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과 탈핵정치의 길
[에정칼럼] 소금같은 진보정치 부활을 기대하며
    2014년 06월 19일 09: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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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사고 이후 첫 지방선거를 치렀다. 세월호 사고로 모든 이슈가 묻힐 것이라는 우려는 다행히도 ‘원전 안전’ 문제로 이어졌다. 지방선거라는 점에서 지난 총선과 대선보다 핵발전소의 안전, 발전소 폐쇄, 지역 에너지 시스템 등의 문제가 주요 의제로 부상할 수 있었다.

탈핵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던 진보정당의 후보들 뿐 아니라 새누리당의 후보들까지도 핵발전에 대한 입장을 밝히게 만들었다. 이런 점에서 핵발전소를 둘러싼 ‘탈핵 정치’가 움트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탈핵 정치 프레임을 전국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은 탈핵진영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탈핵 정치의 씨앗을 확인한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을 비롯한 노동당, 정의당, 통합진보당의 성과가 저조했다는 점이다.

진보정당들은 단 한 명의 광역단체장이나 기초단체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광역의원이나 기초의원의 의석점유율도 초라하다. 진보정당들의 정책에는 탈핵과 에너지 전환이 빠지지 않았음에도, 시민들은 ‘대안 정당’을 선택하기보다 거대 정당의 탈핵 공약을 선택했다.

삼척의 선택이 보여준 결과는 탈핵정치를 진보정당에 환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제 삼척은 전국적인 탈핵 정치의 선봉에 설 것이다.

‘원전 백지화’를 내건 김양호 삼척시장 당선인(무소속)과 더불어 시의회에 입성하는 최승국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공동대표(무소속)와 이광우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 기획실장(무소속)을 선택한 삼척의 민심은 핵발전소 건설 예정지에서 탈핵 진영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지역으로 탈바꿈 할 준비가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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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삼척에서 열린 탈핵 집회 자료사진(사진=노동당)

신규 ‘원전 부지’를 두고 벌어졌던 고유한 내부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삼척에서만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다른 ‘원전 갈등’ 지역의 무소속이나 진보정당들이 내세운 후보들이 선택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탈핵 의제는 앞으로 고리1호기가 폐쇄가 되는 날까지, 아니 한국의 모든 핵발전소가 사라지고 핵폐기물이 적어도 표면적으로 안전하게 사라질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그런데 이대로라면 탈핵 의제는 단지 위험한 핵발전소를 내 지역에서 없애는 문제로 끝나버릴 우려도 있다.

삼척의 승리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당장에 탈핵 에너지 전환을 이뤄야 한다는 조급함도 아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치러진 세 번의 선거 결과로 볼 때, 탈핵 정치의 새 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핵발전소의 폐쇄와 함께 지역의 에너지, 나아가 국가의 에너지 시스템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논의와 협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진보정당에 대한 싸늘한 민심이 계속 이어진다면, 이런 논의 테이블에 에너지 전환을 고민해 왔던 진보정당들의 자리는 남지 않을 것이다.

소금과 같은 진보정당의 부활을 기대하며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즐거움은 교육감 선거였다. 비단 서울의 드라마틱한 역전극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진보적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되었다(엄밀히 말해서 진보 성향과 개혁 성향으로 구분해야겠지만). 이 결과를 보고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만약 교육감 투표에 소속정당을 표시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물론 세월호 이슈가 학교 안전문제로 틀 지워진 결과이기도 하지만).

희한한 일이다. 사람들은 진보적 성향을 가진 후보자를 지지하지만, 진보적 정당에 대해서는 선을 긋는다. 진보정당이라는 타이틀이 진보적인 후보들에게는 오히려 짐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상황에서 돌아오는 7.30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통해 진보정당의 부활을 희망하는 이들도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진보정당에서 국회의원 몇 명을 더 국회에 진출시키는 게 진보진영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일까? 스타 정치인, 소위 ‘인물’을 탄생시키는 게 희망이라는 논리는 권력의 중심에서 한참 떨어진 진보정당들에게 더 이상 유효한 전략으로 볼 수 없다.

지금 진보정당들은 월드컵 예선에 참가할 자유는 있지만, 결국 본선을 밟지 못하는 변방의 팀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이런 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게다가 내분으로 팀이 쪼개지고, 낡은 전술을 고집하며, 세대교체에 힘쓰지 않아 교체 선수도 없는 상황이다. 체력이 바닥나 어떤 전략과 전술을 쓴다고 해도 실행에 옮길 여력도 없다. 여기서 바랄 것은 딱 하나. 상대방의 자살골밖에 없다. 아니면 월드컵을 유치하든가.

지적했듯이,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들은 몰락했으며, ‘소금’의 역할을 하는 ‘2% 정당’의 지위마저 상실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평가다. 하지만 진보정당들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려는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는다.

탈핵 정치의 의제를 확장하고, ‘원전 유치’ 반대가 탈핵으로, 탈핵이 지역 에너지로, 그리고 부조리한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대안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자면 다른 지역에서 아픔을 겪고 있는 수많은 밀양 할매들을 보듬을 수 있는 진정한 소금 같은 진보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한다.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과거와 결별하는 결단을.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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