연대라는 건 그렇게 가볍게 지나갈 일이 아니다. 각 주제마다 저마다의 큰 무게감과 고민거리를 안고 있고, 얼음물 뒤집어 쓰는 찰나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광화문 광장에서 수십 일째 단식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분들, 밀양 송전탑 반대하는 할머니들, 해군기지 반대하는 강정마을 분들더러 ”너네 보상금 더 타려고 그러는 거지?”라 물으면서, 정작 루게릭병 분들에게는 아낌없이 기부하는 모습에 기이함마저 느껴진다.

선의는 존중하고 박수보낼 일이다. 하지만 모두 함께 하나 더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는 지금 보이는 그거 말고, 그 뒤에 하나 더 있다. 기왕 퍼포먼스와 기부 한 김에, 수년 전부터 꾸준히 거리에 계시는 분들 서명에도 동참해주고, 목소리도 함께 높여주고, 응원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 아이스 버킷 챌린지 혹은 ALS(루게릭병)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사회 운동으로, 한 사람이 머리에 얼음물을 뒤집어 쓰거나 미국의 ALS 협회에 기부를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있다. 2014년 여름에 시작된 이 운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급격히 퍼져나가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위키피디아)

필자소개
프로그래머, ilwar.com indistreet.com 등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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